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모두가 그녀를 사랑해
방금 끝난 도나텔로 한국 론칭 기념 패션쇼의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로 쇼가 시작하기 전의 무대 사진이거나 얀 필립이 나와서 피날레를 선 모델과 함께 박수를 갈채를 받는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얀 필립의 옆에 서 있는 피날레 모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 뭐냐? 저 모델 서이렌임?
- 진짜 서이렌인데?????
- 서이렌 맞다. 모델 화장으로도 숨길 수 없는 서이렌의 완벽한 미모. ㅋㅋㅋㅋ- 이거 팬들도 몰랐던 깜짝 이벤트라던데. 대박.
- 오늘 패션쇼 간 팬들은 진짜. 계 탔네.
- 얀 필립의 서이렌 앓이. ㅋㅋㅋㅋㅋ
- 진짜 아주 징글징글하다. 이 정도면 스토커 수준. ㅋㅋㅋㅋㅋㅋ- 좋은 스토커 인정해. ㅋㅋㅋ- 의상도 한복이네. 한국 디자이너랑 콜라보한 의상을 선보인다더니 이건가 봄.
- 얀 필립의 최애 등극. ㅋㅋㅋㅋㅋ
- 나 패션알못인데. 저 디자이너는 서이렌 때문에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얼굴도 아는 사이임. ㅋㅋㅋㅋ- SNS에 올라온 후기 보면 서이렌 오늘 개쩔었대.
- 서이렌이 완벽하지 않았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당연한 거임.
- 서이렌은 진짜 못 하는 게 뭐냐? 노래 잘해. 춤 잘 춰, 연기 잘해. 얼굴은 여신이야. 나를 못 가진 거 빼고는 다 가졌다고.
└이게 또 나대네.
└좋은 날 초 치지 마라.
└경찰 불러.
- 와. 지금 기사 뜨고 있는데 서이렌이 쇼 피날레를 장식했대.
- 대박이다. 피날레는 모델도 아무나 서는 거 아닌데.
- 서이렌 존멋.
- 근데 모델도 아닌데 피날레에 서도 되나?
└원래 배우나 가수도 패션쇼에 많이 섰음.
└그래도 피날레는 항상 모델이 했던 거 같은데.
└아냐. 예전에도 연예인이 피날레 선 적 있어.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 난 이런 거 쫌 그렇더라. 서이렌이 얀 필립이랑 아는 사이 같던데. 누가 봐도 인맥으로 쇼 피날레 하는 거잖아.
- 인맥으로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 쇼에 서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피날레는 아니지. 연예인이 워킹을 잘해 봤자 얼마나 잘했겠어?
- 너야말로 알못이 나대지 마라. 도나텔로에서 정식으로 초청한 건데 네가 뭔데 별로라 마라야?
- 내 감상을 얘기했을 뿐임. 왜 이렇게 화내는데?? 너 서이렌 팬이지?
- 할 말 없으니까 이제는 팬무새냐?
- 싸우지들 말고 도나텔로 공계로 고고. 공계에 서이렌 피날레 워킹 영상 올라왔어.
- ㅅㅂ 찐 도나텔로 공계네. 한국 계정도 아니고 진짜 월드 공식 계정에 올라온 거다.
- 공계 영상 빨리 보고 와. 서이렌 완전히 미쳤음.
도나텔로 공식 SNS 계정에 한국 론칭 기념 패션쇼의 영상이 짤막하게 올라왔다.
영상은 서이렌이 무대에 오른 피날레 파트.
2분 10초짜리 짧은 영상에는 서이렌이 완벽하게 워킹하는 모습과 중간에 조명 사고가 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
- 와. 쩐다. 서이렌 미쳤어.
- 서이렌 슈퍼모델 같다.
- 진짜네. 예전에 슈퍼모델들이 하던 모델 워킹이네. 카리스마 쩔어.
- 서이렌 미친 거 아님??? 진짜 이렇게 다 잘하기 있냐?
- 이거 고화질로 안 풀어 주려나? 공계 영상 너무 저화질이라고 ㅠㅠㅠㅠ- 이 짧은 영상을 지금 5분째 계속 돌려 보고 있다. 서이렌 미쳤어.
└ㄴㄷㄴㄷ
└2222
└33333
└4444
- 영상 올라온 지 10분도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하트 수가 천 개를 넘었다. 나도 눌러야지. ㅋㅋㅋㅋ- 서이렌이 인맥으로 피날레 섰다는 사람들 어디 갔냐? ㅋㅋㅋ- 영상 보자마자 사라졌음. 지들도 눈이 있으면 그런 말은 못 하겠지. ㅋㅋㅋ사람들은 이내 공계에 올라간 영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에 조명이 번쩍거린 것이 사고인가? 아니면 무대 연출인가 갑론을박하며 이야기를 했다.
- 중간에 조명 반짝거린 거 사고인가???
- 저게 무슨 사고냐? 이벤트잖아. 조명에 맞게 서이렌이 포즈 잡는 거 못 봤냐?
- 저게 사고면 서이렌은 연기 신에 모델까지 신인 거지.
- 내가 본업 때문에 조명 좀 다뤄 본 적 있는데. 저거 백 프로 연출임. 진짜 사고면 저렇게 연출한 것처럼 안 나옴.
- 연출이라도 서이렌은 진짜 대단한 거 같다.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하나도 안 떨고 그 자리에서 워킹하고 포즈를 취하냐.
* * *
패션쇼가 끝나고 대행사에서 주관하는 애프터 파티가 시작됐다.
애프터 파티에는 쇼를 빛내 준 모델과 패션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참석했다.
일반인이라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쇼에 초대권을 받은 패션 피플들이 대다수였다.
아마 지금 여기에 패션의 ‘패’ 자도 모르는 사람은 나와 대니 라모로가 유일할 거다.
서이렌은 저쪽에서 빈선예 그리고 얀 필립과 함께였는데, 그녀의 주위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나는 대니 라모로에게 샴페인 잔을 건넸다.
“한잔하실래요?”
“좋죠.”
나는 내 잔에 물을 채우고 들었다.
“술은 안 하시나 봐요.”
“예. 못 합니다.”
내 물잔과 대니 라모로의 샴페인 잔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대니 라모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서이렌을 보며 말했다.
“이렌 씨는 대단해요.”
“맞아요.”
“세상에 저런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대니 라모로는 영어를 배우는 중이었으나 나와 대화하기 위해 떠듬거리면서 영어로 말했다.
나는 그런 대니 라모로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대니 라모로가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파티장에 아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벌써 촬영이 끝났나?
그들은 임준학과 임지형이었다.
임준학의 의상을 보니 촬영이 끝나고 옷도 못 갈아입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왔을 임지형을 떠올리며 어이가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임준학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 계셨네요.”
“임준학 배우님도 고생이 많습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여기로 온 건가요?”
“동생이 하도 가야 한다고 난리를 피워서요.”
“고생하시네요.”
임준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동생한테는 잘 설명했습니다. 여배우한테는 스캔들이 치명적이라서 네가 자꾸 그러면 서이렌 씨가 힘들 거라고요. 그랬더니 조금은 알아듣는 거 같더라고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요즘 촬영장에서 임지형이 몸을 사리는 것 같기는 했다.
임지형은 오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서이렌의 곁에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죠?”
임준학은 내 옆에 서 있는 대니 라모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생긴 금발 청년이 내 곁에 있으니 놀랄 수밖에.
“이분은 대니 라모로 감독님이세요. 지금은 미국에서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계세요.”
나는 임준학에게 대니 라모로를 소개해 줬다.
“대니 라모로. 이분은 지금 서이렌 씨와 함께 드라마 촬영 중인 임준학 배우님이세요.”
임준학과 대니 라모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눴다.
대니 라모로라는 이름을 되뇌던 임준학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혹시 이번에 칼레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탔던 그 감독님이신가요?”
“맞습니다. 그분이세요.”
“…….”
임준학은 놀란 눈으로 대니 라모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대니 라모로는 ‘칼레’라는 두 글자를 알아듣고 임준학이 왜 그러는지 눈치를 챘다.
“팬입니다. 감독님. 시청 앞 돈키호테뿐만 아니라 데뷔작인 초콜릿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여기서 팬을 만났네요. 감사합니다.”
임준학은 대니 라모로가 왜 한국에 있는지 궁금했다.
미국에서 영화를 준비한다는데 대체 왜 한국에. 그것도 도나텔로의 패션쇼 애프터 파티장에 와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임준학의 눈이 순간 커졌다.
임준학은 놀란 눈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원세강 대표님. 혹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까요?”
“뭘 생각하셨는데요?”
“감독님이 여기에 오신 게 혹시 서이렌 씨를 영화에 캐스팅하려고 그런 건가요?”
임준학은 떨리는 눈빛으로 내 입을 바라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임준학은 놀란 입을 닫으며 생각했다.
‘와. 대단하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는구나.’
* * *
패션쇼가 끝난 다음 날, 대대적으로 도나텔로의 기사와 홍보 영상이 떴다.
화려하게 막을 올렸던 론칭 패션쇼의 이모저모와 함께 어제 있었던 피날레의 조명 문제가 사고였음이 기사로 떴다.
- 그럼, 진짜로 서이렌이 거기서 즉흥적으로 포즈 잡으면서 시간 끈 거였어?
- 미쳤다. 미쳤어.
- 서이렌 존멋.
- 그 자리에서 당황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포즈를 취한 거라고?
- 서이렌 신인가? 이게 말이 돼?
- 사람이 어쩜 저렇지? 진짜 존나 사랑한다고. 서이렌!!!
- 나 지금까지 서이렌에 별 관심 없었는데 어제 그 영상보고 뻑감.
- 서이렌 진짜 멋있음.
- 나 이 언니 좋아했네. ㅋㅋㅋㅋ
- 도나텔로 공계에 올라온 영상도 알티 수 천만 넘었어.
- 슈스다. 슈스.
- 해외 포럼에도 어제 조명 사고였다고 뜨고 난리도 아니다.
- 눈이 있다면 어제 그 영상을 보고 안 반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 서이렌 언제 해외 진출하냐고 해외 팬들이 그러더라.
- 한국에서도 차기작 줄줄 대기 중인데 개소리. ㅋㅋㅋ- 아. 졸라 미안하네. 너네는 서이렌 없지? ㅋㅋㅋㅋ
* * *
대니 라모로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스타탄생에서 다시 뭉쳤다.
대니 라모로의 신작 문 씨어터 때문이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제작사인 트로이와 이야기해서 한국으로 계약서를 보내겠다고 했다.
한국에 온 목적을 달성한 그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옆에 계신 얀 필립과는 꽤 친해지신 모양입니다.”
대니 라모로의 곁에는 얀이 함께였다.
그는 오늘 오후 얀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탈 거라고 했다.
“좋은 형님이세요. 우리 둘 다 취향도 비슷하고요.”
“그래 보입니다.”
얀 필립은 시계를 보며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서이렌 씨와 써니는 언제 오나요?”
“오전 중에 촬영을 몰아서 찍고, 빨리 끝내고 오기로 했어요. 이제 곧 올 겁니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만나고 가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서이렌을 보고 가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두 남자를 보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먼 타국땅에서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서이렌이라는 배우 때문에 이렇게 친구가 되다니.
이러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서이렌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스웠다.
순간 내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이렌 덕후인 두 남자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얀 필립에게 물었다.
“얀 필립. 혹시 영화 의상은 만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영화 의상이요? 아뇨. 오퍼는 많이 들어왔지만 다 거절했어요. 그다지 끌리는 영화가 없어서요.”
나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대니 라모로에게 물었다.
“대니 라모로. 혹시 이번 영화의 의상은 누구에게 맡기실 건가요? SF라서 의상이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스튜디오에서 전문 의상팀을 붙여 줬는데. 아직은 마음에 드는 컨셉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 중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얀 필립과 대니 라모로를 눈여겨봤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갑자기 너털웃음을 흘렸다.
“얀. 혹시 우리 영화 의상을 맡아 줄래요?”
“흠. 그거 8월 이후부터 촬영이라고 했죠?”
“일정이 너무 급한가요?”
머릿속에서 그의 일 년 스케줄을 모두 떠올린 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얀 필립이 긍정적으로 답하자 대니 라모로가 당황했다.
“정말이세요? 얀이 우리 영화 의상을 맡아만 준다면 금상첨화죠.”
나는 앉은 자리에서 구두 계약을 맺고 일정까지 잡는 두 사람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침 그때 문이 열리고 빈선예와 서이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얀 필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빈선예를 불렀다.
“써니. 왜 이렇게 늦었어.”
늦을까 봐 헐레벌떡 뛰어온 빈선예는 숨을 몰아쉬며 얀 필립에게 한소리를 했다.
“내 이름은 왜 불러? 이렌 씨 보고 가려고 기다린 거잖아.”
“아냐. 써니. 너를 보고 가려고 기다린 거야.”
“씨알도 안 먹이는 소리 하지 마.”
빈선예가 투덜대자 얀 필립은 웃으며 밖에서 대기 중이던 비서를 불렀다.
비서는 눈이 부시게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놀란 빈선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놀라서 입을 손을 가렸다.
“써니. 결혼 축하해.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