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사랑받는 대표님
윤조는 한국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엊그제 미국으로 돌아갔다.
대표실로 들어온 강진석이 웃으며 말했다.
“세강아. 윤조 씨가 경제지랑 인터뷰했다는 소식 들었냐?”
“들었습니다. 그때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 소문이 났나 봐요. 연예지에서 하도 인터뷰 요청이 많이 와서 뭐 하나는 꼭 해야 했나 봐요.”
“와. 내놓으라 하는 연예지를 다 마다하고 경제 잡지에서 인터뷰도 하고. 정말 멋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결혼식 날 있었던 일이 그냥 조금 소문이 난 게 아니던데? 모르는 사람들이 없어. 한지욱이 윤조한테 들이댄 일까지 다 알더라고.”
“기자들이 쫙 깔렸었잖아요.”
“LOK 직원들이나 한지욱이나 윤조 씨가 아티스틱 부사장이라니까 표정부터 달라지더라. 암튼 웃기는 놈들이야. 특히 한지욱. 걔는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망신 뻗치는 일만 벌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한성제 왕 대표님도 못난 자식놈 때문에 골치깨나 아플 거다.”
한지욱은 TOP 미디어의 대표 자리에서도 쫓겨났다고 들었다.
하긴 대탈출이 거하게 망해서 LOK에 끼친 손해도 막심할 거다.
“한지욱이랑 같이 왔던 놈은 봤어?”
“곽청기요?”
“알고 있었어?”
“예.”
한지욱도 싫은데 곽청기는 더 싫다.
내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본 강진석이 웃으며 말했다.
“곽청기가 거기 온 게 기자들한테 걸려서 이니셜 기사가 났나 봐.”
“그래서요?”
“곽청기를 파면된다더라. 해직 보임 상태였는데 결혼식 뒤풀이에서 또 여자배우들한테 찝쩍댔나 봐.”
“가지가지 하네요. 잘됐네요. 영화진흥협회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맞아. 잘됐어.”
나는 서류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플릭스에 가는 거야?”
“맞습니다.”
“저승사자 시놉시스가 나왔다는 말은 들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내가 나가려는데 강진석이 나를 붙잡았다.
“NGB 최욱환 피디한테 연락이 왔어.”
그렇구나. 일이 너무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MT 때문인가요?”
“맞아. MT 기획안을 보내왔어. 이번에는 섬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MT 1편처럼요?”
내 머릿속에 스타탄생 식구들과 함께 복사도에 다녀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서이렌과 함께 나무에 소원을 빌었는데.
나는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좋네요. 유플릭스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해요.”
“그래. 잘 다녀와라.”
* * *
유플릭스 한국 지사에 박호중 감독이 나타났다.
박호중 감독은 차기작 때문에 회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로비에 유플릭스 대표작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박호중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히트작들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조만간 이곳에 내가 만든 드라마의 포스터도 걸리겠군.’
입가에 미소를 띤 박호중의 눈에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대형 포스터가 보였다.
유플릭스 독점작, 작은 아씨들의 포스터였다.
최근에 가장 히트했던 드라마라서 그런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호중 감독은 포스터의 하단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이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작은 아씨들
감독: 이윤기
작가: 서주희]
“기분이 확 잡치네.”
박호중은 이윤기와 서주희의 이름을 보자마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서주희 작가를 쫓아 버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아니. 처음부터 서주희 작가를 데려오지 말고 우연미로 밀고 갔어야 해.”
박호중은 우연미를 버리고 서주희를 이윤기 감독에게 빼앗았던 일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원기획대로 우연미와 작품을 했다면 내가 지금 이윤기 감독의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괜히 그때 우연미를 찼어.’
박호중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박호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오늘 만날 유플릭스 직원이었다.
“예. TOP의 박호중 감독입니다.”
통화를 하는 박호중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요? 하지만 분명히 4시에 만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요. 그럼, 다른 날로 다시 시간을 잡을까요?]
유플릭스 담당자의 말에 박호중이 놀라 말했다.
“아뇨. 그럴 수는 없죠.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주실래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기다릴까요?”
[구 층으로 와 주세요.]
“예. 곧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호중은 짜증을 냈다.
“자기들이 갑이라 이거지? 계약만 해 봐라. 그때부터는 내가 갑이고 너희가 을이야.”
박호중은 화난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지하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로비 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박호중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보이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만나기 힘들다는 유플릭스 대표인 최동석이었다.
박호중은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 대표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박호중을 보며 최동석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최동석 대표는 박호중을 알지 못했다.
박호중은 빠르게 최동석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TOP 미디어의 박호중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최동석 대표가 사무적으로 박호중 감독의 인사를 받았다.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탄 박호중은 그제야 안에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음을 발견했다.
박호중은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당신들은……?”
원세강, 이윤기, 윤서혁 그리고 서주희 작가가 함께 박호중을 보고 있었다.
이윤기 감독이 다정한 목소리로 박호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박호중 감독이군. 오랜만이야. 유플릭스에는 웬일인가?”
이윤기 감독은 사심 없이 박호중을 보고 반가워서 물은 거였지만 박호중은 이윤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흠칫 놀랐다.
박호중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유플릭스 대표 최동석은 그런 박호중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몇 층으로 가시나요?”
“예?”
“몇 층으로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아. 그게.”
박호중이 당황해서 말을 못 하자 내가 나섰다.
“TOP 미디어 박호중 감독님이십니다. 아마 구 층에 가는 길인 거 같네요. 맞죠? 감독님.”
“……예.”
박호중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호중은 구 층 버튼을 누르고 우리의 목적지를 확인했다.
십이 층, 최상층의 버튼에 불이 들어온 걸 본 박호중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TOP 미디어에 요즘 우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최동석 대표의 한마디에 박호중이 움찔했다.
“구 층에 오신 걸 보니 유플릭스와 작품을 논의 중의 신가 본데.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게요.”
“예. 감사합니다.”
구 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박호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렸다.
박호중은 내리고 나서야 급하게 최동석 대표를 불렀다.
“최 대표님. 다음에 좋은 일로 다시 만나…….”
하지만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자신을 싸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서주희 작가와 눈이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넓은 복도에 박호중이 홀로 남았다.
박호중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씨발. 어떻게 그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지? 그것도 최동석 대표 앞에서?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제길.”
박호중 인생에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가 무시했던 노장 감독 이윤기는 재기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그가 내쳐 버린 서주희 작가는 신작으로 보란 듯이 성공했다.
서주희가 쓴 작은 아씨들은 최근 유플릭스 한국 콘텐츠 중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망할. 오늘 약속을 잡지 말았어야 했어. 재수가 없으려니 이렇게도 엮이는군.”
박호중은 한동안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그곳에 서서 멍하니 엘리베이터만 바라봤다.
* * *
최동석 대표는 우리가 준 시놉시스와 기획안을 꼼꼼히 살폈다.
기획안을 정독한 최동석이 웃으며 그것을 내려놨다.
“좋은 기획이네요. 이대로만 나와 준다면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최동석에게 부연 설명을 했다.
“윤서혁 감독님이 저승사자의 초고를 영화 시나리오로 쓰셨고 그걸 서주희 작가님께서 드라마로 바꾸고 계십니다. 원하시면 조만간 대본도 보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작은 아씨들로 함께 일하며 스타탄생이 어떻게 일하는 회사인지는 잘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아니고 윤서혁 감독님과 서주희 작가님께서 공동으로 쓰신 작품인데 당연히 좋겠지요. 안 보여 주셔도 됩니다.”
“믿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타탄생의 신작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건 감독님과 작가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최동석 대표는 이윤기와 윤서혁 그리고 서주희 작가를 차례대로 바라봤다.
“그러셨군요. 괜히 열심히 준비해 왔네요.”
나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원세강 대표님은 귀국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일에 복귀하셨군요.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작품은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준비해 주신 거고 저는 그냥 커피나 마실 겸 따라온 겁니다.”
내가 웃자 이윤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원세강 대표가 이렇게 든든합니다.”
윤서혁도 질세라 말을 보탰다.
“사실은 이 작품을 영화 시나리오로 처음 써서 보여 드렸을 때 원세강 대표님이 시즌제 드라마로 해 보면 어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요?”
“서주희 작가님과 상의하며 드라마로 대본을 고치고 있는데 원세강 대표님의 의견이 맞더라고요.”
최동석 대표의 눈에 이채가 떴다.
“역시 소문대로 작품을 보는 통찰력이 좋으시군요.”
주위에서 너무 띄워 주니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구원의 밤의 주인공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 것도 원세강 대표님의 의견이라고 들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작품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저를 띄워 주시는 겁니까?”
내가 어색하게 웃자 서주희 작가까지 거들었다.
“맞습니다. 최 대표님. 우리 원세강 대표님은 작품도 잘 봐주세요. 작가가 마음 편하게 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분이세요.”
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건지.
나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이렇게 직원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는 대표라니요. 꿈의 대표님이네요.”
최동석이 우리를 보며 껄껄 웃었다.
나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 * *
윤조의 인터뷰가 실린 경제 잡지가 발행되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 윤조면 10년 전에 은퇴한 그 여배우인가?
- 대박이다. 아티스틱이면 콜린 스미스가 있는 회사잖아.
- 언니 존멋으로 변했네. 예전에는 귀염상이셨는데 지금은 카리스마 뿜뿜하는 것 좀 봐라.
- 윤조 언니 팬이었는데 눈물 난다. ㅠㅠㅠㅠㅠ 언니 미국으로 내쫓기듯 이민 간 일로 내 가슴에 한이 서렸었는데. ㅠㅠㅠㅠㅠ- 윤조. 내 첫사랑. ㅠㅠㅠㅠㅠ- 윤조 언니가 행복하다니 너무 좋다.
- 윤조의 홈이라는 팬카페 알아? 나 거기 회원이었었는데.
└나도 거기 회원이었음.
└윤조 언니가 그 카페에 자주 글 남겨 줬었는데. ㅠㅠㅠㅠ- 숨어 있던 윤조 팬들 여기서 정모하냐?
- 너희 윤조 손에 껴 있는 반지 봤어?
- 저렇게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어떻게 못 보냐. 윤조 결혼했나 봐. ㅠㅠㅠㅠ- 인터뷰 보면 결혼은 아니고 약혼했대. ㅅㅂ 언니 결혼하지 마. ㅠㅠㅠㅠ- 윤조가 지금 사는 곳이 베벌리 힐스래. 거기가 부자들만 사는 부촌 아님?
- 아티스틱 부사장님이시다.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만도 수십억은 할걸?
- 진짜 사람 인생은 끝까지 가 봐야 해. 십 년 전에 스캔들 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윤조는 국민 역적이었고, 다들 티아모만 쉴드 쳐 줬었는데. 이제 티아모는 보이지도 않잖아.
- 걔들은 다른 병크가 하도 많아서 나락 간 거고. 우리 윤조 언니는 본인 능력으로 일어선 거고. ㅋㅋㅋㅋ- 인터뷰에 깨알같이 등장하는 원세강. ㅋㅋㅋㅋ 윤조가 원세강 대표님을 진짜 많이 의지했나 봐.
- 원세강 대표님이랑 일했던 배우들은 다 우리 대표님 칭찬만 한다.
- 하긴 머나먼 타국의 배우도 한 번에 홀리심. ㅋㅋㅋ- 요즘 샤오엔 SNS는 잠잠하냐??
- 핸드폰이라도 뺏겼는지 한동안 웨이보에 아무 글도 안 남겼는데 최근부터 다시 시작한 듯.
- 소속사 눈치가 보이는지 사진만 올리는데. 그것도 다 짝사랑 관련 사진임. ㅋㅋㅋㅋ- 그것 때문에 중국 팬들이 원세강이라는 남자를 데리고 오라고 한대. 당장 데리고 와서 중국에 귀화시키라고. ㅋㅋㅋ- 원세강이 왜 중국에 가냐? 미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 원세강은 우리 꺼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