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23화 (224/261)

#223화. 월드 프리미어

저승사자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삼 개월간의 촬영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드디어 마지막 촬영 주가 밝았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문 씨어터의 2차 티저, 포스터, 개인 포스터 그리고 티저 예고편 등이 발표됐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대망의 정식 예고편까지 나왔다.

스타탄생은 오전부터 회의가 소집되었다.

오늘 회의를 마치고 나는 문 씨어터의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 가기 위해 서이렌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강진석이 일정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LA를 시작으로 영국 그리고 중국까지 찍고 한국으로 오는 거네. 일정이 왜 이렇게 하드 해?”

“캐스트들이 워낙에 바쁜 사람들이니까요. 다른 할리우드 영화의 홍보도 이렇게 진행한다고 하네요. 우리가 유독 더 빠듯하긴 하지만요.”

일정표를 보던 강진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원 대표. 지난주에 뜬 정식 예고편 때문에 말들이 많은 건 알지?”

“이렌 씨의 분량이 너무 없어서요?”

“응.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언플만 해 놓고 병풍 노릇한 거 아니냐고 말들이 많아.”

“우리는 미국 진출로 언론플레이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기자들의 설레발이었죠.”

“하지만 굳건하던 이렌 씨 팬들도 동요하는 것 같더라고.”

강진석이 걱정하는 것처럼 서이렌의 팬들은 정식 예고편에서까지 서이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화가 선을 보이면 해결될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레기들이 자꾸 기사를 쏟아 내서 걱정스럽긴 해. 지금도 이러는데 막상 영화가 개봉되면 더 심할 것 같아서 말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아무 대응하지 말고 이대로 있자고?”

“예. 그렇게 해 주세요.”

강진석의 얼굴이 근심으로 물들었다.

그가 걱정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의심하고 물어뜯는 것도 지금뿐이다.

영화가 개봉하면 누구도 그런 소릴 못 할 거다.

오히려 지금의 이 과열된 분위기는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역으로 서이렌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저만 믿으세요. 아시죠?”

내가 자신만만해하자 강진석은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와서 안 풀린 적이 없었지. 알았어. 너만 믿고 기다릴게.”

* * *

- 팬파라치 기사 뜬 거 봄?

- 미친 새끼들. 이젠 대놓고 헤드라인에 병풍이라고 박아 놨더라.

- 신주원 걔가 문제야. 신흥 기레기 새끼.

- 정식 예고편까지 서이렌이 그렇게 조금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 중국용 예고편 봤어?

└중국은 예고편이 달라?

└자국 스타가 나와서 그런지 중국용은 편집이 조금 다르더라. 근데 샤오엔인지 특출로 나오는 배우가 서이렌보다 많이 나옴.

└ㅅㅂ

└또 비교 기사 나오겠네. 아 짜증 나.

- 왜 한국용 예고편은 안 푸는데??? 우린 봉이야?

- 중국에선 샤오엔이 한국의 스타를 이겼다고 실시간 검색어 뜨고 난리도 아니었음.

- 개빡치네.

- 중국 놈들은 그렇다 치고 왜 같은 한국인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지. 기레기들도 너무 해.

- 스타탄생은 아무 대응도 안 하나?

- 스본은 잠잠해. 오늘 월드 프리미어 때문에 출국했다고 기사 떴더라.

- 이 와중에 월드 프리미어는 참석하네. ㅠㅠ

- 그나저나 LOK는 왜 저러는 거야? 뜬금없이 중국 회사랑 합작한다던데?

- 펑황 엔터가 뭐냐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 이름을 쓰라고.

- 펑황 엔터가 바로 문 씨어터에 특출하는 샤오엔 배우 소속사임. 중국 3대 엔터 회사 중 하나.

- 트로이 영화사 지분도 먹더니 한국까지 노리네. 중국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다.

- LOK는 대탈출 때문에 손해가 막심해서 회사 엎어질 뻔한 거 펑황 엔터랑 손잡고 기사회생한 거 같더라.

- LOK는 대표부터 바꿔야 해. 이게 다 한지욱 그 개또라이 때문이잖아.

- 근데 샤오엔이면 원세강이랑 스캔들 났던 그 배우 아니냐???

└맞음.

└현재 진행 중.

└ing라고???

└SNS 계정 돌려받은 샤오엔이 가끔 이상한 글 올리고 있음. ㅋㅋㅋ- 샤오엔이랑 스님이랑 진짜로 뭐가 있는 건 아닌가 보네. 진짜 두 사람이 사귀는 거였으면 펑황 엔터가 스타탄생이랑 합작했을 거 아냐?

└그건 아님. 스본이 그럴 리가 없다.

└나도 이건 아니라고 봄.

* * *

TOP 미디어의 김승민 대표는 펑황의 투자로 만들어지는 드라마의 대본을 보며 혀를 찼다.

“박상용 실장. 그러니까 대본을 수정하라고 펑황에서 요구했다는 거죠?”

“예. 대표님.”

“대만 로케가 불만이라고요?”

“중국 상해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참나. 아무리 투자자지만 이런 식으로 관여를 한다고요?”

김승민은 처음부터 펑황과의 합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LOK가 대탈출의 실패 때문에 크게 흔들리고 있어서 그도 어쩔 수 없이 합작을 받아들였다.

“김 대표님. 하지만 상해에서 찍게 되면 펑황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제작비가 세이브될 겁니다. 그건 장점이죠.”

“그래도 이렇게 끌려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어차피 합작으로 두 작품만 하면 되니까요.”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LOK 배우들이 총출동합니다. 주인공은 김선우고요.”

“김선우가 오케이 하던가요? 대탈출의 실패로 다시는 TOP 미디어의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학을 뗐다던데요?”

“펑황이 제작비를 퍼줘서 출연료가 역대급입니다. 돈을 보더니, 마음을 바꾸더군요.”

김승민의 눈에 씁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김 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투자가가 펑황일 뿐 드라마는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 드라마니까요.”

박상용의 말대로 그들이 만드는 건 한국 드라마였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 * *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 앞은 아침부터 레드카펫이 깔렸다.

문 씨어터의 첫 번째 공식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돌비 극장 근처에 샵을 대여한 우리는 이곳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레드카펫을 밟을 계획이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서이렌이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긴장한 채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옆에 앉아서 잡지를 보던 그렉이 나를 보며 웃었다.

“세강도 긴장을 하네요.”

“그럼요. 나도 사람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행사에 가 봤지만, 오늘은 기분이 남다르네요.”

“한국 분위기가 별로라서요?”

“그렉이 그런 것도 압니까?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요.”

“관심은 없지만 대충 봐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보이더군요. 제가 머리가 좋아서요.”

그렉은 평소보다 유달리 잘난 척을 하며 내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그렉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렉. 잡지도 보내요. 논문이랑 신문만 보는 줄 알았죠.”

나는 그렉이 보고 있던 잡지를 힐끔 쳐다봤다.

그렉은 당황해서 보던 잡지를 덮었는데 나는 이미 그가 아샤의 사진을 보고 있는 걸 확인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그렉은 자주 미국에 갔다.

그가 미국에 갈 때마다 아샤를 만났다는 걸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아샤와 연락하는 서이렌이 말해 준 거다.

연구소에 일이 있어서 간다더니 그 일이 아샤와 관련된 일이었을 줄이야.

“세강. 왜 그렇게 웃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렉과 아샤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야겠다.

그때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샵에 있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도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내 눈에 레드카펫 의상으로 갈아입은 서이렌이 보였다.

서이렌은 얀이 만들어 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디오티마에 나오는 제복을 모티브로 한 특이한 모양의 드레스였다.

짙은 청록색의 드레스는 서이렌의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길게 트여 있었는데 서이렌은 힐이 아닌 워커를 신고 있었다.

제복 스타일의 드레스에다 워커라니.

남자인 내가 봐도 환상적이었다.

나는 홀린 듯 일어서서 서이렌에게 걸어갔다.

서이렌은 오늘 짙은 빨간색 립스틱을 발랐는데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에 나는 다시 그녀에게 반할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시죠. 서이렌 배우님.”

서이렌은 말없이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 * *

“팡닌. 어때요? 잘 어울려요?”

샤오엔의 드레스를 확인한 팡닌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샤오엔은 프릴이 겹겹이 달린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치마는 프릴을 몇백 겹이나 덧대 만들어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치마는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 드레스 자락으로 만든 노란 길이 생겼다.

“환상적이야. 샤오엔. 오늘 레드카펫에 가면 우리 샤오엔밖에 보이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튀는 의상을 구해다 준 거예요?”

“미국계 중국인 디자이너인 저우씽이 샤오엔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거야. 자금성의 황금색 지붕을 상징하는 거지.”

거대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샤오엔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입었던 어떤 드레스보다 오늘 입은 드레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샤오엔은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요. 팡닌. 빨리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 * *

돌비 극장에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 씨어터의 주연 삼인방인 콜린 스미스, 이안 밀러, 일레인 제이가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안 밀러는 문 씨어터에 나온 광기에 물든 감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진중한 모습이었다.

에릭 역의 콜린 스미스는 멋들어진 수트 차림으로 그를 보러 온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이안 역의 일레인 제이도 콜린 옆에 붙어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때 레드카펫이 시작되는 곳에 리무진이 도착했다.

아티스틱에서 우리를 위해 보내 준 리무진이다.

문이 열리자 짙은 청록색 제복 드레스를 입은 서이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등장하자 레드카펫이 술렁거렸다.

입구 쪽에는 기자와 카메라가 없었고 스타를 구경하러 온 팬들이 대다수였다.

그중에는 서이렌의 열성 팬도 있었지만, 그 수가 적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여신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누구지?”

“문 씨어터에 저런 배우가 나왔나?”

“루나 아닌가? 루나 같은데?”

“맞아. 승무원 중의 한 명인 루나야.”

“저 사람이 루나라고?”

팬들은 예고편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루나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루나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후즈 모델인 루나 맞네. 와. 진짜 모델 같다.”

“의상도 너무 멋지다. 문 씨어터에 나오는 제복 같아.”

팬들은 핸드폰을 들어 서이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이렌이 한 걸음 한 걸음 레드카펫을 내디딜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서이렌은 마치 신도들을 이끄는 교주 같아 보였다.

서이렌은 기자와 카메라가 즐비한 곳으로 사라졌고 그녀를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이도 있었다.

그때 레드카펫 입구에 또 다른 리무진이 도착했다.

리무진이 열리자마자 거대한 치마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색 치맛자락의 너무 비대해서 리무진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팡닌이 먼저 내려서 치마를 정돈했고 샤오엔은 힘겹게 리무진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붉은색 레드카펫 위에 샤오엔이 섰다.

그녀의 비대한 노란색 드레스는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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