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5화 (236/261)
  • #235화. 공멸

    아티스틱에 출근한 김경록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켰다.

    그는 당연한 듯이 한국의 포털 페이지에 먼저 접속했다.

    포털에서 ‘서이렌’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니 기사가 주르륵 떴다.

    김경록은 최신 기사의 헤드라인과 기사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문 씨어터가 대박 난 후로는 딴지를 거는 기자가 없네.”

    기사를 확인하던 김경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김경록은 지난달부터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서이렌이 미국에 오면 현장직을 수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오늘처럼 아티스틱에 출근해 사무직으로 일한다.

    한국의 기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중, 마우스를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이건 또 뭐지?”

    김경록은 팬파라치에서 매주 싣는 이니셜 기사를 클릭했다.

    연예계에 떠도는 루머를 모아서 기사랍시고 내는 뻔한 기획이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이니셜 기사를 읽던 김경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톱스타 J 양, 월드 스타 서이렌의 절친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이니셜 기사는 서이렌과 같은 시기에 데뷔한 J 양이 안하무인이던 성격을 버리고, 서이렌의 절친이 되고 싶어 한다는 기사였다.

    “뭐야. 이렌 씨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식겁했네. 별것도 아닌 거로 이니셜 기사를 내고 있어. 일부러 이런 거지. 나 같은 사람이 클릭해서 보라고. 쯧쯧.”

    김경록은 혀를 차며 뒤로 가기를 누르려고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그때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글이 보였다.

    이니셜 기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글이었다.

    [한국의 대형기획사에서 퇴출당한 매니저가 중국 기업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유는?]

    김경록은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를 읽던 김경록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니셜 기사를 끝까지 정독한 김경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 나온 중국 기업은 최근에 한국에 진출한 펑황일 테고……. 대형기획사에서 퇴출당한 매니저는 누구지? 기사를 보면 배우 기획사인 거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김경록이 탄식했다.

    “그런데 여기 나온 사람은 이제 끝이네. 펑황 엔터가 한국에서 막무가내로 나가는 걸 다 이 사람 책임으로 돌려 깠네. 사실이든 아니든 난리가 나겠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팬파라치한테 된통 걸렸구먼. 기자랑 원수라도 진 건가?”

    김경록은 혀를 차며 페이지를 닫았다.

    * * *

    펑황 엔터에 출근한 고중기는 사무실을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살갑게 인사를 나누던 직원들이 그를 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고중기는 께름칙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겉옷을 벗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하려는데 누군가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예. 들어오세요.”

    고중기는 대충 말하고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고중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제 난 기사 중에 내가 챙겨 봐야 할 게 있으면 다 가지고 와요.”

    “…….”

    “내 말 안 들려요?”

    눈살을 찌푸린 고중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 펑황 엔터의 대표인 탕궈가 서 있었다.

    탕궈를 본 고중기의 눈이 커졌다.

    “……대표님?”

    탕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중기는 그가 째려보자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 앉으십시오. 탕 대표님.”

    고중기는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의자를 내어 줬다.

    탕궈는 고중기의 자리가 마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사양하지 않고 편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방금 챙겨 봐야 할 기사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나요?”

    “그건 대표님께 한 말이 아니고……. 강 비서가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 이사가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그런데 아침부터 왜 저를 찾아오셨나요?”

    “고 이사가 회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찾아와 봤습니다.”

    “예?”

    “기사에 그렇게 났던데요? 자기가 다니던 회사와 대표를 온갖 곳에서 씹고 돌아다녔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그런데 그게 기사로 났다고요?”

    고중기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지? 내가 LOK에서 어떻게 잘린 건지 알게 된 건가? 기사는 또 뭐야?’

    태연한 얼굴로 돌아온 고중기가 탕궈에게 설명했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LOK에 큰 지분이 있는 배우들도 이제 거의 다 우리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다음 주에 열리는 주주총회 때 한지욱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단 말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니셜 기사 때문에 애꿎은 펑황 엔터만 구설에 오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니셜 기사요?”

    고중기는 탕궈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LOK도 중요하죠. 하지만 지금은 웨이티비가 제대로 한국에 정착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괜히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아서 웨이티비가 한국 기업이 아닌 걸 만천하에 소문낼 필요는 없죠.”

    “저는 대표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을 테니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예? 뭐라고요?”

    고중기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제가 해고된 겁니까?”

    “오늘 안에 이 방의 짐을 빼세요.”

    “이게 말이 됩니까?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막 해고했을지 몰라도 한국은 아닙니다. 노동법이 괜히 있는 줄 아십니까?”

    “어차피 고 이사와는 단 일 년짜리 계약이었습니다.”

    “일 년이라고 해도 아직 반년이 넘게 남았습니다. 이건 불법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예. 반년이나 남았으니 반년 동안은 펑황 엔터 소속이겠죠.”

    “뭐라고요?”

    “계약 기간 동안 월급은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꺼지라는 겁니다. 알아들으셨어요?”

    고중기는 탕궈의 마지막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당장 해고는 아니었지만,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은 절대 해 주지 않을 거라는 통보였다.

    탕궈는 고중기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사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고중기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니셜…… 기사.”

    고중기는 시뻘게진 눈을 한 채 노트북으로 돌진했다.

    * * *

    사람들은 최근 인터넷을 달구는 추잡한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 이니셜 기사에 나온 사람이 LOK 매니저였다면서?

    - 이름 다 까졌어. 고중기라던데. 한때 김선우 치프 매니저였대.

    - 펑황은 꼬리 자르기하고 있더라.

    - 이미 업계에 소문 다 퍼짐. 고중기 걔가 펑황에 잘 보이려면 나한테 잘하라고 뒷돈도 요구했다는데?

    - 팬파라치에서 계속 이니셜 기사 쏟아 내고 있는 중.

    └그거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던 거 아니었나?

    └요즘 매일 나옴. ㅋㅋㅋ

    └팬파리치도 그 사람한테 돈 떼어먹혔나?

    └꿀잼각. ㅋㅋㅋ

    - 이번 일로 웨이티비가 중국에서 만든 거라는 걸 안 사람이 엄청 많더라?

    - 웨이티비는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님? 중국이 한국 드라마 맘대로 표절한 드라마도 올라와 있더라.

    - 표절당한 한국 드라마랑 표절한 중국 드라마랑 같이 추천 영상으로 뜨는 게 말이 되냐고. 암튼 중국 놈들은 양심이 없어요.

    - 나 웨이비티 990원 구독자인데 해지할까?

    └해지해. 해지해.

    └내 피 같은 돈이 중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이가 갈려서 난 해지했어.

    └나도 엊그제 해지했다.

    급기야 며칠 후에는 팬파라치에 난입해서 신주원의 머리채를 잡은 고중기의 영상까지 떴다.

    팬파라치에서 인터뷰 중인 아이돌 가수를 찍으려고 반대편 건물에 들어간 홈마가 찍은 영상이었다.

    홈마가 공개한 영상은 고화질에 편집기법까지 화려했다.

    - 한 편의 영화네. ㅋㅋㅋㅋ

    - 그 홈마 방송국에서 스카우트해야 하는 거 아님? 졸라 잘 찍어. ㅋㅋㅋㅋ- 대체 보정은 왜 해 준 거야. 그게 제일 웃겨. ㅋㅋㅋ- 홈마가 SNS에 글 올렸는데 최애 찍은 영상보다 난투극 영상 조회 수가 10배는 더 나왔다며. 우리 최애 영상도 봐 달래.

    - 미치겠다. 나라도 가서 봐줘야지. ㅋㅋㅋㅋ

    * * *

    역사적인 서이렌의 첫 번째 팬 미팅, 마이팬의 공연 날이 밝아 왔다.

    대기실을 둘러보고 나온 나는 오늘 찬조 출연을 하기로 한 이락과 마주쳤다.

    이락은 오늘 무대에 올라가 서이렌과 듀엣을 부르기로 했다.

    노래는 287일의 주제곡이자 내가 스타메이커에서 불렀던 ‘Goodbye’.

    “이락 배우님. 혹시 모바일 앱 개발도 해 봤어요?”

    “모바일 앱이요? 안드요? 아니면 아이폰이요?”

    “우선 안드로이드만이라면요?”

    “취미 삼아서 개발해 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왜요?”

    “개발이 아니라 이미 있는 어플을 디컴파일해서 소스를 분석하려고 하는데요. 할 수 있겠어요?”

    “대표님이 더 잘하시는 거 아닌가요?”

    “이락 배우가 더 잘 알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웨이티비 앱에 백도어가 깔려 있는 거 같아서요. 한번 확인해 보려고요.”

    “아.”

    이락은 요즘 난리가 난 고중기와 신주원의 싸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펑황 엔터가 수면에 함께 끌어 올려져 사람들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한번 해 볼게요.”

    “고마워요. 나도 같이 찾아보긴 할 텐데. 아마 이락 배우가 먼저 찾을 겁니다.”

    “에이.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이락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요. 난 강 이사님을 보러 갈게요.”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로 빈선예와 우연미가 들어왔다.

    “락아. 준비 다 했어?”

    “저야 그냥 올라가서 마이크만 잡으면 되는데요. 준비할 것도 없어요.”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이거 우리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인이 보는 거야.”

    “아……. 그렇구나.”

    자신만만해하던 이락의 눈이 커졌다.

    “그 생각은 못 했나 보네.”

    “아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락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빈선예와 우연미는 그런 이락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락아. 그냥 무대에 올라가지 말자.”

    “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머리를 쥐어뜯던 이락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올라가지 말라고요? 그럼, 무대는 어떻게 해요?”

    이락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빈선예와 우연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너 대신에 대표님을 무대에 올라가게 하자.”

    “뭐라고요? 미쳤어요?”

    “이번 기회에 대표님이랑 이렌 씨랑 제대로 엮어 주자고. 어때?”

    이락은 그제야 빈선예와 우연미의 계획을 눈치채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대박. 이거 우 작가님이 생각하신 거죠? 맞죠?”

    “어때? 너도 동참하는 거지?”

    “그럼요. 좋은 생각 같아요. 그런데 이렌 님도 이 일을 아시나요?”

    “당연하지. 왜 선곡을 Goodbye로 했다고 생각하니?”

    “아하. 그렇구나. 어쩐지 노래 연습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이렌 님도 내 노래 실력을 아신다고 생각했죠. 하하하. 김칫국을 마신 거였네요.”

    “시끄럽다. 락아.”

    “예. 입 닫을게요.”

    * * *

    이제 무대가 시작되기 30분 전이다.

    콘서트장 안에는 일만 명의 관객이 이미 들어와 있고,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콘서트장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도 많았다.

    내가 대기실에 들어서자 빈선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왜 그래요? 빈 팀장님?”

    “대표님. 이 옷으로 갈아입어요.”

    “예?”

    나는 빈선예가 건네주는 옷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수트를 왜 입으라는 걸까?

    “지금 옷이 편해요.”

    나는 지금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무늬의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다.

    “이따 무대 끝나고 스태프들이랑 같이 사진 찍는대요. 이렌 씨 옆에 대표님이 서야 하는데 이러고 선다고요?”

    “어차피 난 스태프잖아요?”

    “빨리 이걸로 갈아입어요.”

    “하지만 난 그냥 대표니까 이 정도만 입어도 되지 않을까요?”

    “시끄러워요. 빨리 갈아입읍시다. 시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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