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기자 회견
강진석이 핸드폰에 뜬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강아. 이 사람 말이야. 신주원 기자랑 같이 차에 탄 사람.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는 거니?”
“형님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정말이야? 그럼, 이 사람이 탕궈라고?”
강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신주원이 펑황의 전담 기자였을 거야. 혹시 이 열애설도 탕궈가 낸 걸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단순한 열애설로 끌고 갈 게 아니란 건 확실히 알겠네요.”
“이 새끼들이 미쳤나? 탕궈는 한국 시장에서 쫓겨난 놈이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가 대체 펑황한테 무슨 잘못을 했길래?”
강진석의 말에 내가 씁쓸하게 웃었다.
“왜 웃어?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거야?”
“사실은 탕궈가 저를 미워할 일이 있습니다.”
“뭐라는 거야? 세상에 너를 미워할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지금 펑황이 위태롭게 된 데에는 제가 한몫했거든요.”
“뭐라고? 네가?”
강진석이 놀란 눈을 하고 내게 다그쳐 물었다.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봐. 펑황이 무너지는 데 세강이 네가 한몫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더는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백도어 이슈요. 그걸 처음에 발견한 사람이 이락 배우님이세요.”
강진석과 사람들이 놀라서 이락을 쳐다봤다.
이락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담담히 말했다.
“저는 그냥 대표님이 펑황 어플에 백도어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서 확인해 드린 것뿐입니다.”
이락에게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세강아. 내가 알기로 백도어 그거는 국회에서 나온 이야기잖아.”
“이락 배우가 분석해 준 자료를 친구한테 넘겼어요. 친구가 국회에서 주최하는 보안 콘퍼런스의 발표자였습니다.”
“뭐야? 그럼, 그때 한국대 교수로 있는 친구한테 간 게 그것 때문이었어?”
“맞습니다. 그거 말고도 펑황이 김선우 등을 이용해서 LOK를 손에 넣으려고 했던 사건도 있었잖아요.”
“그건 알지. 인터넷에 폭로 글이 올라오고 미튜브에도 영상이 떠서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거였잖아.”
말을 하던 강진석의 두 눈이 커졌다.
“잠깐만! 세강아. 설마 이것도 네가 한 거라고? 그 폭로자가 너였어?”
“저는 아닙니다. 펑황에서 일한 적이 없으니까요.”
“뭐야? 그럼, 대체 뭔데? 네가 뭐를 어떻게 했다는 거야?”
“폭로 글을 올린 사람은 펑황의 고중기 이사예요. 고중기에게 익명으로 자료를 전달했습니다. 고중기는 아마 지금까지도 제가 자료의 제공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같은 자료를 신주원에게도 전달했어요. 신주원은 자신이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돈을 받고 소스만 판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신주원과 탕궈가 손을 잡을 수 있는 거겠죠.”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세강아.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걸 다 너 혼자서 할 수가 있어. 믿을 수가 없다.”
“한성제 대표님이 그렇게 쓰러지시고 한지욱과 함께 펑황에 갔습니다.”
“한지욱? 나도 아는 그 모지리 한지욱?”
한지욱이라면 이를 가는 강진석은 내가 그와 함께 펑황에 갔다는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거기에 가서 뭘 했는데?”
“탕궈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어? 혹시 두 사람이 싸운 거야?”
“너무 화가 나더군요. LOK를 그렇게 쉽게 집어삼킨 것도 화가 나고 한국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펑황의 야망도 눈 뜨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탕궈와 대화를 나눠 보니 그는 그런 비열한 짓을 숨길 의지도 없어 보이더라고요. 자신들이 가진 자본력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허. 미친 새끼들.”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진설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원 대표가 나선 거야?”
“남들이 오지랖이라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잘했어.”
“예? 진설 대표님…….”
“나도 펑황 걔들이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었어. 정말 잘했어.”
진설이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연하지. 잘한 건 잘한 거고 이제는 탕궈와 신주원인지 하는 기자가 손잡은 거 같으니까 이대로 당할 수는 없겠지. 방어할 수 있겠어?”
“방어만으로는 부족하죠. 반격할 겁니다.”
자신감 있는 내 한마디에 진설의 눈빛이 반짝였다.
진설뿐만 아니라 강진석, 이락 그리고 최용팔까지 내가 어떻게 반격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최용팔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원 대표. 나를 잊지 말라고. 손봐 줄 사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우리가 그놈을 잡아다 확 담가 버릴 테니까.”
최용팔에게 그런 일을 부탁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든든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 * *
한국은 지금 서이렌과 원세강의 열애설로 들썩이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렉과 김경록은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서이렌이랑 열애설 난 대표가 기자 회견을 한다며? 결혼 발표라도 하려나 보지?”
“진짜 웃긴다. 대표면 대표답게 소속 배우를 케어해야지. 한창 인기 있는 서이렌을 이렇게 주저앉히네.”
“한국에서 인기 떨어지면 미국에서 활동하면 되니까 상관없는 거 아닐까?”
“이래서 분 바른 것들을 믿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건가 봐. 난 서이렌이 그런 사람일 줄 상상도 못 했어.”
김경록은 사람들이 원세강과 서이렌을 향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보며 분노했다.
그렉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원세강과 서이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렉. 더는 못 참겠어. 우리 원 대표가 어떻게 살아난 사람인데. 힘들게 병마를 이겨내고 이제야 사랑을 찾겠다는 사람한테 왜 저렇게 모질게 말하는 거냐고?”
“사람들은 모르니까요.”
“뭐라고?”
“우리는 세강이 시한부였다는 것도 알고, 이렌 씨가 그걸 알면서도 옆을 지킨 것도 알고 있지만, 대중은 하나도 모르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그렉이 옆에서 지켜본 원세강과 서이렌의 사랑은 순수했다.
가끔은 짜증이 날 정도로 닭살 커플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라는 것을 그렉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 맞아. 모르니까 저러는 거야. 알면 달라질 거야.”
“루크. 뭔 소리를 주절거리는 겁니까?”
“그렉. 말 한번 잘했어. 사람들은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대중에게 모든 걸 알리면 되는 거라고.”
“루크??”
김경록은 핸드폰을 들었다.
원세강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모든 사실을 세상에 밝히자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통화 버튼으로 향하던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루크? 어디에 전화를 걸려는 거예요?”
갑자기 눈빛이 돌변한 김경록이 연락처에서 ‘빈선예’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자 LOK 인턴으로 표시된 빈선예의 전화번호가 떴다.
“내가 아는 원세강은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이 시한부라고 밝힐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 그렉?”
“그렇죠. 세강은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럼, 원 대표는 모르고 있으라고 해. 우리가 대신해 주면 되니까.”
말을 마친 김경록이 있는 힘껏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한국에 마련한 탕궈의 빌라.
탕궈는 테라스에 서서 한강을 바라봤다.
펑황 한국 지사의 대표라는 그의 명패가 거실 한복판에 쌓여 있는 상자 안에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펑황은 한국 지사를 이대로 접지는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탕궈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펑황은 탕 씨 일가의 회사이므로 회사에서 그의 입지가 흔들릴 염려는 없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실패는 그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탕궈는 입술을 깨물며 저 멀리 한강 너머의 용산 시티타워를 바라봤다.
오늘 오후에 저곳에서 원세강이 기자 회견을 한다고 했다.
“어떤 기자 회견을 준비해 왔다고 하더라도 너는 이제 끝이야. 감히 평황에 그리고 나에게 반기를 들어?”
그때 탕궈의 핸드폰에 알람이 떴다.
신주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오늘 점심 비행기로 중국으로 돌아가는 탕궈는 펑황에서 사용하던 법인 폰을 반납하고 지금은 중국에서 사용하던 개인 폰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주원과는 메일이나 페이스 메시지로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주원이 보낸 메시지 내용은 단순명료했다.
[주신 사례금은 확인했습니다. 이제 곧 쇼타임인데 안타깝게도 못 보시겠네요. 나중에라도 영상으로 보시죠. 아주 재미있을 거거든요.]
메시지를 본 탕궈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서이렌. 안타깝군. 대표라는 사람을 잘못 만나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겠어. 하지만 어쩌겠어?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잖아.”
탕궈는 비열하게 웃으며 용산 시티타워를 바라봤다.
* * *
스타탄생에는 지금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스타탄생과 레전드 필름 직원들에게 이번 주는 재택근무를 하라고 전달했다.
시티타워에 기자들이 많을 거라서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 편했다.
나는 최용팔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자료를 확인하며 강진석에게 물었다.
“신주원 기자는 왔나요?”
“왔어. 아주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더라고.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
“역시 직접 나서려나 보네요. 오히려 더 잘됐습니다. 기자들 앞에서 펑황과의 비밀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면 더는 헛소리를 못 하겠죠.”
“그래. 맞아.”
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강진석이 내 손을 붙잡았다.
“세강아.”
“예. 형님.”
“너 말이야. 신주원이랑 펑황은 걱정이 안 되는데 너는 걱정이 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열애설을 인정할 거야?”
나보다 더 긴장한 강진석을 보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밝혀진 이상 거짓말로 회피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이렌 씨는 안전할 겁니다. 제가 욕먹으면 될 일이에요.”
“난 네가 욕먹는 게 제일 싫어.”
“그냥 짧게 욕먹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렌 씨와 만나고 싶어요. 제 마음 이해하시죠?”
“우리는 축복해 주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거야.”
“감당해야죠. 우선은 제가 총알받이로 나서볼게요. 우리 이렌 씨를 욕먹게 놔둘 수는 없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을 걸어 나갔다.
이 복도를 지나 저 문을 열면 하이에나 떼 같은 기자들이 보일 거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서이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이렌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이렌 씨. 이제 회견장에 들어갈 겁니다.”
[대표님. 떨리지 않으세요?]
“떨릴 게 뭐가 있어요. 이렌 씨가 그랬죠. 우리도 공개 연애를 하자고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기억 안 나요.]
서이렌이 농담하며 긴장한 나를 풀어 줬다.
나는 속없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러기 있습니까? 난 지금 전쟁을 앞둔 군인의 심정입니다.”
[대표님. 예전엔 대표님과 공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응?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농담이 아니라 진지했기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서이렌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기자 회견 방향을 바꿀까요? 이렌 씨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요. 말해 봐요.”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서이렌이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 연애 안 해요.]
이렌 씨. 설마……?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 열애설이 떴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심장이 떨렸다.
그때 차분한 서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우리 연애는 그만하고 결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