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27화 (228/261)
  • #227화. 스타탄생

    문 씨어터가 끝나자 트로이 관계자가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

    기자 시사회였기에 영화가 끝났지만,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기사 초고를 쓰기 여념이 없었다.

    모두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는데 신주원의 표정만 똥 씹은 표정이었다.

    기자들은 일사천리로 헤드라인과 초고를 써서 신문사에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비킵시다. 신주원 기자.”

    “아……. 예.”

    제일 끝자리에 앉아 있던 신주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나가던 톱스타 뉴스의 강유미 기자가 동료들과 나가며 뒤를 돌아봤다.

    강유미와 눈이 마주친 신주원은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길. 진짜로 여주였네. 이게 말이 돼?’

    신주원은 극장을 나서는 다른 기자들의 표정을 똑똑히 봤다.

    그들은 신주원을 힐끔 쳐다보며 밖으로 나갔다.

    심지어 대놓고 조소하는 기자도 있었다.

    신주원은 얼굴을 붉힌 채 사람들을 헤치고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문 씨어터 개봉 당일.

    아침부터 용산 티켓박스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서이렌의 첫 할리우드 진출 영화를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려든 것이다.

    나는 지금 그렉과 함께 아이맥스 극장에 와 있다.

    이 표를 구하느라 정말 진땀을 뺐다.

    영화평이 뜨고 예매율이 치솟아서 아이맥스 티켓은 오픈되자마자 바로 매진됐다.

    내 표도 구하기 어려운데 그렉의 표까지 구하느라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연석 표는 구하기 어려워서 그렉과 떨어져서 보게 됐다.

    그렉에게 표와 콜라 그리고 팝콘을 쥐여 준 나는 마음 편하게 내 자리로 왔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려는데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서이렌이었다.

    [다음에는 심야 영화로 함께 봐요]

    그게 될까요?

    우리 둘이 영화를 보면 사람들에게 들킬 거 같은데요.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싫다고요?]

    [그럴 리가요. 다음에 꼭 같이 봐요.]

    문자를 다 보낸 나는 아예 핸드폰을 꺼 버렸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니 드디어 영화관이 암전됐다.

    극장 안이 어두워지자 그제야 문 씨어터가 한국에서 개봉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 처음 영화를 봤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처럼 반전과 함께 극장 안이 뒤집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문 씨어터의 시그널과 함께 대니 라모로 감독의 이름이 스크린에 떴다.

    * * *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문 씨어터의 개봉 날이 밝아 왔다.

    한국만큼 이슈가 크지는 않았지만, 극장 앞에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경록은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조조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에 도착했다.

    “아직 영어가 딸리는데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표를 받아든 김경록은 팝콘을 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은 영화표를 살 때 자리를 지정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일찍 도착한 김경록은 뒤쪽 열의 정중앙에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그가 찜한 자리에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두운 극장 안인데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에는 이상한 모자를 쓴 그를 보자 김경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김경록은 그를 경계하면서도 바로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스팟을 벗어나기는 싫었다.

    ‘내 지정석은 아니지만. 여기서라도 보자.’

    김경록은 영화가 시작하기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문 씨어터를 검색했다.

    대니 라모로가 미국에서 유명한 감독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인 콜린 스미스의 인기가 워낙에 많아서 그런지 수많은 게시글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주인공 삼인방에 관한 이야기였고 서이렌의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주로 청바지 모델, 레드카펫 등 영화와는 상관없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서이렌의 이름이 들어간 몇몇 게시글은 조회 수가 유독 높았다.

    ‘뭐지? 스포일러 포함이라고 하니 클릭을 못 하겠네.’

    김경록은 영화를 보러 왔는데 굳이 스포일러를 찾아보고 싶지 않아서 인터넷 페이지를 닫았다.

    핸드폰을 끄고 고개를 들자 극장 안에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조조인데도 사람들이 많네.’

    극장의 반 정도가 관객들로 차고 난 뒤, 갑자기 불이 꺼졌다.

    김경록은 심호흡하며 서이렌의 할리우드 데뷔작을 볼 준비를 했다.

    * * *

    - 지금쯤 문 씨어터 첫 상영이 끝났을 때 아닌가?

    - ㅇㅇ 지금쯤 극장에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있을 듯.

    - 나는 왜 주말에 예매를 한 것인가? ㅠㅠㅠㅠ

    - 여기 있으면 스포 밟을 거 같은데. 그냥 나갈까?

    - 스포에 민감하면 영화 보기 전까지는 인터넷 하지 마. 내가 구원의 밤 때 커뮤하다가 스포 밟았잖아.

    - SNS에 영화평 뜨기 시작하는 거 같은데???

    - 방금 문 씨어터 보고 왔어. 서이렌이 귀신이야.

    └죽을래?

    └우리 지금 예민하다고. 건들지 말라고.

    - 서이렌이 절름발이다. ㅋㅋㅋㅋ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래?

    - SNS에 관람객 평이 뜨기 시작하네.

    - 와. 미친. 어떻게 해. ㅠㅠㅠㅠ

    - 와씨. 심장 떨려.

    - 이제 커뮤 끊을 시간이네. 안녕. 문 씨어터 보고 와서 보자. ㅋㅋㅋ

    * * *

    김경록은 지금 관람 문화의 신기원을 보고 있다.

    초반에 블랙 코미디로 진행될 때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폭소하며 웃고 떠들더니 우주 왕복선에 위기가 찾아오니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서이렌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모두 날 것의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Wow. What the fuc……k!”

    “Unbelievable!!!”

    “Oh, My God!”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3177이라고 소리쳤다.

    ‘뭐야? 미국은 원래 이렇게 영화를 보나?’

    김경록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느새 자신도 그들의 반응에 따라 함께 흥분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대박이네. 주인공이었어. 서이렌이 주인공이었다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김경록의 입술이 비틀렸다.

    ‘원세강, 너도 독한 놈이다. 내용을 미리 알았을 건데 나한테까지 속였어? 다시 보기만 해 봐. 가만히 안 둬.’

    김경록은 문 씨어터의 촬영장을 내내 따라다녔다.

    그래서 영화의 줄거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본 반전 장면은 대본도 본 적이 없고 촬영 장면은 더더구나 구경조차 한 적이 없다.

    “와. 진짜. 말이 안 나오네.”

    김경록은 화가 나면서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할리우드 데뷔작을 주인공으로 한다고? 그것도 이렇게 임팩트 있게?”

    극장 안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 찼다.

    흥분하는 관객의 대화를 들은 김경록의 손끝이 떨렸다.

    모두 영화를 칭찬하면서도 끝에는 반드시 3177. 루나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그들의 대화를 몰래 듣던 김경록은 재빨리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매표소 앞으로 달려가 직원에게 티켓을 달라고 말했다.

    “문 씨어터요? 몇 시 타임으로 드릴까요?”

    김경록은 지갑에 있는 돈은 다 꺼내서 매표소 직원에게 들이밀었다.

    “오늘 상영하는 모든 타임의 표를 주세요.”

    * * *

    SNS에 문 씨어터의 영화평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모두 티켓을 인증한 실제 관객들의 평이었다.

    - 문 씨어터 꼭 보세요. 대니 라모로는 할리우드에 가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았습니다.

    - 중반까지는 완벽한 블랙 코미디 그러나 후반부에 이 영화의 장르가 SF라는 것을 마음껏 드러낸다.

    - 스포일러지만 3177은 진짜 역대급!!

    - 3177이 대체 뭔가 했더니 이런 반전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재미있네요.

    - 하,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 너무 좋았습니다. 또 보고 싶네요.

    - 옆자리에서 보신 분이 서이렌 팬이신가 본데. 영화 끝나자마자 막 눈물을 흘리셨네요. ㅎㅎ- 대체 서이렌은 이 영화에 어떻게 출연한 거지?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 믿고 보는 서이렌. 할리우드에서도 믿고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 서이렌이 아니라도 재미있는 영화다.

    - 스포일러를 쓰고 싶어서 죽겠다. 극장 앞에서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문 씨어터의 영화평이 뜨기 시작하자 인터넷 커뮤니티도 함께 달아올랐다.

    - 후기가 다 돌아 버렸네.

    - SNS에 스포가 너무 많아. ㅠㅠㅠㅠ

    - 조조로 보고 왔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서이렌 팬들은 꼭 보셈. 두 번 보셈. 아니 세 번 보셈. ㅋㅋㅋㅋ- 서이렌이 한국도 모자라서 전 세계인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서이렌 살인자로 나옴?

    └뜬금없이 웃기네. ㅋㅋㅋ

    - 나도 방금 보고 왔는데 이 영화 빨리 봐야겠더라. 조만간 온 세상에 스포일러가 돌아다닐 듯. ㅋㅋㅋ- 제리도 극장에서 다시 봤나 보네. 극장 관람 리액션 영상 올렸어. ㅋㅋㅋㅋ? 상영 중인 영화를 찍어서 올려도 되나?

    └화면 없이 극장 안 소리만 담는 거야. 다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포인트가 되는 장면만 편집해서 올리는 건데 보다 보면 재미있다. ㅋㅋㅋ- 제리 영상 보고 왔는데 겁나 웃김. 미국인들도 3177 정체 밝혀질 때 식겁하더라. 막 왓더퍽 나오고 오마이갓 나오고 난리도 아님. ㅋㅋㅋㅋ- 제리 옆에 한국 사람이 앉았나 봐. 중간중간 그 사람 목소리 들어갔는데. 존나 웃겨.

    └나 그거 봤음. ‘헐’ ‘시발’ 이런 말이 계속 나오잖아.

    └마지막에 ‘역시 서이렌’이러면서 거의 울더라. ㅋㅋㅋ- 미친. 너넨 다 봤냐? 나만 못 본 거냐고???

    - 이런 영화는 첫날 빨리 봐줘야지. 안 그러면 스포일러 당한다고. ㅋㅋㅋㅋ- 난 서이렌이 귀신이라는 스포 당하고 가서 봤는데. 귀신보다 더 놀랐다. ㅋㅋㅋㅋ- 이거 글 새로 파야겠다. 댓글이 다 스포 밭이야. ㅋㅋㅋㅋ- 미친. 커뮤 관리자가 공지로 박았어. 문 씨어터 스포일러 남기면 강퇴 조치할 거래. ㅋㅋㅋㅋㅋ

    * * *

    나는 심각한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서이렌이 문 씨어터의 주인공이었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면서 관객이 미친 듯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서이렌을 사랑하는 한국의 상황이었고 다른 국가의 흥행은 어찌 되는지 궁금했다.

    특히 미국의 흥행이 제일 알고 싶었다.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모니터에 윤조의 얼굴이 떴다.

    윤조는 나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 얼굴이 완전히 굳었어.”

    “그래 보여?”

    “응. 완전 얼음이야.”

    “놀리지 말고 빨리 흥행 상황이나 알려 줘. 주말에 얼마나 들었어? 왜 아직 기사가 안 뜨는 거야?”

    “이제 곧 뜰 거야.”

    “그래? 어떻게 알아?”

    “내가 방금 트로이한테 결과를 받았거든.”

    윤조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긴장이 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나왔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줘.”

    [오빠 숨넘어가겠다. 말해 줄게.]

    윤조는 박스오피스 일 위라는 방금 뜬 기사를 내게 보여 줬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기사를 확인했다.

    박스 오피스 일 위.

    사천오백만 달러 흥행 수익.

    이 위는 이천오백만 달러로 일 위와 차이가 크게 났다.

    “윤조야. 이거 잘된 거지?”

    [그래. 나도 보고 놀랐어. 토요일보다 일요일 관람객이 훨씬 많았대. 두 번 이상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지. 입소문을 제대로 탔나 봐.]

    “아. 이제 좀 살겠다.”

    나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의자에 기대서 편하게 앉았다.

    [오빠. 눈이 풀렸어.]

    “긴장을 너무 많이 했나 봐.”

    [아직 놀랄 일이 더 있는데.]

    “응?”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는 윤조를 보며 의자에서 등을 뗐다.

    “뭔데 그렇게 웃어? 무슨 일인데?”

    [테일러 쇼라고 알지?]

    “그럼 당연히 알지. 미국에서는 되게 유명한 토크쇼잖아.”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테일러 쇼에서?

    내가 입을 떼는 순간 윤조가 웃으며 말했다.

    [테일러 쇼에서 이렌 씨를 게스트로 모시고 싶대. 그리고 놀라지 말아. 문 씨어터 캐스트들이랑 같이 나가는 게 아니라 무려 단독 게스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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