Chapter2. 새 술은 새 부대에(2)
“진짜 그 인간 대체 뭐냐!?”
아영은 화를 내며 외투를 집어 던졌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 회장님은 또 뭐가 그렇게 뿔이 나셨을까?”
“아. 서훈 선배. 오셨어요?”
“어. 오늘 연습하러 나갔다면서. 일 끝나고 오는 길에 잠깐 들리려고 했는데 이미 없더라?”
1년 전에 졸업한 동아리 선배 서훈이었다.
현재는 방송국 FD로 일하고 있다.
“말도 마요. 웬 불한당 하나가 난입해서 애들 다 놀라고······”
“취객이라도 들어왔던 거야?”
“취객이면 그러려니 하지. 그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확실 한 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
“뭐야, 그게. 미친 사람이었단 거?”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아! 차라리 녹화된 거를 봐요. 애들 연습 장면 확인하려고 찍어 둔 거 있어요.”
이마를 툭툭 치며 아영이 컴퓨터를 조작했다.
연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항상 녹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에도 두 시간 분량의 녹화본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그냥 저냥 하다가······아. 여기부터요.”
“조운? 갑자기 저기서 답을 한 거야?”
“네. 그러더니 갑자기 흥분을 해서는 저한테 질문을 막 쏟아내고.”
“흐응.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네.”
화면은 쭉 이어졌다.
대담을 주고받던 진호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 아영을 윽박지르는 장면까지.
“호오?”
“왜요?”
“잠깐만 뒤로 돌려볼래?”
서훈은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단순히 머리가 이상하게 난입한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어떤 이질감이었다.
“어, 거기. 멈춰 봐. 그리고 다시 플레이.”
몇 번을 반복해가면서 진호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동작, 얼굴, 목소리.
모든 걸 하나하나 분해해서 살펴봤다.
“이거 굉장하다고 해야 하나?”
“엥? 뭐가요? 저 미친 사람이?”
“어. 너, 저거 보고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냐?”
“뭘 느껴요? 미친 사람이라는 거?”
“쯧쯧. 동아리 회장이라는 놈이 그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봐도 되냐? 자세하게 봐봐.”
서훈의 손짓에 아영이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저 미친 사람에게서 뭘 보란 말일까.
귀찮음과 불만이 섞인 심정이었다.
“······어?”
그러다 그녀도 발견했다.
“그래. 보이지?”
“네. 방금 저 사람 뭘 잡은 거죠?”
“그래. 내가 보기에는 봉. 아니, 창이려나?”
“네. 네. 그래 보이네요. 창을 잡고 격정에 휘감긴 장수? 아! 설마 조운?”
“놀랍지?”
아영이 입을 가리고 경악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이 캐릭터를 연기함에 있어서 그 깊이가 아무리 깊어도 한 번에 그 대상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적어도 그녀의 상식에서는 그러했다.
“에이 설마요. 그냥 우리가 착각 한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짧은 화면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해. 연극 동아리 연습 무대에 사람이 갑자기 난입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럼 뭐, 상황에 몰입해서 진짜 조운이 되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하하. 그건 아니겠지. 그렇게 순간적인 몰입이 되는 배우라면 이미 이 바닥에 소문이 났을 테고.”
서훈도 그것만큼은 부정했다.
순간적인 모습에서 인상적인 걸 발견했다고 그 능력을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몇 명만 지닌 재능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뭔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궁금하기는 하네. 혹시 이 사람 연락처나 그런 건 모르나?”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이러고 사라졌는데.”
“흐응. 그럼 이렇게 하자.”
“네? 뭘요?”
“영상 말이야. 올려. 인터넷에 올려두고 이 사람 찾는다고 하면 연락이 닿지 않겠어?”
서훈은 묘안이라고 의기양양했지만 아영은 회의적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아니 그보다 많은 영상이 올라온다.
그 가운데서 이것만 쏙하고 봐서 연락이 오길 기대하는 건 요행수에 가까웠다.
“그게 되겠어요?”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참 선배도 한결같단 말이에요. 끝에 가선 꼭 대충대충.”
“야야. 그래도 그 실력으로 방송국에서 일하잖아. 난 일 때문에 가 볼 테니까 성과 있으면 연락하고.”
“네, 네. 가보세요.”
아영이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배웅했다.
아이디어는 서훈이 냈지만 결국 일 하는 건 그녀였다.
‘귀찮은데 하지 말까?’
잠깐 30초 정도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정리했다.
미친 사람이든 미친 재능이든 그녀 역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조운이라니.”
삼국지를 좋아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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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 그림자가 늘어진 빌라 옥상.
손가락 마디만큼 타들어간 담배를 문 채 진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몰입이라. 몰입.”
한 번이면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두 번은 아니다.
조조에 이어서 조운까지.
이건 어딘가 공통된 분모가 있음이 분명했다.
‘상황의 유사함을 따지자면 조운은 아니야.’
조조가 추씨에게 홀려 가후에 수작에 빠지게 된 건 자신과 흡사하나 조운은 그렇지 않다.
그는 목숨을 걸어 충정 할 만큼의 대상이 없었다.
“그럼 역시 대상에 이입한 결과인가.”
조조의 경우 추씨에게 홀리는 상황이 유사했다.
당시 진호 역시 지연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으니까.
술기운에 그 감정이 폭발하여 조조에게 이입되었다.
‘······이래도 빈약하긴 하네.’
그럼 조운은 뭐가 그리 이입되었다는 걸까.
상황에 맞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짜 맞추어 보아도 설명이 빈약한 건 사실이었다.
“······아니. 됐어. 어차피 이제 와서 이유를 알 것도 아니고. 차라리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나아.”
한참을 끙끙거리던 진호가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애초에 전생체험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조조에 이어서 조운이라니.
중국계 피가 이어져 있다고 한들 동시대의 두 사람을 같은 전생으로 가지는 것도 이상했다.
모를 일에 얽매여 끙끙 대느니 차라리 이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 갈 방법을 도모 하는 것이 나았다.
어찌 되었든 조조나 조운 모두 범인은 아니었으니까.
“흉내라 한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삶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한 모금을 빨며 그리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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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다.
힘들 때 칭얼거리고 속에 쌓인 걸 털어놓을 대상.
보통은 부모님이나 형제.
혹은 학교의 선생님 정도가 그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진호는 조금 경우가 특이했다.
“진호 씨. 상담은 꼬박꼬박 나오셔야죠.”
일산 외곽의 석음 정신병원.
상담의를 맡고 있는 여 은수라는 여선생이다.
3년 전부터 진호를 담당해서 여태껏 상담 과정을 이어왔다.
진호에게 있어서는 부모를 제외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아니, 어떤 면에서는 부모보다 많은 걸 털어놓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죄송해요. 요즘 일이 많다보니······”
“응? 무슨 일 있었죠? 표정이 좀 이상한데.”
“선생님 이제 관상도 보세요?”
“농담으로 회피하는 건 좋은 반응이 아니라고 했죠? 무슨 일인데요. 말 해 봐요.”
지연에 대한 연애 상담까지 했을 정도로 격이 없는 사이다.
속없는 농담으로 대화를 돌리기는 어려웠다.
머리를 긁적이며 진호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상에.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는 거예요?”
“그럼 뭐 어째요. 계속 다닐 수도 없고. 조조······의 인격이 그런 쪽으로는 칼 같은데.”
“진호 씨. 아예 조조라고 단정지어서 이야기하시네요? 조금도 의심은 안 하는 건가요?”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무슨 제2의 인격이나 회피 반응 같은 게 아니에요. 정말로 조조라는 인물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감정과 생각을 전달했다고요.”
은수는 쉽사리 반응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야 말 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걸 드러내는 건 대상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인격의 해리 현상이 심화되는 건가? 완전히 객관화를 하는 것 같은데.’
생각과 다르게 표정은 침착하게 유지했다.
“그럼 혹시 그 조조나 조운이라는 사람을 지금도 불러 낼 수 있을까요?”
“아······그게 집에서 몇 번 시도해 보긴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뭔가 더 몰입을 해야 하는데 제가 뭐 딱히 연기자도 아닌 터라.”
“흐응. 몰입이라. 혹시 그 연습이라는 거 혼자서 하신 건가요?”
“뭐, 그렇죠? 이런 걸 누구와 터놓고 할 것도 아니고.”
은수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캐비넷 한 칸을 열어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살인자 잭의 이야기’라는 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이건 뭐에요?”
“일전에 환자 치료용으로 만들어 둔 책이에요. 자신을 잭더리퍼의 환생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살인마?”
“네. 이 책은 그 사람의 설명을 기초로 만들었어요. 꽤나 생생하고 몰입도가 높죠. 어때요, 이걸 가지고 역할 분담을 한 번 해 볼래요?”
“살인마를요······?”
“원래 캐릭터가 강할수록 몰입이 잘 되니까요.”
진호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가 조조와 조운을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들이 굉장히 강한 행동력을 지녔다는 점.
이지를 상실하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생각 자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라도 전생의 카테고리에 ‘잭더리퍼’가 포함된다면 어떻게 될까?
“걱정 마세요.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제가 알아서 제지 할 게요. 이래 봐도 유도 유단자랍니다.”
“······가차 없이 넘겨 줄 수 있죠?”
“가능하다면 보고 싶네요.”
“에이. 웃지 마요. 난 되게 심각한데.”
“저도 진지하게 하는 거예요. 해 볼 건가요?”
슥, 내미는 책에 진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불안감은 둘째 치고 그도 호기심은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조조와 조운이 아닌 다른 사람도 가능한 걸까.
가능하다면 살인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살인마의 충동을 막을 수 있을까.
“해 보죠.”
호기심은 항상 이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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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기술한 잭더리퍼의 기록은 꽤 자세했다.
1888년 메리 앤 니콜스로부터 시작되는 연쇄 살인 행각. 대상들은 모두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이었으며 날카로운 수술용 칼에 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 등.
살인 하나하나에 대한 심리 묘사도 상세했다.
대상을 어떻게 보고 어떤 방식으로 잡았는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적어 두었다.
“어때요? 느낌이 오나요?”
“대충 캐릭터는 이해했어요. 이제 어떻게 하죠?”
“장면을 구성해 보죠. 전 피해자인 매인 앤 니콜스로, 진호 씨는 잭으로.”
“음. 될지 모르겠네요.”
대사와 상황 자체는 머리에 집어넣었다.
진호는 속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두어 번 되짚어 본 뒤 은수를 향해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너는 어찌해서 몸을 팔고 있지?”
“네? 아. 손님이신가? 그런 거면 조금 기다려야 할 텐데.”
“아니. 난 손님 같은 게 아니야. 네년의 지저분한 몸뚱이를······몸뚱이를.”
“풋! 푸하! 진호 씨 거기서 말을 더듬으면 어떻게 해요.”
말을 저는 진호의 모습에 은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지하게 하려고 해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발음마저 새는 진호의 연기는 개그 그 자체였다.
몰입은커녕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었다.
“아. 이게 아닌데. 이 캐릭터가 낯설어서 그런지 잘 몰입이 안 되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천천히 반복해 보면서 자신이 뭘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뭘 느끼는지?”
진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은수의 말속에 ‘전생 체험 같은 헛소리는 스스로 깨달아라’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다시 해 보겠어요?”
하지만 은수는 그런 진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연기를 재촉했다.
“아, 네. 다시 해 보죠.”
진호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살인마 잭더리퍼가 되는 것이다.
살인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인물.
스스로 거리의 청소부라 생각하여 혐오를 정당화 하는 인물.
뒤를 쫓아오는 경찰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에서 희열과 스릴을 느끼는 인물.
“자, 잠깐만요. 진호 씨. 팔을 너무 세게 쥔 것 같은데.”
본디 이 거리는 깨끗했다.
순수한 이들만이 거닐 자격이 있는 곳이었다.
더러운 몸뚱이를 파는 오물통의 창녀들이 거닐어도 좋을 곳이 아니었다.
이들은 죽여 없애야 한다.
피로 바닥을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진호 씨. 진호 씨!”
“닥쳐, 썩은 내 나는 갈보 년아.”
“······뭐, 뭐라고요?”
“너희는 모두 오물이야. 치워야 하는 오물.”
날카로운 수술용 칼 하나면 충분하다.
목에 구멍을 뚫으면 이 더러운 오물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짧은 숨소리도.
부들거리는 속눈썹도.
가볍게 약동하는 저 핏줄도.
“그만! 그만해요! 더 이상 하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쉬. 쉬. 그 입으로 뱉어도 되는 건 비명으로 충분해.”
“진호 씨!”
손끝에 창백한 피부가 닿았다.
피부 안쪽에서 가볍게 뛰는 맥박마저 느껴졌다.
가볍게 그러쥐면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지겠지?
거기서 힘을 더 준다면 숨마저 막혀서 버둥거릴 거다.
오, 가여운지고.
더럽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기에 직접 죽여서 정화하는 것이다.
가녀린 목에 이 칼을 쑤셔 넣어······
“진호 씨—!”
“컥!”
순간, 둔탁한 충격과 함께 진호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숨이 턱 막히고 강렬한 충동이 깨지듯 사라졌다.
은수의 얼굴이 거꾸로 시야 한 가득 들어왔다.
그제야 진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시팔······”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