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1화 (232/261)

#231화. 깜짝 이벤트

- 뭐지? 깜짝 이벤트가 몬대???

- 언니 왜 사람을 홀리고 그래요. 그냥 말해 달라고요.

- 헐. 신작인가??

- 깜짝 선물이라고 했는데 신작이겠어?

- 혹시 가수 데뷔??

└ㅇ러ㅣ널닝러님;ㄴ

└진정해.

└이건가보다. 미쳤어.

└진짜로 가수 데뷔인 건가?

- 가수 데뷔할 거면 이름을 바꿔도 좋을 듯. 여신이나. 여신이나……. 여신 같은 걸로.

- 세이렌은 어때? ㅋㅋㅋㅋ

└이것도 좋다야. ㅋㅋ

서이렌은 가수 데뷔하는 거냐며 좋아하는 팬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부를 거기는 한데 가수 데뷔는 아니었다.

서이렌은 나중에 정식으로 기사가 뜰 때까지 기다리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결국 라방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팬 여러분 사실은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했어요.”

서이렌은 잠시 채팅창을 확인했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채팅창의 글에 물음표가 유독 많아 보였다.

마침 그녀의 개인 폰에 원세강으로부터 또 다른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이렌 씨. 그냥 말해도 돼요. 바로 기사 낼게요.]

원세강의 컨펌까지 받은 서이렌은 그제야 안심하고 팬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한국에 들어가면 팬 미팅을 할 겁니다.”

* * *

문 씨어터의 내한 행사를 했던 서울체육관에서 일만여 관객들과 함께 팬 미팅을 진행할 거라는 기사가 떴다.

팬 미팅의 이름은 ‘마이팬(MyFans)’.

서이렌의 팬 미팅 소식이 기사로 뜨자 한국의 팬들은 기뻐했다.

- 일만 석을 누구 코에 붙이라고. ㅠㅠㅠㅠㅠ

- 티켓팅 생각만 해도 무섭다. ㅠㅠㅠㅠ

- 외퀴들도 참전할 거 같은데??

└당연하지.

└외퀴뿐만 아니라 표팔이들도 달라붙을 듯.

- 내 자리 있을까??

- 언니. 여기서 노래도 부르겠지???

- 아까 라방 끝날 때 듣고 싶은 노래가 모냐고 물어본 게 이것 때문인 듯. ㅋㅋㅋㅋ- 오늘부터 정화수 떠 놓고 매일 밤 빌어야지.

- 젭알 내 표 한 장만 있었으면. ㅠㅠㅠㅠ

한국 팬들은 티켓팅을 걱정했지만, 서이렌의 해외 팬들은 다른 거로 난리가 났다.

- 나도 가고 싶다.

- 티켓팅 어떻게 하는 거야??? Yes25가 뭔데?

- 외국인은 SNS에서 양도받아서 가야 할 거야.

- 팬 미팅이라며??? 한국에만 팬이 있는 게 아니잖아. 전 세계에 세이렌의 팬이 있는데. 왜 한국에서만???

- DVD 같은 거 안 내주려나? 한국은 아이돌 문화가 발달했으니까 DVD가 나올 거야. 그렇지???

└글쎄.

└이렌은 아이돌이 아니라서…….

-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니. ㅠㅠㅠㅠ

* * *

일주일 뒤, 미국 활동을 마치고 서이렌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은 서이렌을 보러 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간신히 입국장을 빠져나온 서이렌이 밴에 올라탔다.

밴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발견한 서이렌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앞자리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장우재를 힐끔 쳐다보며 서이렌에게 입 모양만으로 말을 전했다.

‘앞에 우재 씨 있어요.’

서이렌은 눈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빵빵했던 볼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서이렌 배우님. 한 달 만에 뵙네요. 그동안 미국에서 잘 지내셨어요?”

“로드장도 잘 지냈죠?”

“어휴. 요즘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이렌 님의 로드 매니저라고 하니까 다들 이렌 님이 어떻냐며 물어보고 사인까지 얻어 달라고 그래서요. 심지어 엊그제는 여친이 팬 미팅 표를 구해 달라고……. 흠.”

웃으며 이야기하던 장우재는 순간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여친이라고요? 로드장. 제가 없는 사이에 여친을 사귄 거예요?”

“아하하하.”

장우재는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재 씨. 안전 운전해야죠.”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런데 언제 사귄 거예요? 난 전혀 몰랐는데요.”

“다음 주에 백 일이 됩니다.”

“벌써 백 일이라고요?”

내가 놀라자 서이렌이 나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야 외국에 나가 있었다지만, 대표님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난 전혀 몰랐죠. 회사에서도 다 모르죠? 비밀이었나요?”

“아뇨. 다들 아시는데요?”

“뭡니까? 그럼, 나만 몰랐나요?”

“하하하. 대표님은 눈치가 없으셔서…….”

장우재까지 나한테 눈치가 없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서이렌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깔깔대며 웃었다.

* * *

서이렌이 귀국한 지 일주일 뒤, 마이팬의 티켓이 오픈됐다.

오픈하자마자 삼십 분에 일만여 장의 티켓이 매진됐다.

삼십 분이나 걸린 이유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서버가 다운됐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외국 할 것 없이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고 결국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전 세계 생중계.

가수의 콘서트도 아니고 배우의 팬 미팅일 뿐인데 온라인 생중계를 하기로 한 것이다.

생중계한다고 기사가 뜨자 폭동 일보 직전이던 팬덤은 그제야 가라앉았다.

서이렌이 사는 빌라에 도착한 나는 커다란 상자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서이렌이 내게 전화를 했다.

“이렌 씨.”

[대표님. 뭐 하세요?]

“나는 퇴근했죠. 이렌 씨는 아직도 연습실인가요?”

[예. 피아노 연습 좀 하느라고요.]

“우리 이렌 씨가 바쁘네요.”

[팬 미팅 일정은 대표님이 만들어 놓고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이렌 씨가 팬들이랑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야 이렌 씨 말대로 해 준 죄 밖에 없죠.”

[오늘 만나면 안 돼요? 보고 싶은데?]

“나 지금 집이에요. 이제 들어왔어요.”

[우리 사귀고 있는 거 맞죠? 폰연애 그런 거 아니죠?]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너무 연습에 매진해서 힘들었나 보네.”

[이래도 오늘 얼굴 안 보여 줄 거예요?]

“미안해요. 내일 회사에서 봅시다.”

[힝. 또 나만 매달리네. 알았으니까 끊어요.]

삐진 서이렌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나는 아무도 없는 서이렌의 집으로 들어갔다.

들고 온 상자를 열자 케이크와 꽃다발이 보였다.

서이렌이 팬들을 위한 이벤트 준비에 여념에 없는 동안 나는 그녀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 * *

“오늘 MT 세 번째 방송이잖아요.”

연습실에 놀러 왔던 빈선예와 이락 그리고 우연미는 서이렌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요?”

“오늘 마피아 게임이 방송 탈 거 같은데요.”

“어??? 그러네.”

“마피아 게임!!!”

모두의 눈이 커졌다.

서이렌은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늘 방송 대박일 거 같은데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시청할래요?”

“좋아요!”

빈선예가 제일 먼저 좋다고 외쳤다.

이락과 우연미도 동참했으며 그들은 함께 차를 타고 서이렌이 사는 빌라로 향했다.

* * *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우던 나는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 알람 소리를 듣고 미소 지었다.

이제 왔구나. 별로 안 늦었네.

나는 침실 안으로 들어가서 내 의상과 얼굴을 확인했다.

서이렌이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잘 어울린다고 했던 수트를 입고 머리도 신경 써서 빗었다.

나는 꽃다발을 양손에 고이 들고 침실 문 앞에 섰다.

서이렌이 침실로 들어오면 짜잔 하고 꽃다발을 안겨 줄 생각이다.

내가 이런 이벤트를 하다니. 세상에.

강진석이 알면 아마 세상이 망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할 터였다.

나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이렌을 기다렸다.

내 신발도 잘 숨겨 놨으니 서이렌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를 거다.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소음이 시끄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렌 씨. 슬리퍼 어디에 있어요?”

“빈 팀장님. 거기 서랍 안쪽에 보세요.”

“락아. 과자랑 맥주 사 온 거 풀어 놔.”

“우 작가님. 식탁에 풀까요? 아니면 응접실 테이블에 풀까요?”

“거실에서 보자.”

“예.”

나는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들키는 건가?

오늘이 내 제삿날 같았고 들고 있는 꽃다발이 장례식장을 장식할 국화 같았다.

망했네.

* * *

“잠깐만요. 나 옷만 좀 갈아입고 올게요.”

서이렌은 콧노래를 부르며 침실로 들어왔다.

“어?”

침실에 들어온 서이렌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옷을 침대 위에 놓고 갔었나?”

침대 위에는 서이렌이 벗어 놓고 간 홈웨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상하네.”

서이렌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홈웨어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다.

그녀가 침실 문을 닫고 가지 않아서 거실의 시끄러운 소음이 침실 안에 울려 퍼졌다.

“마피아 게임 시작해요.”

빈선예의 외침에 과자를 먹던 사람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꽂혔다.

이락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와. 이건 진짜 너무하네. 시작하자마자 누가 마피아인지 알겠는데요?”

“너도 그때 현장에 있었잖아. 원 대표님 표정 굳는 거 못 봤어?”

“난 그때 희진이 째려보고 있느라 못 봤죠.”

마피아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표님이 왜 그 잘생긴 얼굴로 배우를 안 하나 했는데 이유가 이거였군요.”

이락이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말했다.

빈선예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발연기다. 이렌 씨 너무 웃기지 않아요?”

사람들과 함께 내내 웃고 있던 서이렌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서이렌은 맥주를 들이켜더니 말했다.

“연기는 못하지만 대신 예쁘잖아요.”

“어? 뭐요?”

“예쁘고, 일도 잘하고, 몸매도 훌륭하고, 생긴 건 배우 뺨치잖아요. 연기 그까짓 거 좀 못하면 어때요? 다 잘났는데 저거 하나 못난 거네. 이 정도면 완벽한 거 아닌가요?”

“…….”

서이렌은 할 말을 다하고 새침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빈선예와 이락은 서이렌이 원세강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우연미는 달랐다.

방금 서이렌이 말한 걸 속으로 따져보던 우연미의 두 눈이 커졌다.

우연미는 너무 놀라서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캭!”

“우 작가님.”

서이렌은 급히 쟁반을 들어서 얼굴과 머리는 보호했지만, 그녀의 상의가 맥주에 쫄딱 젖고 말았다.

우연미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서서 티슈를 가져왔다.

“괜찮아요? 이렌 씨?”

“별로 안 젖었어요. 옷만 갈아입으면 될 것 같아요.”

서이렌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이렌도 말해 놓고 뻘쭘했는지 손에 든 맥주캔을 그대로 들고 걸음을 옮겼다.

우연미는 침실로 걸어가는 서이렌의 뒷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이렌이 침실로 들어가자 우연미는 똥그래진 눈으로 빈선예와 이락을 바라봤다.

그런데 빈선예와 이락은 너무나도 차분해 보였다.

“지금 그거요. 이렌 씨가 한 말.”

“...”

“혹시 그건가요? 두 사람이 사귀나요?”

우연미의 물음에 빈선예와 이락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체 내가 본 건 뭐죠?”

빈선예는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고, 이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뭐긴요. 짝사랑이죠.”

“뭐라고요??”

* * *

옷장 안에 숨은 나는 다리가 저려서 미칠 것 같았다.

왜 옷장 안에 숨었을까?

침대 아래에 숨을걸, 바보같이.

지금이라도 침대 아래로 갈까?

나는 이대로 옷장 안에 쭈그려 앉아 있기 힘들어서 결국 나가기로 결심했다.

옷장을 열려고 손을 내미는데 순간 내가 열지도 않은 문이 활짝 열렸다.

눈앞에는 내가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서 있었다.

서이렌도 놀랐는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깜짝 이벤트에서 ‘깜짝’은 성공했구나.

그때 내 시야에 그녀의 몸이 보였다.

서이렌은 맥주에 젖은 홈웨어 상의를 벗은 채였다.

그녀가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본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이렌도 놀랐는지 망부석이 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이렌 씨……. 흠.”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왜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는 걸까?

나는 너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여기서 재채기라도 한다면 진짜 끝장이다.

그때였다.

서이렌이 돌진하더니 재채기가 나오려는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