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42화 (143/261)
  • #142화. 중대 발표

    “지금 장난해? 미쳤어? 정 팀장도 한가한가 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나 물어 오고.”

    김진희는 피식 웃으며 지나가던 네일 숍 직원을 불렀다.

    “이봐. 나 아메리카노 한 잔만 가져다줘.”

    “예. 실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숲 엔터의 정 팀장은 한가롭게 커피를 기다리는 김진희를 보며 말했다.

    “진짜야. 지금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걸 누가 믿어? 태양제과 삼남이 서이렌이랑 사귀는 게 아니라 빈선예랑 사귄다고? 참나. 빈선예가 그 사람이랑 사귀는 거면 나는 김선우랑 사귄다.”

    김진희는 관리가 끝난 손톱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빈선예가 돈 많은 집안 딸내미인 건 나도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건 너무 갖다 붙이기다. 혹시 스타탄생에서 그래? 서이렌 스캔들 잠재우려고 직원을 파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다. 그걸 누가 믿는다고.”

    정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핸드폰을 들어 김진희에게 들어 보였다.

    “나 조금 전까지 김진희 실장 말 들으면서 억울했는데. 다행히 방금 기사가 떴네. 중대 발표래.”

    “뜬금없이 웬 중대 발표? 서이렌이 스캔들을 인정하기라도 했나 보지?”

    “자기가 봐 봐. 뭐라고 떴는지.”

    “뭐야. 무섭게.”

    김진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핸드폰을 거꾸로 받아 든 김진희는 액정에 뜬 기사를 보며 두 눈이 커졌다.

    다급한 손길로 핸드폰을 제대로 든 김진희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당황했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다른 기사도 이제 막 뜨는 거 같다. 김진희 실장은 좋겠다. 이제 갤러리스 백화점 인맥은 확실하겠다. 아니지. 빈선예가 태양제과 삼남이랑 약혼하면 거기까지 발이 넓어지겠네. 부럽다. 김 실장.”

    정 팀장은 부러운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듯한 말을 쏟아 냈다.

    김진희는 옆에서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정 팀장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기사의 헤드라인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빈선예가 갤러리스 백화점 상속녀라고?’

    김진희는 손이 떨려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쳤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쾅’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김 실장? 액정 나간다고!!”

    * * *

    해명 기사와 함께 뜬 빈선예와 곽이석의 약혼 소식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 서이렌 코디가 갤러리스 상속녀라고?

    - 코디가 아니라 팀장이라던데?

    - 미친. 어쩐지 서이렌이 입는 옷마다 다 센세이셔널하더라니.

    - 서이렌 의리 쩐다. 스캔들 기사 났을 때 바로 해명할 수 있었을 텐데.

    - 방금 기사 하나 또 떴어. 스본 여신들이 갤러리스 백화점 새 모델이래.

    - 진짜네???

    - 그 팀장이란 사람이 힘써 준 건가?

    - 서이렌을 캐스팅하는 데 무슨 힘을 써 줘? 오히려 서이렌이 모델 해 준다고 했을걸?

    - 뭐야? 김이솔 돌아왔어. 김이솔 스타탄생이랑 계약했대.

    - 미친. 진짜 김이솔이네.

    - 이솔 언니. 돌아왔다. ㅠㅠㅠㅠㅠㅠㅠㅠ

    - 이솔 언니. 고생하셨어요. 영국 밥맛 거지 같았을 텐데. ㅠㅠㅠㅠ- 김이솔 귀국한 지가 언젠데 그러냐. 지난달까지 대학로에서 연극도 했어.

    - 스본 지금쯤 대축제겠다.

    - 원세강은 좋겠다. 서이렌, 윤이슬, 김이솔이 내 배우라니.

    해명 기사와 함께 스타탄생 여신들의 갤러리스 모델 발탁 기사도 터트렸다.

    대중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특히 기사와 함께 공개된 김이솔의 사진에, 사람들이 큰 반응을 보였다.

    김이솔이 처음 나왔을 때 역대급 연기 천재라고 불리었을 정도니,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하다.

    사무실에서 기사를 확인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함께 있던 강진석이 내게 물었다.

    “방금까지 기사 조율하느라 바쁘더니 이젠 또 어딜 가려고?”

    “부동산에요.”

    “부동산? 왜? 너 이사하려고?”

    “제가 아니라요. 이렌 씨 집을 새로 얻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 말이구나.”

    “나랑 같이 가자.”

    “아닙니다. 형님은 오후에 악플러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에 가셔야 하잖아요. 저 혼자 가 볼게요.”

    “알아본 곳은 있고?”

    “있습니다.”

    “어디?”

    “이자현 배우님이 지금 사는 집으로 옮길 때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빌라가 있습니다. 매물만 있다면 거기가 좋을 거 같아요.”

    “성북동에 있는 그 빌라 말하는 거지?”

    “기억하시네요. 맞습니다. 언덕배기에 있는 빌라요.”

    “거기 좋지. 근방이 조용하기도 하고. 그 빌라에 매물이 없으면 근처의 다른 집도 알아봐.”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차에 올라탔다.

    차 키를 드는데 갑자기 방금 봤던 커뮤니티 반응이 떠올랐다.

    역시 김이솔을 보고 싶어 한 사람들이 많아.

    하루빨리 김이솔의 신작을 찾아야 할 텐데.

    김이솔이 다시 활동한다고 선전 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아마 대본이 물밀듯이 밀려들 거다.

    당분간 바빠지겠네.

    * * *

    칼레 영화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일주일 전이다.

    구원의 밤의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 진출 소식이 들려오면서 하락세에 접어든 예매율이 다시 치고 올라오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세강아. 이거 잘하면 구백만 넘겠는데?”

    강진석은 삼 위까지 치고 올라온 예매율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영화제 덕을 보네요.”

    “올해는 진짜 뭘 해도 되는 해인가 보다. 나 지금이라도 다시 주식해 볼까?”

    “그때도 좋은 꿈 꾸고 주식에 투자하셨다가 반도 못 건지셨잖아요.”

    “진태가 이번에는 진짜 좋은 투자처라고 했거든.”

    “그럼, 구원의 밤이 천만 넘으면 하세요. 천만 기념으로 스타탄생 식구들 모두에게 보너스 지급할 테니, 그 돈으로 하세요.”

    “야. 너 보너스 안 준다는 말을 이상하게 한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어떻게 천만을 넘어? 천만이 무슨 옆집 강아지 이름이야? 지금 팔백칠십만 든 것도 역대 일 위야. 구백만 넘으면 진짜 진짜 초대박인 거고.”

    “맞습니다. 주식 투자하지 마시라고 그러는 겁니다.”

    “쳇. 진태가 이번에는 진짜 좋은 거라고 나만 알려 준다고 했는데.”

    강진석이 입을 쭉 내밀며 나를 흘겨봤다.

    “주식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악플러 고소 건이나 말해 보죠.”

    “딴소리하기는.”

    강진석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받아 온 악플러 명단을 내게 건넸다.

    “너도 한번 읽어 봐. 난 그거 읽고 저혈압이 치료됐어.”

    “그 정도로 심해요?”

    “장난 아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길래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 악담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악플이 다 그렇죠.”

    강진석이 건넨 서류를 받아 든 나는 담담한 얼굴로 그것을 펼쳤다.

    “난 칼레 영화제 일정 때문에 레전드 필름에 다녀올게. 박 변호사 측에서 엄선해서 골라 준 악플러 리스트니까. 거기에 적힌 놈들은 무조건 고소할 거야. 선처 없는 고소. 명심해라.”

    “저도 벼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진석이 재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펼쳐 놓은 서류에 시선을 옮겼다.

    아이디: 쓸애기

    맨날 야하게 입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노출증 환자인 줄 ㅋㅋㅋ…….

    아이디: 빠떼리

    재벌 3세 만나고 다니니까 좋냐? 눈웃음 살살치고 다니는 XXX …….

    아이디: ㅇㅇ(172.123.4.344)

    서이렌 재벌 킬러임. 태양제과 3세랑 유한자동차 3세랑 지금 양다리 중이야.

    …….

    고르고 고른 악플러 열다섯 명.

    아이디부터 댓글까지 하나같이 모두 토사물 수준의 글이었다.

    재고할 가치도 없다.

    무조건 고소.

    선처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내가 서류를 덮으려는데 누군가 내 손에서 서류를 빼앗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서이렌이었다.

    서이렌이 서류를 펼치자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읽지 말아요.”

    그녀에게 달려든 내가 종이를 빼앗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서이렌은 몸을 왼쪽으로 살짝 틀어서 내 손을 피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렌 씨. 그거 보지 말아요.”

    “이게 뭔데 그렇게 흥분하세요?”

    서이렌은 서류 앞장에 쓰인 박용진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글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악플러 명단이구나. 맞죠?”

    “이렌 씨. 그런 거 보지 말아요. 난 내 배우가 쓰레기 같은 댓글 보고 상처받는 거 싫어요.”

    “나도 싫어요.”

    “그렇죠? 그럼, 그거 나 줍시다.”

    “나도 대표님이 이런 쓰레기 같은 댓글 보고 상처받는 거 싫어요.”

    “이런 걸 처리하는 게 내 일입니다. 내가 봐야 고소를 할지 말지 정하잖아요.”

    “대표님이 읽으셔야겠다면 나도 읽을래요.”

    “이렌 씨.”

    서이렌은 내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뒤로 더 물러나서 서류를 펼쳤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악플러 명단과 그들이 쓴 악플을 훑었다.

    아무리 서이렌의 멘탈이 강하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욕설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서이렌이 상처받고 아파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서류를 꼼꼼히 살펴본 서이렌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죠. 아무렇지도 않아요.”

    서이렌은 내게 다가오더니 서류를 펼쳐 놓고 말했다.

    “여기 ‘쓸애기’라는 닉네임 가진 사람이요. 이 사람이 제일 악질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나랑 맨날 키배 뜨니까 알죠.”

    “키배요?”

    “악플러랑 싸우는 게 키배 아닌가요? 쓸애기가 제일 악질인데 맨날 나한테 져요.”

    나는 놀란 눈으로 ‘쓸애기’라는 유저의 자료를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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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애기: 맨날 야하게 입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노출증 환자인 줄 ㅋㅋㅋ

    원세강부인: 이봐요. 거울 보세요. 본인 다리가 보이긴 해요?

    쓸애기: 난 서이렌만 보면 걸레가 생각나더라. ㅋㅋㅋ

    원세강부인: 님은 걸레를 덮고 주무신다면서요?

    쓸애기: 서이렌 연애로 나락 가게 생겼네. ㅋㅋ. 이제 네 신세도 조진 거야.

    원세강 부인: 쓸애기님 신세 먼저 확인해 보셔야 할 듯.

    쓸애기: 원세강 좆같이 생겼는데 짜증 나게 인기가 많네.

    원세강부인: 야! 너! XXXXX. XXXXX. XXXXX. XXXX

    ─────────────────────────────────

    쓸애기가 단 댓글마다 달려와서 싸운 ‘원세강부인’을 본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거, ‘원세강부인’이 혹시 이렌 씨예요?”

    “저, 잘 싸우죠?”

    “대체 이런 걸 언제 한 겁니까?”

    “촬영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에요. 악플러랑 싸우고 있으면 피곤도 달아나고 얼마나 정신 건강에 좋은데요.”

    “내가 선플만 모아서 따로 전해 줬잖아요. 그거 안 보고 악플을 찾아본 거예요?”

    “그것도 봤죠. 그건 집에 스크랩까지 해 놨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너무나도 당당한 서이렌의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강철 같은 멘탈을 가지게 되는 걸까?

    “이제 악플러 고소하면 쓸애기 님과도 안녕인가? 섭섭하네.”

    서이렌은 오히려 싸울 악플러가 사라진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었다.

    할 말이 없다.

    내 배우가 최고구나.

    나는 서이렌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이렌 씨. 오후에 할 일 없죠?”

    “예. 칼레 영화제 가기 전까지는 한가해요.”

    “이렌 씨 이사 갈 집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요?”

    내가 함께 집을 보러 가자고 하니 서이렌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이렌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로 버리듯 날려 버리고 내 앞에 섰다.

    가방 안에 챙겨 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서이렌이 말했다.

    “준비 완료.”

    “이렌 씨가 살 곳이니 이렌 씨가 고르는 게 좋겠네요. 같이 갑시다.”

    “너무 좋아요. 우리 꼭 집 알아보는 신…….”

    나는 서이렌이 또 흥분하는 것 같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재빨리 일 층으로 내려갔다.

    “대표님. 우리 신혼…….”

    내가 사라지자 서이렌은 뾰로통한 얼굴이 되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신혼부부 같겠네요.”

    서이렌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대표님. 같이 가요.”

    * * *

    빈선예는 요 며칠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빈선예와 곽이석의 약혼 소식이 전해지자 궁지에 몰려 있던 곽이석도 한결 나아졌다.

    빈선예는 곽이석을 돕기 위해 갤러리스 백화점에 곽이석이 추진하고 있는 커피 브랜드의 오프라인 시음 행사장을 오픈했다.

    갤러리스 백화점 상속녀가 곽이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거라는 말이 퍼지자 곽이석을 압박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칼레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입을 의상 때문에 갤러리스 백화점에 들른 빈선예는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잠을 못 자서 얼굴이 푸석푸석해진 김진희 실장이 빈선예가 앉아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빈선예는 김진희를 보는 것이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요즘 자주 뵙네요. 김 실장님.”

    “빈선예 씨.”

    빈선예는 오늘따라 김진희 실장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세요.”

    “선예 씨. 나 좀 살려 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누굴 살려요?”

    “선예 씨.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 테니 나 한 번만 살려 주라.”

    김진희는 울 듯한 표정으로 빈선예에게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지?’

    봉투 겉면을 확인한 빈선예의 두 눈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귀중.

    박용진 변호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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