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102화 (103/261)
  • #102화. VIP 시사회

    김경진과 박동현의 이름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그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김경진이랑 박동현이 잘리다니 속이 다 시원하다.”

    “지들이 뭐라고 기획사 빽 믿고 분위기 엄청나게 흐리고 다녔잖아요.”

    “그건 그렇고 이정호 국장님도 옷 벗었다면서요?”

    “옷만 벗었으면 다행이게요? 실형을 살지도 모른다던데요?”

    “실형이라고요?”

    심엔터 이지용 매니저의 말에 사람들이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나도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스타메이커는 돈이 오간 정황을 발견하지 못해서 상관없는데, 그거 조사하다가 다른 거 큰 게 나왔다네요.”

    “큰 거라면 뭐죠?”

    어느새 우리 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지용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예능 있잖아요. 작년에 히트한 거.”

    “서로 집 바꿔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는 프로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그게 왜요?”

    “출연자 중에 새로 지은 고급 빌라 업자가 있었다나 봐요. 빌라 홍보하려고 나온 거였고 지금 그 빌라에 이정호도 살고 있다네요. 방송 나오고 값도 어마무시하게 뛰었다던데요.”

    “국장님이 아주 방송으로 장사를 제대로 하셨네요. 그럼, 천재용 채널에 나왔던 깍두기들도 그쪽에서 보낸 건가요? 원래 그 판에 조폭들 돈도 많이 끼어 있다고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이정호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오랫동안 떠들었다.

    나는 굳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옆자리라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모두 귀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천재용 그 새끼만 노났네요. 운영하는 미튜브 채널 떡상했다던데. 기자 잘렸을 때는 천재용도 이제 망하나 했는데 또 일이 그렇게 풀리네요.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맞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지금 천재용이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언제까지일까?

    “천재용이 이번에는 임준학인가 하는 신인 배우 이 잡듯 잡고 있잖아요.”

    “임준학이 수상하긴 하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드라마다 광고나 안 나오는 곳이 없잖아요. 마스크가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잘난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천재용 영상 보셨어요? 어째 거기서 나온 내용이랑 논조가 비슷하네요.”

    이지용 매니저는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강철구와 김도관 매니저가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난리도 아니네요.”

    “원래 이쪽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이지요.”

    “이정호가 예능 PD 중에서는 제일 성공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최욱환 PD 세상이 됐습니다. 스타메이커2 이야기도 슬슬 나오고 있던데. 들으셨어요?”

    “그래요?”

    최욱환은 아마 이후로도 승승장구할 거다.

    “원 대표. 한잔 더 합시다.”

    강철구가 내 잔에 음료수를 가득 채웠다.

    나는 가득 찬 잔을 보며 하소연했다.

    “인제 그만 주십시오. 음료수로 배 채우겠네요.”

    “하하하. 알았어요. 이상하게 술은 쭉쭉 들어가는데 음료수는 한 잔이 맥시멈이네요. 신기해.”

    * * *

    나는 지금 KBC에서 이윤기를 만나고 있다.

    대본을 다 읽은 이윤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은데?”

    “작가 이름 안 적혀 있었으면 우 작가님 작품인 줄 모르겠죠?”

    “그래. 신기하게 톤이 바뀌었어. 우 작가 설마 연애라도…….”

    이윤기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곧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남주는 이락 배우고 여주를 캐스팅해야 합니다.”

    “대본 좋아. 하려고 드는 사람이 많을 거야. 걱정하지 마.”

    “예. 그럼, 감독님만 믿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윤기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는 지금 딱 떨어지는 정장에 회색 롱코트를 입고 있다.

    누가 봐도 꾸민 모습이었기에 이윤기 감독의 시선에 얼굴을 붉혔다.

    “원 대표. 너무 멋지게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방송 나왔다고 사람이 너무 달라졌는데.”

    “오늘 나비 VIP 시사회가 있어서요. 이상한가요?”

    “전혀. 너무 잘 어울려. 원 대표가 이렇게 꾸미고 다니니까 다른 사람 같아서 그래. 정말 연기자 해도 되겠는데? 요즘 그런 소리 많이 듣지?”

    “저 LOK 처음 매니저로 입사했을 때도 그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배우 안 하고 매니저 하는 거야? 뭐, 원 대표야 매니저로서 능력도 출중한 건 잘 알고 있지만 말이야.”

    “제가 사실은 심각한 발연기입니다.”

    내 말에 이윤기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연기라고? 연기해 본 적 있어?”

    “배우들이 매니저랑 대본 많이 맞춰 보잖아요. 저도 대본 좀 읽어 본 사람입니다.”

    “하하. 맞아. 매니저들이 주로 상대역 대사를 해 주지.”

    “저도 대사 맞춰 준 적 있긴 한데 그 누구도 다시는 하자고는 안 하더라고요.”

    “하하하. 그래?”

    “예. 그 정도로 심각한 발연기입니다.”

    “그래. 사람이 그렇게 다 잘났으면 못난 부분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감독님.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이윤기는 회의실이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놀리기는. 진심이라고. 하하하.”

    * * *

    나비 시사회가 열리는 용산의 한 극장에 스타탄생 밴이 도착했다.

    차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서이렌이 내렸다.

    서이렌은 한쪽 어깨가 드러난 깔끔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렸다.

    빈선예는 서이렌의 의상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빈 팀장님. 저 오늘 어때요?”

    “너무 자주 말해서 입 아픈데요. 다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렌 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완벽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예요.”

    빈선예가 엄지를 들고 웃어 보였다.

    지난주에 두 여자 촬영을 끝마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서이렌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표님은 언제 오신대요?”

    “우 작가님 드라마 때문에 KBC에 들렀다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 늦지 않게 오시겠죠.”

    “제가 말한 대로 대표님 코디해 주셨나요?”

    서이렌의 말에 빈선예가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신신당부했어요. VIP 시사회 때 대표님도 무대에 올라오셔야 하니까 예쁘게 입어야 한다고요.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커플처럼 보일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커플이라는 말에 서이렌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빈선예는 그런 서이렌이 귀여워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우 작가님이랑 대표님 열애설은 참 뜬금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이렌 씨?”

    “우 작가님이 연애하는 거 몰랐으면 제가 한밤중에 작가님 집에 쳐들어갈 뻔했어요.”

    빈선예는 서이렌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고 웃었다.

    “그만 화내요. 아닌 거 알잖아요.”

    서이렌이 꽉 쥔 두 주먹을 풀었다.

    “가요. 이렌 씨. 락이랑 이슬이는 강진석 이사님이 데리고 오실 겁니다.”

    빈선예는 서이렌을 데리고 시사회를 진행하는 행사장에 마련된 대기실로 향했다.

    * * *

    주차장이 만석이라 최하층까지 간 나는 간신히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다행히 시간은 충분했다.

    대기실에 가기 전에 약부터 먹어야겠군.

    내 손이 재킷의 안주머니로 향했다.

    약병이 만져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년 1월에 병원에 정기검진하러 가야 하는데 요즘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느낌이 좋다.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일 년만이라도 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바닥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발 앞으로 약병 하나가 데구루루 굴러오고 있었다.

    마치 내 약이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나는 화들짝 놀라서 병을 주워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 누군가 약병을 찾아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가 새하얀 노년의 신사는 내가 약병을 주워 든 것을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고맙네. 요즘 무릎이 시원치 않아서 약병을 어찌 주울까 걱정했어.”

    “어르신, 계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말을 하며 노신사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온화하게 웃던 노신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노신사의 손이 그의 심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놀라서 그에게 뛰어갔다.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내가 넘어지는 그를 간신히 받아 냈다.

    “괜찮으세요?”

    “으…… 약. 약을…….”

    나는 재빨리 약병에서 약을 꺼내 노신사의 입에 넣어 줬다.

    노신사가 약을 먹고 눈을 감자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내 몸에 기대게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 * *

    시사회를 방문한 수많은 유명인사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박주오가 초대한 수많은 톱스타와 영화계 인사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은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VIP 시사회 현장을 카메라로 담았다.

    그때 누군가 포토라인 앞에 서자 기자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진설 아니야?”

    “진짜 진설이네. 얼마 만에 공개 행사에 참여한 거지? 이거 특종인데?”

    “고작 은퇴한 배우인데 무슨 특종이라는 거야?”

    “미쳤어? 진설이라고. 대한민국의 원조 여신, 레전드 배우 진설.”

    기자들은 앞다퉈 진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진설은 이미 육십이 다 돼 가는 데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이 새치 하나 없이 까맸다.

    성형으로 주름을 없앤 것도 아닌데도 얼굴에서도 빛이 났으며 그녀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진설이 포즈를 취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 기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진설이 여긴 웬일이래?”

    “엔진 박주오 대표가 제대로 된 VIP 시사회를 보여 줄 거라고 호언장담하더니 그 말대로 됐네.”

    “윤명현 감독 보러 온 거 아닐까? 천만 감독에 나비까지 잘되면 내년엔 곧바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며?”

    “뭐가 됐든 오늘 시사회는 대박이다.”

    대기실에서 시사회장에 온 VIP들을 확인하고 있던 윤명현 감독과 박주오 대표가 놀라 일어섰다.

    진설이 VIP 시사회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것이다.

    “대표님이 진설 배우님을 부르셨어요?”

    “난 아냐. 그분이 오라고 한다고 오실 분인가?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한 소리 하실 분이잖아.”

    박주오는 진설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기뻤다.

    “윤 감독. 내가 말했지? 역대급 VIP 시사회가 될 거라고 했잖아. 하하하. 진설 배우님이 왕림하시다니.”

    박주오 대표는 연신 웃음을 흘렸다.

    윤명현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영화계의 레전드가 왔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그때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오 분 전입니다. 같이 가시죠.”

    * * *

    영화를 보고 나온 기자들이 준비된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영화 장난 아닌데?”

    “처음 평론가 평 떴을 때 너무 설레발 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아니었어.”

    “할리우드 영화인 줄 알았네. 역시 윤명현 감독이야.”

    “이건 서이렌 아니었으면 못 찍었겠는데? 그 씬들 다 대역 아니었지?”

    “컷 나누지 않고 얼굴 보이는 상태에서 한 컷에 갔잖아. 대역 쓰지 않았다는 자신감이겠지.”

    “이락도 꽤 연기하지 않았어?”

    “이락이랑 기술자 페어가 진짜 소소하게 웃겨 줬다.”

    “김도진도 카리스마 살벌하더라. 역시 대배우야.”

    “영화가 깔 게 없어.”

    기자들은 나비가 대한민국 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세울 것을 의심치 않았다.

    기자회견장에 감독과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연인 서이렌, 김도진.

    구영진과 이락 그리고 윤이슬.

    마지막으로 감독인 윤명현까지.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박주오 대표가 강진석을 보고 한 소리를 했다.

    “저기에 원 대표까지 올라갔어야 내가 그린 그림이 딱 맞게 나오는데.”

    “그러게요.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한다고 간신히 설득했는데 이런 날벼락이 생기네요.”

    그들은 일이 생겨서 늦을 거라는 원세강의 전화를 듣고 설마설마했는데 안타깝게도 기자회견이 시작됐는데도 원세강은 도착하지 않았다.

    “됐어. 어쩔 수 없지. 진설 배우님 오신 걸 위안으로 삼아야지.”

    박주오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설을 보며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기뻐했다.

    MC에 마이크를 들었고 기자들의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자, 그럼 영화 나비의 제작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모두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회견장으로 올라가는 입구 쪽의 문이 열렸다.

    ‘끼익.’

    문이 열리고 회색의 롱코트를 휘날리며 내가 들어왔다.

    기자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 쏠렸고 나는 수십 명의 기자가 나를 보는 것을 보고 헛웃음을 삼켰다.

    뭐지? 분명히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나 늦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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