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45화 (146/261)
  • #145화. 내기의 여왕

    플뢰르 극장 안에 기립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나는 쏟아지는 박수와 갈채를 받으며 넋을 놓고 있었다.

    박수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쿵쿵거리며 뛰는 내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죽기 전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박진숙 이사를 바라봤다.

    그녀도 이 놀라운 광경을 두 눈에 담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박 이사님. 영화제에서는 기립 박수가 당연한 거라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치는 겁니까? 벌써 십 분이 넘은 것 같은데요?”

    “첫 상영에서는 반드시 기립 박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별로인 작품도 받는 기립 박수인데 구원의 밤은 이 정도 성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죠.”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박수 소리를 들어서 귀가 따가울 정도인데요? 다들 손은 안 아픈 걸까요?”

    “뒤를 한번 돌아보세요. 다들 익숙해 보이죠?”

    고개를 돌려 보니 불이 켜진 극장 안이 훤히 보였다.

    경쟁 부분에 올라온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니 일반인들은 아니다.

    그들은 박수를 치는 와중에도 주위 사람들과 열띤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모두 방금 본 영화, 구원의 밤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을 거다.

    순간 극장 안에 열렬한 환호성이 들렸다.

    사람들이 우리 쪽을 보며 휘슬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서이렌과 심석현이 최병철 감독님을 옆에서 보좌하며 감독님과 함께 관객들에게 화답하고 있었다.

    노장 감독의 얼굴에서 아이 같은 웃음이 넘쳐흘렀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내가 힘든 게 대수인가?

    나도 최병철 감독을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원 대표님. 칼레 영화제 기립 박수 최고 기록이 십팔 분이에요. 우리는 이제 십 분째니까 조금 더 있어야 할 거예요.”

    십팔 분이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역대 최고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SNS에 칼레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SavageNight

    #CalasFilmFestival

    #OfficialSelection

    #StandingOvation

    - 기립 박수 영상 떴다.

    - 와 이게 진짜 리얼이라니.

    - 와우.

    - 뽕 찬다. 진짜.

    - 원래 영화제 나오면 아무 영화나 다 기립 박수 쳐 줌.

    └아무 영화나 18분 동안 박수 쳐 주지는 않지.

    └엥? 진짜야? 그렇게 오랫동안 기립 박수를 쳤다고???

    └방금 기사 떴어. 역대 기립 박수 오래 받은 영화랑 타이기록임.

    -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ㅠㅠ

    - 미쳤다. 너무 뿌듯하다.

    - 와. 감독님이랑 배우들이 자기소개도 하네.

    - 와중에 감독님. 인자한 인상이시네. 제발 은퇴 번복해 주세요. 감독님.

    - 상영 중에 두 번 박수받았는데 하나는 개기일식이고 두 번째는 최진이 처음 살인하는 장면이래. 역시 사람들 눈이 다 똑같네. ㅋㅋㅋ- 눈물 나. ㅠㅠㅠㅠ- 황금나무상. 존버해도 되는 거죠??? 네??? 제발.

    └같이 존버하자.

    └ㄴㄷㄴㄷ

    - 나 뽕 차서 안 되겠다. 구원의 밤 한 번 더 본다.

    └ㅅㅂ 나도 방금 예매함.

    └구원의 밤. 역주행 한번 가자.

    * * *

    다음 날,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 평점표에 구원의 밤의 점수가 떴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이락이 박진숙 이사를 붙들고 물었다.

    “평점 떴어요? 몇 점인가요?”

    “이락 배우님은 피곤하지도 않아요? 어제도 축하 파티하느라 늦게 잤잖아요.”

    “안 피곤한데요? 그래서 몇 점인데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박진숙이 핸드폰을 꺼내자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축하 파티를 하느라 새벽이 돼서야 잠든 그들의 모습은 흡사 좀비 같았다.

    “어휴. 직접 찾아보시면 될걸, 왜 나한테 이럽니까? 무섭네요.”

    박진숙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비평가 점수가 올라오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칼레 영화제 출품작의 평점을 매기는 곳은 총 세 군데였으나 가장 많이 참고하는 사이트는 단연코 데일리 무비였다.

    이윽고 박진숙의 핸드폰에 데일리 무비에 올라온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의 채점표가 떴다.

    영화제 레이스가 중반에 다다랐기 때문에 채점표가 반 이상 채워져 있었다.

    거기서 구원의 밤의 영어 제목인 ‘Savage Night’를 발견한 박진숙의 눈이 커졌다.

    “왜요? 몇 점인데요?”

    박진숙의 곁으로 비집고 들어선 이락이 구원의 밤을 발견하고 외쳤다.

    “어라? 겨우 3.8이요? 왜 이렇게 낮아요?”

    나는 놀라서 박진숙에게 다가갔다.

    “정말 3.8점인가요? 정말로 그렇게 떴어요?”

    구원의 밤 평점이 3.8점이라는 말에 최병철 감독과 몇몇 배우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3.8점이면 너무 낮은 거 아닌가요?”

    이락이 영문을 모른 채 미간을 찌푸리자 어느새 다가온 김이솔이 입을 열었다.

    “10점 만점이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몇 점이 만점인데요?”

    “4점이요.”

    “예? 그렇게 낮아요?”

    “여기 점수표 위에 별 표시가 보이죠?”

    김이솔이 영화제 점수표 위에 그려진 별을 가리켰다.

    “어때요? 보니까 알겠죠?”

    별 옆에 그게 뭘 뜻하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Excellent ★★★★

    Good ★★★

    Average ★★

    Poor ★

    Bad X

    확인을 마친 이락의 눈이 다시 구원의 밤 점수표로 향했다.

    열 명의 심사위원 중에 여덟 명이 만점인 Excellent를 주고 나머지 두 명은 Good를 줬다.

    모두 합해서 평점 ‘3.8’.

    그러고 보니 다른 점수는 3점을 넘는 것도 귀했고 대부분이 2점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락은 그제야 구원의 밤이 최고점을 받아 일 위인 것을 깨닫고 놀라 외쳤다.

    “와! 그럼, 일 등인가요?”

    “아직 공개 안 된 영화가 있어서 그건 모르죠. 그리고 황금나무상 후보로 점쳐지는 영화는 폐막작이에요.”

    “그래도 아직까진 일 등인 거잖아요. 만약에 그 영화의 점수가 우리보다 낮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리가 상을 타는 건가요?”

    “평점은 평점인 거고. 상은 누가 탈지 아직은 모르는 겁니다. 그래도 점수가 좋으면 수상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기는 할 거예요.”

    일타강사 같은 김이솔의 알기 쉬운 설명에 이락은 그제야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락은 조용히 한쪽에 모여 있는 구원의 밤 식구들을 쳐다봤다.

    감독님과 배우들 그리고 레전드 필름의 직원들 모두가 일 위라는 사실에 취한 듯 보였다.

    이락은 어제 극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카페에 모여서 수다를 떨었던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이 모두 모이자 이락이 입을 열었다.

    “우리 또 내기합시다.”

    “내기? 무슨 내기를 또 하자는 거야?”

    “구원의 밤이 칼레 영화제에서 상을 탈지 말지. 그걸 내기하자는 거죠.”

    내기라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김이솔에게 꽂혔다.

    기립 박수 시간도 김이솔이 가장 근사치를 말해서 내기에서 이기지 않았나?

    눈치빠른 이락이 선수를 쳤다.

    “난 딴 건 모르겠고 이솔 누나 따라 할래요.”

    윤이슬도 재빨리 외쳤다.

    “저도요.”

    우연미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모두의 시선이 김이솔에게 몰려 있었다.

    김이솔은 모두의 눈빛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칼레 영화제는 룰이 있어요. 작품상인 황금나무상을 받으면 나머지 주요 부분에서 상을 못 받아요. 한 영화가 모든 상을 싹쓸이하는 걸 방지하는 거죠. 그건 다른 상도 마찬가지예요. 감독상, 배우상도 같이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요? 구원의 밤요? 우리 구원의 밤은 어떻게 될 거 같은데요?”

    모두 눈빛을 반짝이며 김이솔을 바라봤다.

    김이솔은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구원의 밤이 수상한다면 저는 당연히 이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건 바로…….”

    한편, 필름마켓에 가기 위해 박진숙 이사와 준비 중이던 나는 구석에 모여 있는 스타탄생 식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들이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죠?”

    “글쎄요. 식사 당번이라도 정하고 있는 걸까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서 나갑시다. 제가 필름마켓은 초행이라 일찍 가서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원 대표님도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 * *

    한국에서도 구원의 밤의 평점 일 위 소식이 기사로 떴다.

    벌써 구원의 밤이 상을 탄 거나 다름없다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구원의 밤. 칼레 영화제에서 찬사 쏟아져]

    [무려 1등. ‘구원의 밤’ 칼레 평점 공개, 4점 만점에 3.8점]

    ['구원의 밤' 칼레 공식 상영, 한국 영화 최초 황금나무상 거머쥘까?]

    [칼레 영화제 ‘구원의 밤’ 호평, 최고 평점 기록]

    칼레 영화제 기사가 뜨자 구원의 밤 예매율에도 변화가 생겼다.

    극장에 걸린 지 어느덧 두 달째인 구원의 밤은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다는 평이었으나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 진출 소식과 함께 예매율이 오르고 있었다.

    야금야금 오르던 박스 오피스는 어느덧 오 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시네 키즈들이 모인 베스트 무비 사이트에서도 칼레 영화제와 구원의 밤 이야기뿐이었다.

    - 구원의 밤이 황금나무상을 탈까요?

    - 현지 반응은 좋다는데 탔으면 좋겠네요.

    - 지금까지 칼레 영화제에서 상 많이 타지 않았나요? 구원의 밤이 첫 수상인가요?

    - 감독상와 배우상은 탔는데 그랑프리인 황금나무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 최병철 감독님 은퇴작이신데 꼭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 대한민국 영화라서가 아니라 구원의 밤이 좋은 영화라서 잘됐으면 좋겠네요.

    - 그러고 보니 구원의 밤의 첫 블라인드 시사회 후기가 떴을 때가 기억이 나네요. 그때 누군가 이상한 루머를 퍼트리지 않았나요?

    - 저도 기억납니다. 생각해 보면 그게 구원의 밤 흥행의 시작이었던 거 같네요.

    - 왜 그렇죠?

    - 그때 올라왔던 글이 구원에 밤에 출연한 서이렌의 연기가 이상하다고. 발연기라고 한 그 글이었거든요. 영화 시작한 지 30분도 안 돼서 극장 밖으로 나왔다고 했나? 그랬을 겁니다.

    - 맞네요. 그 후기 이후에 게시판이 불타올랐죠. 그런데 막상 블라인드 시사회를 다 본 사람들은 서이렌이 초반에 이상하게 연기한 건 다 빌드업이다. 계산된 거다. 라고 글을 올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던 게 기억납니다.

    - 윗분들이 다 말씀해 주셨네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대체 무슨 영화길래 발연기가 빌드업이냐며. 궁금해서 미치겠다고 그러셨죠. 생각해 보면 그래서 예매율이 높았던 거 같기도 하네요.

    - 사전 예매율의 반은 아마 베스트 무비 회원들이 예매한 걸 겁니다.

    - 이대로 구원의 밤이 칼레 영화제에서 뭔 상이라도 타 온다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최초로 천만이 넘는 영화가 나올 것 같지 않나요?

    -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상 하나만 탔으면 좋겠네요.

    * * *

    드디어 십사 일간의 칼레 영화제 일정이 끝나는 폐막식 날이 다가왔다.

    나는 박진숙과 함께 필름마켓을 돌아다니며 전 세계 곳곳을 대상으로 구원의 밤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한국에서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였지만 기준이 다른 나라에서는 일반 관람으로 상영할 거라는 곳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나비의 경우는 이제 해외 극장에 하나둘 걸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라서 대규모 지원을 받고 극장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흥행하고 있다고 엔진의 박주오 대표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최병철 감독의 옆에 서 있는 서이렌을 힐끔 바라봤다.

    서이렌은 우아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말아 올렸다.

    서이렌도 걷다 말고 은근슬쩍 나를 돌아봤다.

    우리는 잠시 잠깐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잘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언제나 잘하니까.’

    드디어 폐막식이 열리는 플뢰르 극장 안에 들어간 우리는 우리에게 배정된 의자에 앉았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는 칼레 영화제로서는 자국 영화인 프랑스 영화다.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벌써 황금나무상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드디어 극장에 불이 꺼지고 폐막작인 ‘시청 앞 돈키호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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