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30화 (231/261)

#230화. 태평양을 건너는 나비

서이렌의 테일러 쇼 출연은 그야말로 서이렌 붐을 일으켰다.

서이렌이나 영화에 관심 없던 이들도 서이렌과 레오나의 듀엣을 보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테일러 쇼 봤어?

- 레오나랑 서이렌 이야기하는 거지?

- 두 사람이 노래 부른 영상이 벌써 1,000만 뷰더라.

- 온종일 SNS 실트에 떠 있었잖아.

- 그 여자는 대체 누구야? 가수?

- 노노. 배우야. 요즘 상영하는 문 씨어터에 나오는 배우.

- 배우가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레오나보다 잘하던데?

└레오나 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듣는 귀는 개취니까 이해해 주겠지. ㅋㅋ

- 레오나 팬들도 난리 났더라. 정식으로 듀엣 싱글 내라고 성화야.

- 세이렌 때문에 문 씨어터 보고 왔는데. 와. 씨. 이거…….

└ㅋㅋㅋㅋㅋ

└스포일러 때문에 말을 못 하겠지? ㅋㅋㅋㅋ

└영업하기 너무 힘든 영화라고. ㅋㅋㅋ

- 세이렌은 대체 뭘까? 자국에서도 데뷔하자마자 톱스타였다고 하던데.

-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당연히 톱스타지. 할리우드는 너무 늦게 그녀를 알아봤다.

- 너네 그거 아냐? 세이렌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민 건 프랑스인 감독이야. 트로이 임원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트로이 미친놈들인가?

└왜? 이해할 수가 없는데?

- 나만 트로이 이해되나? 우리야 영화를 봤으니까 세이렌이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알지만, 그들은 아니잖아.

└그렇게 쉽게 이해해 주지 말라고.

- 문 씨어터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데. 세이렌이 찍은 다른 영화는 어떻게 찾아보지??

└유플릭스에 구원의 밤은 있을 거야.

└그거 지난달에 내려갔어. ㅠㅠㅠㅠ

└이미 내려가서 못 봄. 근데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더라. 영상미 미친다.

- 극장에서 개봉 안 해 주려나?

- 동양 영화는 극장 개봉을 잘 안 하지 않나? 해도 제한 상영이잖아.

- 트로이는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럴 때 세이렌의 영화를 수입해야지.

└트로이는 서이렌 때문에 맨날 욕만 먹네. ㅋㅋㅋ

* * *

한국에 돌아와 보니 좋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전드 필름의 진설 대표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트로이에서 연락이 왔어. 구원의 밤을 정식으로 수입하고 미국에서 상영하겠대.”

“구원의 밤을요?”

놀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일전에 미국에서 구원의 밤을 상영했었는데요?”

“제한 상영으로 일부 극장에서 잠깐 걸린 거였잖아. 이번엔 달라.”

“그럼, 정식으로 프로모션이 붙는 진짜 극장 상영인가요?”

“응. 그렇게 될 거 같아.”

나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문 씨어터가 이렇게 잘되고 있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구원의 밤까지 미국의 극장에 걸린다니.

“아침에 엔진의 박주호 대표한테도 연락이 왔어.”

“나비도 트로이가 사겠다고 합니까?”

“맞아. 박주호 대표가 아주 좋아하더라고. 조만간 같이 식사나 하자고 하더라.”

박주호 대표의 신난 얼굴이 떠올라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그리고 이따가 트로이랑 이건 때문에 같이 미팅을 할거거든. 그때 원 대표도 참석해. 원 대표 돌아올 때까지 우리가 일부러 미팅 미뤄 놨거든.”

“예. 알겠습니다.”

진설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위층, 스타탄생으로 올라왔다.

문 씨어터의 성공으로 스타탄생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플릭스에 다녀온 강진석이 나를 찾았다.

“세강아. 유플릭스에서 오늘 내가 뭘 하고 온 줄 아냐?”

“저승사자 때문에 가신 거잖아요. 이제 곧 런칭이잖아요.”

“그랬지. 근데 가서 저승사자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내내 이렌 씨 이야기만 하고 왔다. 크큭.”

“분위기가 좋았나 보네요.”

“유플릭스에서 저승사자에 거는 기대가 큰 거 같더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런칭 프로모션을 할거래.”

“그렇지 않아도. 유플릭스 공식 SNS 계정에 저승사자 티저 이미지가 뜬 건 봤습니다.”

“에게. 겨우 티저 이미지라고? 뭐야? 어제는 역대급으로 홍보해 줄 것처럼 그러더니. 쪼잔하네.”

강진석의 눈에 실망하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유플릭스 공계에 동양권 독점 작품의 티저 이미지가 뜬 게 이번이 최초예요. 제대로 밀어주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오. 그런 거였어?”

강진석의 처진 눈이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는 걸 보고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 * *

트로이 직원 캐시는 화상 회의 모니터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눈앞의 남자는 분명히 스타탄생의 대표라고 했는데 도저히 대표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동양인의 나이는 얼굴을 보고 짐작하는 게 아니라더니. 사실인가 보네.’

캐시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표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이제 인턴이나 할 얼굴이었지만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정곡을 찔렀다.

“캐시. 더빙으로 개봉하는 건 안 됩니다.”

“트로이는 구원의 밤이 잘될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더빙 상영을 제안하는 겁니다.”

“미국인들이 자막을 읽는 걸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물론 그것도 이유긴 하죠.”

“아무튼, 저는 반대합니다. 저희 쪽에서 최대한 들어줄 수 있는 건 더빙과 자막 버전 두 가지로 개봉하는 겁니다.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

캐시는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내 옆에 앉아 있는 엔진의 박주호 대표를 바라봤다.

하지만 박주호 대표는 아무 말 없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캐시는 전혀 몰랐지만 이미 미팅 전에 나와 박주호 대표는 말을 맞춰 놨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는 지금 책상 아래로 박주호 대표의 손을 잡고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게 막고 있다.

박주호가 작게 나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원 대표. 이게 협상이 되겠어?”

“잘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흠. 이렇게 강경하게 나가다 계약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잖아.”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고민하던 캐시는 주위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더니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더빙과 자막 동시에 개봉하는 건 찬성이라고 하셨죠?”

“대신 둘 다 같은 조건에서 개봉해야 합니다. 자막을 볼 수 있는 관은 제한 상영 수준으로 적게 잡으시면 안 됩니다. 사전에 어떤 식으로 관을 운영할지 저희가 컨펌하는 조건이면 수락하겠습니다.”

“치밀하시네요.”

캐시는 고집을 꺾지 않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하죠.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내가 호언장담하자 캐시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트로이는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른다.

미국인들이 지금 서이렌에게 열광하는 것은 문 씨어터도 있지만 테일러 쇼에서 보여 준 그녀의 노래도 한몫한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를 없애고 더빙으로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막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서이렌의 목소리를 들으러 자막 버전으로 볼 거다.

내가 장담한다.

길고 지루했던 화상 회의가 끝나자 엔진의 박주호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일이 틀어지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원 대표가 초반부터 세게 나가서 놀랐다고.”

“뭘 그렇게 놀라세요. 별것도 아닌데요.”

“원 대표는 갈수록 말을 잘하는 것 같아. 하하. 미국에 나비의 리메이크 판권을 팔았던 것도 지지부진했는데. 이번에 이렌 씨가 대박 나고 다시 논의 중이라더라.”

“그래요? 좋은 소식이네요.”

“하하하. 그렇다니까. 엔진이 이렌 씨 덕을 보게 생겼어.”

“점심 드시고 가실 거죠? 진설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셨어요.”

“뭐라고?”

호탕하게 웃던 박주호 대표가 갑자기 볼을 붉게 물들이며 다리를 비비 꼬았다.

어휴. 한번 팬은 영원한 팬이라더니.

하긴 나도 서이렌을 저렇게 바라볼 텐데 누가 누굴 욕하겠어.

“가시죠. 박 대표님.”

“그래요. 원 대표.”

박주호는 얼굴은 숨길 수 없는 환희로 가득 찼다.

* * *

서이렌이 찍은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할 거라는 기사가 떴다.

기사에는 더빙판과 자막판 두 가지 버전으로 상영한다고 쓰여 있었다.

- 트로이가 일을 하네. 정식 개봉이라니.

- 더빙과 자막판 두 가지로 개봉하네. ㅋㅋㅋ

- 더빙으로 한번 보고 자막으로도 봐야겠다.

- 지금까지 자막으로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데 볼 수 있을까?

└그럼, 세이렌 목소리는 못 듣는 거지.

└세이렌 보러 가서 그녀의 목소리를 못 들으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ㅋㅋㅋ- 더빙이랑 자막 두 개로 개봉하는 게 그 이유구나.

- 더빙판으로 먼저 보고 내용을 다 이해한 다음에 자막판으로 보라고. ㅋㅋㅋ- 그런데 문 씨어터가 아직 상영 중이잖아.

└한국 영화잖아. 개봉관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걸.

- 세이렌 vs 세이렌의 대결인가?

- 첫 공개작은 ‘레이디 버터플라이’라는데? 이거 본 사람 있어?

- 미튜브에 가면 트레일러랑 조각 영상 있어.

- 서이렌이 여전사라니.

- 발레까지 하는데? 오마이 갓!

- 와우. 이건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겠는데???

* * *

서이렌의 영화 나비가 드디어 미국 땅을 밟았다.

예상보다 높은 대중의 관심에 트로이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놀랐다는 후문이 돌았다.

수천 개씩 관을 가져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고 무려 사 년 전에 미국에서 개봉한 적이 있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

캐시는 상영 첫 주의 박스오피스 정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까 10위라는 거죠?”

“4위로 내려왔던 문 씨어터도 다시 1위를 탈환했습니다. 아무래도 레이디 버터플라이의 덕을 보는 것 같아요.”

“더빙관이랑 자막관의 관객 상황은 어때요?”

“그게 제일 놀랍습니다.”

직원이 캐시에게 매출표를 내밀었다.

그걸 본 캐시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46 대 54라고요?”

“예. 자막이 46입니다.”

“이렇게 차이가 없다고요? 말도 안 돼.”

“신기한 것은 자막관의 관객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역전할 거 같습니다.”

“말도 안 돼요. 관객들이 힘들게 자막을 찾아볼 리가 없는데.”

캐시는 지난번에 미팅에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원세강이 떠올라서 소름이 돋았다.

* * *

서이렌은 문 씨어터 1위 탈환 기념으로 라방을 켰다.

지난번 테일러 쇼에서 라방의 첫 삽을 뜬 뒤로 서이렌은 라방의 매력에 푹 빠졌다.

팬과 실시간 소통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 언니 또 라방 켰네.

- 바쁠 텐데 팬들 위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다. ㅠㅠㅠㅠ- 문 씨어터 1위 재탈환!!! 축하해요!!

- saranghae.

- 나비도 10위!! 대박!!!

- Hwaiting!!!

- show aegyo to fans.

댓글이 빠르게 올라가서 보이지도 않았다.

잡지 촬영 때문에 스튜디오에 온 서이렌은 오늘 촬영 콘셉트를 팬들에게 살짝 스포해 줬다.

물의 여신으로 분한 서이렌의 모습에 팬들은 흥분했다.

그때 미하엘이 서이렌에게 폰을 보여 줬다.

라방을 진행하고 있는 회사 폰이 아니라 그녀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이었다.

폰에는 원세강이 보내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성사됐어요, 이렌 씨. 한국에 오면 곧바로 연습을 먼저…….]

전문이 아닌 미리보기 메시지였으나 서이렌은 원세강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았다.

문자에서 시선을 뗀 서이렌이 활짝 웃으며 팬들을 바라봤다.

팬들은 서이렌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며 숨을 참았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조만간 깜짝 이벤트가 뜰 겁니다. 기대하세요.”

서이렌이 말을 마치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했다.

라방의 시청자 수가 25만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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