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K드라마
“염제께서는 역시 이곳에 나를 보낸 이유가 있으셨다. 가자. 지성아.”
제신이 당당하게 국제상사로 걸어가려고 하자 문지성이 그녀를 막아섰다.
“뭐 하는 겁니까?”
“악인이 이곳의 주인인 것 같으니 잡으러 가야지.”
“우리는 못 들어갑니다.”
“무슨 소리냐? 네가 앞으로 이곳을 매일매일 방문하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오고 싶어도 못 와요. 면접에서 떨어졌다고요.”
제신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문지성은 그녀를 붙잡고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한참을 설명했다.
제신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승도 비슷한 일이 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사자의 직위가 오르지 않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험에서 떨어진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이고 잘 나셨습니다. 그리 잘나셔서 지상으로 쫓겨난 것입니까?”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너 때문이었다.”
문지성은 당당하게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제신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악귀를 잡으려면 악귀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내가 저곳에 못 들어간다면 나라도 들어가야지. 그 면접이란 것을 나도 한번 봐야 하겠구나.”
“사자님이 무슨 면접이에요? 미쳤어요?”
“말했지만 나는 시험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나를 믿어라. 지성아.”
문지성은 어이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정확히 일주일 뒤, 제신은 특별채용으로 국제상사의 신입사원이 되고 만다.
* * *
유플릭스에서 저승사자가 공개되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다.
- 저승사자 존잼.
- 1화부터 머리 풀고 달려서 하루 만에 9화를 다 봄.
- 초반에는 취준생의 고뇌를 그린 드라마인 줄. ㅋㅋㅋㅋ- 결말 임팩트 미침.
- 서이렌 미친 거 아님. 저승사자라서 화장도 하나도 안 하고 나오는데 카리스마 쩔어.
- 서이렌 외모 리즈 찍었어. 완전 존잘임. ㅋㅋㅋ
- 내 친구랑 하루 만에 다 봤음. 최근 유플 한국 작품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2화부터 홀린 듯이 계속 봄 - 이거 외국인들은 잘 봤을까? 한국적인 거 많이 나와서 걱정인데…….
└걔들이 더 잘 봄. 한국에서 만든 사극도 유플에서 1위 찍는데. ㅋㅋㅋ- 아니 다들 드라만 보는 거야? 난 이제 3화 보고 있는데. ㅋㅋㅋ- 서이렌이 들고 다니는 족자 핫 아이템 될 듯. ㅋㅋㅋ- 족자 안에서 악귀 해치울 검이 나올 줄 몰랐다.
- 그때 연출 돌았음. 궁지에 몰려서 갈 곳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완전 위기였는데 족자에서 빛이 뿜! 검이 빡!
- 검 쓰는 서이렌도 존멋이었다. ㅋㅋㅋ
└나비 촬영하면서 액션 연습 엄청 했다던데. 그 실력 어디 안 가고요.
- 근데 웨이티비 쉐도우는 어떻게 됐어?
- 지금 쉐도우가 문제가 아니냐. 웨이비티가 한국에서 접게 생겼음. ㅋㅋㅋ- 웨이티비 어플에 백도어가 깔렸다고 해서 난리잖아.
- 방송 삼사 뉴스에도 다 나왔어.
- 쉐도우도 궁금한데. 웨이티비에 백도어 깔려 있으면 이거 어떻게 보지?
└검색해 봐. 중국이라 그런지 이미 영상 다 떴더라.
└SNS에 조각 영상도 떠도는데. 영 아님. 이번에도 김선우가 김선우 했음.
* * *
나는 출근하자마자 인터넷 기사와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저승사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국에서도 한국 토속신앙이 제대로 나온 저승사자를 재미있게 본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공개된 지 24시간이 지나고 순위가 나올 텐데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마침 출근한 강진석이 내게 커피를 건넸다.
“마셔. 세강아.”
“고맙습니다. 형님.”
“무슨 기사를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나 했더니 이거였구나.”
강진석은 내가 보고 있던 펑황과 LOK 기사를 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SNS에 올린 폭로 글은 고중기가 쓴 거라더라. 펑황 이사로 잘 나가나 했는데 아니더라고. 지금 보직 해임 상태래. 팬파라치 신주원이랑 짝짜꿍하다가 걸려서 보직 해임 상태였는데. 앙심을 품고 제작 발표회 때맞춰서 폭로 글을 올린 거란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내가 또 인맥이 넓잖니. 어젯밤에 펑황 사람들이 고중기가 사는 집에 쳐들어갔나 봐. 고중기가 LOK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잖아. 거기에 LOK 직원들도 많이 살고. 그래서 알게 됐어.”
“LOK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LOK 이야기가 나오자 강진석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LOK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대표 자리는 다시 못 찾을 거 같더라.”
“한성제 대표님이 깨어나셨는데도요?”
한성제 대표라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LOK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젯밤에 한성제 대표님 병실에 다녀왔었어.”
“저와 같이 가시지 그랬어요.”
“넌 지금 저승사자 런칭하고 한창 바쁠 때잖아. LOK 김 팀장이랑 얼굴도 볼 겸 함께 다녀왔었는데. 한성제 대표님이 결심을 굳히신 거 같더라고.”
“무슨 결심을요?”
“이제 LOK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은퇴하시겠대. 지난번처럼 가짜가 아니라 진짜 은퇴 말이야.”
한성제가 은퇴를 결심했다니.
진짜로 LOK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지난 오 년간 서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싸운 회사였지만 그래도 십 년을 몸담았던 회사다.
한성제가 은퇴하고 LOK를 되찾지 않을 거라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한 대표님도 잘 생각하신 거지. 능력도 없는 아들놈한테 LOK 물려주려고 하다가 이 사달이 난 거잖아.”
“한지욱은 뭐라고 합니까?”
“몰라. 어디 틀어박혀서 술이나 처먹고 있겠지. 병원에서도 못 봤어.”
“그렇군요.”
“암튼 LOK는 이제 끝이야. 한성제 대표님이 잘 생각하신 거야. 소속 배우들 이슈도 터지고, 펑황이 먹었다는 게 기사로 다 떠서 주식이 지금 나락으로 가고 있어.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이직할 때 가지고 있던 주식을 다 팔고 나오는 건데.”
강진석의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예요.”
“너도 주식 안 팔고 가지고 있었어?”
“저는 형님보다 많을걸요?”
“휴지 조각되기 전에 다 팔아서 다음에 같이 밥이나 먹자.”
“그래요. 형님.”
말을 마치고 나가려던 강진석이 갑자기 뒤돌아섰다.
“왜요? 무슨 하실 말씀이 남았나요?”
“세강아. 한성제 대표님이 언제 한번 병원에 들리라고 하셨어.”
“저를요?”
한성제가 깨어났으니 곧 병문안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찾는다니.
“너한테 미안하다고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
“아…….”
“혹시 오 년 전에 네가 LOK를 나간 거 때문인가? 원래 네가 TOP 대표로 가기로 했던 건데 한지욱을 꽂아 넣느라 너를 쳐 낸 거였잖아. 그것 때문이지? 맞지?”
“지난 일이라고 거침없이 비수를 꽂으시네요.”
“역시 그 일 때문이구나. 가서 한성제 대표님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봐.”
“그럴게요.”
“그럼, 진짜 간다.”
홀로 남은 나는 생각에 빠졌다.
오 년 전,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LOK에서 배신당한 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직하여 스타탄생을 세웠다.
만약 LOK에서 배신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정대로 TOP 미디어의 대표가 됐다고 하더라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
내 인생의 마지막은 진짜 내 회사와 배우, 그들과 함께하려고 했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불편함이 사라졌다.
배신당했던 지난 일의 아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홀가분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 * *
저승사자의 첫날 순위가 떴다.
한국은 당연히 1위였고 유플릭스를 서비스하는 512개 국가 중에서 총 80개의 나라에서 1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다.
- 순위 미쳤다. 미쳤어.
- 대박 난 거 같더라. SNS 태그 수도 넘사벽임.
- 유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제일 잘된 거지?
└올해 공개된 모든 유플 드라마 중에 제일 잘되고 있는 중.
└ㅅㅂ
└ㄷㄷㄷ
└뽕이 차 오른다. ㅠㅠㅠㅠ
└미친. ㅋㅋㅋㅋ
- 기레기 놈들. 태세 전환하는 거 보소. 저승사자 공개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승사자 vs 쉐도우라면서 기사 써 대더니. ㅋㅋㅋ- 쉐도우는 이름 그대로 어둠 속에 묻혔음.
- 웨이티비 어플을 깐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그 드라마. ㅋㅋㅋ- 그나저나 웨이티비는 어떻게 되는 거야?
- 국회에서 감사 나간다는데???
- 펑황이 LOK 먹은 거도 문제가 많나 봐.
- 김선우도 조사받을지 모른다고 함.
- 와.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었나 보네.
- 주식으로 장난질 한 거라서 큰일 맞음.
- 중국이 중국 한 거지. 겉으로는 LOK랑 합작하면서 속으로는 LOK 집어삼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 듯.
- 중국은 진짜 믿을 놈들이 없다.
* * *
한국에서의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곧바로 라스트 콘서트의 오디션 날짜가 잡혔다.
다음 주면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에서의 일정에 대해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대표실로 한지욱이 들어왔다.
한지욱이 방문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지욱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얼굴이 꽤 상해 있었다.
그는 쭈뼛거리며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원세강.”
나는 한지욱을 위아래로 훑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외향만은 신경 쓰고 다니던 그였는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면도도 못 했는지 한지욱은 푸석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여긴 왜 왔어?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다 들었어.”
“뭘 들었다는 거야?”
“웨이티비에 한 방 먹인 거. 네가 한 거라면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말해 준 것일까?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때 한지욱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평소 인사도 잘하지 않는 그가 내 앞에서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인 모습을 보자 나는 당황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동안 내가 치사하게 굴었던 거 미안해. 사과할게.”
“알긴 아는 거야? 네가 치사했다는 걸? 이제 철이라도 들었어?”
“너무 늦게 알았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이제 알 것 같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한지욱이 꼬리를 내린 모습을 보니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가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웨이티비는 한국에서 철수할 것 같던데?”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웨이티비 앱이 오늘부로 앱스토어에서 내려갔어. LOK 인수 과정에 불법이 없는지는 지금 금감원에서 조사에 착수했고. 엔진을 통해 들어 보니 LOK 말고 펑황과 손잡고 준비하던 다른 프로젝트도 모두 엎어졌다는군.”
“전혀 몰랐어.”
“LOK를 다시 찾을 생각은 없나 보네?”
“…….”
“그동안 잘못한 건 알겠고 반성할 시간도 있지만 일을 수습하러 돌아다닐 시간은 없는 건가?”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짜증이 치미는지 모르겠다.
금수저로 태어나 내가 십 년을 노력해서 간신히 얻는 기회를 쉽게 빼앗아 가 놓고, 그것도 지키지 못한 한지욱이 갑자기 꼴도 보기 싫었다.
한지욱도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입을 굳게 닫았다.
“이제 나한테 할 말이 없지?”
“어?”
“사과했으니 됐잖아.”
“어. 그렇긴 한데.”
“가 봐.”
“…….”
한지욱은 내가 축객령을 내리자 놀란 것 같았다.
“사과를 받아 주는 거야?”
“아니.”
이렇게 쉽게 그의 사과를 받을 생각은 없다.
나는 한지욱의 생기 없는 눈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LOK를 되찾아. 그러고 나서 다시 말해. 지금 나는 패배자와는 더 할 이야기가 없어.”
“뭐라고?”
패배자라는 말에 발끈한 한지욱이 나를 노려봤다.
그래. 차라리 저쪽이 낫다.
패배에 물든 눈빛보다는 악에 받쳐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
“널 다시 만나는 건 네가 LOK를 되찾고 난 뒤라고 생각하고 있을게.”
“두고 봐. 난 꼭 해낼 테니까.”
“글쎄. 난 한 십 년은 너를 못 볼 거 같은데.”
“재수 없는 새끼.”
끝까지 내가 그를 무시하자 한지욱은 씩씩거리며 대표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한지욱이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한지욱을 내 라이벌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지욱아. 이제 철은 든 거 같으니 이제는 제발 실력도 좀 키워 봐라.
한성제 대표님이 힘드시잖니.
순간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