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40화 (241/261)
  • #240화. 저승사자

    질문을 했던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원세강 대표님이라면 그런 말씀을 해 주셔도 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일시에 꽂혔다.

    나는 나만 바라보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류가 시작된 지 어느덧 이십 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때는 홍콩을 예로 들며 잠깐의 인기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류는 이어지고 있죠. 이십 년 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그래프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유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라는 경쟁의 장이 마련되면서 한국 콘텐츠는 점점 더 세계의 주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한국인들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뒷받침되는데 일도 잘하죠.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효율성이 극대화된 제작 환경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는 한국이 만드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하지만 단 한 가지. 중국의 무분별한 자본 침략은 걱정이 됩니다. 우리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된 할리우드도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드라마인데 중국산 PPL로 가득 찼다고 하셨죠? 저도 쉐도우의 예고편을 보고 놀랐습니다. 대중의 눈은 정확하기에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거라 봅니다. 그래서 제작자로서 함부로 차이나 머니를 받아 작품을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타탄생은 펑황과 합작할 생각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없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 하는 성격이어서 PPL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로케이션 장소도 제 마음대로 정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중국의 투자를 받아서 만든 작품이 모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기자 몇몇이 내게 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들도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두 개의 질문을 한 기자는 그때까지 앉지 않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겠지만 이슈가 한 번에 다 터지는군요.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웨이티비를 만든 펑황 엔터가 한국의 삼대 기획사인 LOK를 손에 넣은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질문에 홀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펑황이 LOK를 먹어요?”

    “LOK 대표가 바뀐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수군거리는데 누군가 핸드폰을 보며 외쳤다.

    “글이 떴네요.”

    “뭔데 그래요? 무슨 기사라도 떴어요?”

    “이것 좀 보세요. SNS에 폭로 글이 떴어요.”

    “미튜브 최 PD 채널에도 비슷한 폭로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나는 놀라서 떠드는 그들을 보며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고중기나 신주원이나 타이밍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때 MC가 나서서 장내를 조용히 시켰다.

    “기자 여러분들. 지금은 저승사자의 제작 발표회 현장입니다. 조용히 해 주십시오.”

    * * *

    MC가 나섰지만 험악해진 제작 발표회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대기실에서 쉐도우의 제작 발표회를 감상하던 탕궈는 급변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기자들이 갑자기 드라마가 아닌 LOK와 펑황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비서는 다급한 얼굴로 탕궈 앞으로 달려왔다.

    “대표님.”

    “지금 현장 분위기가 왜 저런 겁니까? 한국 기자들은 예의를 모르는군요. 드라마 제작 발표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요.”

    “대표님. SNS에 폭로 글이 떴습니다.”

    비서는 재빨리 문제가 된 SNS의 글을 탕궈에게 보여 줬다.

    “이봐요. 내가 이걸 어떻게 읽으라는 겁니까?”

    탕궈는 한글로 쓰여 있는 SNS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비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SNS에 나온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 전까지 펑황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펑황이 LOK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LOK의 대표가 바뀐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 모든 것은 펑황의 뒷공작으로 이뤄진 일입니다.

    …….]

    비서는 SNS에서 사용된 과격한 단어를 포장해서 통역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탕궈는 순화된 말로 들으면서도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누가 올린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SNS 프로필 사진이 디폴트인 걸 보면 폭로를 하려고 만든 계정 같습니다.”

    “펑황에서 일했다면서요? 펑황과 일하다 퇴직한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런데 이 글을 올린 사람을 찾는 것보다 언론을 먼저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기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럴 때는 참 빨라. 하지만 겨우 이런 폭로 글을 가지고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그때 비서가 놀라서 외쳤다.

    “어! 김선우 배우님이……?”

    탕궈는 이번에는 또 뭐냐는 표정으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제작 발표회를 하고 있던 김선우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선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 쉐도우 제작 발표회장 난리 났네.

    - 방금 실시간 중계 끊겼어. 대박.

    - SNS에 올라온 폭로 글 때문인가? LOK랑 펑황??

    - 최 피디 채널에 김선우 폭로 영상이 올라와서 그런 거 아님?

    - 최 피디 채널이면 걸러야 하는 거 아님?

    - 증거가 되게 자세해. 찐인 거 같음.

    - 김선우 못됐네. 신인 때부터 키워 준 대표님 등에 칼 꽂은 거잖아.

    - 김선우 말고 주식 많이 가지고 있던 LOK 배우들이 펑황에 주식을 몽땅 넘겼다는데???

    - 영상 끝까지 안 봤음? 김선우가 나서서 꼬드겼다잖아.

    - 지금 LOK 지탱하는 기둥이 김선우인데 미쳤네.

    - SNS 폭로 글에 배신한 LOK 명단 떴어. 이름 있는 배우들은 다 들어 있어. 소름 ㄷㄷㄷ? LOK 여신인 지수연이 없네. ㅋㅋㅋ

    └김선우랑 지수연이랑 사이 별루잖아. ㅋㅋㅋ

    └걔는 제멋대로 하는 얘라 이런 건 신경도 안 쓸 줄 알았음. ㅋㅋㅋ- 펑황이 한국 진출한다고 했을 때부터 기분이 쎄했다. 펑황은 중국에서도 상도덕 없는 회사로 이름나지 않았나?

    └펑황만 그럴까? 중국이 원래 그런 놈들임.

    └오늘 터진 백도어 문제를 봐라. 중국은 믿거임.

    - 웨이티비 어플 지웠는데 괜찮겠지???

    └설정 안 건드렸으면 괜찮을걸.

    └기본 해상도가 SD라서 고해상도로 바꾸려면 설정을 건드릴 수밖에 없음. ㅜㅜ? 이것들이 치밀한 놈들이었네. -_-- 펑황은 오늘 하루에만 이슈가 몇 개가 터진 거냐?

    └웨이티비 어플 백도어.

    └배우들 매수해서 LOK 홀랑 먹은 거.

    └한국 드라마 검열하고 중국 제품 PPL 넣은 거.

    └미친놈들이네.

    - 펑황 꺼져라.

    - 펑황만 문제가 아님. 중국을 몰아내야 함.

    * * *

    저승사자의 제작 발표회가 끝났다.

    제작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이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단상을 내려오는 나는 혀를 끌끌 차는 강진석을 보며 말했다.

    “반응은 어떤가요?”

    “어떻긴 난리가 났다.”

    “그래요?”

    “우리가 아니라 펑황 쪽이. 저기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는 꼴을 좀 봐라.”

    강진석은 내게 제작 발표회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승사자 제작 발표회장에 왔던 깡기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깡기자님은 아래층으로 안 가 보셔도 됩니까?”

    “장 선배가 가 있어요.”

    깡기자는 은근슬쩍 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조사했던 자료가 오늘 SNS 폭로 글과 미튜브 폭로 영상으로 떴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안배해서 일어난 일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깡기자의 은근한 눈빛을 모른 척하고 저승사자에 관해 물었다.

    “저승사자는 어떨 것 같습니까?”

    “예고편만 봐도 감이 오던데요? 이번에도 대박 나겠던데요?”

    “고맙습니다.”

    “진짜예요. 이렇게 된 거 한국 드라마가 이 정도라고 펑황에 제대로 알려 줬으면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 * *

    오후 6시, 드디어 저승사자가 유플릭스로 공개됐다.

    얼떨결에 저승사자를 돕게 된 문지성은 그녀와 함께 악인을 찾아야만 했다.

    저승사자의 이름은 ‘제신’.

    제신은 악인이 세상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저승에서 쫓겨날 때 받아 온 족자 하나뿐.

    족자에는 총 일곱 명의 악인을 나타내는 저승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걸로 어떻게 악인을 찾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염제께서 안배하신 일이다. 내가 악인을 찾을 수 없는데 이곳으로 나를 보내셨을 리가 없다.”

    “그럼, 찾으면 불러 주세요. 저는 면접이 있어서.”

    “그래. 가자.”

    “저 혼자 갈 건데요? 사자님은 여기 계세요. 어디를 가시려고요?”

    “나도 가 보자꾸나.”

    “미쳤어요? 면접 보러 간다니까요.”

    “너는 네 할 일을 하라.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악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고 싶으면 동네를 돌아보시든가요.”

    “나는 아직 이곳이 익숙지 않다. 그러니 당분간은 너를 쫓아다녀야겠구나.”

    “하. 미치겠네.”

    제신과 실랑이를 벌이던 문지성은 결국 포기하고 그녀를 달고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오늘 면접을 보는 곳은 다름 아닌 국제상사.

    국제상사는 튼실한 중견기업으로 문지성이 1차 면접에서 통과한 회사 중 가장 좋은 곳이었다.

    국제상사의 건물 앞에 선 문지성은 떨리는 마음으로 제신을 돌아봤다.

    자신의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제신은 의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족자를 들고 서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알겠다. 다녀오너라. 이곳은 번화한 곳이니 내가 찾는 악인이 근처에 있는지 탐색해 보겠다.”

    “그러시든가요.”

    문지성은 족자를 들고 서 있는 제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시간 뒤, 문지성이 어깨가 축 처진 채 건물에서 나왔다.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치던 그의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왔느냐. 늦었구나.”

    문지성은 제신의 말에 대꾸할 기운이 없었다.

    그때 그녀가 다가와 문지성의 어깨를 털었다.

    “뭐 하는 겁니까? 치워요.”

    “명귀(冥鬼)가 달라붙었구나.”

    “그게 뭔데요?”

    “인간의 절망을 갉아먹고 사는 귀다.”

    “드디어 악귀를 찾으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제가 볼 면접이 일곱 개는 넘게 남았는데 아마 그때마다 악귀를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낙담한 문지성은 아무렇게나 떠들어 댔다.

    “이런 것들은 악귀에 속하지 않는다. 의지 없이 떠다니는 잡귀일 뿐.”

    제신이 문지성의 어깨를 툭툭 털자 갑자기 콱 막혔던 가슴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돌아가자꾸나. 내일은 다른 곳에 가 보자꾸나.”

    문지성은 앞서 걷는 제신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이 가요. 사자님.”

    그때 앞서 걷고 있던 제신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와 부딪힌 문지성이 깜짝 놀라 물었다.

    “사자님?”

    문지성은 제신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온 고급 외제 승용차를 남루한 차림의 중년 여인이 막아서고 있었다.

    여인의 발밑에는 피켓이 떨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청춘의 죽음을 짓밟고 선 국제상사는 반성하라.]

    피켓을 본 문지성은 그제야 차를 막고 선 중년 여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국제상사의 기흥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최근에 혈액암이 걸려 죽은 사건 때문인 것 같았다.

    여자가 차로 달려들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강제로 차에서 떼어 냈다.

    “우리 딸 살려 내. 이 악마 같은 놈들아. 살려내라고!”

    여인의 처절한 외침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여자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개처럼 끌려갔다.

    문지성은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여자를 보며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때 차창이 열리며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점잖아 보이는 30대 남성은 문지성도 아는 얼굴이었다.

    국제상사 사장의 아들이자 이사인 곽도현.

    오늘 면접에서 붙었다면 최종 면접에서 볼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곽도현은 여자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감흥 없다는 듯이 창을 닫았다.

    문지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여인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하지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제신이 문지성의 옆으로 걸어왔다.

    “이제야 악귀를 찾았구나.”

    문지성은 놀라서 제신을 쳐다봤다.

    “무슨 소립니까?”

    “족자의 그림이 달라졌어.”

    “예?”

    제신이 들고 있던 족자를 펼쳐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족자 안의 저승화 하나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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