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33화 (134/261)
  • #133화. 다이아몬드

    개봉 첫 상영이 끝나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영화의 평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모두 티켓을 인증한 실제 관객들의 평이었다.

    - 구원의 밤. 좋네요. 왜 최병철을 거장이라 부르는지 이해하고도 남을 영화입니다. 꼭 보세요.

    - 다른 건 모르겠고 분위기가 압도적임. 그 끊어질 듯 말 듯 한 분위기를 한 시간 반 넘게 유지하면서도 재미까지 챙기는 건 말이 안 됨.

    - 되게 몽환적인데 그와 반대로 엄청 현실적인 이상한 영화.

    - 개기일식, 빛과 어둠을 정말 잘 표현한 영화. 박수가 절로 나온다.

    - 하,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 너무 좋았습니다. 또 보고 싶네요.

    - 역시 최병철!!! 각본 연출 연기 OST 모두 훌륭하고 대단한 영화입니다.

    - 믿고 보는 서이렌. 나한테는 서이렌이 믿보배다.

    - 심석현과 연기로 맞장 뜨는 서이렌. 진짜 대단하다.

    - 역대급 시사회 후기로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무심하게 뛰어넘는 영화.

    - 완벽한 연기와 연출. 흠이 하나도 없음. OST까지 완벽해서 마지막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소름 돋음.

    - 서이렌의 연기 변화를 실시간 지켜보는 영화. 개기일식처럼 서서히 어둠에 물드는 최진을 보며 놀라웠다. 그러나 어둠에서 벗어난 태양처럼 최진은 연쇄 살인마 강동철과 같으나 다른 길을 걸을 것처럼 영화가 끝난다. 마스터피스다.

    - 다른 건 모르겠고 피해자 14번과 서이렌의 쫓고 쫓기는 후반 20분 추격전이 대박입니다. 보면서 살 떨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 그냥 보세요. 내가 본 영화관에서는 누가 끝나고 일어서서 박수까지 쳤음.

    - 역시 거장 최병철. 올해의 걸작.

    구원의 밤, 영화평이 뜨기 시작하자 인터넷 커뮤니티도 함께 달아올랐다.

    - 구원의 밤 후기가 다 미쳤네.

    - 저 영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함. 개기일식 장면이 진짜 환상이라는데. 미친 ㅠㅠㅠㅠ- 나 봤음. 서이렌 연기 못한다고 하더니 말도 안 되는 루머였음. 연기 존나 잘함. 그냥 무릎 꿇고 봤다.

    - 와. 미친. 개 부러워.

    - 표 어떻게 구했냐? 내일까지 올 매진이던데.

    - 박선호는 연기 잘함?

    - 왜 하필 청불 ㅠㅠ 진짜 보고 싶은데.

    - 오늘 저녁 표로 예매해 놨는데 스포 밟을까 봐 저녁까지 인터넷 안 해야겠다.

    시네 키즈들이 모이는 베스트 무비에서는 구원의 밤을 본 유저들이 모여 영화 이야기를 하며 꽃을 피웠다.

    - 이정수가 마지막에 복사도 이야기 꺼내잖아요. 그거 최진과 강동철의 마지막 대화 알아들은 거 맞죠?

    └맞습니다.

    └이정수가 최진 좋아해서 나도 수화 배울 수 있냐고 계속 물어봤잖아요. 그게 복선이었던 거 같네요. 이정수는 수화를 배웠고 최진이랑 강동철이 나눈 대화를 다 알아들었는데 최진을 좋아하니까 다 덮은 거죠.

    └저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 그러고 보면 박선호도 연기 진짜 잘했네요. 분량은 많지 않은데 그나마 박선호랑 서이렌이 나올 때가 소소한 재미가 많았네요.

    - 최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강동철이 남긴 수첩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 영화에서 강동철을 어둠, 서이렌은 빛으로 묘사해서 강동철처럼 연쇄 살인마로 가는 미래는 아닐 겁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2탄이 나와야겠네요. 최진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이정수도 궁금합니다.

    - 다들 구원의 밤을 보셨나 봐요. 저만 멜랑꼴리 봤나요?

    - 저도 멜랑꼴리 봤습니다.

    - 멜랑꼴리는 어떻나요? 시사회 평은 좋던데요?

    - 평점 3.5점 정도는 되는 거 같습니다. 두 배우의 케미가 좋아서 내내 웃으면서 봤네요.

    - 오늘 밤 박스오피스 떠 봐야 알겠지만, 구원의 밤이 19금이라서 멜랑꼴리가 그 반사이익을 얻어 갈 것 같습니다.

    * * *

    집에 돌아온 김경록은 아무도 없는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첫 타임 영화를 보느라 아침에 급히 나가서 거실에는 암막 커튼이 쳐진 상태였다.

    어두운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던 김경록이 나직이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김경록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거실 창으로 다가갔다.

    굳게 닫혀 있는 암막 커튼을 들추자 밝은 빛이 김경록의 얼굴을 비췄다.

    눈이 부셨던 김경록은 찡그리듯 눈을 감더니 이내 빛을 가리고 있던 암막 커튼을 모두 젖혔다.

    어두웠던 거실에 그제야 오후의 태양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을 보던 김경록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이아몬드.”

    김경록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아무도 못 깨트리는 다이아몬드였어. 내가 그런 배우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던 거야?”

    김경록은 자신이 했던 추잡한 짓거리에 분노했던 원세강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원세강이 더 싫어졌다.

    “나쁜 새끼. 원래도 꼴 보기 싫은 놈이 더 재수 없어졌어.”

    원세강에게 한바탕 욕지거리를 늘어놓은 김경록은 집에 들어올 때 대충 벗어서 던져 놓은 재킷을 집어 들었다.

    김경록은 핸드폰을 들고 티켓박스 앱에 접속했다.

    그리고 구원의 밤을 클릭했다.

    근처 극장에는 남는 표가 없었다.

    김경록은 몇 번을 더 클릭하고 나서야 서울 변두리에서 상영하는 구원의 밤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제일 앞자리였으나 상관없었다.

    김경록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구원의 밤이 개봉한 뒤로는 나는 계속 레전드 필름으로 출근하고 있다.

    구원의 밤은 순항 중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흥행 청신호가 켜졌다.

    박진숙 팀장이 어젯밤 새벽에 뜬 박스오피스 자료를 내게 건넸다.

    “어제도 1위였어요. 관객 점유율도 압도적인 1위예요.”

    나는 박진숙에게 받은 표를 확인했다.

    1위. 구원의 밤

    관객 수: 665,892 (누적: 2,553,621)

    2위. 멜랑꼴리

    관객 수: 210,039 (누적: 1,302,964)

    3위. 레디액션

    관객 수: 133,622 (누적: 1.459,243)

    4위. 내가 법이다

    관객 수: 57,143 (누적: 583,740)

    개봉한 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구원의 밤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써 가고 있었다.

    관객 표를 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디액션이 3위로 밀렸네요?”

    “멜랑꼴리 입소문이 좋게 났어요. 일일 관객 수는 이미 역전했고 아마 누적 관객 수도 조만간 역전할 거 같아요.”

    TOP 미디어의 첫 작품이 꽤 좋은 성적으로 시작을 끊었다.

    TOP 미디어 대표가 되는 것이 확정적이었던 김경록은 지금쯤 꽤 속이 쓰릴 거다.

    내가 박스오피스를 확인하고 표를 내려놓자 박진숙은 다른 걸 건넸다.

    “이건 뭔가요?”

    “LOK에서 왔어요. 원 대표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으로 보내왔더라고요.”

    LOK라고 찍힌 봉투를 보자마자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LOK 대표 취임식에 초대합니다…….]

    초대장까지 보내셨네.

    지난번 김경록의 일로 LOK에 갔을 때 한성제 대표님께 취임식에 대한 말을 들었다.

    한성제 대표는 은퇴하고 한지욱이 LOK 대표이사로 취임할 거라고 했다.

    LOK와 TOP 미디어의 공동 대표인 셈이다.

    TOP은 김승민 이사가 대표 자리를 이어받았다.

    김경록만 다른 사람 좋은 일 시켜 주고 쫓겨난 셈이다.

    초대장을 접은 나는 박진숙에게 그것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내일 저녁에 LOK에 가야 하는데 레전드 필름에서는 누구를 모시고 가야 할까요?”

    LOK 대표이사 취임식이라는 문구가 적힌 초대장을 확인한 박진숙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원 대표님만 가시면 되죠.”

    “그럴까요?”

    “우리가 거기 가서 뭐 하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나는 초대장을 접어 내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 * *

    강진석의 입이 댓 발은 나온 채 나를 노려봤다.

    “정말로 너 혼자 가려고 했어?”

    “혼자 가도 상관없잖아요.”

    “나도 데리고 가야지.”

    “언제는 LOK 매니저들 꼴 보기 싫다고 하셨잖아요. 방송국에서 만날 때마다 뒤에서 욕한다고요.”

    “그거야 옛날 일이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잖니.”

    “그래요?”

    “당연하지. 너와 내가 지금 LOK에 가는 걸 전문 용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진석을 봤다.

    강진석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든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금의환향.”

    “뭐라고요?”

    “힘들게 키운 배우 빼앗기고 좌천돼서 퇴사한 아싸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의 대표가 돼서 전 직장에 가는 거다. 이게 금의환향이 아니고 뭐겠냐?”

    “제가 아싸였습니까?”

    “몰랐어? 너 진짜배기 아싸였어. LOK 직원들이 다 너 싫어했잖아. 아! 내 실수다. 매니저들이 너를 싫어한 거지. 스태프들은 너 좋아했다. 다들 너랑 함께 일하고 싶어 했지. 크큭.”

    “형님은 저를 좋아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금의환향인 거지.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칼로 찌르는 그 자식들이 진짜 싫었어. 너 퇴사하고 나 혼자 그 정글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알았어요. 같이 가요.”

    “네가 오지 말라고 말려도 따라갈 거야.”

    “그럼, 일찍 출발하죠.”

    “오케이. 좋았어. 빨리 가자.”

    강진석이 룰루랄라 웃으며 일어섰다.

    그때 그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강진석은 낡은 여름 양복에 뒷굽이 다 닭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형님. 인센티브 받은 거 다 어쩌셨어요?”

    “갑자기 인센티브 이야기가 왜 나와?”

    “형님도 이제 한 회사의 이사신데 잘 챙겨입고 다니셔야죠.”

    강진석은 그의 옷차림을 살피며 내게 물었다.

    “이 옷 별로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양복인데?”

    “저랑 같이 어디 들렀다 가요.”

    “어딜 가려고?”

    “빈 팀장님께요.”

    “빈 팀장은 왜?”

    “잔말 말고 따라오세요.”

    나는 강진석을 데리고 레전드 필름에서 나왔다.

    * * *

    LOK는 로비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한민국의 유명 소속사에 모두 초대장을 돌린 것 같았다.

    기자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취재 때문이 아니라 한성제와 LOK와의 친분 때문에 참석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실이 있는 최상층의 집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치우고 그곳에서 취임식을 한다고 들었다.

    취임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최상층으로 안내받았다.

    LOK 입구에 번쩍이는 외제 차 한 대가 섰다.

    이 차의 주인이자 운전사 역할로 함께 따라와 준 빈선예가 나와 강진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잘하고 와요. 내 몫까지 잘난 척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말끔한 새 옷을 얻어 입은 강진석은 웃으며 빈선예에게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 빈 팀장. 내가 이 옷 입고 들어가면 죄다 놀라 자빠질 거야.”

    “그렇게 실실거리면서 웃지 마세요. 그리고 그 옷 그렇게 비싼 거 아니에요.”

    “딱 봐도 명품이구먼. 그리고 상관없어. 내가 명품이야.”

    “그 자신감 하나만은 인정합니다. 어서 가세요. 나도 바쁜 사람이에요.”

    나는 차에서 내리며 빈선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요. 빈 팀장님.”

    “대표님이야말로 인간 명품이죠. 입만 명품인 우리 강 이사님을 잘 보살펴 주세요.”

    “조심해서 가요.”

    빈선예의 차가 사라지고 나는 강진석의 옆에 가서 섰다.

    “갈까요? 강 이사님.”

    강진석은 빈선예가 골라 준 새 옷과 새 구두를 신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갑시다. 원 대표님.”

    * * *

    LOK 매니저들이 로비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연예계 거물을 보며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수저빨이 최고네. 한지욱이 뭐라고 LOK 대표야?”

    “야. 말조심해.”

    “그냥 열불이 나서 그런다. 우린 뼈 빠지게 밑바닥부터 천천히 기어 올라가는데.”

    “그래도 김승민 이사님 같은 우리의 희망이 있잖아. 그분도 로드부터 시작했다고 들었어.”

    “그거야 최상의 케이스인 거고. 김경록을 봐라. 대표이사 자리를 코앞에 두고 해고된 거.”

    “김경록이야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건 아니잖아. 싸바싸바를 잘해서 올라간 거지.”

    “그건 그렇지. 크큭.”

    “그런데 매니저 최고의 아웃풋은 원세강 아니냐? 오늘 원세강은 오려나?”

    “글쎄. 한지욱이 원세강한테 초대장을 보냈을지 모르겠네.”

    “한지욱은 속이 좁아서 안 보냈을걸. 지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원세강이 오면 원세강이 주인공이잖아. 크큭.”

    매니저들이 한지욱의 뒷담화를 하는데 로비 입구가 시끄러워졌다.

    “야. 누구 유명한 사람이 왔나 본데?”

    “누구? 대표 말고 배우도 왔나?”

    매니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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