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21화 (222/261)

#221화. 천적

엘리베이터 앞에 선 샤오엔은 핸드폰을 열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자료를 재차 확인했다.

‘시티타워 십오 층 전체가 스타탄생이구나.’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하자마자 샤오엔이 냉큼 올라탔다.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누군가 타 있었다.

샤오엔은 십오 층 버튼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스타탄생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하지만 스태프라고 하기엔 남자는 눈에 띄게 꾸민 모습이었다.

‘머리도 미용실에서 했고, 베이스 메이크업도 했네? 뭐야? 손톱 관리까지 받았어. 대체 누구야?’

샤오엔은 그제야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 스타탄생 소속 배우였어. 그런데 어째 배우가 우리 원 대표님보다 못하네. 하긴 우리 원세강 대표님이 좀 사기캐이긴 하지. 너무 잘났잖아.’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십오 층에 도착했고 남자가 먼저 내렸다.

샤오엔이 따라 내리자 앞서 내렸던 남자가 획 되돌아섰다.

그는 느끼하게 웃으며 샤오엔을 바라봤다.

선글라스를 벗던 샤오엔은 그가 쳐다보자 화들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나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어떻게 오셨죠?”

남자의 물음에 샤오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오엔은 핸드폰을 열어 번역 앱을 켰다.

샤오엔이 앱에 하고 싶은 말을 입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가온 남자가 그녀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샤오엔은 그가 내민 것이 명함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선글라스를 벗기 전부터 알아봤습니다. 눈이 아름다우시네요. 혹시 연예인 지망생인가요?”

“…….”

“그 마스크 좀 벗어 봅시다.”

한지욱이 다가오더니 샤오엔의 얼굴에 손을 내밀었다.

샤오엔은 화들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了??(당신 미쳤어)?”

다가오던 한지욱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연예인 지망생의 입에서 중국어가 나오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중국인…… 입니까?”

샤오엔은 한지욱이 건넨 명함을 바닥에 찢어 버리고는 그를 밀치고 걸어갔다.

한지욱은 놀란 얼굴로 샤오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가 보니 샤오엔이 LOK라고 크게 쓰여 있는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LOK와 스타탄생이 전혀 다른 회사란 걸 알게 된 샤오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스타탄생이 시티타워고 그 맞은편에 있는 쌍둥이 빌딩에 LOK가 있다고? 그럼, 내가 전혀 다른 건물로 찾아온 거였네? 어쩐지 별 미친놈을 만났나 했더니. 재수 없어.’

샤오엔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획 돌아섰다.

뒤돌아선 샤오엔은 거침없이 걸어오던 한지욱과 딱 부딪혔다.

어쩌다 보니 그녀가 한지욱의 가슴팍으로 돌진한 모양새가 돼 버렸다.

샤오엔은 화들짝 놀라서 그를 두 손으로 밀쳐 냈다.

그녀에게 가슴팍을 맞고 나가떨어진 한지욱이 복도를 나뒹굴었다.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변태!!!)”

“뭐라고요?”

“?蛋! 想死??(나쁜 놈아! 죽고 싶어?)”

한지욱은 중국어를 몰랐지만 눈앞의 여자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좋은 뜻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봐. 당신, 대체 뭐야?”

그 순간 열받은 샤오엔이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샤오엔의 얼굴을 본 한지욱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녀를 응시했다.

샤오엔은 마스크를 벗은 김에 큰 소리로 외치여 한지욱의 가슴을 다시 한번 쳤다.

“?!(꺼져!)”

넋을 놓고 샤오엔을 쳐다보고 있던 한지욱은 샤오엔의 한 방에 넘어져 복도를 나뒹굴었다.

샤오엔은 다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 이봐요!”

한지욱이 그녀를 부르자 샤오엔은 몸서리치며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연타로 눌렀다.

마침 다른 쪽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LOK 직원들은 복도에 쓰러져 있는 한지욱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샤오엔을 쫓으려고 일어서던 한지욱은 갑자기 나타난 LOK 직원들에게 둘러싸였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좀 비켜봐요. 일어납시다.”

“대표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기 엘리베이터 좀 잡으라고!”

한지욱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샤오엔이 탄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닫혔다.

* * *

청산도는 무인도로 낚시꾼들의 천국이다.

NGB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MT 촬영을 위한 집을 지었다.

벌써 세 번째 촬영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이미 캐릭터가 확고하게 잡혀 있었다.

만능 요리사인 서이렌이 요리 담당이었고 김이솔이 보조 요리사.

윤이슬은 힘 담당이라면 이락은 그 옆에서 잡일을 했다.

이번이 첫 촬영인 정희진이 의외로 만능 재주꾼이었다.

아버지의 백반집을 도와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공백을 메꿨다.

스태프들과 섞여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강진석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세강아. 넌 이제 정말 방송 출연은 안 할 거야?”

“이제 스타탄생 배우들이 많아져서 제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는 형님도 이제 MT 촬영에서 빠지기로 하셨잖아요.”

“나와 너는 다르지. 나를 원하는 팬들이 없잖아. 하지만 네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네가 나오길 바라고 있을 텐데?”

“제 팬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타메이커도 이제 옛말이죠.”

“무슨 소리야? 넌 유입이 꾸준하다고.”

“유입이요?”

“네 말대로 방송 출연이 뜸하니까 인기가 사그라들 뻔했는데 중국 배우랑 열애설이 터지고, 그렉이랑 파파라치 사진도 찍히면서 다시 살아났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지 마. 너도 너한테 온 방송 출연 오퍼를 봤잖아. 심지어 웹드라마 대본까지 있던데?”

방송 출연은 그렇다 치는데 대본이 또 들어온다고?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제가 발연기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라도 해야 할까요? 대체 왜들 그런답니까?”

“하하하. 그거 재미있겠다. 그럼, 한 편 골라서 출연해 봐. 그래야 사람들이 알지.”

강진석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때 최욱환 PD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최욱환의 생글거리는 미소를 보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께름칙했다.

“원 대표님. 강 이사님.”

“최 PD는 왜 그렇게 웃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강진석의 물음에 최욱환이 대본을 들이밀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가 건네는 대본을 받아 들었다.

“오늘 바다낚시를 하려고 준비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급하게 다른 아이템으로 대체를 했습니다.”

날씨 때문에 준비한 촬영을 못 한다는데도 저렇게 웃는다고? 이상한데???

강진석이 대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 PD. 마피아 게임을 하려고?”

“맞습니다. 마피아 게임을 해서 촬영 분량을 메꿔 보려는데 참가인원이 너무 부족해서요.”

“……?”

나와 강진석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최욱환을 바라봤다.

최욱환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게임이 더 재미있는 법이라서요.”

마피아 게임이라.

대학교 MT 때 해 본 적이 있다.

우리 리얼리티 이름이 MT이니 적절한 게임이긴 했다.

강진석이 반기며 일어섰다.

“마피아 게임? 그거 좋지. 재미있겠는데?”

“강 이사님은 잘하실 거 같아요.”

“당연하지. 내가 이런 류의 게임은 타고났어. 세강아. 너도 할 거지?”

“저도요?”

“오늘 촬영을 접게 생겼다잖아.”

“흠.”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강진석과 달리 나는 마피아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가자, 세강아. 스태프들이 우리만 기다리고 있다.”

강진석이 웃으며 나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강진석에게 이끌려 촬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샤오엔이 낙담한 얼굴로 시티타워에서 나왔다.

쌍둥이 건물에서 나와서 곧바로 건너편 시티타워로 간 샤오엔이 본 것은 굳게 닫힌 사무실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스타탄생은 오늘부터 사흘간 전사 휴가였다.

‘간신히 받은 휴가인데 망했어. 내가 팡닌을 어떻게 따돌리고 온 건데. 대표님 얼굴은커녕 이상한 놈이나 만나고.’

샤오엔은 울고 싶었다.

원세강이 자신은 임자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갈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천천히 인연을 쌓아 보려고 한국까지 찾아온 것인데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샤오엔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샤오엔이 핸드폰을 확인하니 팡닌이었다.

한국에 온 걸 들킬까 봐 전화를 받지 않으려던 샤오엔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샤오엔. 어디야?]

“그냥 밖이야.”

[어디로 갔어? 부모님 댁에도 안 갔다면서?]

“친구네 집에 왔어.”

[친구 누구? 거기가 어딘데?]

“일 년 만의 휴가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알았으니까 내 전화는 씹지 말고 받아.]

“잔소리 좀 그만 좀 해. 팡닌. 그런데 왜 갑자기 전화 한 거야?”

[다른 게 아니라. 문 씨어터 홍보 때문에 그래.]

문 씨어터라는 말에 낙담해 있던 샤오엔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가 중국 시사회 말고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시사회도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며?]

“응. 맞아. 가능해?”

[트로이에 우리 의견을 전달했어. 그런데 그러려면 드라마 촬영 일정을 조정해야 해.]

“하면 되지.”

샤오엔은 월드 프리미어를 돌면 반드시 원세강과 재회하리라 생각했다.

[샤오엔한테는 좋은 기회야. 이렇게 된 김에 차기작은 할리우드 영화를 고려해 보자고.]

“고마워. 팡닌. 역시 팡닌은 매니저로서 최고야.”

[너무 싸돌아다니지 말고 휴가 끝나면 보자.]

“알았어. 팡닌.”

전화를 끊은 샤오엔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국에 온 일이 허탕으로 끝났지만, 월드 프리미어 행사 때 원세강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좋아.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샤오엔은 콧노래를 부르며 뒤돌아섰다.

* * *

청산도의 촬영장에서는 한창 마피아 게임을 촬영하고 있었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끅끅대며 고개를 숙였다.

최욱환도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입을 틀어막고 메가폰을 잡고 있었다.

구경하는 스태프들이 이럴 정도인데 촬영을 하는 배우들은 어떨까?

배우들은 차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에 나는 손에서 땀이 났다.

망했구나. 내가 마피아인 게 들킨 건가?

나는 어찌할 줄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부터 들킨 거지?

배우들은 웃음을 참으며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나 아까부터 나한테만 질문을 하는 게 확실히 내가 마피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바에는 그냥 내가 마피아라고 확 고백할까?

대놓고 내가 마피아라고 고백하면 사람들이 혼란스럽겠지?

결심한 나는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나를 보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사실은 제가 마피아입니다.”

“큭.”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강진석이 쓰러져서 바닥을 굴렀다.

강진석을 시작으로 게임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미친 듯이 웃어 댔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최욱환 PD를 쳐다봤다.

최욱환은 대박이라며 이게 방송에 나가면 끝이라며 조연출과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망했다.

정말로 망했다.

* * *

한지욱은 낮에 만났던 중국인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감이 좋아. 이번 일이 잘될 거라는 신호인가?”

한지욱은 대탈출로 위태로워진 그의 입지를 이번 계약을 성사시킴으로써 한 방에 역전할 생각이었다.

제안서를 챙긴 한지욱은 눈빛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은퇴했던 한성제는 오늘도 LOK에 출근해서 일을 보고 있었다.

한지욱은 그가 있는 대표실 옆 방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접니다.”

“회사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한성제는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한지욱을 대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다른 사람들처럼 왕 대표님이라고 부를까요?”

한지욱이 투덜거리자 한성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됐어. 왜 온 거야?”

“보여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영화 쪽은 아니겠지? 미디어는 이제 손을 떼라고 했을 텐데.”

“그런 게 아닙니다. 보시고 말씀하세요.”

한지욱은 준비한 서류를 한성제에게 건넸다.

한성제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한지욱이 건넨 종이를 펼쳤다.

이내 한성제의 눈빛이 바뀌었다.

“펑황이 한국에 진출한다고?”

“맞습니다. 펑황은 할리우드 영화사인 트로이에도 투자한 거대 기업입니다. 펑황이 한국에 그들이 운영하는 동영상 플랫폼을 런칭하고 합작할 한국 회사를 찾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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