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97화 (198/261)

#197화. 불타는 촬영장

강진석은 대탈출의 예매율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예고편을 보아하니 제작비도 많이 든 거 같던데. 이 작품 망하면 TOP은 쪽박 차는 거 아니냐?”

“망하면 타격이 꽤 클 겁니다.”

“내가 재기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망하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김경록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입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당연한 걸 왜 묻냐? 한성제 대표님께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있는데 한지욱은 아니야.”

“그래도 양심은 남아 계시는가 봐요.”

김경록과 웃으며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내 심장 쪽이 불편했다.

나는 심장에 손을 올리고 인상을 썼다.

“왜 그래, 세강아?”

“그러게요. 옷을 좀 많이 껴입어서 그런가?”

나는 몸에 딱 붙는 목티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서 열도 나는 것 같았다.

단지 불편한 느낌이었던 심장이 갑자기 옥죄어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나도 모르게 신음성이 터져 나왔고 시시덕거리며 인터넷 서핑 중이던 김경록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야. 너 왜 그래? 아파?”

“모르겠네요. 갑자기 가슴이 왜 아픈지 모르겠어요.”

“너 심장 쪽에 지병이 있다며? 나도 그렉한테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어.”

김경록은 내가 평범한 심장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심장 쪽이 다시 따끔했고 나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하아.”

내가 자리에서 주저앉자 김경록이 놀라 외쳤다.

“내가 911에 전화를 걸게. 기다려 봐, 세강아.”

놀란 김경록이 911에 신고를 하려는데 마침 탁자 위에 놓인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한쪽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나머지 손으로 핸드폰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렉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강? 지금 괜찮아요?]

“안……. 안 괜찮아요. 그렉.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세강의 심장 파동이 요동치고 있네요. 내가 당장 촬영장으로 갈게요. 기다려요.]

그렉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손에서 힘이 빠진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김경록이 달려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들고 나를 부축했다.

“세강아. 911에 전화할까?”

“괜찮아요. 그렉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렉이라면 네 주치의를 말하는 거지?”

“형님이 마중 좀 나가 주세요. 제가 지금 몸을 못 가누겠네요.”

“알았어. 방문객 카드 만들어 놓은 거 있으니까 내가 가서 데리고 올게. 근데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이렌 씨라도 데리고 올까?”

서이렌은 지금 다른 배우들과 함께 리허설 중이다.

나는 김경록의 손을 가로막았다.

“아니에요.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요. 아무 일도 아닐 겁니다. 이렌 씨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나보다 젊은 놈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여기서 꼼짝 말고 쉬고 있어. 빨리 다녀올게.”

김경록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트레일러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트레일러 천장을 바라봤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누군가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천천히 숨을 내쉬자 고통이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 * *

트로이 종합촬영소 입구에 도착한 김경록은 직원에게 스태프 카드를 보여 줬다.

“이분이 의사시라고요?”

“스태프가 지병이 있는데 촬영장에서 쓰러졌습니다.”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도 될까요?”

트로이 직원의 말에 그렉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커다란 왕진 가방을 보여 줬다.

“괜찮습니다. 제가 가서 보면 됩니다.”

“급하신 거 같은데 제가 차를 태워 드리죠.”

“감사합니다.”

트로이 직원은 김경록과 그렉을 태워서 문 씨어터의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외부 차량은 들어올 수 없는 촬영장에 갑자기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김경록과 그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봤다.

그들의 뒤에 시뻘건 911 소방차와 구급 차량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트로이 직원은 그걸 보고 놀라서 달리던 차의 핸들을 꺾었다.

소방차와 구급차는 작은 차를 쌩하니 지나 저 멀리 5구역 촬영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 * *

차에서 내린 그렉과 김경록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문 씨어터의 촬영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경록은 주변의 스태프를 붙잡고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황급히 이동하던 스태프는 김경록을 알아보고 답했다.

“루크. 스크린에 불이 붙었어요.”

“CG가 출력되는 그 배경 스크린을 말하는 겁니까?”

김경록은 놀란 눈으로 촬영장을 응시했다.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일 텐데 불이라니.

“다행히 지금은 불이 꺼졌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소방차가 오기 전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어요. 원래도 큰불은 아니었어요.”

“그럼, 배우들은 괜찮나요?”

김경록이 물었지만, 스태프는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촬영장 안에서 놀란 얼굴의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멀쩡해 보였지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경록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원세강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야! 원세강!”

* * *

나는 촬영장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외치는 김경록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김경록의 옆에는 나를 위해 이곳까지 달려온 그렉이 있었다.

나는 그렉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그에게 뛰어갔다.

서이렌을 안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사람을 안고 달려오자 김경록과 그렉은 놀란 것 같았다.

“세강아. 너 괜찮아? 불은 다 꺼진 거 맞지? 그런데 이렌 씨는 왜 쓰러진 거야? 혹시 다쳤어?”

김경록은 내 팔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할 경황이 없었다.

나는 김경록을 지나쳐 그렉에게 다가갔다.

“그렉. 도와줘요.”

“무슨 일이죠? 왜 그렇게 놀란 겁니까? 심장은 이제 안 아프죠?”

“도와줘요. 그렉.”

“…….”

그렉은 도와 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주위를 지나가던 구급 대원이 내게 다가왔다.

내 팔에 안긴 서이렌을 보고 환자라고 생각하고 달려온 것이다.

나는 그녀를 꼭 안은 채 몸을 돌렸다.

“이봐요. 환자입니까?”

“여긴 괜찮으니까 일 보세요.”

“이보세요. 다치지 않았어도 불이 난 걸 보고 놀랐을 겁니다. 저희가 봐 드릴게요. 환자를 이리 주세요.”

“괜찮다니까요. 이분이 의사입니다. 이렌 씨의 주치의니까 이분이 봐주실 겁니다.”

“주치의라고요?”

갑자기 서이렌의 주치의로 소개받은 그렉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렉에게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렉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고 구급 대원을 쳐다봤다.

“예. 제가 의사가 맞습니다.”

그렉은 원세강을 살피기 위해 가져온 왕진 가방을 들어 보였다.

“정말 의사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렉을 수상쩍게 쳐다보던 구급 대원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혹시 젠셀의 그렉 루이 박사님이신가요?”

구급 대원이 자신을 알아보자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렉 루이입니다.”

구급 대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적인 천재 의사를 직접 마주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그렉 루이시군요. 팬입니다.”

“저는 지금 환자를 봐야 해서요. 우리 대원분은 다른 환자를 봐주시죠.”

“예. 알겠습니다. 그래야죠.”

구급 대원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다가 다른 환자를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김경록은 그렉이 서이렌의 주치의라는 말에 당황했지만 그걸 따져 물을 시간이 없었다.

“세강아. 너 정말 괜찮은 거지? 이렌 씨는 왜 쓰러진 거야?”

“형님. 저는 그렉과 있을 테니 형님은 감독님께 가 봐 주실래요?”

“지금?”

“지금 불은 다 꺼졌어요. 그래도 촬영장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알았어. 내가 다녀올게.”

“혹시 먼저 촬영장을 떠나게 되면 전화할게요.”

“그래. 알았어. 나도 상황을 알아보고 바로 전화할게.”

나는 서이렌을 꽉 안은 채 그렉에게 말했다.

“우선 트레일러로 갑시다.”

* * *

트레일러에 도착한 나는 침상 위에 서이렌을 고이 눕혔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은 조금 젖어 있을 뿐 외상은 없어 보였다.

내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녀의 상의를 덮어 놓은 상태였다.

왕진 가방을 오픈한 그렉이 내게 말했다.

“우선 세강의 몸 먼저 봅시다.”

“아뇨. 이렌 씨를 먼저 봐줘요.”

“그냥 불이 난 걸 보고 놀란 거 아닌가요?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요. 세강이 더 급합니다. 지금 괜찮아졌다고 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어서 옷부터 벗어요.”

“그렉.”

나는 그렉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봐요. 세강.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겁니까? 갑자기 소름이 돋으려고 그러네요.”

“그렉이 나를 도와줘야 해요. 그렉밖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자꾸 도와달라고 말만 하지 말고, 어서 옷이나 벗어요.”

그렉은 내가 왜 이러는지는 이해를 못 하겠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내 재킷을 들어 올렸다.

침대에 누워 있는 서이렌의 몸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제복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내가 서이렌이 입고 있는 제복의 지퍼를 내리자 그렉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렉이 난리를 치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녀가 입고 있는 제복의 지퍼를 모두 내렸다.

* * *

화재 경보음이 온 촬영장에 시끄럽게 들렸다.

내가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프링클러가 작동해서 천장에서는 비가 내렸고 스크린에 붙은 불도 조금씩 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서이렌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앞에 일렁이며 춤추는 불꽃을 보고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배우들은 놀라서 이미 자리를 피했고 스태프들이 들이닥쳐서 소화기를 분사했다.

타올랐던 불은 이미 사그라들기 시작했지만, 서이렌은 오히려 이 광경이 그녀의 가슴을 더 요동치게 했다.

지난날 백화점에 불이 났을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꺼져 가는 불빛.

모든 것이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망부석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이렌 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던 서이렌은 그제야 마법이 풀린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팔을 잡은 나는 서이렌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빠져나갑시다.”

“대표님.”

텅 빈 깡통과 같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이렌의 눈빛이 점차 살아났다.

나는 그녀의 눈빛이 돌아오는 걸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때였다. 스태프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거기 피해요. 천장에서 보드가 떨어집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촉이란 게 동물처럼 발달하나 보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보드가 우리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멀리 밀쳐 내고 나도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우리는 물웅덩이가 생긴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이내 우리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에 천장에 달려 있던 석고보드가 떨어졌다.

쿵 소리가 나며 바닥에 구멍이 생겼다.

“이렌 씨. 괜찮아요?”

나는 바닥을 구른 서이렌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서이렌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깨어나지 않았다.

“이렌 씨. 일어나 봐요. 괜찮은 겁니까?”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봐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이렌이 바닥에 쓰러져 있자 놀란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오 마이 갓. 이렌 씨가 다쳤나요?”

“지금 911이 오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여기 들 것 좀 가져와 봐.”

스태프들이 주위에 모여들었고 나는 서이렌을 안고 그녀의 코 아래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반짝거리는 그것이 보였다.

서이렌을 편하게 앉히려고 그녀의 자세를 바꾸는데 그녀의 목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서 서이렌 에게 두르고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

* * *

도자기 인형처럼 새하얀 서이렌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몸은 투명하게 반짝거렸고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서이렌의 가슴에 난 상처를 그렉에게 보여 줬다.

“이게 대체…….”

인형의 몸에 누군가 커터 칼로 그어 놓은 것 같은 비현실적인 상처를 본 그렉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나였다.

“그렉. 세이렌 마네킹을 기억하죠?”

그렉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도와줘요. 그렉.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세이렌 마네킹을 도와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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