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28화 (129/261)
  • #128화. 역대급 반응

    [용산에서 한 블라인드 시사회가 끝났습니다.

    작품이 특정될까 봐 무슨 영화인지 말씀은 못 드리는데 오랜만에 로맨스 쪽에서 볼만한 작품이 나왔네요.

    배우들 연기나 연출은 그냥 평타 정도인데 시나리오가 좋더군요.

    뻔하게 흘러가던 클리셰가 중간에 비틀어지면서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베스트 무비 유저가 올린 멜랑꼴리 시사회 후기에 댓글이 달렸다.

    - 멜로라면 힌트를 너무 주셨네요. 괜찮은 작품이 나왔다니 저도 기대가 됩니다.

    - 피드백은 뭐라고 적으셨나요?

    - 대사가 잘 안 들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거 적고 나왔습니다. 보니까 많은 분이 저와 같은 걸 지적하시더라고요.

    - 용산 블라인드에 넣었다가 떨어졌는데 아깝네요. 저도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멜랑꼴리의 블라인드 시사회 후기가 나쁘지 않자 유저들은 구원의 밤 후기를 기다렸다.

    - 마치 폭풍전야 같네요. 무슨 후기가 뜰지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 충무로 블라인드 시사회가 그 영화라면 베무 회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아닙니까? 어떤 후기가 뜨든지 후폭풍이 엄청나겠네요.

    베스트 무비가 잠시 멈춘 듯했다.

    올라오는 글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사이트를 새로 고침 하며 새 글을 기다렸다.

    수분이 흐른 뒤, 드디어 블라인드 시사회 후기가 뜨기 시작했다.

    [충무로 블시 보고 나왔습니다.]

    [거장이 선사하는 마스터 피스네요.]

    [올해 최고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손이 떨려서 글이 안 써집니다. 충무로 블시 대박입니다.]

    [충무로 블시 미쳤네요. 이런 걸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베스트 무비 유저들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호평 일색의 제목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 뜬 냉담한 후기와 달리 작성자들의 상태가 모두 흥분 상태였다.

    유저들은 다급하게 게시글을 클릭했다.

    [제목: 충무로 블시 보고 나왔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는데 미치겠네요.

    영화 보는 내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이걸 한 달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니 말도 안 됩니다.

    블시를 괜히 본 거 같네요.

    하루빨리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제목: 거장이 선사하는 마스터 피스네요.

    감독님 이름을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감독님. 사랑합니다.

    만수무강하세요.

    참. 이건 충무로 블라인드 시사회 후기입니다. ㅋㅋ]

    [제목: 올해 최고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영화광님께 블시 표 양도받아서 다녀왔는데 제게 이런 행운이 다 찾아오는군요.

    영화 대박이고요.

    수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바로 극장에 올려도 될 정도입니다.]

    [제목: 손이 떨려서 글이 안 써집니다. 충무로 블시 대박입니다.

    연출, 연기, 시나리오. 음악.

    모든 게 완벽하네요.

    특히 연기가 미쳤습니다.]

    [제목: 충무로 블시 미쳤네요.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크레딧 작업은 아직 못 했는지 영화 끝나고 바로 극장에 불이 켜졌거든요.

    그런데 한 일 분간 아무도 일어서지 않더군요.

    나중에 영화사 직원이 나오기 전까지 극장 안에 흐르던 그 침묵은 진짜. ㅋㅋㅋ다들 7월에 예매가 뜨자마자 서두르세요.

    올여름. 아니 올 한 해는 이 영화가 다 할 겁니다.]

    미친 듯한 극호 후기가 연속으로 뜨자 사람들이 댓글로 물었다.

    - 연기는 괜찮나요? 거기 나오는 출연진 한 명이 영화를 망치는 발연기를 했다던데요?

    - 누가요? 다들 연기 신이 내렸는데요???

    - 지금은 후기가 지워졌는데 여자 배우라던데요?

    - 이상하네요. 영화에 비중 있게 나오는 여자는 그분 한 명밖에 없는데 제가 보기엔 그분이 영화에서 제일 연기를 잘했습니다.

    - 그래요?? 심석현과 김건명이 있는데도요?

    - 대체 뭐라고 불호 후기가 떴나요? 이해가 안 되네요.

    - 초반 30분만 봤는데 여주 연기가 형편없어서 더는 보기 힘들어서 그냥 극장에서 나왔다던데요?

    - 블시 중간에 누가 나갔던가? 이상하네요. 나간 사람 없는 거 같은데.

    - 초반 30분이면 한창 그 배우분이 빌드업할 때인가 보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빌드업이라구요?

    - 이건 영화를 보신 분이라야 대화가 되는데……. 암튼 초반 30분까지는 연기가 좀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 빌드업입니다. 중후반부터는 미친 거 같다니까요.

    - 아. 궁금해서 미치겠네요. 이건 블시 더 안 뜰까요?

    - 영화가 완벽합니다. 수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블시를 더 할 이유가 없어요. 7월 개봉을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 당장 충무로로 가고 싶네요. 영화사라도 털고 싶습니다.

    - 그러고 보니 영화사가 충무로에 있긴 하네요. ㅋㅋ

    - 윗분들이 힌트를 너무 주셨네요. 무슨 영화인지 다 알 것 같습니다.

    -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블시 중간에 나간 사람이 없는데요??? 제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 * *

    충무로의 티켓박스에서는 블라인드 시사회 정리가 한창이었다.

    티켓박스 직원들이 시사회를 본 사람들이 남긴 피드백을 확인하고 있었다.

    “원 대표님. 후기가 다 좋습니다.”

    “저도 좀 보여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나는 티켓박스 직원이 건넨 후기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불만이 적혀 있는 후기가 전혀 없었다.

    연출, 연기, 내용, 음악에 대한 극찬이 적혀 있었다.

    걱정했던 서이렌의 연기에 대해서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초반의 어색하고 이상했던 연기는 모두 계산된 것이었고, 중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연기가 터지기 시작한다.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그걸 못 알아챌 리가 없다.

    “다행히 후기가 좋네요. 추가 수정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러네요. 어째 내부 시사회보다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내가 티켓박스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또 다른 티켓박스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요? 강 대리?”

    “팀장님. 좀 확인해 주실 게 있습니다.”

    “혹시 베스트 무비 때문인가요?”

    “예. 팀장님.”

    강 대리라 불리는 사람은 티켓박스 직원으로 베스트 무비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강 대리가 우리 앞에 노트북을 열어 보여 줬다.

    노트북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신주원이 올린 가짜 후기의 캡처 사진이 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서이렌을 비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 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블라인드 시사회 중에 올라온 글입니다. 제가 신고를 넣어서 글이 삭제되긴 했는데 퍼 간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 대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에 나와서 글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는 블라인드 시사회 중간에 극장에서 나온 사람을 못 봤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맞아요. 원 대표님. 직원들이 여기 앞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누가 중간에 나왔다면 그걸 모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베스트 무비에 접속했다.

    베스트 무비는 지금은 구원의 밤의 시사회 후기를 보며 흥분하고 있었지만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서이렌의 연기가 뜨거운 화두였다.

    누군가 우리 영화를 봤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서이렌의 연기가 어색한 것을 타깃으로 잡은 거야.

    하지만 왜?

    삼십 분이 지나고 나면 누가 봐도 서이렌이 초반에 보여 줬던 연기가 빌드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텐데.

    순간 내 두 눈이 커졌다.

    “원 대표님. 왜 그러세요?”

    “팀장님. 저는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저희도 마무리하고 가려던 참입니다.”

    “그럼, 뒷정리를 부탁합니다. 내일이나 모레 정도에 티켓박스에서 뵐게요.”

    나는 황급히 극장을 빠져나왔다.

    * * *

    충무로 티켓박스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레전드 필름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레전드 필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비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곧바로 편집실로 걸음을 옮겼다.

    편집실은 얼마 전까지 분주하게 작업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지난날, 진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영화의 초반 삼십 분짜리 가편집본을 만들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 편집실에서 그 영상을 보며 리뷰도 진행했었다.

    진설은 서이렌의 연기를 보고 그녀의 연기가 계산된 어색함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었다.

    그때 그 삼십 분짜리 편집본을 어디에 뒀었지?

    나는 편집실 구석에 놓인 책상으로 걸어갔다.

    분명히 USB에 구원의 밤이라고 적어 놨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구원이 밤이라고 적혀 있는 USB는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나는 레전드 필름의 박진숙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얼마 안 가 박진숙이 전화를 받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블라인드 시사회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티켓박스에 계시나요?]

    “시사회는 아까 끝났고 지금은 밖입니다.”

    [베스트 무비에 후기 올라온 거 보고 있는데 대박이네요. 베스트 무비가 오늘처럼 들썩이는 건 오랜만에 봅니다.]

    “제가 여쭤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혹시 레전드 필름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CCTV요? 없어요. 저희가 연구소도 아니고 CCTV가 있을 리가 없죠. 왜 그러세요?]

    “그렇군요.”

    [혹시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으세요?]

    “예. 중요한 걸 잃어버렸습니다.”

    [그게 뭐죠? 혹시 지난번에 우리가 문 열어 놓고 식사하러 갔을 때 잃어버리셨을까요?]

    “문을 열어 놔요? 언제요?”

    [구원의 밤 편집이 끝난 날이요. 그때 밤샌 사람들 데리고 해장국집에 갔었잖아요.]

    “그러네요. 기억납니다.”

    [그때 실수로 막내 직원이 경비를 해제하고 문도 열어 놨다고 그랬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시간상으로는 열어 놓은 지 삼십 분도 안 돼요. 박상용 실장이 사무실에 들렀다가 문 열린 거 알고 다시 경비 작동해 주셨거든요. 예전에 입력해 놓은 박 실장님 지문을 지우지 않았거든요]

    순간 내 머릿속에 그날 신호등을 지나가던 차가 떠올랐다.

    “팀장님. 저는 이만 끊을게요.”

    [잃어버린 물건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제가 관리를 소홀히 해서 잃어버린 거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다시는 소중한 걸 잃어버리지 않도록 준비는 해야겠습니다.”

    [저도 내일 출근하면 직원들한테 따끔하게 당부할게요.]

    “그럼,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나는 레전드 필름에서 나와 건물 관리를 하는 사람을 찾았다.

    * * *

    “CCTV 영상이 석 달 동안 보관된다고요?”

    “영상 보관 하드 디스크 용량에 따라 CCTV 보관 기관이 결정되는데 오백 기가나 일 테라나 가격 차이가 크게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큰 걸로 샀습니다.”

    석 달 전이라면 그날의 영상도 남아 있을 거다.

    나는 관리소 직원에게 말해서 박상용 실장이 찾아왔던 날의 CCTV 영상을 확인했다.

    CCTV 영상 속에 지난번 내가 봤던 외제 차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박상용 실장이 왜 외제 차를 탔냐며 의아해하던 그 차다.

    “이건가 보네요. 저 차가 맞나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화질이 흐렸지만 차 안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CCTV 바로 앞으로 외제 차가 멈췄고 차 문이 열렸다.

    조수석에 탄 박상용 실장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운전석의 차 문이 열렸다.

    커다란 난 화분을 들고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록 이사였다.

    나는 록 이사의 얼굴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찾으셨나요?”

    “예. 찾은 것 같습니다.”

    나는 관리소 직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영상을 카피해 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리 사무소를 나온 나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지하 주차장에서 나는 홀로 생각했다.

    김경록은 줄곧 나에게 피해 의식을 가지고 행동했다.

    그의 행보가 내게 방해가 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내 배우에게 위해를 가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반드시 끝장내고 가야 하는 사람은 천재용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천재용이 떨어져 나간 지금 그 리스트는 비어 있다.

    “록 이사님. 이번 일은 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배우를 건드리는 건 못 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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