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35화 (136/261)
  • #135화. 김경록의 복수

    김경록은 방금 뜬 기사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사의 내용으로 설왕설래 중이었다.

    - 방금 뜬 기사 봄?

    -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 미친. 내 최애 예능이 날아갔어.

    - 이게 말이 되냐? 그럼 지금까지 다 대본이었다는 말이잖아.

    - 그럴 리가 없다. 이건 아니야.ㅠㅠㅠㅠㅠ

    - 후속 기사 떴어. 지수연 아빠가 KBC 드라마 국장이래.

    - 뭐임? 그럼, 아빠 빽으로 답안지 받은 거야?

    - 어쩐지 KBC만 틀면 그 영화 홍보하더라. 이상하다 했어. 난 KBC가 영화 투자자인 줄 알았다고.

    - 인생 예능에 똥 뿌렸네. 멜랑꼴리인지 거지발싸개인지 재수 털려.

    - 어쩐지 김선우가 그걸 어떻게 풀어. ㅋㅋㅋ 김선우 대사도 잘 못 외우는 거 유명하지 않나?

    - 김선우도 피해자야. 김선우 욕하지 마.

    - 웃기시네. 수혜자지 무슨 피해자야.

    - 야. 지금 기사 계속 뜨고 있어. 지수연이 지금까지 KBC 드라마만 했대. ㅋㅋㅋ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단 것처럼 후속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인기 영화 멜랑꼴리의 주인공 지수연, 알고 보니 아버지가 KBC 드라마 국장님]

    [지수연의 아버지 지영록은 누구인가?]

    [정답 유출한 라이어 게임, 진실은 무엇인가?]

    기사를 보는 김경록은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담담한 얼굴로 그저 쏟아지는 기사를 보기만 했다.

    그때 김경록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경록은 문자 메시지를 보고 입술을 비틀었다.

    [특종 잘 챙겼습니다. 감사합니다.]

    팬파라치 신주원 기자가 보낸 문자를 읽은 김경록은 그대로 핸드폰의 전원을 꺼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경록은 준비해 놓은 캐리어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고향 집에는 작년에 LOK에서 퇴사한 동생 김경진이 있다.

    거실 유리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김경록은 LOK가 있는 청담동 쪽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한성제 대표님. 저 김경록입니다. 반드시 재기해서 돌아올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그 전에 LOK는 망하면 안 됩니다.”

    혼잣말을 되뇐 김경록은 캐리어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김경록이 나가자마자 그의 집에 있는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취임식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한성제와 한지욱, 김선우와 지수연은 일시에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취임식장에는 구경꾼들만 남아 있었다.

    주인공이 모두 사라지자 남은 사람들은 방금 뜬 기사를 보며 소곤거렸다.

    “일부러 취임식인 오늘 기사를 터트린 걸까요?”

    “그러게요. 작정하고 기사를 준비한 거 같은데요? 그나저나 지수연이 지영록 국장 딸이었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

    “왜 그러세요?”

    “재작년에 우리 회사 신인이 KBC 미니시리즈 조연으로 들어가기로 했었거든요. 계약서에 도장 찍기 직전까지 일이 진행됐었는데 갑자기 오디션을 보지도 않은 지수연으로 바뀌어서 제가 난감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인제 보니 그것도 지영록 국장 빽이었나 봅니다.”

    “지수연이 KBC에 유독 많이 나오긴 했네요.”

    “한성제 대표는 연이어 안 좋은 일이 터지네요. 연초에 이자현도 LOK를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네요. 제작사 차려서 그거 만회하나 했더니 바로 고꾸라지네요. LOK 신화도 이제 깨지는 걸까요?”

    나는 사람들을 피해 강진석과 함께 구석으로 갔다.

    강진석은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는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들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다들 불구경에 신났네. 한성제 대표님 앞에서는 포커페이스로 있더니 지금은 대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어. 웃긴다. 그렇지. 세강아?”

    강진석의 말대로 모두 남의 불행에 고소해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누가 터트렸냐였다.

    “김경록이 한 짓 아닐까? 안 그러냐, 세강아?”

    나는 강진석을 돌아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김경록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김경록이 보낸 문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강진석이 보지 못하도록 몸을 옆으로 틀고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나야. 김경록.

    지금쯤 취임식장이 난리가 났겠지.

    난 이대로 안 죽어.

    재기해서 돌아올 테니 기다려.

    그때 경진이 녹음 묻어 준 건 고맙게 생각한다.

    딱 그거 하나만 고마워.

    그거 빼고는 너는 여전히 나한테는 재수 없는 놈이야.]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문자를 지워 버렸다.

    김경록의 성깔은 여전했다.

    이렇게 LOK에 폭탄을 던졌으니 재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강진석을 불렀다.

    “형님. 우리는 이만 가죠.”

    “그럴래? 여기 뷔페도 별로다. 돌아가는 길에 목포집이나 가자. 우리 퇴근하는 길에 자주 들렀던 곳 있잖아.”

    “기억나네요. 아직도 있을까요?”

    “얼마나 지났다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겠지. 가자.”

    나와 강진석은 그길로 시끌벅적한 취임식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우리가 자주 갔던 목포집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회포를 풀었다.

    * * *

    LOK 회의실에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한지욱은 시뻘게진 얼굴로 홍보팀 박 팀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장 기사 막아요. 이거 다 개소리야.”

    “바로 해명 기사 준비하겠습니다.”

    “해명은 무슨. 당장 그 기사 쓴 기자 고소 때리세요.”

    “갑자기 고소부터 하라고 하시면…….”

    박 팀장은 말을 얼버무리며 뒤에 앉아 있는 한성제의 눈치를 살폈다.

    한성제는 그의 비서와 함께 무슨 일인지 먼저 상황 파악부터 하고 있었다.

    한편, 구석에 서 있던 김선우는 지수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때문에 나까지 얽혔잖아. 그래서 내가 그거 안 한다고 했지?”

    “무슨 소리예요? 내가 답안지 빼 올 수 있다니까 그제야 한다고 했으면서.”

    “그러니까 왜 처음부터 답안지를 빼 올 생각을 하느냐고? 내가 네 말에 혹해서 넘어간 거잖아.”

    지수연은 지지 않고 김선우의 말을 받아쳤다.

    두 사람이 싸울 듯이 노려보니 그들의 매니저들이 붙어서 뜯어말리기 바빴다.

    “참으세요. 김 배우님. 지금 그거 따져서 뭐 할 겁니까? 이 사태부터 해결해야죠.”

    “지 배우님. 지금 김선우 배우님과 싸울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죠.”

    씩씩거리던 김선우와 지수연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한지욱을 바라봤다.

    한지욱은 여전히 홍보팀 박 팀장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한지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성제를 바라봤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한성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지욱 대표. 조용히 하세요.”

    한성제의 호통에 흥분해서 날뛰던 한지욱이 입을 다물었다.

    한성제가 박 팀장에게 손짓하자 그가 한성제 대표에게 쪼르르 달려 나갔다.

    “예. 대표님.”

    자신을 여전히 대표라고 부르는 박 팀장을 보며 한성제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잘 들어요. 우리 이렇게 해결합시다.”

    * * *

    라이어 게임 사태가 터지고 영화 멜랑꼴리의 흥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TOP의 김승민 대표는 한지욱을 대신해 TOP 미디어에 와 있다.

    그는 박상용 실장의 브리핑을 들으며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박스오피스 4위라고요? 예매율은 어떻습니까?”

    “예매율도 낮습니다. 이 정도면 4위를 지키기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해명 기사도 소용이 없는 겁니까?”

    LOK와 TOP 미디어는 일이 터지자마자 성명문을 발표하고 해명 기사까지 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박상용은 울상인 얼굴로 답했다.

    “LOK에서 배우 살리자고 영화를 날려 버린 해명이지 않습니까?”

    사건이 터지자마자 LOK는 TOP 미디어의 홍보팀 스태프 잘못이라고 다 덮어씌웠다.

    라이어 게임의 대본을 받아 온 스태프가 그 자리에 있던 정답지를 실수로 같이 가져왔다고 해명한 것이다.

    배우들은 그게 정답지가 아니라 예상 문제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한 죄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김선우의 팬들이 워낙 많아서 그들이 알아서 쉴드를 쳐 줬고, 애꿎은 TOP 미디어가 독박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라이어 게임이 워낙에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가 있는 예능이다.

    예능의 주 시청자였던 이십, 삼십 대는 라이어 게임이 멜랑꼴리 홍보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그들이 주축이 되어 멜랑꼴리의 불매 운동이 시작되었다.

    김승민 대표는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는 이미 손익 분기점을 넘어서 손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나가 보세요.”

    “예. 대표님.”

    박상용이 나가자마자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 한성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대표님. 김승민입니다.”

    [나 이제 대표 아니야.]

    “자꾸 까먹네요. 죄송합니다.”

    [됐어. 다들 그러더군.]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멜랑꼴리는 대충 봐서 다음 주에 극장에서 내려.]

    “벌써요?”

    [이제 사건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데 멜랑꼴리가 극장에 걸려 있으면 계속 이야기가 나올 거야. 그냥 내리는 게 이득이야. 손익 분기점은 넘었지?]

    “예. 다행히 넘었습니다.”

    [그럼, 앞뒤 보지 말고 내려. UPC에는 내가 잘 말해 볼게.]

    “예. 대표님.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실수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조심해. 이만 끊는다.]

    한성제와 전화를 끊은 김승민 이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누가 대표인지 모르겠군. 한지욱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씁쓸하게 웃는 김승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스타탄생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번 주에 나만의 마돈나와 해피 스릴러가 연달아 마지막 방송을 한다.

    나만의 마돈나는 이자현의 연기 변신, 이락의 본격적인 남주 데뷔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 시대극으로 대상을 탄 이자현이 로맨스 코미디로 돌아올지 몰랐던 사람들은 그녀의 연기 변신에 열광했다.

    이자현은 그동안 내가 선택했던 시나리오를 주로 했지만, 이번 작품은 온전히 그녀 의지로 선택한 작품이다.

    나는 이제부터가 이자현이 제2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현은 스스로 톱스타라는 그녀의 껍질을 벗은 듯 보였다.

    이락도 인기 가도를 달라고 있다.

    스타메이커의 화제성이 떨어지기 전에 그 시너지를 받아 작품의 주연을 따냈고 그의 연기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건 윤이슬도 마찬가지다.

    비록 로맨스가 없는 조연 롤이지만 여주보다 남주와의 케미가 더 산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센 이미지의 윤이슬이기에 이런 반응은 앞으로 그녀의 캐릭터가 다양해질 수 있게 도움을 줄 거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밤.

    오늘로써 개봉 한 달째가 돼 간다.

    구원의 밤은 어느덧 육백만 관객이 본 영화가 되었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에서는 지금까지 최고로 좋은 흥행 추이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에 나비로 대박을 터트린 서이렌은 구원의 밤으로 완벽한 종지부를 찍었다.

    밀려드는 시나리오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만에 스타탄생에 온 나는 서이렌에게 온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있다.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서도 유독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오아시스]

    특이한 제목의 시나리오를 든 나는 작가의 이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명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시나리오의 앞장을 펼쳤다.

    [사막을 홀로 거닐었던 지혜는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사막 그리고 지혜…….

    순간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지혜는 과거에 나왔던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다.

    팔 년 전 세상에 나와 해외 영화제를 휩쓸었던 그 영화.

    오아시스는 사막의 후속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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