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68화 (169/261)
  • #168화. 경력직 면접 ‘작은 아씨들’팀은 시티타워 근처의 고깃집 이 층을 통째로 빌려서 회식 중이다.

    서이렌은 임준학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임지형을 보며 사무적인 웃음을 보였다.

    임지형은 당돌한 얼굴로 서이렌을 보며 말했다.

    “팬을 따로 만나는 건 안 된다고 하셔서 일로 찾아왔습니다. 이건 괜찮죠?”

    옆에 있던 임준학은 동생의 돌직구에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임준학은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봐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식당 안이 시끄러워서 그런지 아무도 지금의 망발을 못 들은 것 같았다.

    임준학은 서이렌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빈선예를 보며 미안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빈선예는 서이렌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는 임지형을 보며 혀를 찼다.

    ‘대표님이 이 자리에 계셨어야 했는데. 아깝네.’

    서이렌은 맥주잔을 들더니 임지형을 보며 말했다.

    “동료로 만나서 반가워요. 앞으로 임준학 배우님 잘 케어해 주세요. 우리 작은 아씨들의 청일점이거든요.”

    서이렌은 동료라고 딱 못 박았지만, 임지형은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임지형도 맥주잔을 들며 외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이렌과 임지형의 술잔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걸 보는 임준학이 씁쓸하게 읊조렸다.

    “그 말은 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동생아?”

    빈선예는 걱정과 우려로 가득한 임준학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작은 아씨들 촬영장에는 반드시 출근해야겠는데?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단 말이야.’

    * * *

    고중기가 뻔뻔한 얼굴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고중기의 얼굴을 확인할 새도 없이 시계만 바라봤다.

    고깃집이 건너편 사거리니까 차는 놔두고 가면 된다.

    지금 바로 떠나도 십 분은 걸리겠지.

    내가 고중기는 안중에도 없는 그때, 고중기가 편하게 자리에 앉아 내 이름을 불렀다.

    “세강아.”

    고중기가 다짜고짜 내 이름을 편하게 부르자 강진석의 얼굴이 굳었다.

    고중기는 강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한지욱 대표 취임식 이후에 보는 거지?”

    나는 고중기가 내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 신경은 온통 회식 장소로 향해 있었으니까.

    고중기는 편하게 계속 반말로 대화를 나눴다.

    “네가 처음 LOK에 입사했을 때가 생각난다. 한국 대학교 출신이 매니저 한다고 해서 다들 웃었던 거 알아? 하지만 난 아냐. 난 네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

    면접이 언제 끝나나 시계만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눈이 번뜩 떠졌다.

    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고중기는 진석이 형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너는 탈락이야.

    나는 지금 당장 서이렌과 임지형이 함께 있는 고깃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나는 고중기의 이력서를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자 고중기의 어깨가 움찔했다.

    “고중기 매니저님.”

    “어?”

    “면접 잘 보고 가세요.”

    “어? 뭐라고?”

    나는 외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건넸다.

    “저는 고중기 매니저님과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제 의견은 탈락입니다. 나머지는 강진석 이사님과 이야기하시죠. 그럼, 전 이만.”

    나는 이 말과 함께 면접장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고중기는 놀란 눈으로 내가 나간 문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세강이 이렇게 나를 막 대할 리가 없다고.’

    고중기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LOK에 있을 때의 원세강이 떠올랐다.

    ‘쟤 왜 저래? 왜 저렇게 달라졌어? 내 한마디면 꼼짝도 못 했던 놈이.’

    고중기는 탈락이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진 원세강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중기는 속으로 욕을 하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강진석이 매의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씨. 강진석 저 새끼는 나를 떨어뜨릴 게 분명한데. 망했네.’

    고중기는 애써 강진석의 눈빛을 피했다.

    강진석은 눈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고중기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강진석이 평소와 달리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중기 매니저님.”

    “예?”

    고중기는 어깨를 움츠리고 강진석을 쳐다봤다.

    “고중기 매니저님이 스타탄생에 이력서를 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치프급 매니저를 뽑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설마 LOK 출신은 안 뽑는 건 아니죠? 강진석 이사님도 LOK 출신이잖습니까?”

    “출신 같은 건 안 따집니다.”

    “그럼, 내가 이력서를 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요?”

    강진석은 뻔뻔한 고중기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요즘도 뒤에서 저와 원세강 대표님 욕을 하고 다닙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한번 말씀하신 이후로는 두 분 이야기는 절대로 입 밖에도 안 꺼냅니다.”

    “그럼, 그전에는 했다는 거네요.”

    “그 말이 아니라…….”

    고중기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게 사실은 뒷담화를 한 게 아니라요.”

    고중기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강진석의 그의 말을 막았다.

    “그거 아세요? 원세강 대표님은 고중기 매니저 이력서를 보자마자 커트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고중기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강진석을 노려봤다.

    자신과 자주 대적하던 강진석이라면 몰라도 지난 십 년간 호구로 부려 먹은 원세강이 그럴 리가 없었다.

    고중기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강진석은 헛웃음이 나왔다.

    강진석은 고중기가 그랬던 것처럼 반말로 상대했다.

    “우리 원 대표가 호구 같아서 그랬나? 그때는 모자란 당신을 꼴에 선배라고 선배 대접해 주느라 그랬던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세강이는 마찰을 피하는 타입이지. 호구가 아니야.”

    “…….”

    고중기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 매니저 이력서는 내가 남긴 거야. 원 대표는 보자마자 떨어뜨렸는데 내가 남겼다고.”

    “대체 뭐 하는 거야? 이렇게 나를 앉혀 놓고 꼽 주려고 그랬어?”

    “면접 자리에서 대체 뭐라고 씨불이는지 궁금해서 그랬지. 그런데 뭐? 다짜고짜 면접 보는 회사 대표한테 반말하냐? 스타탄생 대표가 그렇게 우스워?”

    “아 씨.”

    고중기는 일이 완전히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원 대표랑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어차피 당신은 뽑을 생각이 없었어. 고중기 씨는 탈락이야. 당장 나가.”

    강진석이 싸늘한 얼굴로 탈락이라는 말을 외쳤다.

    고중기는 강진석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저 새끼들이 지금 나 가지고 논 거야?’

    강진석은 면접장 밖으로 나가려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고중기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여전히 자기 잘못은 전혀 모르고 있구나.’

    강진석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그 위에 놓인 고중기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었다.

    강진석은 그걸 고이 접어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중기는 그의 이력서가 강진석의 품속에 들어가자 당황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챙겨?”

    “봐서, 쓰려고.”

    “내 이력서로 뭘 하려는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또 헛소리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오면 당장 이걸 한성제 대표님께 보내려고 그런다. 이 새끼야.”

    “야. 강진석! 너 미쳤어?”

    “내가 스타탄생으로 이직할 때 네가 강진석이 드디어 미쳤다고 떠들고 다녔다며? 맞아. 나 미쳤어.”

    강진석은 고중기를 비웃으며 유유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고중기는 자신을 비웃는 강진석의 얼굴을 보며 분노했다.

    “씨발. 이게 뭐야! 개쪽만 당하고. 괜히 강진석한테 약점만 잡혔잖아!”

    열받은 고중기의 외침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 * *

    고깃집에 도착한 것은 내가 면접실을 뛰쳐나온 지 십 분 후였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깃집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 전체를 스타탄생이 통으로 빌려서 회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입구에 앉아 있던 장우재가 나를 보고 반겼다.

    “원 대표님. 오셨네요.”

    나는 장우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빠르게 서이렌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찾았다.

    그때 내 옆으로 빈선예가 다가와 옆에 섰다.

    “대표님. 오셨네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빈 팀장님.”

    나는 아무리 찾아도 서이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이렌 씨는 어디에 있나요? 왜 안 보여요?”

    순간 영롱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저 여기에 있어요. 대표님.”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서이렌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빈 팀장님과 화장실에 좀 다녀왔어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강진석 이사님은 또 어디에 놔두고 혼자 오셨나요?”

    나는 서이렌의 얼굴을 보자마자 긴장이 확 풀렸다.

    빈선예는 내가 앉을 자리가 없자 직원에게 테이블 하나만 더 세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서이렌에게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럼요. 회식하러 온 건데 무슨 일이 있어요. 여기 고기가 맛있더라고요. 빨리 앉아서 드세요. 어? 근데 자리가 없네.”

    “이렌 씨. 내가 자리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강 이사님도 오실 테니까 테이블이 하나 더 필요할 거 같아서요.”

    그때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쪽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주문은 다른 테이블과 같은 거로 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 주세요.”

    나는 서이렌을 보며 물었다.

    “어디에 앉아 있어요?”

    “저기 임준학 배우님 앞자리요.”

    나는 고개를 획 돌려서 임준학이 앉아 있는 곳을 살폈다.

    그런데 임준학의 옆에 임지형이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서이렌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 혼자 앉아요? 강 이사님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

    서이렌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의사를 밝혔다.

    “나 혼자 앉기 싫은데요.”

    서이렌은 그제야 내 말의 뜻을 깨닫고 환하게 웃으며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했다.

    “대표님이 혼자 계시면 안 되죠. 그 자리로 옮길게요. 나 고기 잘 굽는 거 알죠?”

    “그럼요. 이렌 씨가 굽는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빈선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그렇지. 이거지.’

    어느새 빈선예의 곁으로 다가온 이락도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귀까지 빨개지며 웃음을 참았다.

    내가 세팅된 자리에 가서 앉자 곧바로 서이렌이 수저와 컵을 들고 내 앞자리로 옮겼다.

    임지형은 서이렌이 다른 자리로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함께 벌떡 일어섰다.

    “그럼, 저도 옮길래요.”

    임지형의 말을 들은 빈선예와 이락이 몸을 날려 남아 있는 빈자리에 착석했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지형아. 너는 형이나 챙겨. 우리는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나는 갑자기 꽉 찬 테이블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빈 팀장님, 이락 배우님. 우리가 할 이야기가 있었나요?”

    이락은 할 말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노련한 빈선예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답했다.

    “우선 밥이나 먹고 이야기해요. 여기 안 와 보셨죠? 고기가 진짜 맛있어요. 된장찌개도 맛있던데 지금 먼저 시킬까요?”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요?”

    “밥 먹고 해요.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밥은 먼저 먹어야죠.”

    나는 그러려니 하고 자리에 앉아 앞자리의 서이렌을 바라봤다.

    서이렌은 집중하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위랑 집게. 나 줘요.”

    “싫어요. 내가 더 잘 구워요.”

    “뜨겁잖아요. 내가 할게요.”

    “싫어요. 대표님은 고기를 너무 자주 뒤집어요.”

    “쳇. 나도 잘 굽는데.”

    “시끄럽고요. 이거나 먼저 먹어 봐요. 이거 잘 익었네.”

    서이렌은 알맞게 익은 고기 한 점을 내 접시 위에 올려놨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나는 노릇노릇 익은 고기를 입에 넣다가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사선 방향에 앉아 있는 임지형이 나를 쏘아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서이렌이 내 앞접시 위에 올려준 고기를 입 안에 넣고 씹으며 나는 임지형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임지형은 열이 오르는지 맥주를 원샷 하며 고개를 돌렸다.

    빈선예가 내 컵에 사이다를 따라 주며 물었다.

    “이제 곧 작은 아씨들 촬영인데. 대표님도 한 번은 오실 거죠?”

    “저요?”

    “요즘은 현장에 잘 안 나오시잖아요.”

    “그랬죠. 다른 일이 바빴으니까.”

    나는 빈선예가 따라 준 사이다를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스타탄생이 처음 만드는 드라마인데 자주 가야죠. 아니 매일 촬영장에 출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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