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37화 (138/261)

#137화. VIP 파티(2)

갤러리스 백화점이 여의도 지점을 오픈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이 바로 옥상 정원이다.

돔 형태의 구조물이 반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는데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까만 밤하늘이 그대로 보였다.

옥상 정원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으며 작은 호수와 폭포까지 꾸며져 있었다.

백화점 운영 시간에는 이 공간을 일반인들에게 완전 개방한다고 했다.

지난달에 오픈한 여의도 갤러리스 백화점에서 가장 유명한 핫 플레이스가 바로 이 옥상 정원이었다.

갤러리스 백화점의 문영란 대표의 생일 축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유명 인사들이 속속들이 옥상 정원에 도착하고 있었다.

파티장은 도착한 스타탄생 식구들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와. 말도 안 돼. 이런 공원이 건물 옥상에 있다고요?”

이락이 놀라서 사방을 둘러봤다.

윤이슬과 김이솔도 말은 안 했을 뿐, 속으로는 압도적인 정원의 규모에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평소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던 강진석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대단하네. 옥상에 이런 정원을 만들려면 건축할 때부터 계획했다는 건데.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백화점답다.”

서이렌과 함께 옥상 공원을 둘러보던 나는 괜히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봤던 미래에서는 지금쯤 빈선예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갤러리스 백화점의 대표가 된다.

빈선예는 어떻게 될까?

내가 본 미래처럼 어머니의 뒤를 잇는 걸까?

아니면 나와 서이렌을 만나서 인생이 달라지는 걸까?

뭐가 됐든 나는 빈선예의 결정을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누가 뭐래도 빈선예는 스타탄생의 개국공신이다.

스타탄생을 처음 세웠을 때, 옆에 빈선예가 없었다면 꽤 힘들었을 거다.

그녀가 없었다면 서이렌을 케어하는 것도 지금보다는 힘들었을 거다.

내가 감상에 빠져 있는데 서이렌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빈 팀장님은 언제 오시는 걸까요?”

다른 차를 타고 먼저 떠난 빈선예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가족들을 만나고 있을 거다.

나는 서이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빈 팀장님은 조금 늦으실 겁니다.”

나는 정원 구경에 정신이 팔린 스타탄생 식구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먼저 자리로 갈까요?”

“그래. 세강아. 저기 야외에 세팅된 테이블이 자린가 보다. 가자.”

나는 강진석과 함께 스타탄생 배우들을 데리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 * *

옥상 정원에 도착한 지수연은 그녀의 자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공원 한복판에 초대된 VIP들을 위한 테이블이 있었는데 지수연에게 배정된 테이블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수연이 옆에 서 있는 매니저와 김진희 실장을 쳐다봤다.

매니저는 지수연의 따가운 눈빛을 받고 곧바로 함께 온 김진희 실장을 쳐다봤다.

“왜 날 쳐다봐요?”

“제가 이런 곳에 처음 와 봐서요. 김진희 실장님은 자주 오실 거 아닙니까?”

“나야 패션계에 아는 인사가 많으니까 당연히 이런 곳에 자주 와 봤죠.”

“그러니까요. 실장님이 좀 알아봐 주세요. 배정된 테이블을 바꿀 수 없는지?”

김진희 실장은 지수연의 매니저를 쏘아보더니 이내 앞으로 나섰다.

“지수연 배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김진희 실장이 나서자 꽁해 있던 지수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김 실장님이세요. 갤러리스 백화점에도 인맥이 있으신가 보네요?”

“그럼요. 우선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 시작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공원 구경하고 있든가요.”

“힐 때문에 걷기 힘들어요. 그냥 앉아 있을래요.”

지수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에 앉았다.

김진희는 자신이 픽한 구두가 불편하다고 시위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

“힐이 다 그렇죠. 예쁘고 편한 신발은 없어요.”

“예. 알아요. 아니까 앉아 있겠다고요.”

지수연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을 감상했다.

김진희는 귀까지 새빨개졌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 * *

옥상 정원의 바로 아래층, 대표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모녀가 대화 중이었다.

갤러리스 백화점 대표 문영란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겠다며 집을 나간 말 안 듣는 딸내미 빈선예와 대치 중이었다.

“그래서 재미있긴 한 거니?”

“재미있으니까 계속하죠.”

“돈은 벌려?”

“엄마. 나 이제 유명인사야. 서이렌 배우님이 패션위크 들었다 놨다 한 게 다 나 때문이라고.”

“그게 과연 너 때문일까?”

“뭐?”

“할머니가 남겨 주신 옷장이 아니었다면 네가 어떻게 그런 기획을 할 수 있었겠어? 안 그래?”

빈선예는 어머니가 정곡을 찌르자 기분이 확 상했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쳇. 나 하는 일에 관심 없다며? 다 찾아보긴 했나 보네. 내가 할머니 옷장 털어서 의상 리폼 한 것도 알고.’

빈선예는 말만 차갑게 하는 어머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렇게 VIP로 초대받은 것도 이제야 어머니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선예가 속으로 감동하고 있는데 문영란이 말을 꺼냈다.

“그래서 원세강 대표는 언제 와?”

“지금 나보다 원 대표님이 더 보고 싶다는 거지?”

“당연하지. 넌 원하면 언제든 호출하면 되잖아.”

“참나. 엄마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뭐가?”

“엄마가 딸내미가 다니는 회사에 찾아왔으면 원 대표님을 매일 봤을 텐데? 지금까지는 내가 무슨 회사에 다니는지도 몰랐으면서.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으면서 되게 웃긴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다 큰 자식 다니는 회사에 놀러 가는 엄마가 어디에 있어?”

문영란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한번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누군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문영란의 얼굴이 환해졌다.

빈선예는 생전 처음 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들어오세요.”

빈선예는 마치 자신이 이 방의 주인인 것처럼 말했고 이내 문이 열리자, 내가 대표실에 들어왔다.

갤러리스 백화점의 대표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똑 닮은 모녀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문영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갤러리스 백화점 대표 문영란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스타탄생 대표 원세강입니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는 나는 빈선예와 문영란을 번갈아 쳐다봤다.

빈선예는 어느새 스타탄생의 빈선예 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원 대표님.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었죠? 갤러리스 백화점에서 새로운 모델을 뽑는다고요.”

“예. 들었습니다. 우리 서이렌 배우님을 모델로 고려하고 계신다고도 들었습니다.”

문영란이 내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맞아요. 오늘 직접 봐서 아시겠지만, 갤러리스 백화점은 달라지고 있어요. 그동안 고수해 온 갤러리스 백화점 이미지를 리브랜딩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본 미래에서도 지금쯤 백화점 모델이 바뀌었다.

그때는 대표가 빈선예였고 바뀐 모델은 지수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표는 여전히 문영란이고 이제 모델은 서이렌으로 바뀔 거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나는 문영란과 빈선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서이렌 배우님을 모델로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제안을 해도 될까요?”

문영란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빈선예도 예상치 못한 내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미리 챙겨 온 태블릿 PC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한 짧은 자료를 재생했다.

화면에는 스타탄생의 세 여신.

서이렌, 윤이슬, 김이솔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김진희 실장은 갤러리스 홍보팀, 박 팀장과 웃으며 대화 중이었다.

“박 팀장님. 너무 감사드려요.”

“김진희 실장을 어디 한두 해 보나. 고작 한 사람 자리 옮겨 주는 건데. 해 줄 수 있지. 오늘 오기로 한 VIP가 안 와서 가능한 거야. 운 좋은 줄 알아.”

“역시 박 팀장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본부장으로 승진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하하. 그게 벌써 LOK까지 소문이 돌았어?”

“그럼요. 박 팀장님이 본부장님이 되시면 이제 LOK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지 않을까요?”

“하하하. 여기서 더 돈독해지면 어쩌지? 너무 부담스러운데?”

박 팀장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김진희 실장은 그런 박 팀장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저는 이만 자리로 돌아가 볼게요.”

김진희는 팀장실을 나가며 고개를 돌렸다.

“박 팀장님. 우리 지수연 배우님이 모델 되는 건 확실한 거죠?”

박 팀장은 김진희의 말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김진희는 그걸 보고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요즘 지수연이 논란이 많던데. LOK에 다른 사람은 없나? 이자현에서 강하나로 모델 바통 터치한 건 괜찮았는데 말이야.”

“…….”

사실 김진희는 LOK의 다른 배우가 갤러리스 백화점의 모델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LOK에서 지수연을 제대로 푸시해 주고 있어서 그녀는 함부로 다른 사람을 추천할 수 없었다.

“됐어. 김진희 실장.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예. 박 팀장님.”

“오늘 지수연 예쁘게 하고 왔지? 이따 대표님과 임원들을 볼 수도 있으니 그때 눈도장이나 찍으라고.”

“염려 마세요. 오늘을 위해 제대로 꾸미고 왔으니까요.”

“역시 김진희 실장이야.”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팀장실에서 나온 김진희는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건물 옥상으로 가려면 옥상으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탑 층으로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전용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있는 것을 확인한 김진희는 탑 층을 눌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윗선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길래 지수연을 그렇게 밀어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정말로 지수연 아빠가 KBC 드라마 국장이라서 그런가? 하긴 지수연 들어오고 나서 LOK 배우들이 유독 KBC에 많이 나오긴 했어.”

어느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탑 층에 도착했다.

여기서 옥상으로 가는 전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누군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그는 고개를 돌리다 김진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김진희는 그를 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빈선예. 오랜만이다.”

빈선예는 과거의 직장 상사를 마주하고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김진희 실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지난번 뉴욕 패션위크 때 보고 반년만인가요?”

“너 많이 컸다. 이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줄도 알고.”

“제가 원래 사람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대화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때도 실장님 눈을 쳐다보고 말했을 건데요. 그래서 실장님이 저만 보면 눈 깔라고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김진희는 그제야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김진희는 말단 직원인 주제에 언제나 당당하게 제 할 말 하는 빈선예가 재수 없었다.

일 잘하는 빈선예를 싫어한 이유는 두 가지다.

나한테 아부를 하지 않아서.

그리고 직설적이어서.

대개 상사가 잘못해도 부하 직원은 거기에 토를 못 달지 않나?

그런데 빈선예는 이상한 게 있으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김진희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김진희가 빈선예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빈선예 씨 상사도 뭣도 아니지만, 이 바닥 선배로서 이야기할게. 잘 들어.”

“…….”

“한번 잘했다고 계속 잘하겠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니까. 겸손하게 행동해.”

“제가 언제 겸손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너는 항상 그 태도가 문제야. 무슨 말인지 알지?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야. 그렇게 딱딱하게 굴면 누가 너를 좋아하겠어?”

“스타탄생 식구들은 모두 저를 좋아하는데요?”

“끝까지 말대답이지. 지금 선배 말이 우스워?”

김진희가 이참에 빈선예를 제대로 눌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그들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빈선예와 함께 가려고 온 김원필 비서였다.

갤러리스 문영란 대표를 지척에서 보필하는 김 비서를 김진희가 몰라볼 리 없었다.

김진희가 살갑게 가서 인사를 하려는데 김원필 비서가 웃으며 빈선예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여기 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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