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96화 (197/261)
  • #196화. 탈출 중인 예매율

    한국의 팬들은 작은 아씨들이 방송되기만을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 몇 시에 뜬다고 했지?

    - 한국 시각으로 오후 5시. 전 세계에 동시에 런칭되는 거임.

    - 와씨. 떨린다. 얼마 만에 우리 이렌 님의 용안을 뵙는 거냐? ㄷㄷㄷ

    - 이거 보려고 유플릭스 처음 깔아 봄 ㅋㅋㅋ

    - 예고편만 봐도 재미있을 거 같아.

    드디어 오후 5시가 되고 유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이 공개됐다.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막내 산호 역의 윤이슬이 탄 차가 전복하면서 시작했다.

    폭발하려는 차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산호.

    그녀는 차에서 탈출하려고 애를 썼지만 꼬인 안전띠 때문에 탈출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안전띠를 풀었을 때는 이미 차에 불이 붙은 상황.

    멀리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119 구조대를 뒤로하고 윤이슬이 탄 차는 폭발하고 만다.

    - 와씨. 퀄리티 봐라. 돈을 쏟아부었네.

    - 시작하자마자 윤이슬이 죽었어.

    - 시작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팬들은 스피디한 드라마의 전개에 숨 쉴 틈이 없었다.

    막내 산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자매들은 경찰의 수사를 믿지 못하고 그녀들끼리 수사를 시작한다.

    이자현이 분한 첫째 진주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이용해 유앤필 제약회사의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그의 뒤를 캔다.

    서이렌이 분한 둘째 상아는 억대 연봉의 게임개발자를 그만두고 유앤필의 전산팀에 들어가서 직접 비밀을 캐내기 시작한다.

    진주와 상아의 뒤에는 김이솔이 분한 경찰 특수본 소속의 수정이 지원한다.

    그리고 영광일보 사주의 아들이자 윤이슬과 동창 사이었던 이소호가 조력자로 나서면서 극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자매들은 윤이슬을 죽음으로 내몬 빌런들을 찾아 처단한다.

    - 윤이슬은 철저하게 이용만 당한 거였네. ㅠㅠ

    - 연구소장이 제일 개새끼임.

    - 서이렌 존멋. 해킹으로 연구소장 놈을 범죄자로 만들었어. ㅋㅋㅋㅋ

    - 경찰에 끌려가는 소장 놈 봐라.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억울하대. ㅋㅋㅋㅋ

    - 소장이 살려면 그때 어디에서 뭘 했는지 털어놔야 하는데 말할 수가 없네. ㅋㅋㅋ

    - 연구소장뿐만 아니라 연구소 놈들도 다 털어 줘야 하는데. 다 나쁜 놈들임.

    - 말 나오자마자 연구소 직원들도 털리기 시작한다.

    - 와. 연구소장은 사회적으로 매장하더니 연구소 직원들은 경제적으로 매장했네. 서이렌이 진짜 엄청난 해커였구나.

    - 졸지에 신불자 됨. 돈만 보고 움직이던 놈들이라 타격이. 큼 ㅋㅋㅋㅋ

    - 상아가 괜히 넥서스에서 연봉 10억을 받았던 게 아님. ㅋㅋㅋㅋ 그리고 7화 엔딩에 죽은 줄 알았던 윤이슬이 살아 돌아오면서 드라마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돌변한다.

    - 대박. 산호 살아 있었어.

    - 윤이슬 컴백. 이게 무슨 일이냐?

    - 7화 엔딩 미쳤네.

    - 이거 유플릭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 K드라마였으면 이렇게 끝나고 일주일 동안 시름시름 앓아누웠을 듯. ㅋㅋㅋㅋ

    - 시즌이 한꺼번에 풀리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ㅋㅋㅋㅋ빌런이라고 생각했던 유엔젤 대표가 사실은 윤이슬을 구해 냈고 1화에서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단 게 밝혀지며 진짜 빌런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다름 아닌 첫째 진주가 다니는 방송국의 국장인 최현이다.

    - 최현 미쳤네. 찐 빌런이 쟤라고??? 왜????

    - 약혼자가 의대 다녔는데, 유앤필 임상실험에 참여했다가 의문사했다잖아.

    - 뭐야? 그럼, 유부남 아니었나?

    - 결혼 전에 약혼자가 죽었는데 그냥 결혼반지를 끼고 다닌 거래.

    - 이자현 어쩔. 최현이랑 분위기 묘하길래. 불륜이라고 욕했는데 ㅠㅠ

    - 진주는 지금 동생 일 때문에 연애할 시간이 없음. 그냥 두 사람이 멜로 눈깔이었을 뿐.

    - 최현을 연기한 배우가 찐으로 조연만 하던 배우라서 생각지도 못함.

    단 몇 시간 만에 9화 분량의 드라마를 다 본 팬들은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SNS 실시간 트렌드를 작은 아씨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1. 작은 아씨들

    2. 7화 엔딩

    3. 우리 산호

    4. 작아 스포단

    5. 최현 너무

    6. 미친 드라마

    7. 게임폐인 서이렌

    8. 진주최현

    9. 수정액션

    * * *

    작은 아씨들이 실시간 트렌드를 점령한 다음 날, TOP 미디어는 급하게 편집한 작품을 다시 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박상용 실장은 낙담한 김중성 감독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독님. 다 잘될 겁니다.”

    “아까워서 그럽니다. 날아간 장면으로 주인공이 인간성의 혼란을 느끼게 되는 건데. 그게 몽땅 잘려 나갔으니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이상해졌어요.”

    “어쩌겠습니까? 18세 관람가로 갈 수는 없잖습니까?”

    “처음 받은 시나리오 자체가 18세 관람가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대본을 순화시킨 걸 박 실장님도 아시잖아요.”

    “그럼요. 저는 잘 알죠. 그런데 배급 문제도 있고. 연말은 가족과 연인이 함께 극장에 오는 시즌이기 때문에 18세 관람가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연말에 개봉해야 하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후반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결국엔 해외 스튜디오의 힘까지 빌렸잖아요.”

    “윗선에서는 블랙 마치보다 먼저 개봉할 걸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다 끝난 일인데요.”

    “괜히 한지욱 대표 때문에 개봉 전에 입방아에만 오르고. 이러다 작품의 흥행과 비평에도 영향이 갈까 봐 걱정됩니다.”

    한지욱 이야기가 나오자 박상용 실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지욱이 올린 글로 퍼진 스캔들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는 쪽은 영화 대탈출 쪽이었다.

    “한지욱 대표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LOK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실장님.”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김중성 감독과 박상용 실장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 * *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트로이 촬영장에서는 문 씨어터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디오티마의 승객들이 하나둘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총 10개의 구역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동면에서 깨어났고 이제 8구역까지 왔다.

    동면에서 깨어난 이들은 이미 8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들이 AG31 은하에 도착했음을 알고 놀랐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은하일 거라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니 당황한 것이다.

    부함장을 맡은 에릭 레인스는 루나와 함께 아직 동면 중인 9, 10구역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부함장님. 우리 무빙워크를 타지 말고 그냥 걸을까요?”

    루나의 말에 에릭은 그러자고 했다.

    이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우주 왕복선.

    10구역에서 조종실이 있는 센트럴까지는 꽤 먼 거리다.

    하지만 에릭은 루나와 함께 걷고 싶었다.

    그들은 구역과 구역 사이에 있는 휴게 공간을 가로질러 갔다.

    그곳은 마치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고 동면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승무원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지나가니 모두 신기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에릭 레인스는 부함장 역에 이입해서 승객들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며 걸었다.

    “밖에서 만나면 정말로 부함장님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루나의 말에 에릭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정말로 디오티마의 부함장이 맞습니다. 그럼, 루나 씨는 승무원이 아닌가요?”

    에릭의 질문에 루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가짜죠.”

    “연기하는 중이라 이 말입니까? 배역에 몰입을 좀 하셔야겠네요. 그러니까 함장 역에 과몰입 중인 토니가 맨날 루나 씨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잖아요.”

    에릭은 웃으며 말했지만, 루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함장 역과 감독 역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토니는 요즘 들어 자신이 진짜로 디오티마의 함장이라도 되는 양 사람들을 들들 볶았다.

    “난 어차피 배우가 아니라서요. 청바지 모델이잖아요. 그래서 작가님이 저한테는 대사도 안 주시잖아요.”

    “그것 때문에 삐진 겁니까?”

    에릭은 루나가 화난 게 이해가 됐다.

    감독인 토니 첸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다이안 콕스나 루나를 믿지 않았다.

    디오티마에게 선택된 이들 중에서 루나만 연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들은 휴게 공간 안에 있는 거대한 창 앞에 섰다.

    거대한 창문 너머로 광활한 우주 공간이 훤히 내다보였다.

    루나는 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것도 가짜죠. 우주 왕복선에 이렇게 창을 설치한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요. 우리가 보는 건 투명한 창이지만 사실 이건 그저 바깥에 설치된 카메라의 영상을 받아서 그대로 틀어 주는 것뿐이잖아요.”

    에릭은 부함장 역을 맡으면서 우주 왕복선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진짜 창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바깥세상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승객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짜라는 걸 알고 있어도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겁니다. 그리고 이 영상 자체는 거짓이 없는 실제잖아요. 거대한 납으로 만들어진 우주 왕복선을 나서면 적막한 우주 공간이 펼쳐져 있을 거예요. 안 그래요, 루나 씨?”

    에릭은 루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에릭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과학자들이 쓸데없이 이런 가짜 창을 우주 왕복선 곳곳에 만들어 둔 거겠죠.”

    차갑게 대답한 루나가 고개를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릭은 이렇게 냉정한 말을 툭툭 내뱉는 그녀가 좋았다.

    * * *

    오랜만에 간 트로이 종합촬영소는 여전했다.

    대니 라모로는 이제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익숙해졌는지 능수능란하게 스태프와 배우들을 지휘했다.

    핸드폰을 보고 있던 김경록이 갑자기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작은 아씨들은 난리가 났네.”

    “한국 소식은 안 찾아보신다면서요?”

    “네가 한국에 간 뒤로 찾아보고 있어. 혹시나 네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은 터지지 않을까 염려가 돼서.”

    “저를 위해서요? 그냥 형님이 이제는 한국 기사를 보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라. 넌 참 꼭 그렇게 다 알아야 속이 시원하니? 그리고 작은 아씨들은 미국에서도 볼 수 있거든?”

    “하하. 알았어요.”

    김경록은 한국에 뜬 기사를 보며 말했다.

    “벌써 시즌 2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네. 시즌 2도 찍을 거야?”

    “아뇨. 처음부터 꽉 닫힌 엔딩이라서요. 빌런도 죽었고요.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박이 났는데? 시즌 2를 안 한다고? 아깝지 않아?”

    “괜찮아요.”

    나는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쉽지만 작은 아씨들은 이렇게 완벽하게 끝을 내는 게 더 좋을 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시즌제 드라마는 따로 있다.

    “그나저나 세강아. 한지욱 소식은 들었어? 이락 배우를 음해하는 글을 몰래 올렸다가 그게 들켜서 난리가 났던데?”

    김경록은 한지욱이 구설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재미있는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망신살도 이런 망신살이 없다. 이락 팬들이 한지욱 회사 영화를 보이콧한다는데?”

    “한지욱 대표가 꺼져 가는 불씨에 석유를 들이부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아침에 강진석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김경록에게 들려줬다.

    “한지욱 대표가 자기는 절대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없다고. 음해하는 글을 올린 사람들을 죄다 고소하겠다고 했나 봐요.”

    “와. 세게 나왔네. 그런데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역풍이 불걸?”

    “그렇죠. 그냥 아니라고 하고 이야기가 사그라들 때까지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데 욕먹는 걸 못 참고 고소까지 시전했으니 사람들이 화가 날 수밖에요.”

    김경록은 어이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한지욱이 관종이긴 하지. SNS도 맨날 하고. 내가 알기론 하루에 한 번씩 포털에 자기 이름을 검색할 거다. 그런 관종이 사방에서 욕을 들어먹고 있으니 정신병이 안 오는 게 이상하지. 그나저나 대탈출은 그것 때문에 영향이 크겠네?”

    “예매율이 확실히 높지는 않죠.”

    “그래?”

    김경록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포털에서 영화 예매를 검색했다.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절찬리에 예매 중인 두 영화의 예매율이 떴다.

    - 1위: 블랙 마치, 예매율 82.2%, 예매 관객 수 28만8천 명 …….

    김경록은 스크롤을 한참을 내리고 나서야 간신히 9위에 랭크하고 있는 대탈출을 발견했다.

    - 9위: 대탈출, 예매율 12.8%, 예매 관객수 1만3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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