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42화 (243/261)
  • #242화. 오디션의 들러리

    신주원은 팬파라치에서 함께 일했던 친한 후배 오윤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신 형이 최 PD가 터트린 펑황과 LOK의 소스 제공자였다고?”

    “그럼, 그걸 최 PD가 취재해서 얻었겠니?”

    “그 영상 조회수 장난 아니던데. 혹시 소스를 최 PD한테 판 거야? 얼마에 팔았어?”

    신주원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 두 개를 들여 보였다.

    “와. 대박이네. 큰 거 두 장이라니. 팬파라치에서 잘렸다는 소문이 돌아서 걱정했더니 기우였네.”

    “나 신주원이야. 걱정할 게 뭐가 있어.”

    “근데 신 형이 나를 왜 찾아온 거야?”

    “내가 인터넷 신문사를 차리려고 하는데 같이 해 볼래?”

    “신문사?”

    “너야말로 파파라치로 전향해서 잘나가고 있다면서?”

    “나야말로 요즘 호황이지.”

    신주원은 오윤기의 커다란 가방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팬파라치에서 일할 때 사용했던 거보다 훨씬 큰 망원렌즈네. 이걸로 사진을 찍는다는 거지?”

    “팬파라치에서 일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진짜 파파라치가 될 줄 몰랐어. 하하하.”

    “어제 뜬 김선우 사진도 네가 찍은 거지?”

    “신 형도 봤어?”

    “봤지. 김선우는 LOK랑 펑황 싸움의 중간에 끼어서 완전 새 됐더라.”

    “자업자득이지. 펑황과 손잡은 매국노로 찍혔잖아. 지금 보면 김선우는 LOK가 없으면 말짱 꽝이야. LOK에서 케어를 못 받으니까 바로 룸살롱 죽돌이가 돼서 나한테 사진이나 찍히잖아.”

    “이 시국에 반성은커녕 그러고 돌아다녔으니 알 만하지. 그래서 말인데 같이해 보자. 너랑 나랑 함께하면 역대급일걸?”

    신주원의 제의에 오윤기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지 않아도 신 형이랑 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무슨 좋은 건수라도 있어?”

    “동성빌라라고 평창동에 있는 고급 빌라가 있어. 거기에 연예인들이 많이 살거든. 철통 보안이라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데. 내 고향 후배가 거기 보안 업체에 근무해. 그래서 들어갈 틈이 생겼어.”

    “동성빌라? 누가 사는데?”

    “내가 지금 픽한 사람은 임준학이야.”

    “임준학은 왜? 뭐 소문이라도 돌아?”

    “삼합회 중간 보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삼합회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조폭 아니야?”

    “한국의 현지처한테 낳은 아들이 임준학이라더라.”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

    “회사 차린다며? 그 회사의 첫 기사로 괜찮지 않아?”

    신주원은 구미가 당기는지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근데 동성빌라에 다른 사람은 안 살아?”

    “아이돌 가수인 유은정도 거기 살고, 서이렌도 살아.”

    “서이렌? 야! 서이렌을 파야지. 무슨 임준학이야?”

    “서이렌도 팠지. 저승사자 촬영하는 석 달을 촬영장에 죽치고 기다렸는데 꼬투리 하나 못 잡았어.”

    “그건 촬영장이잖아. 집에서 잡아야지. 빌라에 들어갈 수 있다며?”

    “내가 이 일을 한두 해 하나? 딱 보면 각이 나오거든. 서이렌은 일만 하는 타입이야. 캐도 나올 게 없어.”

    “그 정도야?”

    “집과 촬영장을 오가면서 일만 하더라고. 가끔 지인들이랑 놀기도 하는데 다 스타탄생 소속 배우나 직원들이야. 사람이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더라. 그래서 인기가 그렇게 많은 건가?”

    “웃기지 말라고 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서이렌은 요정이잖아. 사람이 아니지.”

    “미친 새끼.”

    신주원은 허허 웃는 오윤기를 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빌라에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했지? 나도 들어갈 수 있어?”

    “왜?”

    “넌 임준학 캐고 나는 서이렌을 한번 캐 볼게. 어때?”

    곰곰이 생각하던 오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같이 해봐. 근데 신 형. 우리 회사 이름이 뭐야?”

    오윤기의 물음에 신주원이 웃으며 답했다.

    “제이티뉴스(JTNews)”

    * * *

    미국에 도착한 우리는 제작사 ONE으로 갔다.

    ONE은 트로이처럼 큰 회사는 아니지만 지난 십 년간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어 온 저력 있는 회사다.

    크레이그 도슨과 함께 일했던 조감독이 차린 제작사로 크레이그는 라스트 콘서트를 그곳에서 만들기로 했다.

    ONE에 갔지만 우리는 감독인 크레이그 도슨을 만나지 못했다.

    함께 온 윤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오디션이라지만 이렌 씨 정도면 내정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네. 다른 배우들과 똑같이 대하는 걸 보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가?”

    윤조는 무심결에 던진 말이었는데 듣고 있던 서이렌이 발끈했다.

    “설마요? 내가 오디션에서 떨어질 리가 없죠. 제가 이래 봬도 오디션 킬러라고요.”

    볼에 빵빵하게 하고 나를 흘겨보는 서이렌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죠. 우리 이렌 씨 정도 되면 오디션 킬러라고 할 수 있죠.”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드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며 다른 배우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대기실을 두리번거리다 서이렌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이렌 씨가 확실히 유명해지긴 했나 봐요. 다들 우리 이렌 씨를 알아보네요.”

    윤조의 말대로 대기실에 모인 배우들은 서이렌을 알아봤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최대의 경쟁자라고 여기는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서이렌을 쳐다봤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잘 아는 누군가 들어왔다.

    “아샤!”

    서이렌은 벌떡 일어나서 아샤를 반겼다.

    아샤도 라스트 콘서트의 오디션을 보는구나.

    아샤와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 전혀 몰랐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서이렌은 아샤를 자신의 옆자리로 데리고 오더니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본은 잘 봤어? 잠은 잘 잤고?”

    “모르겠어.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대사가 헷갈리고 있어. 나 어떡하지?”

    야사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심장 박동이 거세져서 당황스러웠다.

    “괜찮아, 아샤?”

    “이상해. 너무 떨리는데?”

    나 때문이다.

    나는 아샤를 보자마자 식겁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윤조야.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응. 오빠. 다녀와.”

    나는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서이렌은 떨고 있는 아샤의 곁으로 다가갔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길게 세 번 숨을 들이마시고 앞으로 나가. 그리고 연기를 하면 돼. 런웨이에 오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런웨이는 아샤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서이렌의 조언이 도움이 됐는지 아샤는 그제야 밝게 웃어 보였다.

    ONE의 직원은 대기실에 모인 배우들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오디션 시작합니다. 1번부터 들어와 주세요.”

    * *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오디션은 본 적이 없다.

    대기실 장의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고 그 안에 모인 배우와 스태프들은 오디션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

    연기를 마친 배우가 의자에 앉자 크레이그와 ONE 관계자들이 대화를 시작했고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다 들렸다.

    중간 순번인 서이렌과 아샤가 오디션 장소로 간 걸 확인한 후, 나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오빠. 어딜 다녀온 거야?”

    “윤조야. 이게 대체 뭐야? 오디션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중계 해 주네?”

    “나도 이런 오디션은 처음 봤어. 배우들도 당황해하더라.”

    나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배우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했다.

    내 옆에 앉은 배우도 떨리는 얼굴로 앞서 연기하는 경쟁자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오디션이 진행되면 될수록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라스트 콘서트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언니와 그 언니의 재능에 가려진 동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곳에 모인 열댓 명의 배우들은 스크린 안에서 연기하는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주인공처럼 언니의 재능에 벽을 느끼고 좌절할까?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더 잘한다며 우월감을 가질까?

    크레이그 도슨이 노린 것이 이걸까?

    앞서 열연을 보여 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그때 대기실이 한바탕 들썩였다.

    “서이렌이다.”

    배우들은 오디션 장 안으로 들어오는 서이렌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서이렌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걸어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크레이그 도슨은 서이렌을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준비해 온 노래와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서이렌은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피아노 앞으로 걸어갔다.

    * * *

    서이렌이 노래와 연기를 끝내자 오디션장 안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ONE의 대표이자 크레이그 도슨의 조감독이었던 알렌 미치는 혀를 내둘렀다.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서이렌이 나오는 라스트 콘서트 영화를 미리 본 것 같았다.

    “크레이그. 저는 할 말이 없네요. 너무 완벽해요. 이건 대본에서 걸어 나온 수준입니다.”

    알렌 미치는 서이렌의 연기에 대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찬사는 카메라를 통해 바깥의 대기실에 고스란히 나가고 있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이렌이 오디션 낙점자라도 되는 양 말을 했다.

    “알렌. 아직 배우들이 더 남았네.”

    “제가 너무 흥분했나 보네요. 하지만 이 연기를 봤으니 다른 연기는 눈에 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알렌은 서이렌이 주인공이라며 확신했다.

    크레이그는 알렌의 발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음 프로필을 들었다.

    서이렌과 동갑이었으나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샤.

    마스크는 좋았으나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이 걸렸다.

    “케일. 아샤를 들여보내세요.”

    “예. 대표님.”

    이윽고 오디션 장의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아샤가 서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연 채 들어오지 않고 그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들어오세요. 오디션 시작해야죠.”

    알렌 미치는 아샤가 우물쭈물하자 속이 탔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주인공이 결정되었기에 남은 배우들은 대충 보고 해치우고 싶었다.

    아샤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크레이그 도슨을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라스트 콘서트의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녀 역시 바로 앞서 연기했던 서이렌의 오디션 장면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봤다.

    서이렌과 비교하면 자신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배우로서의 재능이며 연예인으로서의 아우라며 모든 것이 서이렌과 비교해서 부족했다.

    “아샤. 준비됐나요?”

    “…….”

    “아샤?”

    “예.”

    “너무 긴장한 거 같은데 할 수 있겠어요?”

    “예. 해야 합니다.”

    ‘할 수 있겠다’도 아니고 ‘해야 한다’라니.

    알렌 미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크레이그 도슨의 눈빛은 빛났다.

    “그럼 준비해 온 노래와 연기를 보여 주세요. 아샤.”

    * * *

    ONE의 대표실에 들어서니 알렌 미치와 크레이그 도슨 감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이렌과 윤조를 에스코트하며 대표실로 들어갔다.

    알렌 미치는 서이렌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서이렌 씨. 잘 오셨어요. 오늘 보여 준 연기가 너무 환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렇게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ONE의 대표가 우리를 부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윤조는 서이렌이 주인공에 뽑힌 거라며 기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크레이그 도슨을 바라봤다.

    서이렌을 보는 그의 눈빛에 설렘이 보이지 않았다.

    “이쪽은 아티스틱의 부사장인 찰리 윤인가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찰리 윤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서이렌 씨를 발굴해 주신 원세강 대표님이세요. 한국에서 서이렌 씨와 함께 오셨죠.”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자마자 알렌 미치는 계약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런데 그가 계약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크레이그 도슨이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렌. 나는 아직 주인공을 결정하지 못했네.”

    “감독님. 또 그 이야기세요?”

    알렌은 크레이그를 보며 혀를 찼다.

    윤조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로지 나와 서이렌만이 평정심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크레이그는 서이렌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서이렌 씨. 당신이 오늘 보여 준 연기는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당신을 주연으로 결정하지 않았어요.”

    “크레이그 감독님!”

    알렌이 놀라서 크레이그의 팔을 잡았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크레이그 감독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크레이그가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뭐죠?”

    “감독님은 라스트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계시는 거죠?”

    내가 담담히 묻자 크레이그 감독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나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

    “감독님은 아샤에게 주인공을 내어 주고 싶으신 거죠? 아샤에게 라스트 콘서트의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감과 시기, 질투의 감정을 느끼셨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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