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44화 (245/261)
  • #244화. 밝혀진 비밀

    “뭐야? 저 똥차는?”

    신주원은 빌라와 어울리지 않는 카니발을 보며 방금 긴장했던 자신을 비웃었다.

    “오늘도 허탕이야. 그냥 짐이나 빼련다.”

    신주원은 피곤한 몸으로 노트북 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CCTV 카메라로 카니발에서 내리는 서이렌이 보였다.

    놀란 신주원이 가방을 내던지고 앞으로 달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신주원은 기뻐하며 차에서 몰래 내렸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서이렌이 내리자 익숙한 남자가 따라 내렸다.

    신주원은 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대박을 건지는 건가? 역시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어.’

    떨리는 신주원의 손가락이 카메라의 셔터에 닿았다.

    신주원은 긴장하며 서이렌의 곁에 선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서이렌과 항상 붙어 다니며 스캔들까지 났었던 남자.

    하지만 대중들은 서이렌과 둘 사이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남자가 서이렌의 뒤에 서 있었다.

    ‘원세강?’

    신주원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제기랄. 원세강이잖아.’

    원세강은 서이렌의 캐리어를 들어 주며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스타와 매니저와의 관계로 보였다.

    신주원은 짜증이 났는지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차 안에 설치해 놓은 장비에서는 엘리베이터의 CCTV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갈 수는 없지. 뭐라도 건질 수도 있으니 확인은 해 보자.”

    신주원은 별 기대 없이 그가 엘리베이터에 설치해 놓은 녹음 장비를 켰다.

    * * *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서이렌이 갑자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놀라서 서이렌을 보며 말했다.

    “이렌 씨. 엘리베이터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거 알죠?”

    “알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서이렌은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내 옆구리를 찔렀다.

    “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표님은 신기해요. 어쩜 그렇게 간지럼을 잘 타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이렌 씨는 간지럼 같은 건 전혀 못 느끼는 거죠?”

    “글쎄요? 어떨까요? 궁금해요?”

    서이렌은 이렇게 말하며 나를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금 집으로 가서 한번 확인해 볼래요? 대표님이 원하면 내가 알려 줄 수도 있는데…….”

    장난기 어린 그녀의 눈빛을 본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우재 씨가 기다리고 있어요.”

    “로드장은 그냥 가라고 하면 되잖아요. 응?”

    서이렌이 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하마터면 ‘예스’라고 외칠 뻔했다.

    “안 돼요. 회사에 들러야 합니다.”

    “여친이 이렇게 사정하는데도 안 돼요?”

    “지금 나는 이렌 씨 남친이 아니라 대표님이거든요. 안 됩니다.”

    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서이렌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는 캐리어를 들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이렌 씨. 뭐 해요? 빨리 나와요.”

    내가 부르자 서이렌이 마지 못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에 캐리어를 가져다 놨다.

    내가 고개를 돌리니 서이렌도 들어와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삐진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서이렌은 언제 삐졌냐는 듯이 즉시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내 손이 은근슬쩍 서이렌의 옆구리에 닿았다.

    서이렌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진짜로 간지럼 안 타나 보네요.”

    “와. 대표님. 이러기 있어요?”

    “내가 어쨌는데요?”

    “아무래도 당장 신고해야겠어요.”

    “뭐로 신고하려고요? 가택 침입?”

    “아뇨. 혼인 신고.”

    뻔한 농담이었지만 서이렌이 코를 찡긋하며 말하니 내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 * *

    신주원은 엘리베이터에 다시 탄 원세강을 보며 손을 떨었다.

    영상은 별것이 없었지만,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서이렌과 원세강의 대화는 신주원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말도 안 돼. 두 사람이 사귀고 있었어. 서이렌, 원세강이 사귀고 있었다고.”

    신주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카니발을 타는 원세강의 뒷모습을 째려봤다.

    이자현과 서이렌을 톱스타로 만든 장본인.

    그가 세운 스타탄생은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서이렌을 국민배우로 띄운 일은 물론이고 레전드 필름의 공동 대표로 그가 제작하거나 투자하는 영화마다 모두 역대급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스타탄생은 드라마 제작까지 뛰어들어 작은 아씨들과 저승사자라는 대박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가?

    저승사자는 서이렌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에서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유플릭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 OTT 플랫폼에서도 스타탄생과 손잡고 싶어 한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숨긴 거지?”

    신주원은 원세강의 행적에 대해 떠올려 봤다.

    “그러고 보면 원세강이 스캔들이 꽤 났어. 우연미 작가와 최근에는 중국 배우까지. 하.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연막작전이었네. 스캔들은 엄한 사람이랑 나고 연애는 서이렌이랑 하고 있었다니. 기가 막히는군.”

    신주원은 엘리베이터 대화 음성을 몇 번이나 들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진을 찍어야 해. 두 사람의 투 샷만 있으면 그때는 게임 끝이야.”

    * * *

    아티스틱으로 출근한 김경록은 아침부터 기사를 찾아보고 있었다.

    [모델 아샤, 크레이그 고든의 복귀작 ‘라스트 콘서트’로 배우 데뷔]

    아침부터 인터넷은 아샤의 라스트 콘서트 출연 기사로 시끄러웠다.

    ‘세강이 말대로 아샤가 주연을 맡았구나. 시나리오를 보고 내심 이렌 씨가 됐었으면 했는데.’ 김경록이 아니었다면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휴지통에 처박혔을 거다.

    라스트 콘서트라는 작품에 애착이 있던 김경록은 그가 사랑하는 배우, 서이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슬펐지만, 괜찮았다.

    서이렌은 헬렌 톰슨 감독의 대작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니까.

    [올해의 돌풍 서이렌, 헬렌 톰슨의 신작 주연으로 캐스팅]

    [거장 헬렌 톰슨과 신예 스타, 서이렌의 만남]

    김경록이 서이렌의 기사를 보며 웃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곁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바로 지난번 함께 편지를 정리했던 인턴, 톰이었다.

    톰의 목에는 정직원 카드가 걸려 있었다.

    톰은 목에 걸린 카드를 김경록에게 잘 보이게 흔들며 그의 앞에 앉았다.

    ‘얘는 또 왜 이래? 정직원 됐다고 나한테 자랑하는 건가?’ 톰은 능글맞게 웃으며 김경록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홍보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압니다.”

    “알고 계셨어요? 저도 오늘 출근해서야 알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댁의 목에 걸린 카드에 홍보팀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아. 이걸 보셨구나.”

    ‘뭐래? 보라고 들이밀어 놓고 딴소리는.’ 김경록은 자신 앞에서 잘난 체하는 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김경록은 자신을 탓하며 반성했다.

    ‘내 십 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네. 나도 저러고 다녔었지. 아오. 이게 바로 인과응보인가 보다. 함부로 욕도 못 하겠네.’

    “그런데 그때 루크가 팀장님한테 넘겼던 그 시나리오요.”

    “라스트 콘서트 말입니까?”

    “결국엔 아티스틱 소속이 아닌 다른 배우한테 주인공을 빼앗겼더라고요. 오늘 기사 떴던데 보셨어요?”

    김경록은 오늘 톰이 자신을 왜 찾아온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속을 긁으러 온 거구나. 젊은 사람이 참 속이 좁네.‘톰은 그날 크레이그 도슨의 시나리오를 쓰레기통에 버린 일로 팀장에게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하지만 그 일이 있었음에도 자신은 홍보팀 정직원이 됐고, 김경록은 정직원이긴 하지만 팀에 속하지 않고 잡일이나 하는 말단 직원이었다.

    그래서 자랑하려고 오늘 루크를 찾은 것이다.

    톰이 김경록을 보며 조소하고 있는데 파티션 너머로 팀장인 캐롤이 보였다.

    톰은 캐롤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캐롤은 톰의 인사를 대충 받고는 김경록 앞으로 걸어왔다.

    “루크. 어제 했던 이야기 잊지 않았겠죠?”

    “예. 팀장님.”

    “오늘 계약서를 쓰러 회사에 온다고 하니까 팔 층으로 내려가 봐요. 루크가 맡을 팀의 배우인데 보스가 챙겨야죠.”

    “알겠습니다. 팀장님.”

    캐롤은 웃으며 파티션 너머로 사라졌다.

    팀? 보스?

    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티스틱에서는 배우를 맡는 헤드 스태프를 보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루크가 보스라니?

    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김경록을 쳐다봤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톰. 홍보팀 일 열심히 하세요.”

    “루크. 벌써 팀을 가지게 된 겁니까?”

    “그렇게 됐어요.”

    “…….”

    김경록이 노트북을 들고 걸어 나가자 놀란 톰이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루크. 대체 누구랑 계약서를 쓴다는 겁니까? 루크가 맡은 배우가 누구냐고요?”

    김경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 신출내기 톰을 보며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샤.”

    * * *

    오윤기는 눈앞의 사진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최근에 찍은 임준학의 사진도 대박이라면 대박이었지만 신주원에 찍은 사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이 원세강이라고?”

    “보면 모르겠어? 원세강 맞잖아.”

    “와. 미쳤네. 서이렌이 원세강이랑 사귄다니. 전혀 몰랐다.”

    오윤기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신주원은 그에게 기사 초고를 건넸다.

    “우리 제이티뉴스의 첫 번째 기사야. 확인해 봐.”

    오윤기는 신주원이 건넨 기사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지막 장에는 첫 번째 기사 이후에 내놓을 기사들의 헤드라인만 적혀 있었는데 그 개수가 무려 오십 개가 넘었다.

    “신 형. 서이렌 열애설로 아주 뽕을 뽑을 생각인 거야?”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그리고 신 형이 뭐니? 이제 사업자 등록도 끝났으니 대표님이라고 부르세요. 오 이사님.”

    “내 직함은 이사인가? 단둘뿐인 회사인데 대표와 이사라니. 하하하.”

    “이것만 터져 봐라. 반년 만에 서울에 10층짜리 건물을 올릴 테니 기대하라고. 그리고 오 이사가 건진 임준학 사진은 서이렌 열애설로 해 먹을 수 있는 만큼 해 먹고 터트리자고.”

    “신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대표님이라. 그거 듣기 좋군.”

    * * *

    스타탄생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강진석이 뛰쳐 들어왔다.

    “세강아!”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형님. 왜 그러세요?”

    “너 전화를 왜 안 받아?”

    “전화요?”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 레전드 필름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느라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놨었다.

    “회의 때문에 무음으로 해 놓고 깜박했네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야. 너 이 새끼야. 왜 그랬어?”

    “예? 무슨 말씀이세요?”

    강진석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강진석이 평소와 너무 달라서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어요?”

    “세강아. 너 이 자식. 내가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나는 그제야 강진석의 손에 들린 뭔가를 발견했다.

    대체 뭔데 진석 형님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내가 다시 한번 이유를 물으려는데 강진석이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대체 뭐야? 나한테 설명해 보라고.”

    강진석이 떨리는 손으로 내 앞으로 종이 다발을 내밀었다.

    “젠셀 연구소의 티나라는 연구원이 아티스틱에 매니컬 잡지의 웹진 링크를 보냈대. 아티스틱에서 그걸 출력해서 우리한테 팩스로 보내 준 거야.”

    젠셀? 티나?

    지금 진석 형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강진석의 손에 들린 종이 다발을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의약 용어가 가득 차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강진석이 두 번째 장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세강아. 이거 너 맞지?”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기계를 잔뜩 매달고 검사를 받는 한 사람이 보였다.

    사진 속의 남자는 지난날 젠셀 연구소에서 검사를 하던 나였다.

    강진석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외쳤다.

    “너 시한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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