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28화 (229/261)

#228화. 대기실에서

“테일러 쇼에 우리 이렌 씨가 출연한다고?”

[그래. 그쪽에서 섭외 연락이 왔어. 그냥 출연도 아니고 무려 단독 게스트야.]

지난달에 문 씨어터의 주요 캐스트가 테일러 쇼에 홍보를 위해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스포일러 방지와 별개로 테일러 쇼에서 주요 배역 삼인방의 출연만 원했기에 서이렌은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테일러 쇼에서 서이렌이 나와 주길 바란다니.

영화가 개봉한 지 정확히 사흘 만의 일이다.

[미국으로 당장 날아와. 비행기 표는 내가 이미 끊어 놨어.]

“그래. 그래야지.”

[오빠도 이렌 씨랑 같이 올 거지?]

“응. 나도 같이 갈 거야.”

[오케이. 알았어. 자세한 일정은 메일로 따로 보내 줄게.]

한껏 들뜬 목소리의 윤조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직도 지금 이 상황이 얼떨떨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슈퍼스타는 이미 등장했다.

* * *

서이렌이 미국의 유명 토크쇼인 테일러 쇼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기사로 떴다.

[문 씨어터의 주역, ‘서이렌’ 미국 토크쇼 ‘테일러 쇼’에 출연]

[미국의 유명 토크쇼 ‘테일러 쇼’에 출연하는 서이렌. 월드 스타 되나?]

[‘테일러 쇼’에 출연하기 위해 출국하는 서이렌]

팬들은 소식이 뜨자마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 오.

- 와 대박.

- 역시나. ㅋㅋㅋㅋ

- 테일러 쇼 좋아. 미국 토크쇼 중에서도 순한 맛이잖아. ㅋㅋㅋ- 서이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쳤다.

- 대박 났다. 진짜 ㅋㅋㅋㅋㅋ

- 서이렌 미모 열일해서 레전드 찍었으면 좋겠다. ㅋㅋㅋ? 당연히 그럴 듯 ㅋㅋㅋ? 서이렌은 매일이 리즈.

└자다 일어난 채로 나가도 여신 예약. ㅋㅋ

- 미국 놈들은 좋겠다. TV로 한국이 만든 CG도 보고. ㅋㅋㅋ- 사람이 아닌 진짜 안드로이드라고 착각하는 거 아님???

?아. 그거 스...포..

└헙!

└당장 지우라고. ㅋㅋㅋㅋ

└눈새다.

- 서이렌이 잘되는데 왜 내가 기분 좋냐? 이게 국뽕인가? ㅋㅋㅋㅋ- 여태껏 서이렌 팬질하면서 이렇게까지 뽕 찬 적이 없다.

ㅋㅋㅋㅋ- 문 씨어터 벌써 5번 봤는데 극장 갈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그 장면 나올 때마다 극장 안이 술렁거리는 거 보는 게 요즘 내 삶의 힐링 포인트임. ㅋㅋㅋㅋ- 난 그거 미튜브에서 리액션 영상으로 본다. 전 세계인들이 리액션 영상을 올려 주더라.

- 제리 영상이 제일 대박이야. 제리 이 남자. 나보다 서이렌에 더 진심이야.

- 제리는 서친놈이잖아. 서이렌에 미친놈. ㅋㅋㅋㅋ

- 제리 미튜브 헤더도 문 씨어터로 다 바꿔 버림. 영화 채널이 아니라 서이렌 팬 채널이라고 다들 놀린다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제리 영상에 자꾸 나오는 한국인은 누구냐? 왜 맨날 옆자리에 같이 앉는 건데??? 매니저임?

- 매니저는 아닌 거 같음.

- 매니저가 아닌데 그렇게 많이 나온다고???

- 영상 8개 중에서 2개밖에 안 나옴. 근데 그 2개가 임팩트가 너무 커서 다들 댓글에서 그 남자 어디 갔냐고 찾더라. 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제리가 한번 인터뷰해야 할 판. ㅋㅋㅋ- 제리 리액션 영상에서 그 사람 안 나오면 섭섭하잖아요. ㅋㅋㅋㅋ- 그나저나 문 씨어터 개봉하자마자 팬파라치는 잠잠하네.

- 서이렌 망했다고 자꾸 기사 내던 신레기. 내가 절대 잊지 않는다.

- 신레기 요즘은 서이렌 기사 안 쓰고 펑황 찬양 기사만 쓰고 있음.

- 투명하다. 투명해. 신레기 분명히 펑황에 뒷돈 받았을 거임.

- 왜 내 배우는 하필 펑황이 투자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거냐고. ㅠㅠㅠㅠ? 혹시 김선우??

└노노. 여주임. ㅠㅠㅠㅠ

└LOK 소속이면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여.

- 내 배우 LOK에서 탈출했으면. 젭알. ㅠㅠㅠㅠ

- 펑황이랑 LOK랑 얼마나 엮인 거지?

└지금 두 작품 투자받아서 드라마 두 편 찍고 있어. ㅠㅠㅠㅠㅠ? LOK 배우들이 총출동임. ㅠㅠㅠㅠ- LOK 여신 지수연이 의외로 펑황 투자 드라마에 안 나오네.

- 지수연은 지금 박선호랑 인디 영화 찍고 있음.

- 지수연이 인디 영화라니. 대작 드라마 포기하고 이상한 선택 했다고 팬들 불만이 가득하더니 인제 보니 승자였네. ㅋㅋ* * *미하엘은 한국에서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놀림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번 미국 출장에는 빈선예와 문선경 씨도 함께 따라왔다.

영화가 공개되고 첫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서이렌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최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베이스를 깔고 눈 화장하는 건 처음 보네요.”

미하엘은 문선경이 하는 메이크업 기술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서이렌의 눈에 짙은 베이스를 발라서 깊은 눈매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문선경은 가벼운 색깔의 아이섀도를 눈가에 겹겹이 층을 쌓아 발랐다.

“너무 자연스러워요. 눈매도 확 살고요.”

“그렇죠? 이렇게만 해도 눈이 깊어 보이잖아요. 사실 이렌 씨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맨얼굴도 아름답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긴 하네요.”

미하엘과 문선경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메이크업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빈선예와 함께 서이렌이 오늘 입을 의상을 살폈다.

빈선예는 서로 협찬하겠다고 나서는 명품 업체를 뒤로한 채 얀과 그녀가 함께 만든 드레스를 선택했다.

나는 드레스를 보며 빈선예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 옷이 얀과 함께 상의해서 만든 거라는 거죠?”

“맞아요. 처음 보자마자 제대로 사람들에게 이렌 씨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드레스죠.”

“세이렌?”

“맞아요. 이렌 씨 하면 세이렌 요정이죠.”

빈선예와 얀이 준비한 드레스는 고대 그리스 여신 같은 느낌을 주는 드레스였다.

하지만 너무 고전적이지 않게 치마의 왼쪽을 터놔서 걸을 때마다 긴 다리가 보인다.

“이게 잘 어울릴까요?”

“어울려요. 걱정하지 마요.”

“흠.”

내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헤어와 메이크업을 끝낸 서이렌이 다가왔다.

오늘따라 묘하게 서이렌의 눈빛이 고혹적으로 보였다.

“와우. 너무 예쁜데요? 그렇죠, 대표님?”

“그렇네요. 홀릴 거 같은데요?”

나는 진심으로 서이렌의 눈빛에 홀릴 것 같았다.

화장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로 사람을 홀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이렌 씨네요. 내가 오늘 콘셉트가 세이렌 요정이라고 귀띔해 줬는데 벌써 눈빛 연기하는 거 봐요.”

“저 잘하고 있나요? 빈 팀장님?”

“잘하고 있어요. 이렌 씨.”

지금도 이렇게 정신이 나갈 것처럼 아름다운데 의상까지 갈아입고 나오면 정말로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 * *

테일러 쇼가 열리는 뉴욕의 NYC 스튜디오 앞에는 서이렌의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문 씨어터가 개봉한 지 이제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서이렌 돌풍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팬들은 자고 일어나면 서이렌의 SNS 팔로워 수가 수십만씩 늘어나고 있다며 기함할 정도였다.

우리가 탄 밴이 NYC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함성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서이렌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밴에서 내렸다.

청바지와 티셔츠 브랜드는 당연히 후즈였다.

서이렌이 차에서 내리자 팬들의 환호성이 내 귓가를 찢었다.

“세이렌!”

“이렌!!!”

“여기 한번 봐 줘요!!!”

“세이렌! 사랑해요!”

다들 서이렌을 부르며 손에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며 슬쩍 보니 서이렌의 팬들은 여자와 남자 팬의 비율이 정확히 반반이었다.

한국은 처음에는 남자 팬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가 서이렌이 활동하면 할수록 서서히 여자 팬의 수가 늘어났다.

아마 한국도 팬들을 한데 모으면 여자와 남자 비율이 반반일 거다.

서이렌의 팬들을 한곳에 모은다면……?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빈선예가 다가왔다.

“대표님. 무슨 생각 하세요?”

“빈 팀장님.”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예. 그러죠.”

테일러 쇼는 오후 4시에 방송하는 토크쇼다.

미국은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토크쇼도 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시청률이 꽤 높다고 했다.

녹화 방송이 아닌 생방송 토크쇼였고 오늘 출연하는 게스트는 두 명이다.

첫 번째 게스트로 서이렌이 출연하고 두 번째 게스트는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가수 레오나였다.

가수 레오나는 토크가 끝나고 퍼포먼스까지 할 거라고 했다.

“생방송 토크쇼는 한국에서도 없던 일이라서 떨리네요.”

“대표님이 떨면 안 되죠? 이렌 씨도 안 떠는데.”

“그러게요.”

서이렌은 평온한 표정으로 큐시트를 읽고 있었다.

“이렌 씨는 안 떨려요?”

“저도 떨려요.”

“이렌 씨가 떨린다고요?”

“예.”

강심장 서이렌이 떨린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서이렌이 큐시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레오나가 나온대요.”

“이렌 씨가 레오나의 팬이었어요?”

“요즘 차 안에서도 레오나 노래만 들어요. 목소리가 정말 예쁘잖아요.”

서이렌은 목청을 다듬더니 곧바로 레오나의 신곡인 ‘Stars’를 한 소절 불렀다.

주위를 지나던 스태프들이 놀라서 쳐다볼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 아까 NYC 스튜디오로 들어오면서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서이렌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렌 씨. 지금 이렌 씨를 기다리는 팬들한테 노래 한 곡 불러 줄래요?”

“지금이요? 어떻게요?”

“요즘은 SNS로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잖아요.”

“저는 잘 모르는데요?”

“내가 알려 줄게요. 해 볼래요?”

서이렌이 핸드폰을 쳐다보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방금 그 노래를 불러 주면 팬들이 정말 좋아할 겁니다.”

나도 좋고요.

서이렌은 내 얼굴을 보며 찡긋 웃더니 이내 핸드폰을 들었다.

“가르쳐 주세요. 대표님.”

* * *

- 서이렌 라방한다!!!

- 헉..

- 서이렌이 라방이라니. 미쳤네.

- 안 자고 있던 내가 승자다.

- 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2만 명이나 들어왔어.

- 미친. 서이렌 지금 테일러 쇼 촬영하려고 대기 중인가 봐.

- 언니 라방 어떻게 켜는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네. ㅋㅋㅋㅋ- 해외 팬들한테도 인사해 주네. 언니 쏘스윗.

- 그냥 인사말인데 발음 죽여주네. ㅋㅋㅋㅋ

- 서이렌 불어 대박. 미쳤네.

- 전 세계 말 다 나올 듯. ㅋㅋㅋㅋ

- 언니 너무 좋아요.

- 댓글도 난리 났네. ㅋㅋㅋㅋ

-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라방 해 줬으면 좋겠다.

- 와. 내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시청자 수 5만이 넘었는데???

- 계속 올라가고 있어. 미쳤어. ㅋㅋㅋㅋ

- 아이돌 라방인 줄. ㅋㅋㅋㅋ

- 어. 언니 지금 뭐 하는 것임?

- 뭐냐고? 지금 노래 부르려는 거임??

- ㅅㅂ

서이렌이 내게 눈짓하자 나는 미튜브에서 찾은 Stars MR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에서 Stars가 흘러나오자 서이렌이 리듬을 탔다.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데 대기실의 모든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There is a star.

If you believe the star's always shining.

…….

- 서이렌 전생에 카나리아였나???

- 목소리 너무 이쁘다.

- 와. 이게 천상의 소리. 뭐, 그런 건가?

- 댓글이 미친 것처럼 올라오네. ㅋㅋㅋㅋ

- 목소리 미쳤어. 얼굴도 미쳤는데 목소리는 더 미쳤어.

- 서이렌 왜 가수 아님??? 당장 가수로 데뷔해도 성공할 판.

- 이게 몇 년 만에 듣는 서이렌 노래냐고. ㅠㅠㅠㅠ

- 서이렌은 당장 가수로 데뷔해야 한다. 재능이 아까워.

* * *

“이게 무슨 소리죠?”

대기실을 지나던 레오나는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Stars네. 누가 대기실에서 레오나의 노래를 듣고 있나 본데?”

“내 노래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매니저를 뒤로한 채 레오나는 대기실을 가로질러 갔다.

‘Seo―Iren’이라고 쓰여 있는 대기실 앞에 선 레오나는 문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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