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45화 (246/261)
  • #245화. 역대급 스캔들

    강진석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적힌 글을 읽었다.

    젠셀의 그렉 루이가 쓴 기고문에는 그렉과 함께 검사하는 내 사진이 실려 있었다.

    옆모습이라서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나를 아는 지인들이라면 바로 알아볼 것이었다.

    심지어 한국인 환자라며 내 이름까지 나와 있어서 변명할 수도 없었다.

    나는 큰 충격에 빠진 강진석을 보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직원들도 이 상황을 아는 건지 열린 대표실 문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내 동료들.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세강아. 이 자식아. 너 괜찮은 거야? 이런 일을 대체 왜 숨긴 거야.”

    “저는 괜찮아요. 형님.”

    “시한부가 괜찮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더는 숨기지 말라고.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술 마시자고 하면 안 빼던 녀석이 갑자기 약을 먹는다며 금주를 했잖아. 내가 그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형님.”

    “혹시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은 거야? 너 혼자 병마와 싸우고 있었던 거냐고?”

    강진석은 내가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나를 붙잡고 말을 쏟아 냈다.

    완치했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틈도 없었다.

    그때 대표실 문이 활짝 열리며 진설이 걸어 들어왔다.

    진설은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강진석의 어깨를 잡아끌어 올리더니 말했다.

    “강 이사. 진정해.”

    “진설 대표님.”

    강진석은 진설을 보더니, 이제는 그녀의 품에 기대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진설은 강진석을 품에 안은 채 내게 물었다.

    “이게 원 대표가 말했던 기적이었나?”

    “대표님도 보신 건가요?”

    “봤어.”

    이렇게 모든 것이 까발려졌으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셨으면 잘 아시겠네요. 잡지에 실린 대로 신약을 먹고 완벽하게 나았습니다.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거 정말이지?”

    “제게 기적이 찾아왔다고 했었잖아요. 그게 바로 이거였어요.”

    “그래. 잘됐어. 정말 잘됐어.”

    진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던 강진석이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세강아. 너 진짜 괜찮아?”

    “내용을 안 읽어 보셨어요? 저 완치했어요. 이제 시한부 아닙니다.”

    “너 그거 진짜지?”

    “그럼요. 그러니까 이렇게 잡지에도 실린 거죠. 기적의 남자. 그게 바로 저 원세강입니다.”

    “그럼, 그렉은 왜 너를 따라다닌 거야? 두 사람이 잠깐 한국에서 같이 살았잖아. 그래서 스캔들도 났었고.”

    그렉을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미국도 지금 한바탕 난리가 났겠구나.

    이곳을 빨리 정리하고 그렉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강진석에게 말했다.

    “그렉이 만든 신약을 먹고 완치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특이 케이스 환자면 그렉이 저를 따라다녔겠어요? 혹시나 해서 저를 지켜보다가 더는 볼 것이 없으니까 미국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세요?”

    강진석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대표실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빈선예, 우연미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때 웃고 있던 강진석이 다시 눈물을 터트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세강아. 그동안 힘들었지. 이 자식아. 나 두고 먼저 가면 안 돼.”

    강진석을 토닥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를 위해 울고 있는 이 사람들을 모두 안심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렉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렉은 괜찮으려나?

    * * *

    젠셀 연구소에서 한바탕 큰소리가 났다.

    그렉의 앞에는 티나와 제이슨이 대역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렉은 이미 판매를 시작한 BMJ 잡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티나. 제이슨은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잖아.”

    “소장님. 저희는 진짜로 그게 BMJ에 보내는 기고문인 줄 알았어요. 너무 깔끔하게 다 정리가 되어 있길래.”

    그렉은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티나의 말대로 그 자료는 BMJ에 기고하려고 만든 자료였다.

    누가 봐도 오해할 만하기는 했다.

    “내가 ‘DO NOT TOUCH’라고 상자 위에 써 놨잖아. 그건 못 봤어?”

    “봤죠. 근데 소장님은 중요한 연구 자료에만 그렇게 써 놓으시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이거구나 했죠. 자료도 읽어 보니 신약을 먹고 완치된 환자의 인터뷰도 세세하게 실려 있고 해서……. 죄송해요. 할 말이 없습니다.”

    티나는 말끝을 흐리며 그렉의 눈치를 살폈다.

    그렉은 일이 이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이 더 크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티나. BMJ 웹진 링크를 한국에 보냈다고 했지?”

    “예. 원세강 대표님은 연구소에도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으시고 해서요. 대표님 연락처를 몰라서 아티스틱에 보냈어요.”

    그렉은 시계를 확인했다.

    한국도 난리가 났을 테니 원세강에게 빨리 전화를 걸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나, 제이슨 나가 봐요.”

    “소장님. 정말 죄송해요. BMJ에 연락해서 글을 내려 달라고 해 볼게요.”

    “됐어. 이미 다 퍼졌을 텐데. 소용없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나가 봐요.”

    티나와 제이슨은 어깨가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그렉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갑자기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놀란 그렉은 핸드폰을 손에 든 채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를 쳐다봤다.

    김경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렉에게 달려들었다.

    “루크? 루크가 여기에는 왜 왔어요? 세강이 보냈나요?”

    그렉은 김경록의 손에 들린 BMJ 잡지를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경록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그렉에게 걸어왔다.

    “그렉. 이거 진짜야?”

    “루크. 내 말 좀 들어 봐요.”

    “진짜로 원세강이 시한부였어?”

    “그 말 한번 잘했네요. 과거형. 맞아요. 시한부였었죠. 지금은 아닙니다.”

    그렉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같이 위태로운 김경록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루크와 세강이 이렇게 친했나? 루크가 정말 놀랐나 보네.’

    김경록의 머릿속에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오 년 전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LOK에서 내쫓기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지팡이를 짚고 회사에 나타났던 원세강의 모습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갑자기 회사를 차릴 거라면서 동료들에게 나와 함께하자고 했었다.

    그때는 원세강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었다.

    믿었던 배우가 떠나고, 십 년을 몸담았던 회사에서도 배신당하고.

    아마도 그때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리라.

    김경록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파렴치했던 자신의 과거를 알고도 원세강은 미국까지 도망쳐 왔던 자신을 받아 줬다.

    자신도 살기 위해 염치 따위는 잊고 착한 원세강에게 매달렸었다.

    “이 바보 같은 자식.”

    김경록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일했던 원세강이 떠올랐다.

    그런 그를 지독히 괴롭혔던 자신의 비열했던 과거도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다 잊은 채 자신을 받아 준 원세강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그렉은 눈앞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우는 김경록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루크. 왜 그래요? 괜찮아요?”

    김경록은 그렉의 손길이 닿자마자 그를 잡아끌고 그의 앞으로 주저앉혔다.

    얼떨결에 김경록의 앞에 앉은 그렉.

    김경록은 그를 얼싸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 * *

    신주원은 대한민국을 초토화할 핵폭탄의 투하 준비를 마쳤다.

    오윤기도 제이티뉴스의 공식 미튜브 계정을 만들고 준비한 영상을 비공개로 올려놨다.

    열애설 기사가 뜨면 영상을 공개로 돌릴 생각이었다.

    “신 대표. 그런데 스타탄생에서 거래하자고 오면 어쩌지?”

    “원세강 대표가 하는 거 봐서 딜을 하든 말든 해야지. 원세강은 워낙에 통이 작은 인간이라 아마 내가 원하는 건 못 들어줄걸.”

    “얼마나 크게 부르려고 하는 거야? 우리 신 대표가 욕심쟁이였네.”

    “이렇게 큰 열애설인데 역대급으로 불러야지. 딜이 깨져도 나는 상관없어.”

    “연예계에 원세강 편이 많은 거 같은데 잘 넘어가지 않을까? 그쪽에서 배 째라고 나오면 어쩌려고?”

    “그럼, 그냥 엘리베이터 녹음본 푸는 거지. 사진보다 그게 더 강력하다고.”

    “하하하. 신 대표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한참을 웃던 오윤기가 신주원의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노트북에 팬파라치 스티커가 붙어 있네. 팬파라치에서 퇴사하면서 들고나온 거야?”

    “이거? 그렇게 됐어. 이것도 내가 처음부터 쓰던 것도 아니고 천재용이 쓰던 거 물려받은 거야.”

    “와. 언제 적 천재용이래. 그럼 고물인데 쓸 만해?”

    “천재용이 팬파라치에서 끗발 날리던 시절에 쓰던 노트북이야. 천재용이 데이터 다 지우고 갔는데 확인해 보니까 휴지통에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

    “뭐야? 그럼, 천재용이 가지고 있던 데이터가 여기 다 있어?”

    “당연하지. 서이렌, 임준학 이후에도 빵빵 터트릴 거 천지라고. 제이티뉴스는 이제 시작이야.”

    “와. 내가 알고 보니 동아줄을 제대로 잡은 거였네.”

    오윤기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신 대표는 천재용 소식은 들었어?”

    “천재용? 몰라. 빚 갚느라 지방에서 고생 중 아닌가?”

    “못 들었구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대.”

    “사라져? 어디로?”

    “아무도 모른대. 사람들 말로는 소송에서 다 지고 물어 줄 돈이 너무 많으니까 재산을 정리해서 외국으로 튀었다고 하는데, 모를 일이지.”

    “천재용 그 새끼가 이렇게 나락으로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신주원은 치부를 움켜쥐고 자신을 마구 부려 먹었던 천재용을 떠올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천재용은 몰락했으나 자신은 이제 하늘 높이 떠오를 일만 남았다.

    * * *

    스타탄생은 오늘 업무를 일찍 끝내고 회식을 하기로 했다.

    스타탄생뿐만 아니라 레전드 필름의 직원까지 모두 참여한 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스타탄생의 배우들까지 합류해서 고깃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삼층 짜리 고깃집이 배우와 직원들로 꽉 찬 걸 보는 내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 모인 모두가 나를 위해 모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타탄생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단 두 사람뿐이던 내 편은 이제 이곳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강진석은 내 수호 기사라도 되는 양, 내 옆에 콕 붙어 있었기에 서이렌은 내 옆자리가 아닌 빈선예와 함께 앉았다.

    빈선예가 서이렌에게 물었다.

    “이렌 씨. 난 정말 이렌 씨가 대단한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표님이 시한부라는 거 알고서도 한 번도 마음이 변한적이 없잖아요. 그렇죠?”

    서이렌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로 답했다.

    빈선예는 웃어넘기는 서이렌을 보며 정말로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락이는 늦네요.”

    “지금 CF 촬영하고 있어요. 끝나면 바로 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고깃집의 문이 열리며 이락이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이락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원세강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강진석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락이 표정이 왜 저렇죠? 이상하네. 대표님이 완치하셨다는 말은 전달 못 받은 건가?”

    빈선예가 손을 흔들었으나 이락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내게 달려와 외쳤다.

    “대표님. 이상한 기사가 떴어요.”

    “기사라고요?”

    무슨 기사라는 거지?

    BMJ에 실린 글이 한국에서 기사화됐을 리는 없을 테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 고깃집이 들썩거렸다.

    사람들의 핸드폰 벨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린 것이다.

    “대표님. 열애설 기사가 떴어요.”

    순간 나는 핸드폰을 들다 말고 멈칫했다.

    내 핸드폰 액정에는 ‘깡기자’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락에게 물었다.

    “혹시 이렌 씨 열애설인가요?”

    “예. 그리고…….”

    “그리고요?”

    “대표님의 열애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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