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4화 (235/261)

#234화. 내분

전화를 끊은 한지욱이 씩씩거리며 분을 삼켰다.

“원세강. 이 새끼는 갑자기 왜 이래? 잘나가니까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어디서 충고질이야?”

한지욱은 열이 받는지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비서를 불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비서가 얼음물을 가지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비서는 얼음물을 들이켜는 한지욱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오늘은 또 왜 저래?’

한지욱은 그제야 속이 가라앉는지 빈 컵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지고 나가요.”

“예. 대표님.”

비서가 나가려는데 갑자기 한지욱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박 비서. 이리 와 봐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LOK랑 TOP에 속한 배우 명단 좀 가져와요.”

“배우 명단을요?”

“이름 옆에 계약 기간, 가지고 있는 주식, 계약금 같은 것도 자세히 명시해 주고요.”

“…….”

“뭐 하고 서 있습니까? 빨리 나가서 명단이나 작성해 가지고 오세요.”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배우 명단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거 책상 위에 두고 나가 보세요.”

“30분 후에 홍보실과 회의가 있습니다. 대표님.”

“알고 있으니까 나가시라고요.”

“예. 대표님.”

비서를 내보내고 홀로 남은 한지욱은 LOK와 TOP의 배우 명단을 살폈다.

김선우, 강하나, 지수연 등의 인기 배우들은 모두 LOK 소속이었다.

TOP는 이자현이라는 간판스타가 나간 뒤, 주춤했기에 지금 내부에서는 LOK와 TOP를 아예 합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김선우의 재계약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계약 기간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한지욱이 웃었다.

‘김선우의 주식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네. 대체 원세강은 어디서 뭘 듣고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거지?’

비서가 가져온 자료에 적힌 김선우의 보유 주식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번 재계약 때, 김선우가 계약금과 별개로 계약서에 드러나지 않는 주식을 따로 챙겨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지욱은 코웃음을 쳤다.

명단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한지욱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잠깐만…….”

한지욱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빠졌다.

“요즘 LOK가 위험하다는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서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났는데. 혹시 원세강이 퍼트린 건가? 그래. 그럴 수 있어. 지금도 나를 흔들려고 전화를 한 거고 말이야.”

한지욱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스타탄생이 LOK를 먹으려고 하는 건가? 이 자식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LOK에서 쫓겨난 걸 이런 식으로 복수하겠다는 건가? 원세강. 사람 잘못 봤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것 같아?”

한지욱은 매서운 얼굴을 하고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 * *

강남 클럽의 프라이빗 룸에 두 사람이 모여 은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펑황 엔터의 고중기 이사는 눈앞에 있는 신주원의 차림새를 천천히 살폈다.

그동안 받은 뒷돈으로 쇼핑만 한 건지 신주원은 명품 정장에 명품 시계, 명품 구두를 신고 이 자리에 나타났다.

“신수가 훤해 보이시네요. 신 기자님.”

“고 이사님 덕분에 요즘 일이 잘 풀려서요.”

“그렇다면 제가 은인이라는 건데 은인 앞에서 너무 어깨에 힘을 주는 거 아닙니까?”

고중기의 말에 신주원의 눈빛이 바뀌었다.

신주원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뻔뻔하게 말했다.

“우리 고 이사님이 갑자기 왜 이러실까요? 지금 원하시는 대로 기사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로 본인이 받은 만큼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고중기의 목소리에서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순식간에 돌변한 고중기의 태도에 신주원은 어이가 없었다.

“고 이사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LOK 소속 배우들이 회사 운영에 불만을 품는다는 기사를 쓰기로 하셨잖습니까? 왜 기사가 안 나오는 거죠?”

“그것 때문에 오늘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런 거라면 전화로 하셨어도 됐는데요.”

“돈은 돈대로 받아 놓고 아주 느긋하시네요.”

“…….”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하세요. 그러라고 돈을 드린 거니까요.”

“고 이사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왜요? 듣기 싫은가요?”

“제가 고 이사님께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돈만 바라고 있나요? 저를 그렇게 보셨어요?”

“그럼, 어제 올라오기로 한 기사가 왜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거죠?”

“엊그제 LOK 한 대표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지욱이 전화를 했다고요?”

“LOK랑 배우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대체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연히 아니고 고 이사님 쪽이 아닌지 확인해 보시죠.”

“그래서 고소가 무서워서 돈만 받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

“그건 아니죠. 저도 타이밍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기자의 이름으로 기사를 쓰면 되잖아요. 그게 기자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 아닙니까?”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데스크에서 허락을 안 해 주더군요. 알고 보니 한지욱이 편집장한테도 전화를 했더군요.”

고중기는 하기로 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도 않고 뻔뻔하게 구는 신주원을 보며 화가 났다.

고중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퇴출당했던 고중기가 펑황의 개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 소식이 다 퍼졌다.

신주원은 팬파라치 회식에서 고중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고 그것이 고중기의 귀에 들어가서 그가 오늘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었다.

당황했던 신주원의 표정이 돌변하더니 간신배처럼 웃으며 말했다.

“고 이사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어야 고 이사님을 돕죠. 안 그렇습니까?”

“…….”

“제가 한잔 따라 올리죠. 제 잔을 받으세요.”

신주원은 자신이 따라 주는 술을 거부하지 않고 마시는 고중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주원은 예상외로 쉽게 넘어가는 고중기가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여겼다.

“이제 펑황 OTT 런칭이 코앞이지 않습니까? 제가 내일부터 대대적으로 홍보 기사를 써 드리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그 기사는 팬파라치 말고 다른 신문사에도 거금이 들어가서 역대급 홍보를 펼칠 예정이니까요.”

“고 이사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련히 잘하셨겠죠. 하하하.”

고중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수백만 원이 호가하는 양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 * *

[새로운 OTT 서비스 런칭, 웨이티비]

[웨이티비 런칭 기념. 특급 프로모션 진행 중, 구독권이 단돈 990원?]

[웨이티비 SBC, JTBK와 업무 협약 체결]

대중은 새롭게 등장한 OTT 서비스의 프로모션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런칭한 한 달 동안 가입만 해도 특전이 쏟아졌고 구독권도 단돈 990원이었다.

사람들은 웨이티비가 뭔지 자세히 몰랐지만, 서비스하는 한국 드라마가 많았기에 별생각 없이 가입했다.

- 웨이티비 저거 중국 거 아님?

- 중국 거 맞아. 펑황 꺼임.

- 어쩐지 웨이티비에 중국 드라마가 엄청 많더라.

- 990원이면 개꿀.

- 근데 웨이티비 어플 이상하지 않아? 중국어가 기본이고 한국어는 따로 설정해야 하고. 자막 퀄리티도 완전 구려.

- 조선족 써서 자막 만들었다고 소문 돌던데. 진짠가??

- 난 아무리 저렴해도 중국 어플은 못 쓰겠더라.

- 지들 나라에서나 서비스하면 됐지 왜 한국에 들어왔대? 한국이랑 중국이랑 인구수가 비교도 안 되는데?

- 한류 빨 타려는 거겠지.

- 중국이 만든 OTT 서비스에 한국 드라마가 있는 거 보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

- 지들은 한한령이라면서 자국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못 보게 해 놓고는 한국에서 OTT 서비스를 런칭하다니. 너무 속 보인다.

- 중국 묻은 건 안 봐요.

- 일반인들은 웨이티비가 중국 거라는 거 모르고 990원 혹해서 가입하더라.

- 기사가 쏟아져 나오니까.

- 대체 한국에 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 거지? 연예 신문 말고 일반 신문에서도 웨이티비 광고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던데?

- 나 김선우 팬인데. 대체 왜 웨이티비 드라마를 찍은 건지 모르겠다. ㅠㅠㅠㅠ? 내 배우도 그래. ㅠㅠㅠㅠ

└내 배우는 다음 독점작 예약임. ㅠㅠㅠ

- LOK랑 펑황이랑 합작 맺어서 LOK 소속 배우들의 차기작은 그냥 다 웨이티비 독점이라고 보면 됨.

- LOK 요즘 미친 거 같음. 신종 매국노인가?

* * *

고중기가 원했던 기사의 초고를 완성한 신주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담배를 들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한구석에 마련된 흡연실로 간 신주원은 담배를 태우며 핸드폰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기사가 났나 볼까?”

포털 홈의 메인에는 웨이티비 런칭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걸 본 신주원은 피식 웃었다.

“대단하네. 웨이비티 홍보 기사로 도배가 됐군. 이건 김선우 기사인데 알고 보면 웨이티비 독점작을 홍보하는 거고 말이야. 이야. 고중기가 판을 잘 짰네.”

신주원은 스크롤을 내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때 핸드폰을 만지던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신주원은 놀란 눈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연예가 레이더: 소속 배우들과 기 싸움을 하는 회사. 배우들은 지쳐 간다]

헤드라인을 보고 미간을 찡그린 신주원이 재빨리 기사를 클릭했다.

[젊은 나이에 유명 소속사의 대표가 된 H 씨. 소속 배우들을 살피기보다는 H 씨 본인이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H 씨의 그런 성격 때문에 소속 배우들은 이탈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데요…….]

신주원은 이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확인했다.

“스타뉴스 김진환 기자잖아. 얘가 왜 갑자기 이런 기사를 냈지? 이건 내가 쓰려고 하던 건데?”

순간 신주원의 눈빛이 번뜩였다.

신주원은 다급하게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기다려도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급해진 신주원은 전화를 끊고 톡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팬파라치 신주원입니다. 고중기 이사님 할 말이 있는데 언제 통화가 가능할까요?]

톡을 보내 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1’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주원은 펑황 엔터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거기 펑황 엔터인가요?”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는 팬파라치에서 일하는 기자인데요. 혹시 고중기 이사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핸드폰 번호 말고 사무실 번호요.”

[기자세요?]

“예. 그렇습니다.”

[혹시 오늘 고중기 이사님과 약속하신 김진환 기자님이신가요?]

“김진환 기자요?”

[예. 오늘 오후 4시에 이사님과 약속을 하셨던데 왜 전화를 하셨죠? 혹시 약속에 문제가 있나요?]

“아닙니다. 제가 다시 전화를 걸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신주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신주원은 다 타 버린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힘껏 밟았다.

“고중기 이거 웃기는 놈이네. 감히 나를 팽하고 김진환으로 갈아타?”

신주원의 눈빛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고중기에게 다시 전화해 봤지만,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아까 보낸 톡도 여전히 ‘1’이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신주원은 악마 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고중기. 나를 아예 차단한 거 같은데. 당신 실수한 거야. 기자를 적으로 두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내가 일깨워 주지.”

신주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흡연실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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