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95화 (196/261)
  • #195화. 망신살

    - 응? 한지욱이 누구야?

    - LOK 대표가 한지욱이라니까. TV에도 많이 나왔는데.

    - 대표가 왜 이런 걸 올려?

    - 진짜네. 그 대표가 얼마 전에 SNS 부계정이 털린 적 있는데 아이디가 똑같아.

    - 포털에서 검색해 보면 한지욱 생일 8월 10일 맞음. ㅋㅋㅋㅋ

    - 영어 이름이 레오나르도 맞아.

    - 시발 LeonardoHan810이 그럼 LOK 대표라는 거야???

    - 소속사 대표의 SNS 부계정까지 아는 당신들은 진정한 고인물이다. ㅋㅋㅋ

    - 김선우 안티들이 김선우 SNS 부계 털다가 한지욱도 같이 털린 거임. ㅋㅋㅋ

    - LOK가 소속사인 배우들 덕질하다 보면 한지욱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음. 배우들 SNS에도 맨날 나오는 게 걔임. 관종이거든.

    - 와. 진짜 한지욱인가?

    - 스본에서 해명 기사 올렸어. 이락 사촌이 맞고 이번에 블랙 마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대.

    - 이락은 집안이 다들 재능충인가 보다. 블랙 마치 여주인공도 오디션 5차까지 보면서 힘들게 캐스팅했다고 들었는데. ㄷㄷㄷ

    - 저 사진이 최근에 타계하신 박찬영 감독님 장례식장에 갔다가 찍힌 거래.

    - 그럼, 맞나 보다. 거기에 업계 관계자들이 많이 갔을 텐데. 한지욱이 두 사람을 보고 연애하는 줄 알고 사진 찍었나 봐. 진짜 소름 돋는다.

    - 정황상 한지욱이 맞나 보네. 왜 저랬을까? 동종업계잖아.

    - 한지욱이네 영화랑 블랙 마치랑 동시 개봉이라서 그런가 봄.

    - 한지욱도 영화 발표함?

    - 요즘 언플 엄청나잖아. 무려 한지욱이 시나리오에 참여한 좀비 영화라던데?

    - 블랙 마치도 좀비 영화인데.

    - 와. 이렇게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네. 지 영화랑 같은 날 개봉하는 블랙 마치 망하라고 글 올린 거 맞나 보다.

    - 치졸하네.

    - 이러다 지 영화가 망하지.

    - 블랙 마치는 이번 스캔들로 오히려 홍보되고 좋은 거 아님?

    - 망신살이 뻗쳤네.

    - 아이고 지랄을 한다.

    * * *

    한지욱은 매서운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옆에 선 비서는 그런 한지욱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정말로 게시글을 못 내린다고 합니까?”

    “작성자 계정이 삭제돼서 임의로는 내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겁니까? 지금 이 글을 내가 썼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요.”

    한지욱은 애꿎은 비서에게 화를 냈다.

    비서는 속으로는 한지욱을 비웃고 있었다.

    ‘네가 쓴 거 맞잖아.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근본 없는 또라이였네.’

    비서는 속으로는 한지욱을 벌레 보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답했다.

    “연예판에 문의를 넣어 놨습니다. 관리자가 직접 삭제해 주겠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이상한 루머가 번지고 있다고요. 보세요. 벌써 조회 수가 오만입니다. 댓글도 수십수 백 개씩 늘고 있고요.”

    비서는 핸드폰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했다.

    - LOK 아웃.

    - 한지욱 미친 건가?

    - 고소해야 하는 거 아님?

    - 성지순례 왔습니다.

    - 스본에 이 게시글 고대로 캡처해서 메일 보냈다.

    - 대표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치졸해?

    - 대탈출 망해라.

    모두 이 글을 쓴 사람이 한지욱이라 단정 짓고 한바탕 욕을 쏟아 내고 있었다.

    한지욱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욕 댓글을 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댓글들 말입니다. 고소를 할 수는 없나요? 왜 이렇게 입에 걸레를 물었을까요?”

    “고소하시려고요? 그럼, 게시글을 삭제하지 말까요?”

    “무슨 소립니까? 내가 쓴 거 아니라니까요. 당연히 바로 삭제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게시글은 내리고 욕 댓글은 고소할 수 있는지 변호사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때 대표실 문이 열리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왕대표, 한성제가 들어왔다.

    비서는 한성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곧바로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비서가 문을 닫자마자 대표실 안에서는 큰소리가 들렸다.

    * * *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긴 숨을 몰아 내쉬었다.

    박찬영 감독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갔던 한국에서 어쩌다 보니 보름이나 더 있게 됐다.

    간 김에 쌓여 있는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미국에서 촬영 중인 서이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해서 이렇게 다시 미국으로 왔다.

    오늘 오후에 작은 아씨들이 유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에 공개되는 날이라서 크게 이벤트를 연다.

    그것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마음을 접고 미국행 비행기에 탔다.

    출국장에 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가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오늘 공항에 마중 나오려고 촬영 일정을 조정했다는 서이렌이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김경록이 서 있었고 우습게도 그렉 루이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렌 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대표님. 어떻게 된 거예요? 삼 일 후에 돌아온다고 하더니 보름이나 더 계셨잖아요.”

    “일이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이렌 씨.”

    나는 김경록을 돌아보며 물었다.

    “형님도 잘 계셨죠? 별일 없었나요?”

    “별일 있을 게 있나? 서이렌 씨는 언제나처럼 촬영장에서 완벽했어.”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마음 편하게 한국에 더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내가 웃자 서이렌의 눈을 흘기며 내 팔을 때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렉 루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렉 씨도 오셨네요.”

    그렉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한국으로 영영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제가 한국으로 쫓아갔을 겁니다.”

    “아이고. 더 있었다간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시고 놀랐습니다.”

    “세강이 또 어디로 튈지 몰라서 잡으러 온 겁니다. 그렇게 좋아하실 필요는 없어요.”

    김경록은 그렉 루이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는지 나와 그 사이에 끼어들더니 말했다.

    “가자. 세강아. 피곤하지?”

    서이렌도 내 팔에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빨리 가요. 우리 대표님 피곤하시겠어요.”

    나는 두 사람에게 꽉 붙들려 마치 연행당하듯 출국장을 떠났다.

    * * *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짐을 풀고 그동안 미국에서의 촬영 일정을 확인했다.

    이제 촬영은 이십 일 정도 남았다.

    백 퍼센트 스튜디오 촬영이라서 할리우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꽤 단축되었다.

    그때 내가 미국에서 쓰는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윤조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조야.”

    [오빠. 오랜만이네.]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었어.”

    [그래? 그럼, 조금만 더 기다릴 걸 그랬네.]

    “일정표는 확인했어. 다음 주에 추가 촬영을 한다고?”

    [맞아. 죽은 승무원들 캐스팅에 변화가 생겼거든.]

    “갑자기 뜬금없이 웬 중국 배우를 캐스팅 한 거야?”

    [이번에 중국 기업인 펑황(?凰)에서 트로이에 투자했나 봐. 그것 때문에 중국 배우가 캐스팅됐어.]

    “죽은 승무원들은 분량이 없을 텐데? 있다고 해도 회상 장면으로만 잠깐 나오는 거잖아.”

    [중국 배우가 단 몇 분이라도 나오면 그걸로 중국 흥행의 단위가 달라진다잖아. 할리우드도 예전 같지 않아. 자본을 앞세운 중국기업들이 물을 흐리고 있거든. 그래도 문 씨어터는 걱정하지 마. 진짜 스쳐 지나가는 역이라나 봐.]

    “그래.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건 우리 이렌 씨한테 온 빅뉴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도나텔로에서 연락이 왔어.]

    도나텔로라는 말에 내 눈이 커졌다.

    설마 얀 필립이 또 러브콜을 보내온 건가?

    “윤조야. 혹시 도나텔로에서 우리 이렌 씨를 모델로 초대했어?”

    [어라? 이미 알고 있었어? 굉장하지? 쇼에 직접 서 달래.]

    역시 그렇구나.

    지난번 한국 런칭 패션쇼를 보면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럼, 일정이 어떻게 돼? SS 패션위크는 이미 끝났잖아. 내년 봄에 열리는 FW에 서는 건가?”

    [와. 오빠 진짜 많이 바뀌었다. 패션위크가 언제 열리는지도 다 알고 있는 거야? 원래 이런 거에 관심 없었잖아.]

    “그랬지. 근데 이젠 아니야.”

    순간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윤조야. 내년 봄이면 문 씨어터의 홍보 일정이 시작될 거잖아. 그때 우리 이렌 씨 패션쇼랑 함께 묶어서 홍보할 수 있을까? 이렌 씨가 문 씨어터에서 청바지 모델이라서 그거랑 엮으면 될 거 같은데. 이왕이면 후즈 같은 유명한 청바지 광고에도 출연하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인데? 특히 청바지 광고 모델은 정말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 같아.]

    “그래? 근데 우리 이렌 씨가 미국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데 모델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게 내 일이야. 걱정하지 마. 내가 당장 알아볼게.]

    “고맙다. 윤조야. 네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무슨 소리야? 나도 오빠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어. 이렇게 대박 아이디어도 척척 내주고 말이야.]

    나와 윤조는 서이렌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릴지 고민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시간 동안 길게 이어진 대화가 끝나고 그제야 나는 윤조와의 통화를 끝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아. 오늘 진짜 바쁘구나.

    그런데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이렌 씨인가?

    나는 당연히 서이렌이라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서이렌이 아닌 그렉 루이였다.

    “그렉. 여긴 웬일로 오셨어요?”

    “주치의로서 검진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렉은 손에 왕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렉 씨를 돌려보내고 싶은데 그러면 착한 환자가 아니겠죠?”

    “당연하죠. 약속을 어기고 한국에서 늦게 돌아온 것만 해도 이미 나쁜 환자예요. 빨리 들어갑시다.”

    나는 착실한 환자로 돌아와 그를 내 방으로 안내했다.

    짧게 진찰을 마치고 나는 열었던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물었다.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심장 박동도 일정하고 이주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별일 없을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왕진 가방을 정리한 그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왜 그렇게 저를 보시나요?”

    “이번에 젠셀에서 심장 섬유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조기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심장 옆에 부착하고 심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기계죠.”

    “몸에 직접 기계를 부착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렉 루이는 손톱만 한 작은 기계를 꺼내 내게 보여 줬다.

    “그런데 이걸 제게 왜 보여 주시나요?”

    “왜긴요? 세강 씨 몸에 달 겁니다.”

    “제 몸에요? 하지만 제 상태는 아주 좋다면서요?”

    “이건 원세강 씨를 위해 특별히 제가 따로 제작한 겁니다. 제가 촬영장에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하려는 거죠.”

    “그럼 그걸 제 몸에 달아서 실시간으로 제 심장을 관찰하신다고요?”

    “그렇죠. 이해가 빠르시군요.”

    “하지만 이 년째 발작도 없고 컨디션도 괜찮습니다.”

    “안 아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플까 봐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속으로 찔렸는지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렉 루이는 내게 손짓했다.

    “그 셔츠 좀 다시 풀어 봐요.”

    “설마 지금 설치하시려는 겁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이 주나 기다렸습니다.”

    “…….”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가슴팍을 가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 아파요.”

    “내가 지금 아플까 봐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의사 말을 믿어야죠. 하나도 안 아픕니다. 그냥 주사처럼 따끔한 정도예요.”

    의사들이 이렇게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할 때가 제일 아픈 법이다.

    나는 하기 싫었지만 거부하면 그렉이 안 돌아갈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내 가슴이 훤히 드러나자 그렉 루이는 소형 기계를 설치할 가슴 위치를 확인했다.

    차가운 전자기기가 닿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겁이 많으시군요.”

    “아니거든요.”

    그렉은 표시를 한 뒤 주사를 놨다.

    “부분마취를 할 겁니다.”

    “마취까지 한다고요?”

    “말만 들어도 하나도 안 아프겠죠?”

    “미치겠네.”

    그렉은 웃으며 메스를 들었다.

    역시 의사들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나는 다가오는 메스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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