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9화 (240/261)
  • #239화. 스타탄생 vs 펑황

    고중기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아침 일찍부터 피시방을 찾았다.

    집에서는 아직 그가 펑황에서 쫓겨난 일을 모른다.

    고중기는 마음이 급했다.

    일 년 계약이 끝날 때까지 월급은 꼬박꼬박 나올 테지만 그 전에 다른 직장을 찾아야 했다.

    지원서를 낸 곳에서 연락이 없나 이메일을 확인하던 고중기의 눈이 커졌다.

    아직 살아 있는 펑황의 이메일 계정으로 이상한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이게 뭐지?”

    고중기가 의문의 메일을 클릭하고 있는 그때, 밤을 꼴딱 새우고 이제야 자리에 누우려던 신주원은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야 잠이 들려고 하는데 누구야? 알람 소리를 좀 죽여 놓든지 해야지.”

    신주원은 천재용처럼 연예계 소식을 올리는 미튜버로 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신문사를 차릴까 고민하며 바쁘게 알아보는 중이었다.

    메일 제목을 확인한 신주원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가 이런 대박 소스를 보낸 거지?”

    신주원은 메일의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LOK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사급 배우들이 뭉쳐서 그들이 보유한 주식을 펑황에 양도하고 펑황의 미국 주식으로 되돌려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내부인이 아닌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일급기밀이었다.

    신주원은 펑황이 LOK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메일에는 그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신주원은 곧바로 인터넷 창을 켜고 LOK의 기사를 검색했다.

    쏟아지는 연예 기사 끝자락에 LOK 대표가 바뀌었다는 기사가 보였다.

    “한지욱이 대표에서 물러났어.”

    신주원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메일에 거론된 배우들은 LOK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한 개국 공신들이었다.

    특히 제일 앞에 이름이 나온 김선우.

    김선우를 한류스타로 띄우고 LOK 이사라는 직함까지 달아 준 게 바로 한지욱의 아버지인 한성제다.

    “LOK 신규 사장은 처음 들어 보는 인물인데. 이 사람이 펑황에서 보낸 사람인가?”

    신주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메일의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딱 봐도 저 판에 못 낀 LOK 임원이 보낸 메일이구나. 나보고 대신 까 달라는 거겠지. 이걸 까? 말아? 잘못하면 일이 너무 커지겠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김선우가 엮여서 말이지.”

    신주원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곧 눈빛을 번뜩인 신주원이 웃으며 말했다.

    “한류스타 김선우가 엮인 사건인데 당연히 터트려야지. 내 이름을 쓸 수 없으니 비싼 값에 소스만 팔아야겠구나. 하하하.”

    * * *

    저승사자 런칭일이 다가오자 유플릭스는 대형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한국 유플릭스 지사의 건물 외벽에 거대 스크린을 설치해 종일 저승사자의 예고편을 틀었다.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저승사자의 예고편이 떴다.

    - 타임스퀘어에 저승사자 예고편 떴어.

    - 유플릭스 미쳤다. 한국 미국 할 거 없이 역대급으로 홍보하네.

    - 아침부터 SNS에 저승사자 짤만 올라온다. ㅋㅋㅋㅋ

    - 이렇게 미친 듯이 홍보하는 거 보니까 저승사자도 잘 뽑혔나 봐.

    - 윤서혁 인터뷰 보니까 기대해 봐도 되겠던데?

    - 자고 일어나면 17일이었으면 좋겠다. ㅠㅠㅠㅠ

    - 근데 이거 약간 뽕 차지 않음? 서이렌이 문 씨어터로 터지고 바로 다음 작품인데 그게 바로 한국 토속신앙이 제대로 나오는 저승사자임.

    └타이밍 대박이지.

    └ㅇㄱㄹㅇ

    └스본 작두 탄 거냐고. ㅋㅋㅋ

    - 외국 팬들도 이 이야기하더라. 저승사자가 대체 뭐냐고?

    - 한국 팬들이 저승사자가 뭔지? 서이렌이 극 중에서 입고 다니는 한복이랑 설정 집 번역해서 퍼 나르고 있잖아.

    - 이런 게 국뽕인가? ㅋㅋㅋㅋ

    - 근데 저승사자는 원래 25일 공개가 아니었나? 왜 날짜를 당겼지?

    - 소문에는 유플릭스가 웨이티비 견제하려고 런칭 날짜를 바꿨다는데?

    - 웨이비티를 왜 견제해? 유플릭스랑 비교가 안 될 텐데.

    - 웨비이티 첫 한국 독점작이 17일에 오픈하잖아.

    - 김선우 나오는 쉐도우 말하는 건가?

    - 예고편 보니까 돈은 오지게 든 거 같더라. 초반 5회는 중국 상해 로케래.

    └중국. ㅋㅋㅋ 너무 한 거 아니냐?

    └대놓고 한국 드라마로 중국 홍보를 하겠다는 건가?

    - 김선우도 요즘 하는 작품마다 영…….

    - 김선우 전작이 뭐였지?

    └대탈출

    └아…….

    └ㅋㅋㅋㅋ

    * * *

    드디어 저승사자의 런칭일이 밝아 왔다.

    스타탄생은 제작 발표회 때문에 아침부터 바빴다.

    강진석도 떨리는지 아침부터 말이 많았다.

    “유플릭스가 제대로 웨이티비랑 붙을 모양이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작 발표회를 같은 곳에서 하잖아. 유플릭스에서 저승사자 런칭일도 바꾸고 제작 발표회장도 일부러 웨이비티 제작 발표회장이랑 같은 곳으로 골랐다던데? 넌 몰랐어?”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유플릭스 최동석 대표를 찾아가 부탁한 거니까.

    나는 오늘 제대로 펑황에 선전 포고를 할 생각이다.

    “그래서 떨리세요?”

    “떨리냐고? 내가?”

    강진석이 나를 보며 웃었다.

    “아니 전혀. 하나도 안 떨려. 내가 저승사자 편집본을 미리 봤잖아. 윤서혁 감독이 어깨에 힘을 줄 만해.”

    “그럼 긴장하지 마세요. 웨이비티의 쉐도우랑 같은 날 드라마를 공개하긴 하지만 우리 저승사자와 그쪽 드라마는 비교도 안 될 겁니다.”

    “그렇겠지?”

    “저를 믿으세요. 제가 틀린 말 하는 걸 보신 적이 있으세요?”

    “하하. 없지. 스타탄생 대표가 된 이후로는 네 촉이 날아다니잖아. 원 대표가 확신을 가진 작품은 죄다 성공했지.”

    나는 삼 년간의 미래를 알고 스타탄생을 설립했다.

    그래서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내가 알던 미래는 이제 다 끝이 났지만 나는 확신한다.

    오늘의 승리자는 저승사자가 될 거다.

    * * *

    서울호텔은 몰려든 취재진과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웨이티비의 쉐도우 제작 발표회에 배정받은 기자들은 위층에서 열리는 저승사자 제작 발표회로 가는 기자들을 부러워했다.

    “선배들도 너무하시네. 자기들만 서이렌 보러 가고 우리는 이게 뭐냐?”

    “경력이 안 되는 우리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냐. 그런데 저승사자 쪽은 기자들이 훨씬 많은 거 같네.”

    “거기야 외국에서 온 취재진도 많으니까.”

    “서이렌이 월드 스타라 이거지.”

    기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원래대로라면 이 홀이 가득 찰 정도로 기자들이 꽉 차 있어야 하는데 딱 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왜 이렇게 휑해?”

    “다들 저승사자 보러 갔겠지.”

    “웨이티비는 하필이면 저승사자랑 같이 제작 발표회를 해서 이렇게 비교를 당하는 걸까?”

    “그래도 웨이티비 가입자 수가 한국 유플릭스 가입자 수를 거의 따라잡았을걸?”

    “그거야 990원 프로모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나도 가입했다고.”

    기자는 그의 핸드폰에 깔린 웨이티비 앱을 보여 줬다.

    “나도 깔았는데. 990원이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어?”

    “오늘 제작 발표회에 오는 기자들은 다 설치했을걸. 제작 발표회 중간에 웨이티비 앱으로 인증 이벤트를 한다잖아.”

    “웨이티비가 머리를 썼네. 하하하.”

    두 사람이 웃고 떠들고 있는데 근처에 있는 기자들이 어수선하게 떠들었다.

    “백도어? 그게 뭐야?”

    “김 기자님. 지금 기사가 났는데요. 이것 좀 보세요.”

    [‘핸드폰에 설치된 앱이 내 정보를 빼 간다?’ 커지는 백도어 논란]

    [중국산 어플의 백도어 의혹, 사실로 확인? 국회 보안 컨퍼런스 현장]

    [990원의 반란. ‘웨이티비’ 앱에서도 백도어 발견]

    기사를 본 기자들은 식겁했다.

    방금 웨이티비를 깔았다고 자랑하던 두 기자의 얼굴이 굳었다.

    * * *

    서이렌을 포함한 저승사자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제작 발표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실시간으로 제작 발표회를 지켜보는 팬들은 깜짝 놀랐다.

    - 웬일이래? 스님도 제작 발표회에 나왔네.

    - 원 대표님은 원래 이런 데 나오는 거 싫어하시지 않나?

    - 대표님 오늘 엄청 멋있네.

    - 서이렌은 오늘 카리스마 끝내준다. 누가 저승사자 아니랄까 봐. ㅋㅋㅋ- 윤서혁은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저승사자 편집하느라 힘들었나 보네. ㅋㅋㅋㅋ나는 윤서혁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평소에는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는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웨이티비의 백도어 논란이 기사로 뜬 것을 확인했다.

    고중기와 신주원이 타이밍을 안다면 아마 오늘 제작 발표회를 하는 도중에 뭔가를 터트릴 거다.

    곧이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의 거의 서이렌을 향한 것이었다.

    “서이렌 씨. 문 씨어터를 찍고 돌아오자마자 저승사자의 대본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쉬지 않고 곧바로 저승사자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승사자는 영화 시나리오였습니다.”

    서이렌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웃으며 답했다.

    “원세강 대표님께서 그걸 드라마로 각색해 보자고 하셨고 서주희 작가님께서 드라마 대본으로 탈바꿈해 주셨어요.”

    “원세강 대표님 때문에 드라마로 바뀐 거군요.”

    “맞습니다. 저는 저승사자라는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드라마로 바뀐 건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회를 놓치기 싫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미국에서 온 기자가 손을 들었다.

    “저승사자는 한국의 토속신앙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미국인인 저는 조금 생소한데요. 이 작품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거라고 보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윤서혁이 마이크를 내게 넘겼다.

    “대표님이 대신 답해 주시죠.”

    “그럴까요?”

    나는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한 기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유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언어와 국가 상관없이 콘텐츠로 승부를 볼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저승사자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가장 한국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답변이네요. 인상적입니다.”

    외국인 기자는 내 말에 수긍하는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사방에 깔린 한국인 기자들은 내 질문이 흡족한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오늘 함께 런칭하는 웨이티비의 쉐도우라는 작품을 아십니까?”

    이번에도 내가 마이크를 들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방금 웨이티비 앱의 백도어 논란이 기사로 떠서 이슈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작 발표회장이 시끄러워졌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제작 발표회가 시작되기 십 분 전에 뜬 기사입니다. 국회에서 열린 보안 컨퍼런스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니 사실인 것 같습니다.”

    웨이티비 앱을 깐 기자들이 많은지 그들은 놀라서 노트북을 내려놓고 그들의 핸드폰에서 앱을 삭제하기 바빴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답했다.

    “중국산 앱과 가전제품에 백도어가 깔려 있어 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회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다면 사실이겠죠. 하지만 그건 플랫폼의 문제지 드라마의 퀄리티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질문을 한 기자는 앉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웨이티비에서 제작한 쉐도우의 예고편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중국산 PPL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질문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당황하는데 나는 차분한 표정을 한 채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우리는 저승사자 이야기를 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맞습니까? 기자님.”

    “이해합니다. 저승사자 이야기가 아니니 답변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뇨. 답변하겠습니다.”

    “예?”

    “다만 저승사자의 제작자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의 제작사로서 답변하는 겁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하자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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