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십 년 만의 외출(2)
윤조는 지금 신부 대기실에 가 있고 나와 강진석이 근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강아. 어떻게 된 거야? 윤조 씨랑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고 지낸 거야?”
“저도 최근에 다시 연락이 닿았어요.”
“어떻게?”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윤조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내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진석이 아무 말 없이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수다스러운 그가 입을 다물자 되레 내가 놀랐다.
“왜 그렇게 보세요?”
“세강아. 너 혹시 말이야.”
“뭘요?”
“너 혹시 다시 윤조랑 만나는 거니?”
“예?”
나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
“형님. 뭘 잘못 드셨어요?”
“아냐?”
“당연히 아니죠.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가 단호하게 부인하자 하자 강진석의 눈썹이 축 내려갔다.
“아니구나. 난 또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줄 알았지.”
강진석은 아직 윤조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세강아. 윤조 씨는 어째 지금이 더 예뻐진 것 같다. 뭐랄까? 예전에는 없던 매력이 보여.”
“예전에도 윤조는 아름다웠습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씨도요.”
“그렇긴 한데 예전에는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순수함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뭔가 강인하고 단단해 보여.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강진석은 루머로 고통받다가 어린 나이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가녀린 윤조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때 신부 대기실에서 나오는 LOK 직원들이 우리를 지나치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대기실에서 윤조 봤어?”
“윤조였어? 어쩐지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니까. 십 년간 쥐 죽은 것처럼 지내더니 갑자기 웬일로 다시 나타나셨대?”
“다시 복귀하려는 건가?”
“복귀는 무슨. 연예계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제 나이도 있는데 어떻게 복귀하겠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외모는 잘 관리했더라. 삼십 대 중반으로는 안 보이던데? 오늘 입고 온 스타일도 괜찮고.”
그때 옆을 지나치던 기자가 끼어들었다.
“김 기자님. 오셨네요.”
“박 매니저님. 방금 윤조 이야기하셨죠?”
“예. 김 기자님도 윤조 온 거 보셨어요?”
“아까 스타탄생의 원세강 대표랑 함께 오던데요?”
“원세강 대표랑요?”
LOK 직원들은 원세강이라는 이름을 듣자 놀랐다.
김 기자는 그들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윤조가 배우로 다시 복귀하려나 봅니다.”
“어떻게요?”
“원세강이 거물이 됐잖아요. 복귀는 껌이죠.”
“하. 그렇구나. 원세강 대표 빽을 믿고 나타난 거군요. 어쩐지 십 년간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뭐가 있나 싶었습니다.”
나와 강진석은 윤조에 대해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드는 LOK 직원과 기자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커다란 대리석 기둥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그들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계속 윤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참지 못한 내가 나서려고 하자 강진석이 내 팔을 잡았다.
강진석은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침 떠들던 기자가 배우들이 온 걸 보고 사라졌다.
내가 나서면 윤조가 더 불편해할까 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사라지자 LOK 직원들은 다시 윤조 이야기를 했다.
“그거 알아? 윤조가 신인 배우로 잘 나갈 때 미국에서 공부하던 한지욱이 한국에 들어와서 윤조 꼬셨던 거?”
“한 대표가 그랬다고?”
“너는 LOK에 입사한 지 오 년밖에 안 돼서 잘 모르겠지만 한지욱이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왔거든. 그때마다 친한 친구들을 데리고 LOK에 놀러 왔었어. 괜찮은 신인 배우들 없나? 탐색하려고.”
“한지욱은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랬었구나.”
“암튼 그때 한지욱이 신인 배우였던 윤조에 눈독 좀 들였을 거야. 물론 걔가 철벽 방어를 해서 못 건드렸지만 말이야.”
“걔가 누군데?”
“누구긴 원세강이지. 당시 윤조의 매니저가 원세강이었거든.”
“원세강도 매번 잘나갔던 건 아니었네. 윤조는 쫄딱 망했잖아.”
“원세강이 LOK 다닐 때는 호구에 쪼랩이었어. LOK 그만두고 잘나가는 거지. 윤조도 잘나가는 원세강에 다시 붙으려고 하는 거 보니 진짜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나는 저들이 더러운 입을 놀리는 걸 더는 들어 줄 수가 없어서 반대편 기둥으로 뛰쳐나갔다.
난데없이 내가 나타나자 입을 놀리고 있던 LOK 직원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원세강 대표님…….”
나는 갑자기 입을 꼭 다문 그들을 노려봤다.
마침 신부 대기실에서 나온 윤조는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오빠. 여기서 뭐 해?”
윤조는 그녀를 험담했던 LOK 직원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박 매니저님. 안녕하셨어요?”
“아. 예.”
그는 윤조가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찔리는 게 있는지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
나는 윤조를 보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물었다.
“윤조야. 휴가를 길게 낸 거야? 아티스틱에선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할 사람이 이제 없어.”
“왜?”
윤조는 웃으면서 가방을 열어 명함을 꺼내 네게 건넸다.
윤조는 앞에 서 있는 LOK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명함 몇 장을 더 꺼내 그들에게도 건넸다.
나는 윤조의 명함을 먼저 확인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녀의 명함을 받았는데 또 준다는 건 분명 다른 뜻이 있어서일 거다.
아니나 다를까 명함에는 그녀의 새로운 직함이 찍혀 있었다.
[Executive Vice President]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부사장으로 승진했구나.”
“응. 작년에 실적이 좀 좋았거든.”
눈앞의 LOK 직원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분명히 아티스틱 에이전시의 부사장이라고 명함에 적혀 있었다.
강진석이 놀라서 윤조에게 물었다.
“윤조 씨. 혹시 아티스틱이 내가 아는 그 아티스틱입니까?”
“맞아요. 강 이사님.”
강진석이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강진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미국에 있는 삼 대 에이전시 중의 하나인 아티스틱의 부사장님이 바로 여기 있는 윤조예요.”
“와. 대박이네요. 윤조 씨. 아티스틱 부사장이 한국인이라니. 정말 놀랍네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강 이사님.”
“악수 한번 합시다. 윤조 씨. 내가 언제 아티스틱 부사장이랑 악수해 보겠어요?”
강진석이 능글맞게 웃으며 윤조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조는 그런 강진석을 보며 웃으며 악수를 해 줬다.
윤조를 씹던 LOK 직원들만 얼굴이 노랗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우리가 너무 떠들었던지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모여서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며 놀라고 있었다.
“윤조가 아티스틱 에이전시 부사장이라는데요?”
“거기 되게 유명한 에이전시 아닌가요?”
“맞아요. 할리우드 소식에 많이 나오잖아요.”
“어쩐지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멋있게 변했더라고요. 진짜 멋있네요.”
윤조가 성공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기쁜 걸까?
나는 윤조가 부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LOK 직원들을 보며 윤조에게 말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
“응. 오빠. 가자.”
윤조는 자연스럽게 내게 팔짱을 꼈다.
우리가 로비를 가로질러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이 사람들이 길을 터 줬다.
* * *
우리는 지금 결혼식장 테이블에 앉아 있다.
결혼식은 끝났고, 우리는 화장실에 간 강진석을 기다리고 있다.
“오빠. 아까 일부러 그런 거지?”
“응?”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런 거잖아.”
윤조는 나를 보며 웃었다.
서이렌을 빼놓고는 나를 가장 많이 나는 사람이 윤조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무시하잖아. 그래서 화가 났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루머를 퍼트리잖아.”
“쳇.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오빠는 여전히 바보 같아.”
“그래서 뭐? 내가 창피해?”
“창피하지 않아. 잘했어. 나도 아까 그 직원들을 신부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대놓고 나를 무시하더라. 예전에도 그랬어. 내가 인기가 워낙에 없는 배우였잖아?”
“미안하다. 내가 그땐 너무 일을 못 했어.”
“그러게. 오빤 나한테 좀 미안해야 해. 나랑 일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지금 다 피가 되고 살이 된 거지?”
“차마 거짓말을 못 하겠다. 맞아. 그래서 너한테 미안한 게 많아.”
“됐어. 나도 잘한 게 없잖아. 실력이라도 출중했으면 위기를 기회로 일어섰을 텐데 실력도 없고, 멘탈도 쓰레기고 말이야.”
아팠던 과거 얘기를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윤조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완전히 다 떨쳐 버렸구나. 윤조야.
내가 윤조를 보며 웃고 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강진석이 꼬리에 뭔가를 달고 나타났다.
강진석이 자리에 앉자마자 한지욱과 곽청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한지욱의 옆에 서 있는 곽청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블랙 마치의 심의 문제 때문에 곽청기도 보기 싫은 건 매한가지였다.
강진석은 자신의 뒤에 그들이 따라오고 있단 걸 몰랐는지 되레 놀라서 물었다.
“한지욱 대표. 뭡니까?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강 이사님.”
한지욱은 강진석과 나를 슬쩍 보더니 이내 윤조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기 계신 윤조 씨께 할 말이 있어서 와 봤죠.”
윤조가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누구야? 오빠?”
“그냥 몰라도 되는 사람이야. 무시해.”
윤조는 한지욱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도 방학 때만 LOK에 들렸고, 한지욱의 소문을 들었던 내가 철통 방어를 하며 그가 LOK에 뜨면 윤조를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한지욱은 웃으며 윤조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윤조 씨. 저를 기억하시죠? 한지욱입니다.”
눈치가 빠른 윤조는 나와 한지욱이 상극인 걸 알고 표정부터 확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아세요? 저는 댁이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나를 모른다고요? 나 한지욱인데요?”
한지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품 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윤조에게 건넸다.
지난날 한지욱이 서이렌에게 줬던 금박이 박힌 현란한 명함이었다.
윤조는 LOK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보며 그제야 한지욱이 생각났다.
‘한성제 대표님 아들이었구나.’
나는 한지욱과 곽청기가 함께 나타난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내 앞에서 당당하게 수작질하다니 구제 불능이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조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조야. 가자. 우리 일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잖아.”
“응. 오빠. 가요.”
윤조가 일어서자 한지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무시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한지욱이 따라가려고 하자 곽청기가 그를 잡았다.
“야. 한지욱. 윤조 소개해 달라고 했던 거 취소야.”
한지욱은 버럭 화를 내며 곽청기를 돌아봤다.
“왜? 네가 소개해 달라며? 그때 못 꼬셨던 게 한이라고.”
“아까 봤지? 윤조 손에 엄청나게 큰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더라. 쟤 결혼했나 봐.”
한지욱이 고개를 돌려 곽청기를 노려봤다.
“왜 그렇게 쳐다봐? 난 유부녀는 취향이 아니야.”
한지욱은 괜히 무시당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은퇴하고 사라진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뻐기는 거야?’
한지욱이 속으로 화를 내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윤조가 아티스틱 부사장이라고? 그게 정말이야?”
“박 매니저가 명함까지 받았어. 진짜래.”
“아티스틱이 뭔데 그래?”
“미국에 있는 배우 에이전시잖아.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대거 소속되어 있는 회사야.”
“대박이네. 그런 큰 회사의 부사장이라고? 사람일은 모른다더니. 배우 은퇴하고 한국 떴을 때는 몰랐는데 십 년 만에 세계적인 회사의 부사장이 돼서 돌아왔네.”
“어쩐지 포스가 후덜덜하더라. 난 그래서 다시 배우로 복귀하나 했다.”
“근데 아까 원세강이랑 일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슨 일 이야기겠어. 당연히 그것밖에 없겠지.”
“아! 서이렌 때문이구나.”
“원세강도 대박이다. 인맥 덕을 톡톡히 보네. 부럽다.”
한지욱은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에 치를 떨었다.
‘시발. 저 새끼는 왜 저렇게 잘나가는 거야? 대체 왜 저 새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