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10화 (211/261)
  • #210화. 십 년 만의 외출(1)

    샤오엔의 방으로 팡닌이 뛰어 들어왔다.

    “샤오엔!”

    샤오엔은 팡닌을 보자마자 핸드폰을 몸 뒤로 숨겼다.

    “사오엔! 미쳤어? 내가 글 올리지 말라고 했지?”

    팡닌이 달려와 샤오엔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핸드폰에는 그녀가 웨이보에 올리려고 쓰던 글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의 오해는 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 그는 그런 것에 초연한 남자이니까. 내가 그의 곁에 있다면 좋으련만…….]

    팡닌은 샤오엔이 쓰다만 글을 보며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샤오엔. 완전 그 남자한테 푹 빠졌구나.”

    “나 때문에 파파라치 사진이 떴잖아. 우리 대표님 어떻게. 너무 미안해.”

    “샤오엔. 너 정말 큰 일이다.”

    팡닌은 삭제 버튼을 눌러 그녀가 쓰던 글을 지웠다.

    그리고 방금 올린 다른 글도 내렸다.

    샤오엔은 입술을 삐죽이며 팡닌을 바라봤다.

    “너무해. 팡닌.”

    “시끄러워. 당장 짐이나 싸. 내일부터 충칭 촬영장에 갈 거야.”

    “벌써 가는 거예요? 아직 크랭크 인 하려면 일주일이나 더 남았잖아.”

    “시끄러워. 당장 짐이나 싸.”

    팡닌은 샤오엔 핸드폰의 전원을 끄더니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팡닌? 그건 왜 챙기는 거야?”

    “핸드폰은 당분간 압수야.”

    “안 돼. 팡닌.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샤오엔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팡닌을 바라봤지만, 팡닌은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다.

    * * *

    중국발 파파라치 사진을 본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서이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고 서이렌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서이렌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렌 씨. 아무래도 오늘 못 갈 거 같아요. 나 기다리지 말고 푹 쉬어요.”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퇴근할 때 집에 잠깐 들르신다면서요?]

    “혹시 방금 뜬 내 파파라치 사진을 봤어요?”

    [봤어요.]

    “아무래도 나한테 파파라치가 붙은 거 같아요. 그것도 중국에서 온 파파라치가.”

    내가 말을 내뱉고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한테 파파라치라니.

    이렌 씨랑 열애설이 터진 거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거다.

    [그럼, 계속 못 보는 거예요?]

    “스타탄생에서 보면 되죠. 근데 당분간 이렌 씨 집에는 못 갈 거 같아요. 이렌 씨도 내 집에 올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샤오엔이 방금 SNS에 올렸다가 내린 글은 보셨어요?]

    당연히 봤다.

    인터넷에 내 이름만 검색해도 샤오엔의 글이 수백 개는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아뇨. 못 봤는데요? 샤오엔이 또 글을 올렸어요?”

    [못 봤으면 됐어요. 일부러 찾아보지 마요.]

    “알았어요. 내가 그런 걸 왜 찾아봐요. 걱정하지 마요.”

    [어휴.]

    “왜 갑자기 한숨을 쉬는 겁니까?”

    [내가 이래서 대표님을 밖으로 안 내돌린 거라고요. 대표님은 그냥 봐도 멋있지만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그동안 한국에서 방송 출연을 못 하게 해 놨더니 엄하게 다른 나라에서 난리네요. 이게 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대표님 때문인 건 알죠?]

    서이렌이 자꾸 저렇게 나를 띄워 주니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렌 씨. 그만 좀 해요. 차마 더는 못 듣겠어요.”

    [대표님. 지금 당장 영상 전화로 돌려요.]

    “갑자기?”

    [오늘 못 본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영상으로라도 봐야죠. 잘난 내 남친 얼굴 좀 봅시다.]

    서이렌이 계속 내게 플러팅을 날리니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렌 씨. 미안해요. 내가 지금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법이 어디에 있어요?]

    “내가 나중에 꼭 보상해 줄게요.”

    [정말요? 약속 꼭 지키는 겁니다. 장부에 달아 놓을 거예요.]

    “알았어요. 이만 끊어요.”

    다는 다급한 손길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식을 줄 몰랐다.

    나는 내 집에서 이런 사실도 모르고 편하게 있을 그렉을 떠올렸다.

    “가야겠다. 또 무슨 사진이 찍히기 전에 그렉 먼저 처리해야겠어.”

    나는 외투를 챙겨 입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내가 대표실 문밖으로 나서자 갑자기 근처의 모든 직원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차마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내 눈치만 살폈다.

    차마 그 파파라치 사진은 대체 뭐냐고 못 물어보는 거겠지.

    하긴 물어도 내가 무슨 답을 해 줄 수가 있겠는가?

    간신히 진정시켰던 얼굴이 다시 화르르 달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나가자 스타탄생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큰일이네요. 대표님이 진짜 화나셨나 봐요.”

    “그냥 단순한 해프닝인 줄 알았는데 파파라치까지 붙었다니. 너무 무서워요.”

    “그러니까요.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열애설이랍니까? 우리 대표님이야말로 일밖에 모르시는 분이잖아요.”

    “맞아요. 여자는 돌같이 보시는 분이 우리 대표님이시잖아요.”

    * * *

    며칠 뒤, 나는 LOK 이윤영 과장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말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거실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그렉이 있었다.

    나는 그렉의 옷차림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렉은 여전히 실크로 된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렉. 내 집에 있을 거면 그 실크 잠옷 좀 어떻게 하죠. 다른 옷은 없어요?”

    “세강. 난 이 잠옷만 입어요. 내 옷장을 한번 확인해 보라고요. 이 잠옷만 열 벌이 있으니까요.”

    “그러다 또 사진이라도 찍히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그거야 내 알 바는 아니죠.”

    그렉이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렉. 이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한국에서 지낼 집을 구해 줄게요. 이렌 씨랑 같은 빌라는 어때요? 좋지 않나요?”

    “아뇨. 난 괜찮아요.”

    그렉은 손가락을 저으며 단호하게 노를 외쳤다.

    “내가 안 괜찮다고요. 대체 왜 나랑 살겠다는 겁니까?”

    “세강의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뭐라고요?”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면 이런 사소한 재미라도 줘야죠. 나 그렉 루이를 주치의로 쓰려면 이 정도 값은 치러야죠.”

    그렉은 서이렌과 약속한 것이 있어서 한국까지 따라왔으면서도 내 속을 박박 긁었다.

    “월급을 준다고 해도 마다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안면을 싹 바꾸시네요.”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뻔뻔하게 구는 그렉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더는 입씨름 할 시간도 없었다.

    지금 나가야 결혼식장에 늦지 않게 도착할 거다.

    “와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나도 그만 일어나서 이렌 씨를 보러 가야겠네요.”

    그렉은 웃으며 자신의 방 안으로 날름 들어갔다.

    * * *

    결혼식장에 와 보니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LOK 홍보팀에서 십 년을 일한 이윤영 과장이었기에 연예계 인맥이 상당했다.

    연예부 기자들은 물론 함께 일했던 배우들과 LOK 동료들까지 많은 이들로 결혼식장이 북적였다.

    “세강아. 사람들이 다 너를 쳐다보는데?”

    강진석의 말대로 내가 그곳에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쏟아졌다.

    몇 년 전에 스타메이커에 출연했을 때와 똑같았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상황이 꽤 힘들었을 거다.

    “평소 같으면 얼굴이 새빨개졌을 텐데. 멀쩡하네?”

    “이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네요.”

    “짜식. 많이 컸네.”

    강진석은 태연하게 걷는 나를 보며 웃었다.

    “펑황이랑 연락한 일은 어떻게 됐어?”

    “그쪽에서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답니다. 중국 스타들도 자국의 파파라치 때문에 힘들다네요.”

    “하긴 중국은 진짜 어나더 레벨이더라.”

    “대신 샤오엔이 더는 SNS에 글을 올리지 못 하게 한다고 했어요. 펑황도 그건 바라지 않는 일인가 봐요.”

    강진석이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 중국 배우가 정말로 너를 좋아하는 거지?”

    “노코멘트입니다.”

    강진석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 좀 웃어요. 창피합니다.”

    “그래. 다 네가 잘난 탓이지. 누굴 탓하겠니? 그나저나 중국에서 네 인지도가 올라가서 스타탄생이 덕을 본다.”

    중국이 한한령이라며 한국 콘텐츠의 규제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이번에 구원의 밤이 중국에서 개봉하게 됐다.

    한한령이 시작된 지 육 년 만의 일이다.

    “육 년 만에 처음으로 선택된 영화가 구원의 밤인 이유가 너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더라?”

    “구원의 밤이 칼레 영화제 수상작이니까 그렇죠.”

    “아냐. 내가 보기엔 너 때문이기도 한 거 같다고. 샤오엔이라는 배우가 지금처럼 계속 SNS에 네 글을 올려 주면 좋겠는데. 아쉽다.”

    “됐어요. 그만 하세요.”

    나는 강진석에게 그만 나를 놀리라고 한마디를 했다.

    “근데 정말 샤오엔한테 전혀 관심이 없어? 한번 잘해 봐. 알아보니 정말로 유명한 배우던데? 심지어 외삼촌이 펑황 미디어 대표고 말이야.”

    “됐습니다. 저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하긴 넌 첫사랑의 상처가 너무 커서 아직도 헤매고 있지. 다시 누굴 만나 볼 생각은 없는 거야?”

    “제가 무슨 첫사랑의 상처가 있다고 그러세요?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너 그때 윤조랑 사귀었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 두 사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내가 다 봤다고.”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윤조가 오늘…….”

    내가 말을 하려는데 강진석이 내 말을 막았다.

    그는 내 팔을 꽉 잡고 놀란 눈으로 외쳤다.

    “세강아. 저 사람은……?”

    나는 어버버하며 말을 못 하는 강진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윤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윤조는 딱 떨어지는 파란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는데 사람들로 꽉 찬 그곳에서도 그녀만 보였다.

    나는 걸어오는 윤조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윤조야. 왔어?”

    “오빠는 일찍 왔네. 그런데 오빠 옆에 계신 분은……?”

    윤조의 눈이 강진석을 살피더니 이내 두 눈이 커졌다.

    “오빠? 설마 이분이 강 팀장님?”

    “맞아. 지금은 스타탄생의 강 이사님이셔.”

    강진석이 놀란 눈으로 윤조에게 다가왔다.

    “정말 윤조 배우님이신가요?”

    “맞아요. 저 윤조 맞아요. 강진석 이사님은 밖에서 만나면 모르고 그냥 지나치겠어요.”

    “하하. 내가 살이 좀 쪄서 그래요. 그런데 너무 반갑네요. 우리 십 년 만이죠?”

    “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정말 반가워요. 그런데 윤조 씨가 어떻게 여길 왔어요?”

    “윤영이 때문에 왔죠. 절친이 결혼한다는데 와 봐야죠.”

    “그렇군요. 잘 왔어요. 정말 잘 왔어요.”

    강진석은 윤조가 반가운지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결혼식장에 도착한 한지욱은 오늘도 배우 뺨치도록 화려하게 꾸미고 왔다.

    한지욱의 옆에는 그의 절친인 곽청기도 함께였다.

    영화진흥협회 이사였던 곽청기는 지금은 성추문으로 보직해임 상태다.

    한지욱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늘 만나면 함께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었다.

    한지욱이 곽청기에게 말했다.

    “내 전화는 받지도 않더니. 이제야 화가 풀린 거냐?”

    “아직 화 안 풀렸어. 집에 콕 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네 전화 받은 거라고.”

    “아버지 빽이 있어서 조만간 복직할 거라 그런지 넌 편해 보인다. 난 아주 죽을 거 같은데. 넌 인생 쉽게 산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너야말로 아버지 잘 둬서 예쁜 연예인들 쉽게 보잖아.”

    “오해야. 오늘을 봐라.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난 좋아. 결혼식장에 배우들도 많이 올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런데 대표가 이렇게 직원 결혼식에도 일일이 다 참석하는 거냐?”

    “아버지가 꼭 가야 한다고 성화 시잖아. 완전 구닥다리 꼰대 마인드야. 근데 요즘 아버지 눈치를 좀 봐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됐어. 나야 배우들 얼굴 보고 좋지. 괜찮은 애 있으면 내가 찍을 테니까 나중에 소개나 해 줘.”

    “걱정하지 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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