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94화 (195/261)
  • #194화.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

    이락과 정희진이 사이좋게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 담은 한지욱은 우선 차에 올라타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천천히 살폈다.

    “잠깐만. 이 학생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지욱의 두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재빨리 인터넷 포털에 접속해서 블랙 마치를 검색했다.

    이내 블랙 마치의 예고편 영상이 화면에 떴고 한지욱은 그것을 클릭했다.

    [역대급 재난 위기.

    봉쇄된 서울을 탈출하라.]

    감각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편집된 블랙 마치의 예고편이 흐르자 한지욱은 괜히 기분이 상했다.

    “때깔은 좋네.”

    한지욱이 속으로 블랙 마치와 그들이 만든 대탈출을 비교하고 있는데 예고편에서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404호. 너만 생각하지 말고 따라오라니까.”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 꺼지라고!”]

    히키코모리 여고생 역을 맡은 정희진이 나오자 한지욱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여기였어.”

    한지욱은 예고편을 끄고 방금 찍은 사진을 다시 화면에 띄웠다.

    예고편의 여고생과 사진 속의 학생은 동일 인물이 확실했다.

    “이락도 카메오로 출연한다더니. 촬영장에서 만났나 보군. 이락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스무 살이 넘었는데 여고생이랑 사귀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이락을 비웃던 한지욱의 입가에 갑자기 미소가 걸렸다.

    “이 좋은 걸 그냥 묻을 수는 없지. 가뜩이나 심의 때문에 짜증이 나는데 이걸 기자한테 찔러 말아?”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한지욱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 잘하면 블랙 마치랑 스타탄생이랑 한꺼번에 묻어 버릴 수도 있겠는데?”

    심의 문제 때문에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그는 화풀이 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기자를 찾아가서 올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참. 이럴 때 보면 김경록이 진짜 쓸모가 있었는데.”

    이미 퇴사한 김경록을 아쉬워하던 한지욱은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주차장에 차를 댄 김경록은 갑자기 귀가 간지러웠다.

    김경록이 귀를 파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서이렌이 걸어 나왔다.

    김경록은 그녀를 보자마자 손을 털고 차에서 내렸다.

    “서이렌 씨. 오셨습니까?”

    서이렌은 웃으며 달려오는 김경록을 보며 무미건조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김 매니저님.”

    “어제 잠을 설쳤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아뇨. 그냥요.”

    김경록은 서이렌의 표정이 좋지 않자 걱정이 앞섰다.

    “대표님은 언제 오시는 건가요? 장례식도 잘 치렀다고 했잖아요.”

    “한국에서 처리할 일들이 있나 봅니다. 미국에서 원격으로 하기엔 좀 힘든 일들이 있나 봐요. 간 김에 다 처리하고 온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흠.”

    서이렌은 입술을 쭉 내밀고 원세강이 항상 앉아 있던 보조석을 바라봤다.

    “아! 맞다. 세강이가 주고 간 게 있어요.”

    “대표님이요? 저한테요?”

    어깨가 축 처지고 힘이 없던 서이렌은 대표님이라는 한마디에 얼굴이 밝아졌다.

    김경록은 차의 앞자리에서 보온 박스를 꺼내 그것을 서이렌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세강이가 주고 간 겁니다. 서이렌 씨가 피곤해하거나 그러면 주라고 했어요.”

    서이렌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보온 박스를 건네받았다.

    박스를 열어 보니 원세강이 준비해 놓은 간식이 그 안에 한가득했다.

    뚜껑 위에 원세강이 쓴 쪽지도 붙어 있었다.

    [이렌 씨. 한국에 다녀올 동안 몸 건강히 잘 있어요. 이렌 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걸로 준비해 뒀으니 이걸 먹으면서 나를 기다리면 됩니다. 땅콩 과자가 없어지기 전까지 돌아올게요. - 이렌 씨의 영원한 대표님으로부터.]

    쪽지를 다 읽은 서이렌의 볼이 발갛게 상기됐다.

    서이렌은 김경록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보온 박스 안의 캔 커피를 들어서 볼에 문질렀다.

    “아. 따뜻해라. 좋다.”

    “그렇죠? 어제 한인 마트에서 사 온 캔 커피예요. 사자마자 보온 박스에 넣어 놨어요. 세강이가 이렌 씨가 캔 커피를 좋아하니까 꼭 챙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그렇구나.”

    서이렌은 따뜻한 캔 커피를 볼에 문지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 자꾸 문지르지 마요. 얼굴이 다 빨개졌네요.”

    “괜찮아요.”

    “그럼, 이제 촬영장으로 가 볼까요?”

    “예. 김 매니저님.”

    서이렌이 차에 타려는데 지하 주차장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의 얼굴을 본 김경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또 왔네. 뭐야? 대체 저 사람은?”

    서이렌과 김경록을 향해 천천히 걸어온 그가 물었다.

    “원세강 씨는 왔나요?”

    그렉 루이의 질문을 받은 서이렌이 울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사흘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서이렌이 이번에도 고개를 젓자 그렉 루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세강 씨가 미국에 오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 주세요. 원세강 씨는 저한테 왔다고 연락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아셨죠?”

    “알았어요.”

    “서이렌 씨는 제 전화번호를 아시죠?”

    “예. 알아요.”

    김경록은 원세강만 찾는 그렉 루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 그렉 루이가 찾아왔을 때는 서이렌의 팬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렉 루이는 올 때마다 원세강만 찾는 원세강 바라기였다.

    ‘원세강 이 자식은 대체 미국에서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배우한테도 없는 광팬이 생긴 거야?’

    * * *

    서울의 모 피시방에 들어간 한지욱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지욱은 연예계 이야기가 올라오는 연예판에 접속했다.

    그런데 글을 올리려고 보니 계정이 필요했다.

    포털 계정과 연동하기 버튼이 있어서 그것만 누르면 이미 있는 계정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내가 바본 줄 알아? 내 계정으로 올리면 당연히 들키겠지. 이러면 피시방까지 온 이유가 없잖아.”

    한지욱은 그 자리에서 아이디 하나를 만들었다.

    새로 만든 아이디로 접속한 그는 ‘새 글 작성’ 버튼을 클릭했다.

    [여고생과 사귀는 톱스타]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글을 쓴 한지욱은 그가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그가 글을 올리자마자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반응했다.

    - 이락 아니냐?

    - 미쳤네. 이락 맞는데???

    - 이락이 여고생이랑 사귄다고?

    - 이건 연예판이 아니라 시사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님?

    - 이락 미쳤나 봐. 뜨자마자 연애질인데. 심지어 그게 여고생.

    - 이락 나락 가겠네.

    - 저 여고생 아는 거 같아. 스타탄생에서 제작하는 영화 주인공이잖아.

    - 그러네. 오디션 보고 뽑혔다는 그 여고생 배우 맞네. 그럼, 진짜로 여고생이랑 사귀는 건가?

    - 빼박이네. 아직 영화도 개봉 전인데 영화 망하겠는데?

    - 영화만 망하냐? 이 스캔들이 진짜면 스본도 망하는 거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한 한지욱은 미소를 지었다.

    “됐어. 이 정도면 영화뿐만 아니라 스타탄생도 타격이 갈 거야.”

    댓글의 분위기가 자신의 원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확인한 한지욱은 방금 만든 계정을 삭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짜 계정으로 피시방에서 올린 글이니 아무도 내가 했는지 모를 거야. 완전범죄지.”

    비릿하게 웃은 한지욱은 그길로 피시방을 빠져나갔다.

    * * *

    - 연예판에 올라온 글 봤음? 이락이 여고생이랑 사귄다는데?

    - 이락이랑 블랙 마치 주인공이랑 스캔들 떴음. 근데 문제는 블랙 마치 주인공이 18살.

    - 이락 미친 거냐? 왜 열애설이 터져도 하필이면 미성년자. ㄷㄷㄷ

    - 이거 범죄 아닌가?

    - 블랙 마치 제작도 스본이 하지 않음?

    - 노노. 그건 레전드 필름. 근데 원세강이 공동대표라서 같은 거긴 함.

    - 스본은 대체 뭘 했길래 이락이 여고생이랑 사귀는데 가만히 놔둔 거지?

    - 몰래 사귀었나 보지.

    - 블랙 마치 내 기대작이었는데. 어쩔.

    한지욱이 올린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쫙 퍼졌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라이징 스타와 여고생의 만남이라는 자극적인 내용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극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락의 팬들은 올라온 사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말도 안 되는 루머는 또 뭐냐? 정희진은 이락 사촌이잖아.

    - 그러게. 희진이네.

    - 정희진이는 락이 팬들한테는 되게 유명한 사람인데.

    - 팬들은 당연히 아는데 일반인들은 모르겠지.

    - 희진이가 영화도 찍었구나. 어쩐지 백반집에 가면 항상 가게에서 부모님 돕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안 보이더라.

    - 희진이면 인정. 처음 봤을 때부터 개성 있게 예쁘다고 생각했음.

    - 근데 이거 노이즈 마케팅인가? 이렇게 바로 들통날 걸 올린다고?

    - 우리가 정정 글 올려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이거 남초여초 할 것 없이 싹 퍼지고 있어.

    - 스본은 뭐 하는 거지?

    - 처음부터 정희진이 락이 사촌이라고 밝혔어야지. 이건 스본이 잘못한 거 맞다.

    - 내가 스피아에는 정정 글 올렸어. 쿨카페는 계정이 없는데 있는 사람이 퍼 날라주라.

    - 이거 퍼가면 되지?

    - SNS에도 올렸어. 리트윗 고고.

    팬들이 조직적으로 해명 자료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

    이락을 욕하던 사람들은 팬들이 올린 자료를 보며 그제야 오해를 풀었다.

    - 친척이었구나. 어쩐지 두 사람이 닮았더라.

    - 방금까지 페도니 뭐니 하면서 이락한테 쌍욕 박던 사람들 천지였는데 다 도망갔네.

    - 역시 뭔가 오해가 있을 줄 알았어. 아무리 그래도 여고생이랑 사귀는 건 좀 그렇잖아?

    - 연예판에 올라온 원본 게시글은 여전히 남아 있네.

    - 그 사람은 모르고 올렸겠지. 우리도 몰랐잖아.

    - 근데 이거 노이즈 마케팅 아닌가?

    - 어??? 진짜 그러네. 노이즈 마케팅인가 보다. 이렇게도 홍보를 하는구나.

    - 글이 올라온 지 2시간 만에 남초여초 할 것 없이 싹 퍼졌는데 ㅋㅋㅋ 홍보 효과 쩌네.

    - 블랙 마치 만관부. 다음 주부터 예매 창 열림.

    - 스캔들 난 여고생이 나온 블랙 마치 많이 봐 주세요.

    - 예고편 투척.

    - ㅋㅋㅋ 팬들이 달려들어서 홍보하네.

    - 욕한 게 미안해서 봐줘야 하나?

    - 반나절 해프닝으로 끝났는데 홍보 효과는 역대급이다.

    -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범죄로 어그로 끈 거잖아.

    - 근데 진짜 노이즈 마케팅은 아니지? 스본이 그럴 리가 없는데???

    * * *

    스타탄생에서 실시간으로 이 사건을 보고 있던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연예판에 글이 올라온 지 한 시간 만에 알았는데, 글이 뜨자마자 두 시간도 안 돼서 삽시간에 온 커뮤니티가 들썩거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오해는 풀어야 했기에 해명 기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기사가 뜨기도 전에 팬들이 자료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풀었다.

    강진석은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이 사태를 보며 혀를 찼다.

    “뭐 이렇게 일사천리로 끝나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야 정정 기사가 떴네요.”

    “그래도 잘된 건가? 확실히 홍보 효과가 있긴 하네. 근데 진짜 우리 쪽에서 올린 건 아니지?

    “아닙니다. 저는 이런 거 가지고 여론몰이하는 거 싫어해요. 아시잖아요. 정희진 양이 이락 배우님의 친척이라는 것도 일부러 숨겼는데요. 영화보다 그게 더 주목받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

    “그래. 평소의 너라면 그렇겠지. 그럼 진짜로 얻어걸린 거네.”

    나는 처음 게시글이 올라왔던 연예판에 접속했다.

    원글은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는 원글 아이디를 확인하고 그가 쓴 게시글과 댓글을 찾았다.

    하지만 그 아이디로는 그 어떤 글과 댓글도 찾을 수 없었다.

    원 게시글에는 아직도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과 댓글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진을 처올리냐?

    - 당장 이글 내리세요.

    - 와. 조회수 2만이야. 역대급이긴 하네.

    - 이런 거 올릴 시간에 좀 건설적인 일을 하세요.

    - 블랙 마치 만관부.

    - 온 김에 예고편이나 투척하고 사라져요. 사진 속 여고생이 나와요. 많이 봐주세요.

    게시글을 새로고침을 하면 아직도 댓글이 수십 개씩 늘어났다.

    나는 그만 보려고 창을 닫으려는데 마지막에 올라온 댓글이 내 눈이 들어왔다.

    - 작성자 아이디 말이야. 이거 이상하지 않아? ‘LeonardoHan810’ 이거 LOK 대표 한지욱 아이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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