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67화 (168/261)
  • #167화. 신입 로드 매니저

    본격적으로 작은 아씨들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캐스팅 무슨 일이냐? ㄷㄷㄷㄷ

    - 미쳤어? 저 네 사람을 한꺼번에 본다고????

    - 이건 진짜 스본이니까 가능한 기획이다.

    - 와. 진짜 역대급이네.

    - 서주희 작가님 컴백하신다. ㅠㅠㅠㅠㅠ

    - 이자현, 서이렌 다시 만난다. 두 여자 잊지 못해. ㅠㅠㅠㅠ- 역발상 캐스팅 쩌네. 경찰 역은 김이솔이고 귀여운 막내는 윤이슬임. ㅋㅋㅋ- 이자현은 아나운서란다. 이자현 발음 존나 좋아서 기대된다고.

    - 자매들 이름이 너무 이뻐.

    - 보석 자매임. ㅋㅋㅋ

    - 드디어 서이렌이랑 나랑 공통점이 하나 생겼다. 게임 폐인. ㅋㅋㅋ- 서이렌은 앞으로 영화만 할 줄 알았는데 드라마 컴백이다. ㅠㅠㅠ 존나 좋아. ㅠㅠㅠㅠ- 이거 스본 제작이네. 첫 드라마 제작인데 캐스팅도 너무 힘을 줬고. 이러다 산으로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알못이면 나대지 마라. 스본 제작 처음 아니야. 구원의 밤도 스본이 관여했다고.

    - 구원의 밤은 스본이 아니라 레전드 필름이지. 너나 나대지 마.

    - 싸우지 마. 근데 원세강이 레전드 필름 공동대표인 건 맞음. 그리고 구원의 밤의 주요 설정도 원세강이 바꾼 거 맞고.

    - 구원의 밤은 사실 레전드 필름에 얹혀 간 거고 이번이 진짜겠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 유플릭스는 한국 컨텐츠에 엄청나게 투자하네.

    - K컨텐츠 모름? 전 세계에서 알아주잖아.

    작은 아씨들이 연일 화제일 때 드디어 남자주인공 캐스팅 소식이 떴다.

    [대세. 임준학 작은 아씨들에 전격 캐스팅]

    - 임준학이다. 대박.

    - 진짜 대작들만 척척 캐스팅되네. 얘는 대체 빽이 얼마나 대단한 거야? 진짜 진설 아들 아니야?

    - 너 잡혀간다. 말조심해.

    - 근데 임준학도 연기 잘하긴 해. 지금껏 연기 논란이 한 번도 없었음.

    - 라이징 중에는 이락, 임준학, 박선호가 제일 잘하는 듯.

    - 어차피 네 자매가 주인공이라 남주는 아무나 캐스팅해도 됨.

    - 그건 맞다. 작은 아씨들 주인공은 네 자매임. 남주는 그저 조력자일 뿐.

    가장 마지막으로 임준학이 캐스팅됐다.

    자매 네 명이 확실한 1롤의 주인공이라서 남배우들이 대본을 보지도 않고 고사해서 남주를 찾기 힘들었다.

    임준학은 먼저 대본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고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확정했다.

    나도 이제는 그에 대한 선입관이 잘못되었음을 알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작은 아씨들의 주연 배우들이 처음 모이는 날이다.

    감독님과 작가님 그리고 배우들이 모여 간단히 첫인사를 나누고, 드라마 제작팀과 함께 모여 저녁 식사까지 할 생각이다.

    회의를 진행하느라 마지막으로 십오 층으로 올라온 나는 뒤늦게 첫 상견례 자리에 참석했다.

    넓은 회의실에는 감독님과 작가 그리고 배우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제일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 옆에는 임준학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세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임준학 씨.”

    지난주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임준학은 나를 보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때 이윤기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은 아씨들의 감독을 맡은 이윤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윤기는 배우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보니 아는 사이도 있고 처음 보는 사이도 섞여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유치하지만 한 명씩 일어서서 자기소개 해 볼까요? 제가 첫 타자를 끊었으니 이쪽부터 해 볼까요?”

    이윤기는 바통을 서주희 작가에게 넘겼다.

    서주희와 배우들이 차례차례 인사를 하는 동안 나는 임준학에게 물었다.

    “박동식 대표님도 함께 오셨나요?”

    “대표님은 오늘 외부에 일이 있으셔서 매니저와 단둘이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매니저들은 지금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일 거다.

    “이번에 매니저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요?”

    “대표님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매니저인데 제게 부탁을 한다고요?”

    “사실은 제 동생이 매니저를 하게 됐거든요.”

    “예?”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 버렸다.

    앞에서 자기소개 하던 윤이슬이 놀란 눈으로 입을 닫았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임지형이 매니저라고?

    대광그룹 재벌 3세가 매니저???

    서이렌은 1월 1일에 나와 한 약속을 지켰다.

    아무리 사심이 없어도 팬과 자주 만나는 건 좋지 않다며 임지형의 연락을 거절한 것이다.

    서이렌이 만나 주지 않자, 임지형도 얹혀살던 임준학의 집에서 나와 본가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니저라는 얼토당토않은 신분으로 다시 서이렌의 앞에 나타날 줄 상상도 못 했다.

    미친놈인가?

    이건 스토커잖아.

    * * *

    빈선예는 일정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패션위크 못 가겠네. 작년 SS도 못 가서 얀이 서운해했는데.”

    작은 아씨들 촬영이 곧 시작돼서 도저히 일정을 뺄 수 없었다.

    그냥 하루 정도 빠지는 건 상관없지만 미국까지 왔다 갔다 이동으로만 이틀이 소요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정이다.

    “혼자 찍는 거면 어떻게 우겨 보겠는데. 떼주물이라서 배우들 일정 맞추는 게 진짜 힘드네. 얀한테 뭐라고 하고 거절을 하냐.”

    빈선예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방을 노크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 빈선예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야! 너 임지형??”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네가 여기 웬일이야? 나를 찾아온 거야?”

    “아뇨. 저 일하러 왔어요.”

    “네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진짜예요. 정말로 일하러 여기 온 거라고요.”

    빈선예는 가늘어진 눈으로 임지형을 노려봤다.

    임지형은 평소와 달리 평범한 이십 대 초중반의 청년처럼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서 있었다.

    “너 올해 미국으로 유학 간다고 하지 않았어?”

    “접었어요.”

    “왜 접어? 유학 가서 공부 마치고, 미국 지사에서 먼저 일을 배운다고 했잖아.”

    “한국에서 일할 겁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

    “엔터 산업을 한번 해 보려고요.”

    “뭔 소리야? 네가 무슨 엔터 일을 해?”

    순간 빈선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 혹시 티켓박스를 노리고 있는 거야?”

    티켓박스는 대한민국의 2대 영화 투자·제작·배급회사로 그 모기업이 대광그룹이다.

    “너 진심이구나.”

    “형이나 나나 엄마를 똑 닮았잖아요. 제자리 찾아가는 거죠.”

    “집에서 반대는 안 하고?”

    “아버지는 싫어하시는데 엄마는 좋아하세요.”

    빈선예는 임지형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임지형의 어머니가 과거에 유명했던 배우라는 사실을 얼핏 기억해 냈다.

    “어차피 그룹은 돌아가신 큰어머니 아들이 맡는 거지?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거야?”

    “역시 선배는 빙빙 돌리지 않고 직구로 들어오네요. 맞아요. 그래서 선택한 길입니다.”

    “잘 생각했어. 너라면 잘할 거야.”

    “선배는 그렇게 말해 줄 거 같았어요. 고마워요.”

    “그럼, 여긴 레전드 필름과 일하러 온 거야?”

    “티켓박스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

    “로드 매니저요. 형의 매니저 자격으로 여기에 왔어요.”

    “뭐라고?”

    “형 옆을 지키면서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보려고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갈 겁니다.”

    “웃기시네. 너 우리 이렌 씨 보려고 매니저 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임지형은 눈에 띄게 얼굴이 빨개져서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형이 무슨 작품 들어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한 거라고요.”

    “그럼,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졌는데?”

    “여기가 너무 더워서 그런 건데요?”

    “땀은 왜 그렇게 흘리는데?”

    “이상하네. 새 건물이라 그런지 난방이 너무 잘되네요.”

    빈선예는 말을 돌리는 임지형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네가 우리 이렌 씨 옆에서 1년 365일을 얼쩡거려 봐라. 이렌 씨가 거들떠나 볼 것 같아? 다 소용없다고.’

    빈선예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임지형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하긴 지금까지 아무 걱정 없이 쉽게 살았을 거다. 너도 이제 고생도 좀 해 봐야지.’

    빈선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임지형의 등을 때렸다.

    “아! 왜 때려요?”

    “그냥 잘하라고?”

    “선배는 대체 손이 왜 이렇게 매워요?”

    “한 대 더 맞고 잘할래?”

    “아뇨. 그냥 잘할게요.”

    * * *

    작은 아씨들의 첫 번째 상견례가 끝나고 감독과 배우들은 이른 저녁을 먹으러 떠났다.

    시각은 오후 다섯 시.

    일정이 있는 나는 배우들을 보내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세강아. 너 표정이 왜 그래?”

    “저요?”

    “표정이 안 좋은데? 갑자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머릿속에는 서이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던 임지형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오늘 총 몇 명이 면접을 보는 거죠?”

    “여섯 시까지 한 시간 동안 총 열 명. 열 명 모두 지금도 일하고 있는 베테랑 매니저들이야. 아마 금방 끝날 거야.”

    “그럼, 빨리 시작하죠.”

    “왜 그렇게 급해? 먼저 나간 사람들 때문에? 어차피 그 사람들은 2차까지 간다고 했어. 우리 좀 늦어도 괜찮아.”

    “제가 안 괜찮아요. 빨리 끝내요.”

    “참나. 술도 못 마시는 놈이 회식은 또 되게 밝혀요. 알았어. 바로 시작하자고.”

    회의실로 가 보니 이미 그곳이 싹 치워져 있었고 면접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오늘 면접을 볼 열 명의 매니저의 이력서를 살폈다.

    그중에는 LOK의 고중기 매니저도 있었다.

    강진석은 일부러 고중기를 가장 마지막에 면접을 보도록 배치했다.

    * * *

    면접자들과 함께 대기 중이던 고중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걱정이 없었다.

    “LOK 고중기 매니저님이시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시죠?”

    “제이큐의 조장훈입니다.”

    “제이큐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산장 미팅에 강하나 씨 나왔을 때 뵌 적이 있습니다.”

    “아! 산장 미팅이요.”

    산장 미팅은 강하나가 데뷔하자마자 출연했던 케이블 예능 프로다.

    주로 인지도 없는 배우나 모델들이 얼굴을 알리려고 출연하는 곳이기 때문에 고중기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렇군요.”

    영혼 없이 대답한 고중기는 대충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뵙…….”

    “저기요. 제가 지금 면접 준비 중이라서요. 좀 조용히 해 주실래요?”

    “죄송합니다.”

    고중기 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조장훈과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조장훈은 고중기가 대놓고 무시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조장훈을 불렀다.

    “조장훈 님. 이제 들어가시죠.”

    “예.”

    조장훈은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면접을 보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 * *

    나는 조장훈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려던 조장훈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말씀이십니까?”

    “기억하시나요? 저는 조장훈 매니저님을 알고 있는데요.”

    “...”

    “기억 안 나세요? 십 년 전 일이라 너무 오래됐을까요?”

    “아닙니다. 기억합니다. 그때 드라마 시티 촬영장에서 뵀었죠.”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그때 저는 쌩 신인인 윤조 씨의 매니저였고 조장훈 매니저님은 한창 잘나가던 지영석 배우님의 매니저셨죠.”

    “그랬었죠.”

    지영석은 과거에 잘나갔던 배우다.

    지금은 하락세를 탄 지 오래라 주말 드라마 조연이나 아침 드라마에 출연하지만, 당시에는 기세가 좋았다.

    조장훈이 신인 때부터 그를 발탁해서 키운 거나 다름없지만, 그는 인기를 얻자마자 조장훈을 떠났고 구설에 휘말려 지금은 인기 없는 조연 배우 신세다.

    조장훈도 키웠던 배우들을 모두 대형 기획사에 빼앗기고 지금은 제이큐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때 신인이던 윤조 씨에게 잘해 주신 일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그런 말씀 마세요.”

    조장훈은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강진석을 보며 속삭였다.

    “저는 합격입니다. 형님은요?”

    “조장훈 매니저가 실력 좋고 사람까지 좋은 건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다 알죠. 저도 합격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조장훈을 바라봤다.

    “합격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출근하실 수 있죠?”

    “합격이라고요? 하지만 아직 면접도 하지 않았는데요?”

    “조장훈 매니저님은 면접 없이도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

    조장훈은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와 강진석이 환하게 웃어 주자 그제야 조장훈은 자신이 합격했음을 알고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가서 경영지원팀 이선아 매니저님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출근과 연봉 등에 대해 협상하시게 될 겁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대표님.”

    조장훈은 몇 번이나 거듭 인사를 하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이미 여섯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이력서는 한 장.

    LOK 고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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