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08화 (209/261)
  • #208화. - 오늘 팬들이 공항에 엄청나게 몰려갔더라?

    - 서이렌이 그동안 소처럼 일해서 팬들이 반년의 공백을 못 참았다고. ㅋㅋㅋ

    - 배우한테 반년 공백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갑자기 소식 끊긴 내 배우가 생각나네. ㅠㅠㅠㅠ

    ┗서이렌 팬 해라. 서이렌은 한순간도 쉬지 않음. 안 보인다 싶으면 영화나 드라마 찍고 있음. ㅋㅋㅋ

    - 원세강 사진도 많이 올라오네. 중국 톱스타랑 스캔들 난 유명인이라 이거지. ㅋㅋㅋㅋ

    - 근데 원세강 스캔들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거임? 중국에서 난 스캔들이라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 중국에서도 난리 났어. 샤오엔인가 하는 여자가 중국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스타라더라.

    - 원 대표님. 마성의 남자. 한국인이 미국에서 중국인을 홀리고 돌아왔네. ㅋㅋㅋ

    - 한국에도 원세강 팬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잖아. 원 대표님 제발 방송 한 번만 더 출연해 줘요. ㅠㅠㅠㅠ

    * * *

    귀국한 다음 날, 나는 그렉과 함께 집에서 일어났다.

    그렉은 어젯밤 호텔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묵었다.

    “그렉은 오늘 집에서 푹 쉬어요.”

    “세강은 안 쉬고 출근하는 겁니까? 안 피곤해요?”

    “회사에서 쉬면 돼요.”

    “회사가 쉬는 곳입니까? 쉬는 건 집에서 해야죠.”

    “처리할 일이 많아서요.”

    미국에서는 편하게 입고 다녔지만, 한국은 다르다.

    내가 정장을 챙겨 입자 그렉은 그걸 빤히 지켜봤다.

    내가 재킷을 입으려는데 그렉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청진기를 보고 두말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렉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끝까지 잠가 놨던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도 안 했는데 옷을 벗는 겁니까?”

    “저는 착한 환자니까요.”

    “그렇긴 한데 외간 남자의 집에서 그 남자가 옷을 벗고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진찰이나 해 봐요.”

    “알았어요.”

    청진기를 들자 그렉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렉은 꼼꼼하게 내 몸을 살피고는 눈짓을 했다.

    “이제 그 옷 좀 그만 입읍시다.”

    “어떤가요? 이제 더는 내 몸은 안 살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세강. 생각해 봐요. 심장 안에 돌덩이가 들어가 있어요.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세강을 당장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가슴을 열어 보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

    나는 정장 재킷을 입다 말고 놀란 눈으로 그렉을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손으로 가리자 그렉이 웃었다.

    “안 잡아먹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농담입니다.”

    “그렉은 농담도 진담처럼 말하는 거 알아요?”

    “내가 원래 좀 진지하죠.”

    속을 알 수 없던 그렉은 가까이 지낼수록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포커페이스로 장난을 친다는 것이었다.

    그렉은 회색 실크 잠옷을 입은 채 나를 배웅하러 나왔다.

    “안 나와도 돼요. 들어가서 더 자요.”

    “내 환자가 귀국한 지 하루 만에 일하러 간다는데 주치의로서 마중 좀 나갈 수도 있죠.”

    “알았으니 그만 해요. 오늘은 일찍 들어올게요.”

    나는 웃으며 집에서 나왔지만 문 앞까지 나를 마중을 나온 그렉을 보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 *

    시티타워에 들어서니 살 것 같았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나는 블랙 마치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레전드 필름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마침 그곳에 내려와 있던 강진석은 나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세강아.”

    “형님. 저 왔습니다.”

    “집에서 쉬라니까. 기어이 왔네.”

    “우리 레전드 필름과 스타탄생 직원들이 궁금해서요. 집에서 쉴 수가 없더라고요.”

    “네가 한가하게 집에서 쉴 놈이 아니란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상황이나 들어 보죠.”

    “그래. 그동안 내가 얼마나 훌륭하게 레전드 필름이랑 스타탄생을 이끌어 왔는지 알려 줄게.”

    “기대됩니다.”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듣다 보니 강진석이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블랙 마치는 현재 칠백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하고 있었고, 유플릭스에서는 또 다른 작품을 캐스팅하자고 하루가 멀다고 찾아온다고 했다.

    작년 한 해 레전드 필름과 스타탄생에서 했던 작품들이 모두 잘됐다.

    강진석은 뿌듯해했고 나 역시 기뻤다.

    그런데 한 가지 내 시선을 빼앗는 것이 있었다.

    나는 레전드 필름에서 제작하는 인디 영화 ‘다락방’의 캐스팅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수연 배우가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직접 연락해 왔다고요?”

    “개런티가 아주 적을 거라고 말을 했는데도 꼭 하고 싶다고 매니저를 통해 연락해 왔어.”

    “신기하네요. 노선을 바꾼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지수연이 하겠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지금 이야기가 잘돼 가고 있어.”

    “지수연 배우면 그렇게 연기가 나쁜 것도 아니죠. 좋네요. 그럼, 이건 이대로 진행해 보죠.”

    “그리고 엊그제 윤서혁 감독이 서주희 작가랑 함께 찾아왔더라.”

    나는 생뚱맞은 조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이 같이요? 왜요?”

    “윤 감독이 작년에 냈던 기획안 기억나? 블랙 마치랑 같이 냈었던 거 말이야.”

    “기억하죠. 저승사자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맞아. 그걸 하고 싶대.”

    “저승사자를요?”

    순간 내 머릿속에 과거에 윤서혁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혹시 유플릭스에서 시리즈물로 제작하겠다고 합니까?”

    “맞아. 내가 그때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해 보자고 했었잖아. 윤서혁이 감독하고, 대신 대본은 서주희 작가가 쓸 거래.”

    “좋은 생각이네요. 저승사자 원본이 영화 시나리오인데 유플릭스에서 방영하려면 드라마 대본으로 바꿔야 하니까요. 서주희 작가님이라면 이번에 작은 아씨들로 이미 능력을 검증받았고요.”

    “작은 아씨들이 잘되고 유플릭스에서 얼마나 연락이 많이 왔는지 알아?”

    “그랬나요?”

    “넌 미국에 있었으니 몰랐을 거다. 내가 들어 보니 한 작품을 더 계약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랑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고 싶은가 보더라.”

    “그것도 나쁘지 않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공중파나 케이블도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고. 다들 OTT로 가는 추세잖아.”

    “형님이 유플릭스랑 미팅 날짜를 잡아 주세요. 윤서혁 감독님과 서주희 작가님도 함께요.”

    “알았어. 유플릭스에서 아마 엄청 좋아할 거다. 대신 우리 이윤기 감독님도 함께 가자. 유플릭스 최동석 대표가 이윤기 감독님도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

    “이윤기 감독님은 미디어 대표시니까 당연히 함께 가셔야죠.”

    회의를 마친 일어서며 강진석에게 말했다.

    “참. 진석 형님도 LOK 이윤영 과장님을 아시죠?”

    “당연히 알지. 이윤영 과장이면 LOK 홍보팀의 터줏대감이잖아.”

    “이윤영 과장님이 다음 주에 결혼한대요.”

    “그래? 난 연락을 못 받았는데. 넌 어떻게 알았어?”

    “저도 건너 건너 들어서 알았어요.”

    “와. 다른 회사 됐다고 윤영 씨가 나한테 연락을 안 했네. 바로 전화해 봐야겠다.”

    “저도 청첩장을 보내 달라고 해 주세요.”

    “왜? 너도 가려고?”

    “그럼요. 가야죠. 윤영 씨는 저한테도 잘해 주셨잖아요.”

    “가면 LOK 사람들이 득시글거릴 텐데?”

    “제가 무슨 죄인인가요? 꼭 갈 테니까 제 청첩장도 꼭 받아 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윤조가 십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다.

    나는 더는 윤조를 케어하는 매니저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이번 결혼식에 내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중국발 파파라치 사진으로 떠들썩했다.

    - 중국에서 원세강 파파 떴어.

    - 중국에서??? 한국이 아니라?

    - 중국 맞음. 미치겠다. 중국 파파라치가 한국인을 따라다니네.

    - 심지어 배우도 아니고 회사 대표님 파파라치 사진임. ㅋㅋㅋㅋ- 그럴 이유가 있음. 샤오엔이 자기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잖아.

    - 뭐라고 남겼는데???

    - 몸이 떨어져 있어도 그리운 사람. 이런 식으로 웨이보에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글 썼더라. 새벽에 올렸다가 10분도 안 돼서 지우긴 했는데 중국은 그것 때문에 한바탕 뒤집어졌어.

    - 원 대표님. 이 죄 많은 남자야. ㅠㅠㅠㅠ

    - 샤오엔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원 대표님 그리웠다고. ㅠㅠㅠㅠ- 근데 오늘 뜬 스님 파파라치 사진은 더 대박임. 원세강 동거하나 봐.

    - 뭐라고??? 동거?

    사람들은 중국의 인터넷 매체에 뜬 파파라치 사진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원세강이 사는 빌라의 맞은편에서 줌을 당겨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집에서 나오는 원세강과 실크 잠옷을 입고 그를 배웅하는 한 남자가 찍혀 있었다.

    심지어 남자가 외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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