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절대 커플
화보 촬영을 위해 샵에 도착한 서이렌은 머리를 세팅한 채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서이렌의 옆자리에는 함께 온 빈선예가 태블릿 PC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서이렌이 굳은 얼굴로 들고 있던 핸드폰을 탁자 위에 내려놨다.
“왜요? 이렌 씨? 무슨 안 좋은 기사라도 떴어요?”
“아뇨. 기사는 아닌데요.”
“그럼,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서이렌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빈선예에게 보고 있던 핸드폰을 건넸다.
“이것 좀 보세요. 빈 팀장님.”
서이렌이 건넨 핸드폰 속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이 떠 있었다.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피아노’의 시사회 사진이 올라온 글이었다.
사진 속, 레드카펫에 선 서이렌의 모습은 완벽했으며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빈선예는 무엇이 서이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의아해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어……?”
빈선예의 손가락이 핸드폰 화면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나서야 서이렌이 삐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서이렌은 여전히 여신이네.
- 어쩜 저렇게 사람이 기복 없이 예쁘지?
- 서이렌은 아마 아침에 일어나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도 예쁠 거다. ㅋㅋㅋ
- 대표님은 좋겠다. 서이렌이 여친이라니. 부러워. ㅠㅠㅠㅠㅠ
- 근데 원세강이랑 서이렌이랑 진짜 사귀는 거 맞나? 라스트 콘서트 레드카펫 말고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투 샷을 본 적이 없음.
- 스님은 원래 잘 안 나오는 스타일임.
-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같은데? 심지어 두 사람은 목격담도 전혀 없잖아.
- 두 사람 커플명이 그래서 절대 커플이잖아. 안 보인다고.
- 절대 커플??? 설마 반지의 제왕의 그거?
- 사귀면 안 보이는 커플. 미친. ㅋㅋㅋㅋㅋㅋ
- 대표님께 서이렌은 마이 프레셔스니까요. ㅋㅋㅋㅋ
- 해외 팬들도 한국은 파파라치 사진이 하나도 안 뜨는 대단한 나라라며. 역시 동방예의지국이 맞대. ㅋㅋㅋㅋ
- ㅅㅂ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 이번 피아노 시사회 때는 다들 조금씩 기대하고 있었는데. 대표님 코빼기도 안 보여서 너무 슬펐다.
- 이래서 두 사람이 계약 연애라는 소문이 도는 거겠지.
- 그런 소문도 있음???
- 이미 파다함. 얼마 전에는 이니셜 기사까지 떴잖아.
- 말도 안 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전 국민이 다 아는데?
- 어떻게 이뤄진 지는 다 봤는데 이뤄지고 난 다음에 본 게 없잖아.
- 흠. 내가 생각하기에 계약 연애는 아닌 거 같은데……. 지금은 헤어진 거 같음. 서이렌 이미지 때문에 결별 기사 안 내보내는 거 아닐까?
└헐.
└이거 찌라시도 돌더라.
댓글을 다 본 빈선예가 헛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서이렌에게 돌려줬다.
“이렌 씨가 화가 날 만도 하네요.”
“그렇죠? 빈 팀장님? 난 절대 커플이 좋은 뜻인 줄 알았는데 이런 뜻인 줄은 몰랐어요.”
서이렌은 마음이 상했는지 입꼬리가 훅 내려갔다.
“대표님도 고민이 많으실 거예요. 배우의 연애는 아무래도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하시잖아요. 강 이사님이 대신 나서는 경우도 많고요.”
서이렌은 빈선예의 말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렌 씨?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빈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계약 연예 소문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당장 그 루머부터 뿌리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이니셜 기사도 떴다면서요.”
“그 기사는 대표님도 아세요. 이미 우리가 항의해서 내려갔어요.”
“그래도 소문은 여전히 남아 있잖아요. 이대로 둘 수는 없죠.”
빈선예는 서이렌의 두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빈 팀장님이 도와주실 일이 있어요.”
“뭔가요? 뭐든 도울게요. 말만 해요.”
서이렌은 빈선예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이야기를 들은 빈선예의 눈이 커지더니 서이렌을 쳐다봤다.
“어때요?”
“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그 정도면 소문이 확 사그라들 것 같아요. 절대 커플이라는 오명도 사라지고요.”
“그렇겠죠?”
서이렌과 빈선예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 * *
오늘은 강남 한복판에서 저승사자2의 촬영이 진행된다.
저승사자2는 1편의 성공에 힘입어 스케일이 훨씬 커졌다.
오늘 촬영은 1편의 주인공인 저승사자 제신과 문지성이 함께 과거로 타임 슬립하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다.
악귀가 도망치려고 연 귀도(鬼道)에 휘말려 두 주인공이 함께 조선 시대로 가게 된다.
조선으로 간 저승사자, 제신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 때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서이렌은 이번 2편에서는 저승사자 제신과 조선인 제신, 일인이역을 소화할 예정이다.
촬영장 근처 골목에 10인승 차량이 섰다.
차 안에는 나를 포함한 스타탄생의 직원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지금 희진이네 백반 가게 2호점 개업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빈선예는 차 문을 열려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대표님. 촬영장에 왔는데 안 내릴 거예요?”
“어휴. 제가 내렸다가 사람들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냥 차에 있을게요. 얼른 다녀오세요. 이렌 씨한테 줄 게 있다면서요?”
“예. 그렇죠. 줄 게 있죠.”
빈선예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대표님. 오늘 후드티 입었잖아요. 뒷자리에 캡 모자도 있어요. 모자를 쓰고 후드티까지 눌러쓰면 아무도 대표님인 줄 못 알아볼걸요?”
빈선예의 말대로 나는 오늘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옷도 빈선예가 선물로 준거다.
박시한 회색 후드티에 청바지.
“정말 들키지 않을까요?”
“그럼요. 누가 대표님이 이러고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안 들킬 테니까 나랑 같이 다녀와요. 이렌 씨도 대표님 보면 좋아할 거예요.”
나도 사실 고민하긴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렌 씨의 얼굴이라도 보고 가고 싶었다.
나도 요즘 일이 너무 많고 이렌 씨도 저승사자2의 촬영을 시작한 후에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대표님. 같이 가요. 얼굴만 보고 오는 거잖아요.”
“그래. 세강아. 다녀와.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강진석까지 거들고 나서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 * *
촬영장 주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워낙에 사람이 많은 강남대로였고, 저승사자2 촬영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몰린 탓이다.
촬영장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근처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서이렌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조명 때문에 앞이 환해서 ‘저기가 촬영장이겠구나’ 하고 예상만 할 뿐이었다.
빈선예는 장우재에게 준다며 커다란 가방을 들고 사라졌고 나는 이곳에서 홀로 촬영장을 구경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이렌 씨랑 대화는 못 하겠네.
그냥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가야겠다.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촬영장에 오니 기분이 남달랐다.
나는 일반인들처럼 서이렌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촬영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촬영 현장 근처까지 왔는데 갑자기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촬영장에 사고라도 생긴 건가?
나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나는 사람들을 헤치며 앞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많던 인파가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는 내 쪽으로 걸어오는 서이렌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는 촬영하다 온 건지 저승사자 제신처럼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문지성과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가 악귀를 보고 이곳까지 쫓아온 저승사자.
그녀는 청바지에 슬리퍼 그리고 커다란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청바지와 후드티.
나는 그녀의 옷을 보고 너무 놀라서 눈이 커졌다.
촬영을 보려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은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원세강인가?”
“와. 대박! 원세강 맞아.”
“여친 촬영장에 응원하러 왔나 봐.”
“커플 옷 맞춰 입은 것 좀 봐. 미치겠다. 너무 귀여워.”
나는 너무 놀라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바닥에 고정된 내 시야에 삼선 슬리퍼가 들어왔다.
앙증맞은 작은 발은 서이렌의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서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오셨어요?”
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스태프들은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까 봐 막아섰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스태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착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서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 촬영을 구경하는 것처럼 선을 넘지 않았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는 서이렌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뭡니까? 혹시 빈 팀장님이 꾸민 일인가요?”
“난 전혀 모르겠는데요.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내가 오늘 입은 이 옷 말입니다.”
“와. 우리는 역시 천생연분인가 봐요. 맞추지도 않았는데 커플룩이네요.”
“내가 아니라 빈 팀장님과 맞춘 거겠죠.”
나는 투덜거리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 두 사람이 계약 연애가 아니냐? 이미 헤어진 게 틀림없다는 악의적인 기사가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이제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겠다.
오늘 일로 루머는 한 방에 사그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서이렌과 커플룩을 입어 본 적이 있던가?
오늘이 처음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번에는 나한테도 언질을 좀 줘요. 나 지금 창피해서 기절할 거 같으니까요.”
“그럼, 촬영장에 또 오시려고요? 이렇게 커플 옷으로 맞춰 입고요?”
“커플 옷만은 빼 줘요. 촬영장에 자주 안 간 건 미안해요. 이제는 자주 올게요.”
내 말에 서이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뒤로 다가오는 조감독의 얼굴이 보였다.
“이렌 씨. 이제 촬영이 다시 시작하려는가 봐요.”
조감독의 얼굴을 확인한 서이렌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촬영 잘해요. 이렌 씨.”
“약속 지켜요. 대표님. 촬영장에 자주 놀러 와요.”
“알았어요. 꼭 지킬게요.”
작별 인사를 한 서이렌이 뒤돌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마치 컷 사인이 떨어진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우리 두 사람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돌변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와. 두 사람 진짜 예쁘다.”
“친구들한테 톡 했는데 안 믿어서 사진 보내 줬어.”
“SNS도 지금 난리 났어.”
“영화다 영화. 원세강 실물로 보니까 진짜 잘생겼다. 배우 뺨치네.”
“저 커플 인정 못 했는데. 오늘부로 인정이다. 진짜 사람 설레게 하네.”
* * *
원세강의 촬영장 방문 사실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촬영장에 모인 사람들이 찍은 사진만 수천 장이었고 영상도 미친 듯이 쏟아졌다.
SNS 실트가 순식간에 원세강과 서이렌으로 뒤덮였다.
- 대표님이 저승사자 촬영장에 오셨대.
- 내 탐라 난리 났어. 두 사람이 마주 보는 투 샷만 수천 장이 떴어.
- 공개 연애가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 커플룩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
- 심지어 저승사자에서 서이렌이 입고 나오는 옷을 원세강이 똑같은 거 구해서 촬영장에 온 것임. ㅅㅂ 이거 실화냐?
- 이벤트였나? 미쳤네. 우리 대표님 사랑꾼이었네.
- 의문의 저승사자 홍보. ㅋㅋㅋㅋㅋ
- 우리 대표님이 홍보 좀 할 수 있지. ㅋㅋㅋ
- 절대 커플 이름 다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제 보이는데? ㅋㅋㅋ
- 그래도 절대 커플이다. 서이렌 원세강 같은 커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