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40화 (141/261)
  • #140화. 프리허그

    서이렌과 빈선예가 집에서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구원의 밤 팔백만 기념 무대 인사 및 프리허그 이벤트를 진행하는 날이다.

    지하 주차장에는 이미 장우재 매니저가 도착해 대기 중이었다.

    “우선 샵에 먼저 들렸다가 여의도 갤러리스 백화점으로 가자.”

    “예. 빈 팀장님.”

    오늘 프리허그 이벤트는 여의도 갤러리스에서 열리는 오픈 이벤트다.

    장우재가 차에 시동을 걸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확 뒤로 돌렸다.

    “로드 장. 왜 그래?”

    “어라? 저기 기둥 뒤에서 분명히 뭔가 번쩍한 거 같았는데요? 이상하네?”

    “기둥 뒤라고?”

    빈선예는 황급히 서이렌에게 선글라스를 던지고 고개를 돌렸다.

    서이렌이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는 동안 빈선예는 기둥 쪽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두운 지하 주차장이라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로드 장. 우리 차 선탠해서 어차피 안에 안 보이니까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여기를 빠져나가자.”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장우재는 빈선예의 말대로 차를 움직여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빈선예는 지하 주차장에 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 * *

    여의도 행사장에 도착한 서이렌은 갤러리스 백화점에서 내준 대기실로 들어가 의상을 갈아입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서이렌이 빈선예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언제 오신대요?”

    “이미 오셨어요. 레전드 필름 직원들과 밖에 계세요.”

    원세강이 왔다는 말에 서이렌이 입을 쭉 내밀었다.

    “왜요? 이렌 씨를 먼저 보러 안 와서 속상해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요.”

    “뭔가요?”

    “혼자 짝사랑하는 거 안 지쳐요?”

    “아닌데요. 대표님도 나를 좋아하는데요?”

    빈선예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서이렌이 갑자기 손을 그녀의 심장에 올리더니 말했다.

    “제 가슴이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참나. 드라마도 못 봤어요? 그거 다 오해고. 헛물켜는 거라고요.”

    “빈 팀장님!”

    서이렌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빈선예는 삐진 서이렌의 반응이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순간 빈선예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렌 씨. 내가 오늘 대표님 속마음을 한번 떠볼까요?”

    뿌루퉁하게 입이 나와 있던 서이렌의 두 눈이 커졌다.

    “어떻게요?”

    “나만 믿어요. 내가 대표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줄 테니까.”

    “그런데 저는 이미 확신하고 있어요. 대표님은 진짜로 나를 좋아해요. 이제는 짝사랑이 아니라 쌍방이라고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확인해 보자는 거죠. 어때요?”

    곰곰이 생각하던 서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까짓 거 해 보죠.”

    빈선예는 설레하는 서이렌을 보며 불안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되네. 대표님은 아니라고 하면 이렌 씨가 실망할 텐데.’

    * * *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에 올랐다고요?”

    나는 놀란 얼굴로 박진숙 이사를 쳐다봤다.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습니다.”

    “경쟁 부분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놀라는 나를 보며 박진숙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뽑힌 칼레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케인 마르티네스잖아요. 그분이 최병철 감독님의 팬이라고 합니다. 최병철 감독님의 은퇴작이 출품됐다는 말에 제일 먼저 달려왔대요.”

    “그렇죠. 최병철 감독님은 해외에서도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칼레 영화제 일정이 어떻게 되죠?”

    “9월 둘째 주예요. 레전드 필름에 칼레 영화제에 가 본 직원들이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두 번 정도 다녀온 경험이 있고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박진숙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대표라서 죄송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최진을 여성으로 바꾼 거, 홍보로 미해결사건 파일에 출연한 거. 일부러 블라인드 시사회를 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거. 모두 원 대표님이 하신 거라고요. 특히 최진이 여성 캐릭터라는 게 평론가들이 제일 감탄한 부분입니다. 저도 놀랬고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만 좀 띄워 주세요. 저는 그런 칭찬을 잘 못 들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특히 최진을 여성 캐릭터로 바꾼 것은 내가 대단한 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서이렌에게 그 역을 주고 싶어서 제의한 거라 얻어걸린 거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창피해서 귀까지 빨개지자 박진숙은 그제야 나에 대한 칭찬을 멈췄다.

    그때 우리가 있던 곳으로 장우재 매니저가 들어왔다.

    “대표님. 서이렌 배우님과 빈 팀장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배우 대기실에서 쉬고 계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진숙 이사에게 말했다.

    “저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배우님들을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나는 장우재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가 배우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 이벤트는 심석현과 김건명은 빠지고 서이렌과 박선호만 하는 이벤트다.

    심석현과 김건명은 우리 같은 노땅들은 이벤트에 참가해도 반응이 없을 거라며 사양했다는데 사실은 프리허그를 안 해도 돼서 기뻐했다고 한다.

    대기실에 도착해 보니 서이렌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가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빈선예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사실은 오늘 집에서 나오는데요.”

    “집에서요?”

    “예. 집에서 나오는데 파파라치가 우릴 찍는 거 같았어요?”

    “집까지 파파라치가 찾아왔다는 건가요?”

    빈선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가 됐다.

    내가 너무 바빠서 서이렌의 거처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한 탓이다.

    지금 사는 곳도 좋지만, 이제는 좀 더 안전이 보장된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

    이자현도 삼 년 차가 되던 해에 지금 사는 빌라로 이사했다.

    그때 이자현의 집을 알아보며 2안으로 봐뒀던 빌라가 있다.

    단 두 동짜리이지만 입구부터 경비가 철저한 곳이었다.

    당장 이사부터 알아봐야겠구나.

    나는 빈선예에게 당부했다.

    “제가 안전이 보장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이참에 이사를 하는 건 어떤가요?”

    “갑자기 이사라고요?”

    “비용은 스타탄생에서 다 대는 거로 하고, 빈 팀장님도 함께 그곳으로 옮기는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다니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예. 그렇겠죠.”

    빈선예는 서이렌을 힐끔 쳐다봤다.

    나는 서이렌을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행사 끝나고 당장 알아봐 줄게요.”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사람이 많이 몰렸습니다. 이벤트 티켓을 얻으려고 구원의 밤을 백 번이나 본 사람도 있다더군요. 이벤트 시간은 길지 않을 겁니다. 빈 팀장님이 고생 좀 해 주세요.”

    “예. 대표님…….”

    내가 할 말을 다 하고 밖으로 나가자 대기실에 침묵이 흘렀다.

    서이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빈선예를 쳐다보며 말했다.

    “빈 팀장님. 이게 아니잖아요.”

    “그러게요. 파파라치가 쫓아왔다고 하면 달려와서 괜찮냐? 무섭지 않았냐? 이렇게 물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빈선예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자 할 말이 없었다.

    한편 대기실 밖으로 나온 나는 장우재와 대화를 시작했다.

    “이렌 님은 괜찮으세요?”

    “다행히 괜찮아 보입니다. 장 매니저가 이사 전까지 신경 좀 써 주세요.”

    “예. 대표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행사장으로 돌아갈게요. 행사 시작하면 늦지 않게 배우님들 모셔 와 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다시 바쁘게 행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대기실 복도에서 사라지자 장우재가 조용히 속삭였다.

    “파파라치가 붙었다고 했을 때 너무 놀라서 얼굴까지 굳으셨는데. 역시 우리 대표님은 프로셔. 배우가 걱정할까 봐 저렇게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 주시니 말이야. 나도 잘 배우자. 우리 대표님 반만 따라가도 성공이다.”

    장우재는 몇 번이나 다짐하며 의지를 다졌다.

    * * *

    프리허그 행사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벤트에 당첨된 백 명의 팬들이 거의 무대 위로 올라왔고 이제 단상 아래에는 단 두 명만이 남았다.

    난관 없이 일사천리로 프리허그 이벤트가 진행됐기에 나는 안도했다.

    레전드 필름이 워낙에 이런 쪽에 경험이 많아서 의지가 많이 된다.

    드디어 두 번째 사람이 프리허그를 하고 내려가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사람은 사람 키만 한 커다란 꽃다발과 인형을 들고 올라왔다.

    꽃을 보니 누구를 보려고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박선호와는 대충 가슴을 부딪치는 정도로 대충 프리허그를 끝내고 서이렌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내 옆자리에 있던 빈선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쟤가 저기에 왜 있지?”

    “아는 사람인가요?”

    “대표님도 아실걸요. 쟤 임지형이잖아요.”

    순간 내 머릿속에 갤러리스 VIP 파티에서 만난 임지형이 떠올랐다.

    대광그룹 둘째 아들? 임지형?

    나는 놀란 눈으로 무대 위를 바라봤다.

    임지형의 수줍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얼굴이 살짝 보였는데 광대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임지형은 서이렌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수줍게 말했다.

    “제가 보낸 꽃은 받으셨나요?”

    서이렌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팬들의 꽃을 받는다.

    그녀는 웃으며 임지형을 보며 답했다.

    “팬분들이 주신 꽃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서이렌의 웃은 얼굴을 본 임지형은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개인 업무를 처리해 주는 비서를 시켜서 구원의 밤 프리허그 티켓을 간신히 얻었다.

    영화표를 백 장이나 샀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사람들이 저와 닮았다고 하는 인형입니다. 받아 주세요.”

    “그러네요. 정말 닮으셨네요.”

    “꽉 안으면 정말 포근합니다.”

    “예. 털이 부드러워요. 감사합니다.”

    임지형이 준 선물을 옆으로 치운 서이렌이 두 팔을 벌렸다.

    임지형은 너무 떨려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서이렌은 이미 이런 팬들을 오늘 구십구 명이나 만났다.

    그녀가 먼저 다가오더니 떨고 있는 임지형을 꽉 안아 줬다.

    임지형은 눈앞이 새하얘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무대 아래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갑자기 몸에서 열이 치솟았다.

    “저거 너무 오래 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러면 안돼죠.”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빈선예가 놀라 나를 돌아봤다.

    “대표님.”

    “예. 빈 팀장님.”

    “대표님. 그거 다 구겨졌어요.”

    “예?”

    “손에 들고 있는 서류요. 겉면에 프랑스어가 적혀 있는 거 같은데요?”

    “아…….”

    나는 그제야 내가 칼레 영화제에서 받은 초청장을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류에 담긴 초청장은 내가 너무 꽉 움켜쥐어서 너덜너덜하게 구겨져 있었다.

    “아. 이거 중요한 건데 어떡하지?”

    내가 당황하며 봉투를 손으로 피자 빈선예가 나의 그런 모습을 의미심장한 얼굴로 지켜봤다.

    빈선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초청장을 펴는 나와 무대 위에 서 있는 서이렌을 번갈아 쳐다보며 두 눈이 커졌다.

    ‘진짜 쌍방이었네.’

    * * *

    구원의 밤의 칼레 영화제 경쟁 부분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몰려들었다.

    오늘은 칼레 영화제에 가는 일로 회의를 진행한다.

    레전드 필름의 회의가 아니라 배우 서이렌의 첫 국제 영화제 데뷔 때문에 모인 회의다.

    빈선예는 프랑스가 패션의 도시이기 때문에 패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여러 가지 의상을 준비해 왔다.

    나는 이번 참에 스타탄생 식구들이 모두 프랑스에 가자고 말했다.

    강진석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비용이 꽤 나올 텐데?”

    “괜찮습니다. 놀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놀러 가는 게 아니라니? 그럼, 왜?”

    “식구도 늘었는데 엠티를 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올 초 방송한 ‘리얼리티: MT’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지만 대박이 났다.

    NGB에서는 2탄은 언제 할 거냐며 독촉까지 하고 있다.

    “야. 세강아. 너무 좋은 생각이다.”

    “그렇죠? 다 같이 갑시다.”

    “좋지. 지금 모든 배우가 작품 없이 쉬고 있으니까. 일정 잡기도 편하고. 딱이다.”

    엠티를 간다니 강진석이 제일 좋아했다.

    우리가 한참 동안 영화제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우리의 핸드폰이 동시다발적으로 ‘두두두’거리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켜 보니 깡기자에게 온 전화였다.

    “잠시 전화 좀 받을게요.”

    내가 전화를 받자 깡기자가 다짜고짜 소리쳤다.

    [대표님. 방금 서이렌 씨 스캔들 기사 떴어요.]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돼 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전화를 받은 것인지 놀란 얼굴로 굳었다.

    나는 황급히 태블릿 PC를 열어 인터넷 포털에 접속했다.

    포탈의 메인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서이렌의 열애설 기사가 떠 있었다.

    [단독, 서이렌 재벌 3세와 집에서 밀회 가져]

    기자 제목을 본 나는 다급하게 기사를 클릭했다.

    서이렌과 빈선예가 사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 사진이 보였다.

    [서이렌이 사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태양제과 3세, 곽이석 본부장의 차]

    그걸 본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한 사람을 쳐다봤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빈선예가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왜 찍혔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