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34화 (135/261)
  • #134화. 금의환향

    LOK 로비에 들어선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강진석도 나와 같은지 묘한 표정으로 LOK 로비를 훑었다.

    강진석은 로비 한쪽 구석에 있는 카페를 보며 웃었다.

    “저 맛대가리 없는 카페도 여전하네.”

    “그러네요. 주인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요?”

    “저기 주인이 한성제 대표님 동창이라는 소문이 있어.”

    “그래요?”

    “커피에서 탄 맛이 그렇게 많이 나는데도 여전히 여기서 장사하는 걸 봐라. 한 대표님 동창이라 가능한 이야기겠지.”

    “그런 소문이 도는지 저는 몰랐네요.”

    나와 강진석은 LOK에서 함께 일했던 과거 이야기를 나누며 로비를 가로질러 갔다.

    가는 동안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우리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게 누구야.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 아니야?”

    “안녕하세요. 박 기자님.”

    “요즘 좋지? 구원의 밤이 개봉 이 주 만에 사백만 찍었던데.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는 엄청난 성적인 거 알지?”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난 원세강 자네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따가 위에서 보자고.”

    “예. 박 기자님.”

    “강진석 이사님도 오셨네요.”

    “오랜만입니다. 오 매니저. 유스케이 대표님을 모시고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 이사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난 똑같은 거 같은데요.”

    “뭐랄까? 진짜 이사 같아 보이세요.”

    “진짜 이사는 또 뭡니까? 그럼, 지금까지는 가짜 이사였나요?”

    “그런 말이 아니라 오늘 너무 멋있으셔서 하는 말입니다.”

    “하하하. 저도 농담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강진석은 멋져 보인다는 동료 매니저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점점 우리를 알아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형님. 우리 빨리 올라갈까요? 이러다 여기에 계속 붙잡혀 있겠네요.”

    “그래. 빨리 올라가자. 세강아.”

    나와 강진석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빠르게 인사를 하고 로비를 가로질러 갔다.

    그때 강진석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왜 멈추세요? 형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예?”

    “저기에 우리 뒷담화를 하고 다닌 놈들이 단체로 모여 있다.”

    나는 강진석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난날 함께 동고동락한 LOK 매니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우리를 보며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빠도 인사는 하고 가야겠지?”

    강진석이 빠르게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웃으며 그를 뒤쫓았다.

    * * *

    “강진석이랑 원세강이지? 지금 우리한테 오는 건가?”

    “야. 표정 풀어. 여기로 오는 거 맞아.”

    LOK 매니저들은 굳었던 표정을 풀고 가식적인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이게 누구야. 최 매니저 아니십니까? 고 매니저도 계셨네요. 다들 잘 계셨죠?”

    강진석이 웃으며 LOK 매니저들을 불렀다.

    LOK 매니저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들 잘 계셨죠?”

    LOK 매니저들은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죽어 있었다.

    그때 처음 보는 매니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원세강 대표님.”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가 초면일까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면 죄송합니다.”

    “초면 맞습니다. 원세강 대표님이 퇴사하시고, 다음 달에 제가 LOK에 입사했습니다. 지수연 배우님의 로드로 뛰다가 지금은 승진해서 2팀 소속입니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난 원세강입니다.”

    “저는 오장혁입니다. 대표님 팬입니다.”

    “팬이요?”

    “요즘 젊은 매니저들 사이에서 원 대표님이 정말 유명합니다. 모두 원 대표님처럼 되고 싶어 해요.”

    오장혁이라는 어린 매니저의 말에 뒤에 서 있는 고참 매니저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강진석은 그들의 표정 변화를 보며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감사합니다. 오 매니저님.”

    “아이고. 말씀 낮추십시오.”

    나는 LOK 매니저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취임식이 시작할 텐데 함께 올라가시죠?”

    내 제안에 LOK 매니저들의 얼굴이 또다시 굳었다.

    선배 매니저들이 말이 없자 오장혁 매니저가 이유를 말했다.

    “취임식장이 꽉 차서 저희는 여기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직원들이 아니라 같은 업계 직원들과 기자들 앞에서 취임식을 하는 건가 보다.

    이러면 주객전도가 아닌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강진석에게 말했다.

    “이사님. 가시죠. 늦겠습니다.”

    “그럼요. 초대를 받았는데 자리를 빛내야겠지요.”

    강진석이 오장혁을 지나쳐 뒤에 서 있는 LOK 매니저들의 앞으로 다가섰다.

    강진석이 다가오자 매니저들이 긴장했다.

    강진석은 웃으며 그들에게 갑자기 반말로 말했다.

    “방송국에서 보면 인사나 하자. 같이 한솥밥 먹었던 동료였잖아.”

    “…….”

    “그리고 고 매니저랑 최 매니저.”

    강진석이 가리킨 매니저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너희는 나랑 세강이 욕 좀 그만하고 다녀라. 나도 듣는 귀가 있어.”

    “…….”

    강진석이 가리킨 매니저들 말고도 다른 이들도 긴장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진석은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내게 돌아왔다.

    “원 대표님. 가시죠.”

    * * *

    LOK 건물의 최상층에 마련된 취임식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출장뷔페를 부르고 꽃으로 사방을 장식해서 마치 다른 곳 같았다.

    “오늘 여기서 결혼해도 되겠다.”

    강진석은 화려한 취임식장을 보며 혀를 찼다.

    “너무 요란한데요? 한성제 대표님은 이런 거 싫어하시잖아요.”

    “딱 봐도 한지욱 취향이잖아. 한지욱이 준비했겠지. 그런데 한성제 대표님은 왜 이렇게 빨리 은퇴하시지?”

    “TOP 미디어 첫 작품이 잘돼서 이참에 한지욱 대표를 밀어주려는 건가 봅니다.”

    “첫 작품이 대차게 망할 줄 알았는데. 의외야.”

    내가 알기로 TOP 미디어는 김경록이 수장으로 이끌어 온 거나 다름없다.

    한지욱은 지금 멜랑꼴리가 성공한 거에 지분이 없다.

    과연 김경록이 없는 TOP 미디어가 어찌 돌아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TOP은 김승민 이사가 대표직에 올랐다고 하니 오히려 더 잘될 수도 있겠지.

    문제는 LOK인가?

    한성제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도 아마 한지욱의 뒤에서 그를 도울 거다.

    외부에서 보기엔 한지욱이 LOK를 이끌어 나가는 거로 보일 테고, 그렇게 한지욱을 LOK 대표로서 입지를 굳히려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단상으로 한성제와 한지욱이 올라왔다.

    그들의 뒤에는 김선우와 지수연도 함께였다.

    강진석은 한껏 차려입고 온 김선우와 지수연을 보며 웃었다.

    “김선우는 영화판에서 내내 미끄러지기만 하다가 드디어 한 건 올렸네. 지수연은 이제 대놓고 밀어주는구나. 완전 제2의 이자현이네. 그렇게 밀어주던 강하나는 팽해 버리고.”

    강진석의 말대로 지금 LOK의 주축이 되는 배우가 김선우, 지수연이다.

    한성제 대표가 모인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취임식에 찾아 주신 귀빈 여러분께 우선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한성제가 인사하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반겼다.

    “십구 년 전 LOK라는 이름으로 첫 계약을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성제는 LOK의 초창기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그의 대표 인생을 회고했다.

    장장 십 분이 넘게 인생을 뒤돌아본 그가 드디어 마이크를 그의 아들에게 건넸다.

    김선우보다 더 배우처럼 차려입고 나타난 한지욱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LOK의 새로운 대표가 된 한지욱입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얼굴에서 ‘한지욱이 과연 LOK를 잘 이끌어 나갈까?’ 하는 우려의 표정이 감춰져 있었다.

    강진석은 대놓고 한지욱을 싫어했다.

    “수저빨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네. 내가 한성제 대표님이라면 한지욱을 로드부터 차근차근 굴려서 이 바닥 일을 배우게 했을 텐데. 대체 저놈이 뭘 한 게 있다고 벌써 대표에 올라?”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강진석처럼 강하게 말하지 않았을 뿐, 회사를 물려줄 거라면 로드가 아니라도 매니저 경험을 쌓는 편이 좋았으리라.

    한지욱은 여전히 그의 스타일대로 취임사를 했다.

    “제가 너무 이른 나이에 큰 회사를 맡게 되어서 불안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젊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삼십 년 후의 미래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 미래와 LOK의 미래가 함께 떠오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고 계시는 다른 대표님들은 삼십 년 후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니까요. 저는 다르죠.”

    한지욱이 한마디를 할 때마다 취임식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지금 젊다고 자랑하는 건가?”

    취임사를 지켜보던 대표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단상 앞이 부담스러워서 뒤쪽 구석에 서 있었는데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한두 명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취임사를 하고 있던 한지욱은 사람들이 뒤로 몰려가자 미간을 찌푸렸다.

    한성제도 그 모습을 보며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원 대표. 나는 뉴스타 대표 지철수입니다. 강철구 매니저와 임태인 배우님 알죠?”

    “그럼요. 스타메이커에서 강철구 매니저님과 임태인 배우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원세강입니다.”

    내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원 대표. 오랜만이야.”

    “윤동진 대표님?”

    “요즘 스타탄생 기세가 대단해.”

    “아직 멀었습니다. 선배님들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숲 엔터의 윤동진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원 대표는 여전하네.”

    나는 그제야 내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아직 단상 위에서는 한지욱의 취임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지욱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취임사를 끝내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뻘쭘해졌다.

    급기야 한성제가 한지욱을 데리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김선우와 지수연이 그들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한성제가 내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한성제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잘 왔어. 세강아.”

    한성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의식적으로 다른 대표들을 돌아봤다.

    모두 나와 한성제의 관계를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한성제는 허리 숙여 인사하는 나를 한지욱에게 보여 주려 한 것 같았다.

    한지욱은 아버지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는 나를 보며 굳은 얼굴을 풀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강진석은 이 상황 자체가 싫었는지 인상을 썼다.

    그때였다. 로비에서 봤던 2팀 팀장, 고 매니저가 한지욱의 뒤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뭡니까?”

    “대표님 지금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취임식 진행하는 거 안보입니까?”

    “일이 터졌습니다.”

    “뭐요?”

    고 매니저가 한지욱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을 건넸다.

    고 매니저의 이야기를 듣던 한지욱의 두 눈이 커졌다.

    아까 로비에서 이야기 나눴던 오장혁 매니저도 지수연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고 그녀도 놀라 얼음처럼 몸이 굳었다.

    한지욱은 안절부절못하더니 한성제에게 다가갔다.

    한성제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취임식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한성제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즐기고 계십시오. 저희는 잠시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한성제의 인사를 끝으로 그와 한지욱이 빠르게 취임식장을 빠져나갔다.

    김선우와 지수연도 뭐가 그렇게 급한지 그들의 매니저들과 함께 급하게 취임식장에서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강진식이 내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내밀었다.

    “세강아. 이것 좀 봐.”

    나는 강진석이 내민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에는 폭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단독, 라이어 게임. 치팅 게임이었나? 김선우, 지수연 답안지 몰래 받고 촬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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