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6화 (237/261)
  • #236화. 깜짝 듀엣 무대

    무대 위 사각의 스크린에 서이렌의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의 그녀의 활동이 연대기처럼 편집된 영상이었다.

    팬들은 서이렌의 히스토리 영상을 보며 흥분했다.

    문 씨어터의 루나를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나고 서울체육관에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서이렌이 어떻게 등장할지? 팬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윽고 무대 위에 핀 조명이 떨어졌다.

    무대 한가운데를 비추는 조명과 신비로운 음악.

    “서이렌이다!!”

    “이렌!!!”

    “언니!!!”

    무대 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팬들은 그제야 위로 시선을 옮겼다.

    서이렌이 그네를 타고 마치 선녀가 강림하듯 무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마이팬의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 무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온라인 티켓을 팔았지만 뒤늦게 안 팬들이 들어와서 접속자는 시시각각 늘고 있었다.

    - 이게 팬 미팅이라고???? 퀄리티 무슨 일이야?

    - 무대에 돈 들인 것 좀 봐라. 360도 회전 무대. ㅅㅂ- 아이돌 콘서트 뺨치네. ㅋㅋㅋ- 그네에 앉아서 노래 부르는 것 좀 봐. 나 운다. ㅠㅠㅠ- 서이렌은 여신임. ㅠㅠ- 오늘 뭔가 달라 보인다.

    └서이렌 오늘 아이돌 화장했음.

    └존나 예뻐.

    └화려한 화장도 찰떡인 우리 언니. ㅋㅋㅋ

    - MC가 윤서혁이야. ㅋㅋㅋ

    - 윤 감독 미친. ㅋㅋㅋㅋㅋ

    - 윤 감독의 깨알 같은 저승사자 홍보 타임. 홍보하려고 MC 하는 거래. 미치겠다.

    - 윤서혁이랑 서이렌 말하는 거 너무 웃긴다.

    - MT 때부터 다져 온 만담 커플. ㅋㅋㅋ

    - 이따 서이렌이랑 특별 게스트가 듀엣 부른다는데???

    - 굿바이 부른데.

    - 이거 스님이 스메에서 부른 노래 아님??

    └기사 떴어. 이락이랑 부를 거래.

    └스님은 안 나오려나???

    - 스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네 MT 봤냐?

    └마피아 게임. ㅋㅋㅋㅋㅋ

    └그거 보고 웃다가 죽을 뻔했어.

    └미친 또 생각나잖아. ㅅㅂ

    - 원세강이 배우가 안 된 이유 이해 완.

    └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ㅇㄱㄹㅇ

    └배우를 할 수 없는 연기. ㅋㅋㅋ

    * * *

    윤서혁의 깔끔한 진행으로 팬 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서이렌은 윤서혁과 함께 지금까지 참여했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의 명장면을 뽑아서 팬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재연하는 시간도 가졌다.

    자신의 번호가 뽑힌 팬들은 무대 위로 올라왔고 그 안에는 무려 외국인 팬도 있었다.

    팬들과 함께하는 작품 이야기가 끝나자 서이렌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 무대를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는 것이다.

    나는 무대 아래에서 모니터로 강진석과 함께 팬 미팅을 지켜보고 있었다.

    게스트로 온 가수의 축하 무대가 끝나면 바로 다음이 서이렌과 이락의 듀엣 무대다.

    “세강아. 너 오늘 왜 이렇게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거냐?”

    “빈 팀장님이 이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제대로 차려입자고 하셔서요. 너무 튀나요?”

    “아냐. 잘 어울려. 잘했어.”

    강진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의상을 갈아입은 서이렌이 나타났다.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걸어오는 서이렌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이렌 씨. 이락 배우님은 같이 안 왔어요?”

    내가 묻자 서이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요?”

    “락이가 아픈 거 같아요.”

    “예?”

    “아까 대기실에서 먹은 도시락이 잘못됐나 봐요. 방금까지 토하다가 병원에 갔어요.”

    “정말요? 그럼, 다음 무대는 어쩌죠?”

    나는 너무 놀라서 무대를 총괄하는 감독에게 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서이렌과 함께 온 빈선예가 나를 붙잡았다.

    “어쩌긴요. 카메라 동선이랑 조명 세팅 다 맞춰 놨는데 누군가는 무대에 올라가야죠.”

    “…….”

    빈선예의 말을 못 알아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방금 무대 총괄하는 감독님께 들었어요. 대타가 필요하대요.”

    “빈 팀장님. 누가 대신 무대에 올라가는데요?”

    “굿바이를 잘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올라가겠죠.”

    빈선예는 이렇게 말하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강진석은 빈선예의 말을 알아듣고 소리쳤다.

    “그러네. 세강아. 네가 대신 올라가라.”

    “제가요?”

    “너 스타메이커에서 이 노래를 불렀잖아. 그때도 여기였어. 서울체육관.”

    “그건 그렇긴 하지만…….”

    “옷도 잘 차려입었네. 그냥 네가 올라가. 어쩔 수 없잖아.”

    마침 축하 가수의 무대가 끝나고 조명이 다시 어두워졌다.

    무대는 지금 굿바이 무대를 위해 바뀌고 있을 터였다.

    그때 서이렌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대표님. 나와 함께 노래를 불러 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돌리고 서이렌을 바라봤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데 창피하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나는 서이렌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렌 씨. 제가 모실게요. 갑시다.”

    * * *

    - 다음이 서이렌이랑 이락의 듀엣 무대인가?

    - 그러네. 무대 위에 마이크가 두 개 있네.

    - 이락 노래는 잘하나?

    └연말 시상식 못 봤음?

    └래퍼 이락 말하는 거임???

    └ㅋㅋㅋㅋ

    - 그건 랩이었고 노래는 잘할지도??

    └예능에서 가끔 노래도 불렀는데 노래도 재능이 없어. ㅋㅋㅋ? 대신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함. ㅋㅋㅋ- 아오. 이거 전 세계의 서이렌이 팬들이 다 보는 건데 쪽팔림은 내 몫인가?

    무대 위에는 두 개의 스탠딩 마이크가 서 있다.

    무대 아래에는 나와 서이렌이 두 손을 꼭 잡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렌 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이락 배우님은 갑자기 왜 탈이 난 건지.”

    “그냥. 사고죠. 대표님이 사고를 막아 줘요. 스타메이커 때처럼 하면 됩니다. 그냥 노래 한 곡이잖아요.”

    서이렌이 떨고 있는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때 머리 위의 무대가 오픈되고 관객들의 거센 함성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서이렌과 여전히 손을 잡은 채 무대 위로 올라갔다.

    - 미친. 대표님인데???

    - 원세강 대표님 맞지?

    - 와 미쳤다. 대표님 더 잘생겨지심. ㅅㅂㅅㅂㅅㅂ

    - 서이렌 손잡고 에스코트해서 무대에 올라오시네.

    - 역시 굿바이는 원 대표님이지. ㅋㅋㅋ

    - 서이렌이랑 원세강이랑 의상도 맞춘 거 같은데???

    - 이락이 듀엣 한다는 기사는 오보였나?

    - 대표님 노래 부르신다. ㅠㅠㅠㅠㅠ

    - 해외 팬들 놀라는 거 봐라. ㅋㅋㅋ 다들 저 사람이 누구냐고 그러는데. ㅋㅋㅋㅋ- 서이렌 동료니까 배우냐고 채팅창에서 물어보고 난리도 아니다. 미친. ㅋㅋ- K 대표 맛 좀 봐라. ㅋㅋㅋ

    * * *

    굿바이는 생이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주인공이 극 중에서 부르던 노래다.

    스타메이커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굿바이를 부르고 있다.

    [일 년에 열두 장의 편지를 써.

    매번 같은 이야기만 쓰여 있지만

    너는 그걸 보물처럼 간직해.

    너와 내가 닮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는데

    어느새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듯해.

    슬픈 얼굴 하지 말아.

    무심하게 다시 만날 것처럼 인사해 줘.

    고마워. 잘 지내.

    이루지 못한 일들이 늘어 갈수록

    너에게 터놓지 못하고 거짓으로 편지를 써.

    매번 같은 이야기만 쓰여 있지만

    너는 그걸 보물처럼 간직해.

    슬픈 얼굴 하지 말아.

    고마워. 잘 지내.

    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돌아봐.

    다시 만날 거야.

    안녕. 잘 지내. 고마웠어.]

    굿바이의 가사는 헤어짐을 의미하지만 나와 서이렌은 헤어질 수 없다.

    우리는 운명으로 엮인 사이니까.

    노래가 끝나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콘서트장에는 서이렌을 연호하는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고 간간이 내 이름도 들렸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때 서이렌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놀라서 서이렌을 쳐다봤다.

    일만 명의 관객 앞에서 서이렌이 보란 듯이 내 손을 잡았다.

    아까 내가 무대에 오르며 그녀를 에스코트한 것처럼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에스코트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손을 마주 잡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무대를 내려왔다.

    * * *

    -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 외퀴들 난리 났네. 대표님은 SNS 안 하시냐고 물어본다. ㅋㅋㅋ- 아직도 대표라는 걸 믿지 못하겠다며. ㅋㅋㅋ- 그러고 보면 서이렌이랑 대표님도 잘 어울리지 않음?

    └와꾸 합은 괜찮은데 나이가…….

    - 두 사람 14살 차이임.

    - 원세강이 그렇게 나이가 많았어??? 30대 초반 아니었어???

    - 스님은 스님이지. 서이렌과 엮지 마라.

    └이 말이 맞다.

    * * *

    무대를 내려온 나는 대기실로 가서 먼저 목을 축였다.

    대기실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확인해 보니 서이렌은 팬들을 위해 연습했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겨우 한 곡 부른 건데도 진땀이 나네.”

    나는 들고 있던 생수를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병원에 간 이락이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 했다.

    나는 대기실의 테이블 위에 놓고 갔던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부재중 전화. 23건.

    내가 팬 미팅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걸려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내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놀라서 전화를 한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벨 소리가 들렸다.

    깡기자님이시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깡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세강 대표님.]

    나는 깡기자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왜 그러세요? 깡기자님? 목소리가 왜 그래요?”

    [한성제 대표님이……. 대표님이…….]

    “LOK 한성제 대표님이요?”

    그러고 보니 오늘 LOK 주주총회를 하는 날이다.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진정하고 천천히 물었다.

    “한성제 대표님이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한 대표님이 쓰러지셨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성제 대표님이 쓰러지시다니요?”

    [오늘 LOK 주주총회를 했는데 한지욱 대표가 사임됐대요.]

    “그게 정말인가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해서 한지욱에게 미리 언질을 줬건만 역시 이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한성제 대표님은 주주총회가 다 끝나고 LOK로 돌아와서 쓰러지신 거라고 해요. 원 대표님은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고마워요. 깡기자님.”

    [아니에요. 저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깡기자님. 혹시 LOK의 신임 대표가 누군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에요. 주찬영이라는데 혹시 아세요?]

    “주찬영이라고요?”

    [예. 대표님은 아세요?]

    당연히 알고 있다.

    주찬영은 내가 LOK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한성제의 최측근이었다.

    스타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아니었고 그는 LOK 경영지원팀을 이끄는 임원이었다.

    한지욱이 대표가 되면서 한성제의 인사들이 대폭 물갈이가 되면서 그도 퇴사했다고 들었다.

    아마 주찬영은 바지사장이고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 있을 거다.

    그가 지금 누구의 밑에서 일할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깡기자님. 한성제 대표님은 지금 어느 병원에 계시죠?”

    [서울병원이에요. 지금 기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대기실 문이 열리고 강진석이 뛰어 들어왔다.

    강진석의 놀란 표정을 보니 그도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세강아. 한성제 대표님이 쓰러지셨대.”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지금 병원에 가 보려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래. 가자. 여기 일은 조장훈 팀장한테 맡기면 돼.”

    나는 양복 재킷을 챙겨 들고 강진석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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