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49화 (250/261)

#249화. 선의의 거짓말

오늘 기자 회견은 인터넷으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 원세강이 지금 뭐라는 거냐?

- 열애설 해명하러 나온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다른 말을 하지???

- 원세강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구나. 열애설로 털릴 거 같으니까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려는 거잖아.

- 원세강이라고 별거 있나? 다들 스타메이커보고 속은 거지. ㅋㅋㅋ- 서이렌 계약 기간이 좀 있으면 끝나지 않나? 아무래도 스본 나와야 할 듯.

- 기자회견 한다고 큰소리를 땅땅 칠 때부터 알아봤다. ㅋㅋㅋ사람들은 기자회견 영상을 보며 원세강을 욕하기 바빴다.

원세강과 서이렌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소수였고 채팅창은 악플로 가득 찼다.

가끔 올라오는 선플도 쏟아지는 악플에 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열애설 해명의 자리인 줄 알았던 기자 회견은 예상 밖의 시나리오로 흐르기 시작했다.

원세강이 신주원과 펑황의 탕궈 사이에 오간 메시지를 기자 회견장의 스크린에 띄우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어?

- 저게 모야?

- 허허허허허허허. 미친 거 아님?

- 저거 진짜 맞아?

- 돌았네. 신주원이면 펑황 기사만 주야장천 올리던 그 기자 아님?

└ㅇㅇ 신레기 맞음.

└신레기라고 유명하잖아.

- 와우. 이게 실화라니.

- 신주원 지금 난리 치는 거봐라. 진짜인가 봄.

- 원세강은 저걸 어떻게 안 거지?

- 누군가 이 사실을 알고 원세강한테 제보했다는데? 대박이다.

- 신주원 폭주하는 거 봐라. 미쳤네.

- 펑황은 대체 뭐야??? 안 끼는 곳이 없네. 악의 축이었네.

- 와. 큰 그림 오졌다. 펑황이 스본도 먹으려고 한 거였네.

- 펑황은 지금도 위태위태하지 않아? 웨이티비는 백도어 이슈 때문에 한국에서 금지되고 대표도 해고됐다고 들었는데?

└해고된 탕궈라는 사람이 펑황의 찐 대표랑 친인척 관계라서 문제없음.

└걔는 아직도 파워가 막강해. 중국 본사로 돌아가서 일한다잖아.

- 스본은 LOK처럼 쉽게 안 되니까 이런 추잡한 짓을 꾸민 건가? 이 열애설도 가짜 아님?

- 시발. 미쳤다. 영화 시나리오도 이렇게 못 쓸 듯.

기자 회견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속속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전 세계에 퍼진 서이렌의 팬들도 한국의 기자 회견 스트리밍에 접속했고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은 회견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때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팬들이 나타나 회견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통역하고 나섰다.

- 그러면 세이렌의 열애설은 가짜라는 건가요?

- 아무래도 만들어진 열애설 같은데요?

- 한국 연예계도 다이나믹하네요.

- 한국도 차이나머니가 끼어들어서 물을 흐리나 보네요. 지금 할리우드도 중국 눈치를 너무 보고 있잖아요.

- 한국이 떠오르는 콘텐츠 강국인데 당연한 거죠.

기자 회견을 시작한 지 삼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장은 냉탕과 온탕을 몇 번은 오가며 쑥대밭이 됐다.

궁지에 몰린 신주원이 엘리베이터 녹음을 풀면서 기자 회견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 허…….

- 뭐야???

- ㅠㅠㅠㅠㅠㅠ

- 원 대표님? 시한부????

- 뭐야. 저거 진짜 서이렌 목소리 맞아?

- 서이렌 맞음. 서이렌은 목소리가 지문이잖아. ㅠㅠㅠㅠㅠ- 서이렌이 혼자 좋아하는 거였어? 그것도 시한부인 원세강을???

- 시발. 나 지금 우냐? ㅠㅠㅠㅠㅠ 스님. ㅠㅠㅠㅠㅠ

- 원세강이 왜 시한부인데??? 이게 말이 돼?

- 대표님 당황한 표정 좀 봐. 기자들한테 몰리면서 욕먹을 때도 담담했는데 지금 거의 패닉 상태네.

- 대표님 일어서다가 휘청거리는 거 봐. 미치겠다. ㅠㅠㅠㅠ- 신주원 개새끼. 끝까지 열애설은 진짜라고 하고 싶어서 이 녹음 푼 거잖아.

- 괜히 신레기가 아님. 개새끼.

- 기자 회견 끝났나 봐. 와씨 내가 뭘 본 거냐?

- 대표님. ㅠㅠㅠㅠㅠㅠ

* * *

기자 회견장을 빠져나온 나는 서이렌을 찾아 레전드 필름으로 갔다.

굳게 걸어 잠근 레전드 필름의 회의실로 들어간 나는 오늘의 깜짝 쇼를 준비한 사람들과 대면했다.

나와 함께 이곳에 내려온 강진석 모인 사람 중에서 김경록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록 이사? 당신이 여긴 왜 있는 거야?”

나 역시 김경록을 보고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김경록은 지금 한창 미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인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김경록이 두 주먹을 꽉 쥐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강진석이 놀라서 그의 팔을 잡았지만 뿌리치고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김경록은 이를 악물고 감정을 숨겼으나 이내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원세강. 이 나쁜 새끼야. 그렇게 너 혼자만 착한 척하면서 살면 좋냐?”

“형님은 여기는 웬일이세요? 아티스틱에서 이렇게 길게 휴가를 주던가요? 이제 정직원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부사장님의 특명을 받고 왔다.”

“윤조가요?”

“그래. 너를 도우려고 온 거야.”

나를 돕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빈선예가 우리 앞에 나섰다.

“대표님. 미안해요. 아까 그 회견장에서 신주원이 튼 녹음이요.”

나는 놀라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걸 물으려고 했습니다. 내가 들은 건 분명히 이렌 씨랑 빈 팀장님 목소리였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 두 사람이 내 이야기를 언제 한 거죠? 그리고 그걸 왜 신주원이 가지고 있는 건데요?”

“그거 여기서 방금 녹음한 거예요.”

“뭐라고요?”

“우리 두 사람이 급조한 녹음 파일을 신주원이 가진 진짜 파일과 바꿔치기한 겁니다. 해킹은 락이가 하고요.”

“그걸 왜요?”

“오늘 기자 회견으로 신주원과 펑황의 관계는 고발할 수 있지만, 여전히 대표님과 이렌 씨의 열애설은 말이 많을 거예요.”

“그렇다고 이렌 씨가 일방적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내가 시한부임이 만천하에 밝혀진 것보다 서이렌이 나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더 걱정스러웠다.

내 표정을 본 김경록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 맞죠? 원 대표는 이렌 씨를 먼저 걱정할 거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그냥 놔뒀으면 열애설도 모두 자기 잘못으로 몰고 갔을 놈입니다.”

빈선예와 우연미가 김경록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루크 말이 맞아요. 대표님은 자신 생각은 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대신 대표님을 위해 나선 거라고요.”

이락과 그렉, 서이렌도 같은 편인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링해 보니까 여론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대표님은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하지만 빈 팀장님. 난 이제 시한부가 아니에요.”

“우리도 알아요. 대표님.”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렉이 끼어들었다.

“내가 다 말해 줬어요. 세강.”

“그렉은 또 언제 미국에서 왔어요?”

“루크랑 함께 왔어요. 그리고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세강의 병이 완치된 것도 이제 모두에게 알려질 테니까 말입니다.”

“그렉까지 이 일에 끼어든 겁니까?”

들어보니 이번 일은 모두 김경록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김경록이 큰 판을 짜고 우연미와 빈선예 그리고 이락까지 합류해서 벌인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사람들은 입을 닫고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서이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서이렌은 평온한 표정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대표님. 그동안 대표님이 우리를 지켜 주셨잖아요. 이번에는 우리가 대표님을 지킬게요.”

그녀의 말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지며 감동이 밀려왔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가 내 사람들이다.

스타탄생을 만들며 내 인생의 마지막 배우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인생 배우뿐만 아니라 인생 동료들까지 손에 넣었다.

나는 인생의 승리자다.

한편, 강진석만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진석이 이락에게 가서 조용히 물었다.

“락아. 지금 내가 분위기를 깨려는 건 아닌데. 진짜 궁금해서 그래.”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이락이 강진석에게 눈을 돌렸다.

“어이쿠 깜짝이야. 락아. 너무 울어서 눈이 안 보여.”

“뭔데요. 강 이사님?”

“대체 나 몰래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그리고 루크가 대체 누구야?”

* * *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슈퍼스타 서이렌의 열애설로 시작한 이 사건은 펑황의 뒷공작이 밝혀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팬파라치 강력하게 부정하고 나서, 신주원과 펑황의 관계는 개인적인 일일 뿐]

[펑황의 전 대표, 탕궈. 기자 회견 당일 저녁, 급하게 한국을 떠나]

[신주원이 차린 제이티뉴스의 자금의 출처는 펑황인가?]

[스타탄생에 사실을 알린 익명의 제보자에 관심 쏠려]

신주원과 펑황의 거래가 사람들의 큰 시선을 끌었지만, 못지않게 서이렌의 짝사랑과 원세강의 시한부도 큰 이슈였다.

[스타탄생 대표, 원세강. 시한부임이 밝혀져]

[서이렌의 안타까운 사랑 고백에 팬들 눈물 흘려]

[원세강 대표의 병이 밝혀지자 위태로워진 스타탄생. 후계는 누구에게?]

* * *

제이티뉴스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오윤기는 날뛰는 신주원을 보며 이를 갈았다.

“신 형. 정신 차려. 지금 스타탄생에서 우리를 고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뭐 하는 거야?”

“기자 회견장에서 공개된 메시지는 다 조작된 거라고. 내 노트북이 해킹됐어. 그걸 누가 해킹했겠어? 당연히 원세강 대표가 그런 거겠지. 당장 경찰에 고발할 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원세강을 고소하겠다고?”

“못 할 게 뭐가 있는데? 해킹은 범죄라고.”

“신 형. 들어 봐. 원세강이 시한부래. 지금 그를 건드리는 건 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거라고 알아? 기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대중은 지금 원세강과 서이렌의 애절한 스토리에 감정 이입하고 있다고.”

오윤기의 말에 신주원이 코웃음을 쳤다.

“시한부. 웃기지 말라고 해. 그렇게 멀쩡한 사람이 무슨 시한부야? 조사하면 다 나오게 되어 있어.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하. 진짜 안 되겠네.”

오윤기는 허탈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포털에 접속했다.

포털 연예 홈은 이번 사건의 기사들로 점령되어 있었다.

[이자현 고백…… 원세강의 시한부임을 삼 년 전에 알아 ‘꼭 이겨 내셨으면 좋겠다.’ 밝혀 와]

[MBS 두 여자의 PD와 작가진. 원세강에 응원 메시지 전달]

[사 년 전에 뉴욕 공항에서 쓰러졌던 원세강 대표의 행적 밝혀져]

[대배우 진설, 시한부 원세강을 레전드 필름의 대표 자리에 앉힌 이유. 굳건한 믿음과 신뢰]

[원세강이 치료를 받는 한국병원에 몰려드는 기자들]

신주원은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라고, 신 형. 이게 현실이야. 원세강이랑 일했던 사람들이 앞다퉈서 응원해 주고 있어. 오래전부터 원세강이 시한부였단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어. 이 증언들이 다 가짜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녹음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원세강이 손을 쓴 거라니까. 그리고 기사에 나온 사람들은 다 원세강의 지인이잖아? 말을 맞추는 것쯤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오윤기는 신주원을 비웃으며 마지막 기사를 클릭했다.

[세계적인 제약기업 젠셀의 연구소장, 그렉 루이 한국 입국. ‘원세강은 내 환자입니다’]

그렉 루이의 사진이 뜨자 신주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 속 외국인의 얼굴이 익숙했다.

그때 신주원의 뇌리에 원세강과 동거했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 사람은……?”

“이제 기억이 나? 얼마 전에 원세강이 찍힌 파파라치 사진에서 함께 포착된 남자가 바로 저 사람이잖아.”

“그럼, 진짜로 원세강이 시한부라는 거야?”

“그래. 진짜라고. 지금 원세강을 건드렸다가는 난리 나는 거야. 이제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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