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41화 (142/261)
  • #141화. 악플러들

    빈선예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해명을 원하는 눈빛으로 빈선예를 쳐다보고 있었다.

    빈선예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빈선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다들 알고 계셨어요? 표정이 그런 거 같은데요?”

    강진석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뭘 말하는 거야? 빈 팀장이랑 태양제과 곽 본부장이 사귀는 거 말하는 건가?”

    “진짜로 알고 계셨어요? 대표님은요?”

    빈선예가 나를 쳐다보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두 분처럼 눈치가 백치인 분들께 제가 들켰다고요? 파파라치한테 들킨 것보다 더 화가 나는데요?”

    빈선예가 광분하자 강진석이 웃으며 말했다.

    “세강이가 눈치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왜 나까지 도매금으로 묶어?”

    빈선예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강진석을 쳐다봤다.

    “빈 팀장. 그렇게 보지 마. 사실은 곽이석 본부장한테 들어서 안 거야.”

    “이석이한테 직접 들으셨다고요?”

    “지난번에 아이스크림 모델 계약서에 도장 찍고 우리가 같이 술을 마셨거든.”

    “아. 걔는 술 못 마신다고요.”

    “그렇더라. 어쩜 딱 두 잔 마셨는데. 꽐라 돼서 술술 다 불더라고.”

    빈선예는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기사 반응을 보며 말했다.

    “우선 해명 기사를 내야겠네요. 기사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 이렌 씨한테 난 첫 번째 스캔들 기사인가?”

    강진석의 질문에 빈선예가 치고 들어왔다.

    “두 번째죠. 첫 번째는 대표님하고 났으니까.”

    “아. 그랬던가?”

    나는 헛웃음을 삼킨 채 빈선예와 강진석의 눈빛을 피했다.

    “또 깡기자님 도움을 받아야겠네요. 빨리 해명 기사 내고 태양제과에도 연락합시다. 그쪽에서도 이 기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강진석의 눈이 커졌다.

    “그러네. 곽 본부장이 지금 이런 기사 날 때가 아니지?”

    나와 강진석의 대화를 들은 빈선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런 기사가 날 때가 아니라뇨?”

    “빈 팀장. 몰랐어? 남친이랑 얘기 안 해?”

    “무슨 소리예요?”

    빈선예가 따져 묻자 나와 강진석이 당황했다.

    정말 모르고 있는 건가?

    “혹시 지난번에 술 마시면서 다른 이야기도 한 거예요?”

    “저희가 함부로 말하는 건 좀 그렇네요. 곽이석 본부장님한테 직접 물어보시는 건 어떤가요?”

    “알았어요. 대표님. 내가 알아볼게요.”

    빈선예는 가방을 챙겨 들고 사라졌고 이 층에는 나와 강진석만 남았다.

    나는 강진석을 보며 말했다.

    “형님. 우리는 해명 기사를 준비합시다.”

    * * *

    김진희 실장은 서이렌의 스캔들 기사를 보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한창 잘나갈 때 스캔들 기사가 터지고. 쌤통이다.’

    곧 스타탄생의 해명 기사가 올라왔다.

    [태양제과 3세와 서이렌은 아무 상관없는 사이.]

    김진희는 해명 기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웃기시네. 재벌 3세가 왜 그 아파트에 놀러 가는데? 대중을 너무 물로 보네. 이러다 훅 가지.’

    야비한 미소를 짓고 있던 김진희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잠깐만. 이 스캔들 기사가 커지면 갤러리스 백화점 모델도 못 하게 되는 거 아니야?’

    김진희는 스캔들의 파장이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봤다.

    ‘잘만 하면 서이렌이 광고에서 잘릴 수도 있겠는데?’

    김진희는 당장 핸드폰을 들었다.

    연예계 소식이 올라오는 엔터 판에 들어간 김진희는 서이렌의 기사를 확인했다.

    해명 기사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려 있었다.

    - 모르는 사이라잖아. 기사 좀 믿어라.

    - 서이렌이 태양제과 광고를 몇 개나 찍었는데 모르는 사이냐?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 원세강도 결국 다른 기획사 사장이랑 똑같네. 이런 언플도 하고. ㅋㅋㅋ- 여기서 원 대표 욕은 왜 하고 있음?

    - 서이렌이 원세강 회사 배우니까. 내가 잘못 말함??

    - 근데 둘 다 젊던데. 사귀어도 되지 않나?

    - 제발 우리 서이렌 좀 놔주라.

    - 태양제과 말고도 다른 재벌 3세도 서이렌 좋아한다는 썰이 있던데?

    - 서이렌은 전 국민이 다 좋아함.

    - 라이징도 아니고 연애할 수도 있지. 되게 뭐라고 그러네.

    - 라이징은 아니고 이제 완전히 톱에 올라섰는데 지금 스캔들 나는 것도 좀 그래.

    - 그건 맞음. 이제야 진짜 톱스타라는 생각이 드는데. 곧바로 스캔들 터져 버리면. 그것도 재벌이랑. ㅋㅋㅋ댓글을 보며 좋아하던 김진희는 슬쩍 동참했다.

    - 서이렌 재벌 킬러임. 태양제과 3세랑 유한자동차 3세랑 지금 양다리 중이야.

    댓글을 단 김진희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김진희의 댓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 유한자동차…… 대박.

    - 서이렌 진짜 재벌 킬러임??? ㅋㅋㅋㅋㅋ

    - 이거 루머 아님? 나 방금 PDF 땄어. 스본에 보낼 거야.

    -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서이렌이 어쩌고 다녔는지 눈에 훤하다.

    - 이제 톱스타라 이거지. ㅋㅋㅋ 만나는 사람도 다 재벌이네.

    댓글이 폭발하기 시작하자 김진희는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 가며 글을 썼다.

    딱 봐도 연예계 종사자가 쓴 것 같은 글에 사람들은 광분하며 서이렌을 물었뜯었다.

    엔터 판에 댓글이 삼백 개 이상 달리자 김진희는 은근슬쩍 자신이 남겼던 댓글을 모두 지웠다.

    그녀가 쓴 댓글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계속 서이렌과 재벌 3세의 스캔들이 사실인 것처럼 떠들고 있었다.

    ‘오케이. 됐어. 갤러리스 백화점 모델이 안 돼도 좋아. 서이렌이 스캔들로 인기가 떨어지면 빈선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김진희는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닫았다.

    * * *

    갤러리스 백화점에 빈선예가 떴다.

    회의를 마친 문영란이 대표실에 와 보니 빈선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

    “엄마.”

    문영란은 빈선예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는데? 여기 앉아서 얘기해 봐.”

    뜸을 들이던 빈선예가 결연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나 결혼해야겠어. 아니다. 결혼은 너무 이르고 약혼 먼저 할래.”

    문영란은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빈선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왜 그래? 갑자기 결혼이라니? 언제는 영원히 혼자 살 것처럼 그러더니?”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어.”

    “누구야? 누구랑 사귀는데? 혹시 연예인이니?”

    “아니야.”

    “그럼,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빈선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문영란의 눈이 커졌다.

    “혹시 원세강이야?”

    “무슨 소리야? 아니야. 우리 대표님은 사귀는 사람 없어.”

    “아. 그래? 그렇지?”

    문영란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이 결혼한다는데, 지금 원 대표님이 여친 없는 게 더 중요해?”

    “누군지나 빨리 말해 봐. 누구야? 어떤 집 자식인데?”

    문영란이 캐묻자 빈선예가 눈알을 굴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엄마. 내가 고딩 때 우리 집에 자주 데리고 왔던 학교 친구 기억해?”

    “누구? 지혜 말하는 거니?”

    “지혜 말고. 남자.”

    “남자?”

    순간 문영란의 눈이 커졌다.

    “혹시 태양제과 삼남, 곽이석을 말하는 거니?”

    “응. 걔야.”

    “걔는 태양제과 사장이 밖에서 낳아서…….”

    문영란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빈선예는 문영란의 당황한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냈다.

    “너 정말 이석이랑 사귀어?”

    “응.”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야?”

    “응. 이왕이면 당장 기사 내고 우리가 결혼한다고 발표했으면 좋겠어.”

    “왜 이렇게 빨리? 내 딸은 늦게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좀 복잡해.”

    “뭐가 그렇게 복잡한데?”

    “태양제과 삼 형제가 지금 경영권 싸움 중이거든.”

    “그건 엄마도 알아. 그거 다 이석이 때문이잖아. 안중에도 없던 이석이가 갑자기 치고 올라왔다며?”

    “맞아. 그러니까 내가 도와줘야 해. 지금 이석이 혼자 분투 중인데. 형님들 세력이 만만치 않은가 봐. 이석이는 비빌 언덕이 없어. 내가 힘이 돼 줄래.”

    “너 말은 바로 해라. 네가 돕는 게 아니라, 갤러리스 백화점이 돕는 거잖아.”

    “나 갤러리스 백화점 상속녀야. 내가 돕는 거야.”

    “네가 상속녀인 건 알고?”

    빈선예는 문영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나 좀 도와줘. 내가 그 거지 같은 곽씨 형제가 꼴 보기 싫어서라도 도와줄래.”

    “이석이는 너랑 결혼할 마음은 있고? 너 혼자 쇼하는 건 아니지?”

    “걔는 작년에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했었어. 내가 싫다고 차서 그렇지.”

    “왜 찼는데?”

    “그땐 결혼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고?”

    “어차피 결혼할 거면 이석이랑 할 거야. 다만 시기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서 거절한 거야.”

    문영란이 기억하는 곽이석은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출생은 그녀도 탐탁지 않았다.

    후계 구도에서도 지금 밀리고 있는 모양인데, 당연하다.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자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딸이 저렇게 좋아하고 도와주고 싶다고 나서니 그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연예인 안 데리고 온 것만 해도 다행인 일인가? 하긴 이석이 정도면 선예 저 성격을 다 받아 줄 만큼 무던한 녀석이긴 하지.’

    문영란은 탁자 위에 올린 전화기를 들었다.

    “김 비서. 밖에 있지? 들어와요. 할 이야기가 있어.”

    수화기를 내려놓자 대표실에 김원필 비서가 들어왔다.

    김원필은 대표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자 마른침을 삼켰다.

    “대표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김 비서. 태양제과 곽 씨 일가도 우리 백화점 VIP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보자고 했다고 연락 넣어 봐.”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문영란은 빈선예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우리 선예가 결혼해야겠대.”

    * * *

    일주일 뒤, 스타탄생 사무실에 폭탄이 떨어졌다.

    빈선예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나는 강진석에게만 이 사실을 귀띔해 줬다.

    강진석이 어찌나 놀랐는지 비명을 질러서 일 층에 있는 이선아가 이 층으로 올라올 정도였다.

    강진석은 지금까지 얼떨떨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빈 팀장이 갤러리스 백화점 상속녀였다니. 세강이 너는 알고 있었어?”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빈선예의 말에 따르면 상견례도 다 마치고 약혼식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곽이석과 빈선예의 약혼 발표가 기사로 뜰 거라고.

    강진석은 빈선예의 정체를 알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차도 되게 비싼 차 몰고 다니고. 협찬받아 오는 옷도 그래. 몇몇 옷들은 한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거였잖아. 잠깐! 그럼, 그 옷도 협찬받은 게 아니라 본인 옷이었나?”

    “일부는 빈 팀장님 개인 소장품이 맞을 겁니다.”

    “와. 대박이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돈 버는 족족 옷에 쓴다고 저축 좀 하고 살라고 타박했었는데.”

    “그러셨어요?”

    “응. 그렇게 살면 돈 못 모은다고 내가 얼마나 뭐라고 했는데. 와.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백화점 상속녀가 저축 좀 하고 살라는 내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같잖게 보였을까?”

    “빈 팀장님이 그럴 사람은 아니죠.”

    “하긴. 그건 그래. 빈 팀장이 그런 속 좁은 사람은 아니지.”

    순간 강진석의 눈빛이 번뜩였다.

    “곽 본부장이랑 빈 팀장 결혼 소식 뜨면 이렌 씨 스캔들은 쏙 들어가겠어.”

    “그렇죠. 저희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니 빈 팀장님께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래. 맞아. 지금도 인터넷에 사람들이 루머 유포하고 장난 아니다. 대체 왜들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어.”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갈 겁니다. 선을 넘는 악플이나 당당하게 루머 유포하는 댓글은 다 확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다 잡아들여. LOK에서도 그랬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울면서 비는 게 불쌍해서 선처해 줬더니 다음 해에 다시 악플러로 잡혀 왔잖아. 그놈들은 손가락을 가만히 못 놔두는 병에 걸린 정신병자들이야. 절대 선처해 주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로 선처해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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