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52화 (253/261)
  • #252화. 공개 연애

    중국에 밀입국한 신주원은 벌써 일주일째 낡은 아파트에 숨어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다.

    5평도 안 되는 낡은 아파트는 생활하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펑황에서 받은 뒷돈으로 강남에 꽤 번듯한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던 신주원이었기에 이런 곳에서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더는 못 기다리겠네. 천재용은 연락을 준다면서 왜 지금까지 안 보이는 거야?”

    신주원은 엊그제 만났던 천재용을 떠올렸다.

    천재용은 중국 음식이 입에 맞는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하마터면 신주원도 몰라볼 뻔했다.

    그는 신주원이 살 곳을 알아봐 주겠다며 한국에서 만들어 온 가짜 신분증을 들고 사라졌다.

    “도저히 여기서 못 기다리겠다. 커피숍이나 가야지.”

    신주원은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육십 층짜리 초고층 건물이 보였다.

    천재용이 알아봐 준 이 낡은 아파트는 도시 중심지 근처의 슬럼가에 있었는데 도로 하나만 지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신주원은 높디높은 마천루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기다려라. 중국아. 내가 일 년 안에 여기서 탈출해서 저 건물로 들어갈 테니 말이야.”

    신주원은 어깨에 건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밀입국 전에 만든 스위스 계좌의 카드였다.

    신주원은 제이티뉴스로 번 돈을 모두 찾아서 이곳으로 도망 나왔다.

    서이렌과 임준학 뉴스를 터트렸을 때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기에 정산금이 짭짤했다.

    강남 아파트를 판 돈까지 합치면 당장은 일을 안 해도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도망 나오길 잘했어. 안 그랬음 대광이 나를 아마 거지로 만들었을 거야. 오윤기 그 자식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야. 크크큭.”

    신주원은 제이티뉴스의 모든 자금을 들고 날랐기에 지금쯤 오윤기 혼자 독박을 쓰고 있을 터였다.

    아파트에서 나온 신주원은 도로를 가로질러 슬럼가를 떠나 화려한 세상에 발을 들여놨다.

    근처에서 ATM 기기를 찾은 신주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카드를 집어넣었다.

    ATM을 조작하던 신주원의 눈이 커졌다.

    “뭐야? 왜 안 돼?”

    신주원은 스크린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내가 잘못 했나?”

    신주원은 다시 한번 카드를 꼽고 ATM이 가리키는 대로 천천히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같은 메시지였다.

    계좌에서 출금할 돈이 없다는 메시지.

    신주원은 ATM 스크린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 *

    열애설이 터진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서이렌은 그동안 영화, 피아노의 촬영을 위해 줄곧 미국에 있었고 원세강은 반은 미국에 반은 한국에 들어와서 스타탄생과 레전드 필름의 일을 처리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이렌과 원세강 사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했다.

    - 피아노 촬영장 사진 봤어? 대표님 또 미국에 가 있더라.

    - 제발 좀 사귀라고!!! 이 정도면 전 국민이 망붕인 수준이라고.

    └전 세계에 다 소문나서 온 지구가 미는 망붕임. ㅋㅋㅋ? 망붕도 월드 클래스.ㅋㅋㅋㅋㅋㅋ- 미국 놈들도 이제 다 알아버려서 서이렌 인터뷰할 때도 단골 질문이잖아. ㅋㅋㅋㅋㅋ- 대니 라모로 감독도 인터뷰했음.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 같은 운명의 사랑을 영화로 찍고 싶다고.

    - 온 세상이 밀어주는데 두 사람은 묵묵부답. ㅋㅋㅋ

    - 스님도 이제 파계할 때가 됐다.

    └미친. ㅋㅋㅋㅋㅋ

    └우리가 별명을 잘못 지었어.

    - 이미 두 사람의 커플 팬덤까지 생겼음. 이대로 그냥 식장으로 직행하면 됨. ㅋㅋㅋㅋ- 다들 두 사람에 진심이네. ㅋㅋㅋㅋ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서이렌과 원세강이 언제 사귈지 의견이 분분한 그때, 기사가 떴다.

    [크레이그 도슨의 복귀작, 라스트 콘서트 시사회 개최]

    [특별출연 서이렌. 오랜만에 레드카펫 밟을 예정]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 미국으로 출국. 라스트 콘서트 시사회 참석 예정]

    - 드디어 라스트 콘서트 개봉이구나.

    - 나 이거 오랫동안 기다렸음.

    - 서이렌 특출이라는데 티저 사진 보면 임팩트 쩔듯.

    -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잖아. 캐스팅 담당자한테 보너스 줘야 하는 수준임. ㅋㅋㅋㅋ- 드디어 소원하던 OST도 나오나요?

    - 원세강도 미국 가네.

    - 흔한 K 기획사 대표님의 공항 짤. ㅋㅋㅋㅋㅋ

    - 요즘 대표님 얼굴이 점점 더 잘생겨지는 거 같지 않음? 나만 그렇게 느끼나?

    - 원래도 배우보다 잘난 얼굴이었음. 연기를 못해서 그렇지.

    └마피아 게임. ㅋㅋㅋ

    └대표님 예능 한번 잘못 출연했다가 피 보네.

    └죽을 때까지 가져갈 흑역사.

    - 원세강도 라스트 콘서트 시사회에 참석하나 보다. 존나 기대되네.

    - 생각만 해도 기대된다. ㅋㅋㅋ

    * * *

    LA 공항에 도착하니 김경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실 텐데 마중까지 나오셨어요?”

    “지난주까진 바빴는데 이번 주는 괜찮아.”

    김경록은 이제 아티스틱에서 팀 하나를 가진 정식 팀장이 돼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김경록이 자연스럽게 내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이건 내가 들게. 가자. 주차장에 차 세워 놨어.”

    차에 타자 김경록이 물었다.

    “호텔이 아니라 이렌 씨 집으로 갈 거지?”

    서이렌이 미국에서 촬영하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LA에 집을 마련했다.

    위치는 윤조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 근처였다.

    “아뇨. 집에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려고?”

    “도나텔로에 가야 해요.”

    “응? 거긴 왜? 이렌 씨가 또 런웨이에 서나?”

    “아뇨. 제가 볼일이 있습니다.”

    김경록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유를 묻지 않고 도나텔로로 차를 돌렸다.

    김경록은 운전하며 내게 말했다.

    “그런데 너네 사귀는 거 언제 발표할 거야? 이제 발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 해야죠.”

    “정말이야? 드디어 결심이 선거야?”

    결심은 진작에 섰다.

    다만 그 사건 직후에 우리 두 사람이 사귄다고 발표를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여태 참은 것이다.

    “인터넷 반응 보니까 이제 걱정할 게 없겠더라. 다 너희 두 사람을 응원하는 분위기야. 하긴 그 정도면 영화에 나올 법한 세기의 사랑이니 그럴 만도 하지.”

    “트로이 촬영장의 화재 사고도 형님이 언론에 흘린 거죠?”

    “내가 뭘 흘렸다고 그래?”

    “이미 지난 일이 갑자기 기사화된 게 이상하잖아요.”

    반년 전에 뜬금없이 문 씨어터를 찍을 때, 트로이 촬영장에서 났던 화재 사고가 기사로 났다.

    트로이 촬영장의 증축 기사가 메인이고 거기에 한 꼭지 실린 거였는데 그 기사가 나고 한국은 또다시 뒤집혔다.

    문 씨어터 촬영 때 화재 사고가 났고 내가 서이렌을 구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에 서이렌이 인터뷰로 확인 사살까지 했고, 그 일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 기사 이후로 한 줌 정도 남아 있던 나와 서이렌 커플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있다 해도 인터넷에서 큰 목소리를 못 낸다고나 할까?

    김경록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넌 그냥 네 갈 길을 가. 그렇게 치사한 언플 수법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님.”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게 뭐가 치사하냐? 난 진짜로 일어났던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뿐이라고. 안 그러냐?”

    능글맞게 웃는 김경록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요. 형님.”

    “야.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더 고마워.”

    “형님…….”

    “넌 나한테 제2의 삶을 살게 해 줬어. 엄밀히 따지자면 네가 내 은인이라고.”

    김경록은 말하고서 쑥스러운지 갑자기 차창을 활짝 열었다.

    오후의 선선한 바람이 창문 너머로 들어와 뺨을 간지럽혔다.

    나와 김경록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 * *

    신주원은 고생 끝에 천재용의 행방을 찾았다.

    “뭐라고요? 천재용이 여기에 없다고요?”

    “발음이 왜 그래? 혀에 종기라도 났어?”

    노점상을 하는 중국인이 신주원의 어색한 발음을 비웃었다.

    신주원은 꼬깃꼬깃해진 천재용의 사진을 상인에게 들이밀었다.

    “이 사람이 여기에 산다고 들었다고요. 내가 그걸 알아내느라 오천 위안도 넘게 썼습니다.”

    “없다니까. 엊그제 공안들이 끌고 갔어.”

    “공안이라고요?”

    “그렇다니까. 무슨 인터…… 뭐라고 한 거 같은데? 암튼 공안들이 끌고 갔어.”

    “인터폴이요?”

    “맞아. 그런 발음이었던 거 같아.”

    신주원의 얼굴이 굳었다.

    일 년 동안 고생하며 찾은 천재용이 인터폴에 끌려가다니.

    그렇다면 한국에 끌려간 건가?

    신주원은 혹시 아직도 근처에 경찰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아는 대로 답했으니 어서 돈이나 내놔.”

    상인은 어깨를 움츠러들고 주위를 살펴보는 신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주원은 이자에게 돈을 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천재용도 못 만났는데 무슨 돈이야.”

    신주원은 상인을 밀치고 앞으로 내달렸다.

    노점을 운영하기에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거라 여긴 것이다.

    화난 상인이 도망치는 신주원을 보며 소리쳤다.

    “공안! 저기 도둑놈이 있소! 공안!!!”

    공안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신주원은 더 빨리 뛰었다.

    일 년을 도망 다녔다.

    이렇게 허무하게 잡힐 수는 없었다.

    * * *

    라스트 콘서트의 시사회 날이 밝아 왔다.

    늦은 오후 시간에 하는 레드카펫 행사장에는 이미 기자와 몰려든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근처 샵에서 준비를 마친 서이렌이 미하엘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스태프들은 서이렌의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밖으로 나온 서이렌이 나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옆에 있던 미하엘도 나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강!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얀 필립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도나텔로 수트를 입고 한 손에는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이렌 씨. 받아 줘요.”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옷은 그게 또 뭐고요?”

    “어색하죠?”

    내가 멋쩍게 웃자 서이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너무 잘 어울려요.”

    미하엘도 다가와 칭찬의 말을 건넸다.

    “세강. 평소에도 그렇게 입고 다녀요. 너무너무 잘 어울려요.”

    “이 정도면 오늘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내 말이 끝나자 서이렌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대표님도 오늘 레드카펫에 오르시려고요?”

    “예. 이렌 씨를 제가 에스코트할게요.”

    “대표님.”

    서이렌은 잠시 뭉클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세강. 이제야 두 사람이 사귀는 걸 만천하에 밝히려는 겁니까?”

    “이렌 씨를 더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정말 잘 생각했어요. 세강. 웬일이야. 왜 내가 눈물이 나니.”

    미하엘은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내 팔을 잡았다.

    “메이크업은 아직 안 했죠? 내가 메이크업이랑 헤어 스타일링도 해 줄게요.”

    “괜찮아요. 미하엘.”

    “안 돼요. 오늘이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텐데 이렇게 나갈 수는 없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로 내가 꾸며 줄게요.”

    * * *

    시사회가 열리는 LA 돌비 극장 앞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드디어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하고 배우들이 탄 차가 하나둘 극장 앞에 도착했다.

    “저기 세이렌이다. 세이렌의 차야!”

    “세이렌!!!”

    “이렌!! 너무 좋아해요!!!”

    팬들의 함성이 거세졌다.

    멋들어진 리무진의 차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서이렌이 아닌 한 남자가 먼저 나왔다.

    그는 팬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스터 원?”

    “원세강?”

    먼저 내린 나는 열린 차 문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차 안에서 새하얀 손이 나왔고 이내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카메라가 몰려들었고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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