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50화 (251/261)
  • #250화. 진실한 고백

    - 젠셀이면 되게 유명한 곳 아닌가?

    - 세계 3대 제약 기업임. 그중에서도 젠셀이 제일 클걸?

    - 그 모델처럼 잘생긴 외국인이 젠셀의 연구소장이라고???

    - 미치겠다. 웬 외국인이 스님이랑 같이 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주치의였던가?

    - 원 대표님 뭐지? 뭔데 젠셀의 연구소장을 주치의로 두는데??? 원세강이 걸린 병이 희소병인가?

    - 기자들이 한국병원 들춰내서 알아낸 걸로는 심장 섬유화 증후군이래.

    - 심장 섬유화 증후군이면 희소병 맞네. ㅠㅠㅠㅠ

    - 근데 원 대표님이 좀 마르긴 했어도 병자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 그 병이면 길게는 10년까지도 살 수 있어. 심장이 천천히 굳는 병이거든. 병에 걸린 지 5년째라고 하니까 지금부터가 중요할 듯.

    - 아오. 이 중요한 때에 신레기랑 탕궈 새끼가 열애설로 우리 대표님을 압박한 거네.

    - 중국에 있는 한국 팬들도 난리 났더라. 탕궈 자르라고 펑황에 문의하고 있대.

    - 탕궈는 중국 놈이 중국 했다 치는데 신레기가 진심 악질임.

    - 팬파라치에서 신레기랑 손절했더라. 신레기는 이미 해고된 기자고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기사 띄움.

    - 그동안 연예판 뒤집어 놓은 역대급 기레기. 두 명이 다 팬파라치 출신인데 웃기고 있네.

    - 원 대표님은 아무 대응 없지?

    └ㅇㅇ

    └너무 조용하니까 무서워.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대표님. ㅠㅠㅠㅠㅠ

    - 성강일보에 실린 이 글 말이야. 이거 그렉이랑 원세강 아님? BMJ에 실린 기고문이라는데 이걸 쓴 사람이 그렉 루이임.

    └어???

    └진짜 대표님인데??

    └이 옆모습을 어떻게 못 알아봐. 원세강 맞아.

    - 여기 아래 해석해 놓은 거 진짜임? 원세강 완치됐다는데?

    - 완치? 그거 불치병 아니었어?

    - 완치라고 나옴. 젠셀이 만든 신약의 임상 실험자였는데 말도 안 되는 치유력을 선보였대. 실험자 중에 유일무이하대.

    - 와. 믿기지 않는다.

    - 이래서 무려 젠셀의 연구소장이 원세강을 따라서 한국까지 온 거구나. 유일한 완치 환자를 계속 살펴봐야 하니까.

    - 미치겠다. 이게 실화라고??? 영화 아님?

    - 이거 언제 뜬 거야?

    - BMJ가 일 년에 두 번 나오는데. 지난주에 나온 잡지에 실린 거야.

    -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대표님. ㅠㅠㅠㅠㅠ

    - 왜 내가 눈물이 나냐. ㅠㅠㅠㅠㅠㅠ

    - 대표님 오래오래 사세요. ㅠㅠㅠㅠㅠ

    * * *

    스타탄생과 레전드 필름은 여전히 재택근무 체재로 돌아가고 있었다.

    용산 시티타워 근처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팬들까지 몰려들어 인산인해였다.

    잠시 강진석의 집에서 살게 된 나는 일어나자마자 인터넷 기사를 살폈다.

    김경록과 그렉이 말했던 마지막 카드가 어젯밤 터진 것 같았다.

    인터넷은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강진석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넌 어제 자느라 몰랐지? 밤새 난리가 났었다. 난 댓글 보느라 새벽에 잤어.”

    “어쩐지 다크서클이 형님 얼굴의 반을 가렸네요. 지금이라도 좀 쉬세요.”

    “지금 쉴 때야? 너 핸드폰 꺼 놨지?”

    “예. 오늘까지는 꺼 놓을 생각입니다.”

    “잘했어. 어제 이거 터지고 나서 내 전화가 불나는 줄 알았어.”

    강진석은 피곤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그때 거실로 잠에서 깨어난 그렉과 김경록이 나왔다.

    강진석은 김경록을 보며 한소리를 했다.

    “아오. 저 화상을 아침부터 봐야 한다니. 김경록이 내 집, 거실을 활보하고 다닐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강 이사님이 말씀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

    “시끄러워 김경록. 루크는 무슨 개뿔이 루크야.”

    “사람 이름 가지고 왜 이래?”

    강진석과 김경록은 아침부터 서로를 보며 으르렁댔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미워서 그런 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강진석은 말만 그렇게 하고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내더니 우리를 위해 아침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강 이사. 아침이 겨우 토스트야? 그거 먹고 힘낼 수 있겠어?”

    “주는 대로 먹읍시다. 이제 루크라며? 미국에서는 매일 이렇게 먹었을 거 아냐?”

    “왜 이래? 미국에도 한국식당이 있다고. 난 매일 김치찌개를 먹고 살았어.”

    나는 강진석과 김경록이 떠들라고 놔두고 그렉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그렉은 안 바빠요?”

    “바쁘죠.”

    “근데 왜 왔어요? 여기선 할 것도 없는데.”

    “루크가 꼭 같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해서요. 사실 BMJ에 실린 내 기고문이 잘못된 거였어요. 미안해요.”

    “알아요. 들었어요.”

    “루크가 그걸 보고 놀라서 나한테 달려왔더군요. 루크가 나를 찾아와서 엉엉 운 거 알아요? 그동안 세강한테 자신이 못 할 짓을 많이 했다고. 너무 미안하다고요.”

    “그랬어요?”

    나는 강진석의 옆에서 찬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는 김경록을 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한참을 울고 돌아가더니 다음 날, 파파라치 사진이 뜨자마자 다시 나를 찾아왔어요. 한국에 가자고.”

    “그래서 이렇게 따라왔다고요?”

    “들어 보니 루크가 걱정하는 말이 다 맞더라고요. 세강이라면 아마 자기가 다 뒤집어쓰고 이렌 씨의 방패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신이 가야 한다던데요? 이런 거는 자신이 전문이라면서요. 세강은 비겁한 사람이 아니니 정면 돌파를 할 거라면서 말입니다. 이런 일을 꾸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도와 달라더군요.”

    “그래서 따라온 거예요? 나를 도와주려고?”

    “도와줘야죠. 세강은 내 환자인데.”

    도도하고 차가운 그렉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김경록과 그렉.

    그리고 지금 나를 도와주려는 모든 이들.

    나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옹다옹하며 아침 식사를 만든 강진석과 김경록이 식탁으로 우리를 불렀다.

    식탁 위에는 맛깔스럽게 구워진 토스트와 김치볶음밥이 놓여 있었다.

    “취향대로 듭시다.”

    토종 입맛인 강진석은 그렉을 위해 토스트를 준비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 생활을 해 본 그렉의 숟가락이 김치볶음밥으로 향했다.

    그걸 본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침을 먹고 난 뒤, 강진석이 내게 물었다.

    “세강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다음 주에 이렌 씨와 함께 미국으로 갈 겁니다.”

    “미국으로? 갑자기 왜? 헬렌 감독의 영화는 아직 촬영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잖아. 지금 상황에서 미국에 가는 게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일찍 간다고?”

    “미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크레이그 도슨 감독이 이렌 씨를 보고 싶다고 합니다.”

    “크레이그 도슨?”

    잠시 고민하던 강진석의 눈이 커졌다.

    “라스트 콘서트의 크레이그 도슨 말이야?”

    “예.”

    “하지만 이렌 씨는 이미 오디션에서 떨어졌잖아. 아샤라는 신인 배우가 뽑혔다며.”

    강진석의 입에서 아샤라는 이름이 나오자 옆에서 앉아 있던 그렉이 놀라서 헛기침했다.

    “맞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이렌 씨가 특별 출연으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물어 오셔서요.”

    “무슨 역으로? 그 영화는 여주 원 톱이잖아. 이렌 씨가 나올 일이 뭐가 있지?”

    “주인공의 죽은 언니요.”

    “그건 아역이 촬영한다며? 분량도 많지 않고.”

    “죽은 언니의 콘서트 영상이 회상 장면으로 나오나 봅니다. 분량은 많지 않은데 주인공에게는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 거라서 임팩트가 있어야 하나 봐요. 다른 가수들을 알아봤는데 딱 이거다 싶은 사람을 못 찾았나 봐요.”

    “우리 이렌 씨가 출연하게 되면 입양한 걸로 나오는 건가? 자매가 인종이 안 맞으니까?”

    “원래도 이렌 씨가 캐스팅되면 입양아 설정이 들어갈 거라고 했어요.”

    “근데 난 좀 그렇다. 우리 이렌 씨가 아샤라는 배우의 들러리를 서는 거잖아.”

    나와 강진석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그렉은 강진석이 말하는 바의 뉘앙스를 알아듣고 미간을 찡그렸다.

    어젯밤 서이렌과 이 일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서이렌은 꼭 참여하고 싶다고 그녀의 의사를 밝혔다.

    크레이그 도슨의 말을 들어 보면 일반적인 특별 출연은 아닌 거 같았다.

    “이렌 씨가 하고 싶어 해요. 어차피 헬렌의 영화를 찍으려면 시간이 남았으니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크레이그 도슨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강진석은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선택했겠어. 너만 믿는다.”

    “고마워요. 형님.”

    강진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경록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루크도 이제 미국으로 갈 거지?”

    “나를 내쫓으려고?”

    “세강이가 미국에 간다는데 그럼, 여기서 계속 버티려고 그랬어?”

    “강 이사.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 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짐 싼다.”

    “누가 할 소리를!”

    강진석과 김경록이 삿대질을 하며 말싸움을 했지만 그들의 눈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 기사 봤음? 오늘 서이렌, 원세강 동반 출국한대. 영화 찍으러.

    - 허…… 크레이그 도슨 신작 영화에 캐스팅됐네. 미쳤다. 서이렌 커리어 무슨 일임. ㄷㄷㄷ- 두 사람이 동시에 출국하는 거 보면 혹시……???

    - 원래도 서이렌 미국 갈 때 원세강이 항상 동행했었음.

    - 두 사람 말이야. 그냥 사귀면 안 되나?

    - 난 처음부터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음. 여론이 그래서 말을 못 했을 뿐이지.

    - 해외 팬들도 이번 사건 다 알고 있는데 다들 두 사람을 응원하더라.

    - 그럴 만도. 이 정도면 두 사람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될 정도임.

    - 예전에 이자현이랑 이락이 찍은 나만의 마돈나 기억함???

    - 기억하지. 존잼이었음.

    - 나만의 마돈나도 스타랑 매니저의 사랑이잖아. 최근에 그 짤이 다시 SNS에서 핫하더라.

    - 서이렌 원세강 효과. ㅋㅋㅋㅋㅋ

    - 서이렌이 되게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던 거 같은데 원세강은 진짜 무슨 돌부처임? 나라면 바로 넘어간다.

    └스님이라서…….

    └ㅋㅋㅋㅋㅋ

    └댓글 도랐나?

    └미친. ㅋㅋㅋㅋㅋ

    * * *

    출국 시간을 비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는 어떻게 안 건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공항으로 들어갔다.

    서이렌은 빈선예와 함께 앞서 걸었고, 나는 김경록과 그렉과 함께 걷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렉을 알아보고 그에게도 질문을 하기 바빴다.

    “젠셀의 그렉 루이 되시죠? 정말로 원세강 씨가 완치한 겁니까?”

    “그렉 루이.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원세강 씨와는 무슨 관계 신가요?”

    그렉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당황하지 않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아 공항을 걸었다.

    오히려 김경록이 그런 그렉을 보며 당황할 정도였다.

    예상과 달리 나는 기자들의 관심 밖이었고 그들은 서이렌과 그렉에게만 질문을 쏟아 냈다.

    “서이렌 씨. 기자 회견장에서 나온 녹음이 사실입니까?”

    “서이렌 씨. 원세강 대표님을 아직도 짝사랑하고 계시나요?”

    “원세강 대표님이 완치됐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때 나는 서이렌의 앞에서 마이크를 내미는 깡기자를 발견했다.

    깡기자님이 여기에 웬일이시지?

    기자님은 공항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깡기자가 서이렌에게 물었다.

    “서이렌 씨. 원세강 대표님이 끝까지 서이렌 씨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질문을 한다고?

    내가 놀라서 서이렌을 바라보는데 서이렌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서이렌의 얼굴이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서이렌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의 압박감에도 평온함을 유지한 채 깡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대표님이 제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서이렌에게 쏠렸다.

    찰칵찰칵 소리를 내던 카메라 셔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이렌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표님이 제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안 하죠.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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