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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의 매니저-101화 (102/261)

#101화. 내 열애설은 내 마음대로

서울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스타탄생 법인 차량인 중형 세단이 나왔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우연미를 보며 말했다.

“난 작가님이 드라마에서처럼 물잔이라도 끼얹는 줄 알았습니다.”

“걔들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해요. 오히려 포르쉐가 통했을걸요?”

“친구분들을 잘 아시네요.”

“박상규랑 걔 친구들도 다 비슷한 부류예요. 그나저나 어떻게 알고 그렇게 딱 맞춰서 나타난 거예요?”

“화장실에 갔다가 박상규라는 분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서요. 그래도 냅다 들어갔죠. 저 잘했나요?”

“최고였어요.”

우연미는 묵은 체증이 사라진 후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원 대표님 덕에 걔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줬네요. 무슨 열애설이 이렇게 타이밍 좋게 났을까요?”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받았던 상처가 결국 작가가 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하는 우연미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우연미는 확실히 화통하고 멋진 여자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그녀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댄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열애설은 제가 바로 해결할게요. 우리는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기사가 막 나진 않을 겁니다.”

“아니에요. 지금 쓰는 글에도 도움 되고 나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신작인가요?”

“시놉시스는 다 썼고 이제 2화 털었어요. 보고 가실래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습니까?”

“집에 올라가면 원고를 직접 보실 수 있긴 한데 아직 인쇄 전이에요. 그냥 이걸로 보세요.”

우연미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나는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된 시놉시스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나만의 마돈나]

십 년간 대한민국의 여신으로 불리는 톱스타 고하영과 그녀의 로드매니저가 된 스물두 살 이동하의 연상연하 로맨스물이었다.

시놉시스를 다 읽은 나는 놀란 눈으로 우연미를 쳐다봤다.

“종목이 바뀌었네요. 로맨스로.”

“어때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캐릭터랑 시놉시스를 읽는 것만으로도 설렐 정도인데요?”

“와. 그건 극찬인데요.”

“잠시만요. 1화랑 2화도 마저 읽을게요.”

나는 핸드폰으로 나만의 마돈나 1화, 2화 대본을 읽었다.

작은 화면으로 대본을 보는 걸 싫어하는 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대본이었다.

안하무인 톱스타와 연하 로드매니저 사이에서 일어나는 통통 튀는 사랑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본을 다 읽은 나는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내 얼굴에 걸린 미소를 본 우연미가 웃었다.

“괜찮나 보네요.”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 좋은데요? 이거 화창한 날씨에 딱 맞는 스토리인데 2분기 편성 어떠세요?”

“벌써 편성까지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그럼요. 1, 2화 대본이 이 정도 나왔으면 지금도 작업이 술술 되고 있을 거 같은데 맞나요?”

우연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혹시 생각해 둔 캐스팅이 있으신가요?”

“여주는 딱히 없고요. 남주는 있어요?”

“누군데요?”

우연미는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아이돌 넥스트의 리더인 태호 생각하고 쓰긴 했어요.”

넥스트의 태호라면 웹드라마 주연을 맡은 적 있는 연기돌이다.

“태호라면 아이돌 마스터 주연이었던 그 배우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아이돌 마스터의 다온 역이요.”

“태호는 힘들 겁니다. 아직 연기력이 부족하고 상대 배역이 태호라면 여배우를 구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우연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알아요. 사실 저도 그걸 고민했어요.”

“보니까 태호가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아이돌 마스터의 다온이 마음에 드신 거 같은데요.”

“대표님 앞에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완전 족집게 무당.”

“그럼 대체재는 어떠시나요? 다온이랑 찰떡이면서 연기도 잘하는 핫한 신인 배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요? 누군데요?”

우연미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락 배우님.”

내 입에서 이락의 이름이 나오자 우연미의 두 눈이 커졌다.

“와.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요.”

“이락 배우님이 원래 이렌 씨의 로드매니저였다는 사실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대박인데요. 제가 왜 락이를 못 떠올렸을까요? 이동하랑 이미지가 딱 맞아요.”

나를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우연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당장 이 작품 편성 들어갈 수 있게 알아봐 주세요. 날씨 좋은 날 방영하는 거. 저도 찬성입니다.”

“좋습니다. 제가 이윤기 감독님을 컨택 해 볼게요.”

“이윤기 감독님이요?”

“로맨스면 이 감독님 전문 분야예요. 왜요? 이 감독님과 하기 싫어요?”

“제가 미쳤나요? 이 감독님과 다시 한다면 저야말로 영광이죠.”

우연미는 이윤기 감독과의 작품 활동이 만족스러웠는지 두 눈을 빛내며 웃었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연미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열애설 말입니다. 조금만 늦게 해명할까요?”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일부터 바로 나만의 마돈나 제작 알아볼게요. 작가님 네임밸류도 있고 아마 곧바로 편성이 될 겁니다.”

우연미는 긴장된 얼굴로 내 말을 경청했다.

“아까 작품이 지금 우리 상황이랑 비슷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작가와 매니저 스캔들이긴 하지만 비슷하죠.”

“그럼 우리 스캔들을 좀 이용해 볼까요?”

“어떻게요?”

우연미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우리 이대로 소문 퍼지게 놔둡시다. 아마 작가님 신작 소식 뜨면 우리 스캔들이랑 엮어서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럼 거짓말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안 사귀고 있으니까요.”

“거짓말은 아니죠. 결국엔 아니라고 발표하면 되죠. 나만의 마돈나 제작 발표회쯤?”

우연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대표님은 괜찮으세요? 대표님 애인 없어요?”

“없습니다.”

“서유림 매니저랑 썸 타는 거 아니었어요?”

“다들 왜 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오호. 그렇군요. 그럼, 제 남친만 단속하면 되겠네요.”

우연미의 말에 나는 놀라 되물었다.

“작가님 남자친구 있었어요?”

우연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렌 씨랑 선예 씨는 저 연애하는 거 바로 알아채던데. 역시 대표님은 남자라 그런지 눈치가 없으시네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럼, 우리 열애설 이용하는 건 하지 마요.”

“왜요? 전 상관없어요. 어차피 내 열애설인데 내 마음대로 할래요.”

우연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대범하게 굴었다.

“난 대표님이 더 걱정인데요. 저는 집에 틀어박혀서 글 쓰는 사람인데 대표님은 외부 활동이 많으시잖아요. 열애설 때문에 사람들이 귀찮게 물을 텐데 괜찮아요?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난데?”

“저야 작가님과 난 열애설이니 영광이죠.”

“대표님은 이런 거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내 배우들한테는 이런 거 하라고 못 하죠.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면 상관없습니다. 작가님 말씀대로 내 열애설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래요.”

“하하하. 대표님. 그런 마인드 멋져요.”

“늦었으니까 이만 들어가 보세요. 내일 다시 연락할게요.”

“알았어요. 가세요.”

나는 우연미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우연미는 사라지는 차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표님이 저래서 인기가 많은가?”

* * *

서울 모처의 고깃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층 고깃집을 전세 내서 모이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스타메이커에 참가했던 배우와 매니저들이었다.

바빠서 못 오는 배우와 매니저들도 있었지만 구십 퍼센트의 참석률을 보였다.

나와 이락, 윤이슬이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와. 락이다.”

“야. 우승자라고 늦게 오냐.”

“락아. 축하한다.”

모두 자기 일처럼 이락의 우승을 축하하며 반겨 줬다.

우리는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맞은편에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서유림이 우리를 환한 얼굴로 반겼다.

“서 매니저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대표님은 그동안 더 멋져지셨는데요?”

“여긴 카메라 없으니까 칭찬해 주셔도 소용없습니다.”

“에이. 저는 진심이에요.”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우리는 스타메이커 합숙소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저랑 엮어서 고생하셨죠?”

“뭘요. 대표님이랑 작가님 열애설 터진 뒤로는 제 이야긴 쏙 들어갔어요. 괜찮아요.”

서유림은 사람 좋은 얼굴로 편하게 웃었다.

“그런데 대표님. 정말 우연미 작가님이랑 사귀시나요?”

나는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그러기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도 나더라고요.”

서유림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서 매니저님. 윤세라 씨는 안 왔나요?”

윤세라 이야기에 서유림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기 싫대요.”

“역시 까칠하네요. 아직도 윤세라 배우님 케어하세요?”

“예. 그렇게 됐어요.”

서유림은 윤세라를 상대하는 것이 벅찬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일 나비 VIP 시사회라면서요.”

“어떻게 아셨어요?”

“요즘 언론에서 엄청 떠들잖아요. 분위기 좋던데요? 영화평도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뚜껑은 열어 봐야 알겠죠. 저도 완성본은 내일 시사회에서 처음 보는 겁니다.”

“VIP 시사회도 역대급일 거라던데 대단하세요.”

“시사회는 스튜디오 엔진에서 기획한 겁니다.”

“또 그렇게 공을 다른 사람들한테 돌리시네요. 이미 원 대표님의 대단한 능력이 방송에 모두 나갔으니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좋게 봐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을 마신 몇몇 사람들의 흥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스타메이커는 내가 본 미래보다 훨씬 잘됐고 거기에 출연한 배우들도 모두 주목을 받고 있었다.

“와. 그때 원 대표님이 앞에 나서서 방 배정해 준 거 기억나?”

“당연하지. 그때 진짜 우리 매니저 형은 아무것도 못 하고 버벅거렸는데 원 대표님 아니었으면 첫날부터 개싸움 할 뻔했어.”

“배우님. 저도 그때 뭐라도 하려고 했어요.”

“웃기지 마요. 형이 넋 나간 모습을 내가 옆에서 다 봤는데 무슨 소리야.”

“아닙니다. 속으로는 다 생각이 있었다고요.”

“아이고 알았어요. 형님. 이거나 드세요.”

여기저기서 내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낯이 간지러웠다.

그때 우리와 함께 사인극을 했던 임태인과 나세훈 배우가 옆자리로 다가왔다.

그들의 곁에는 매니저인 강철구와 김도관도 함께였다.

“원 대표님이랑 술 한잔하려고 했는데 대표님은 술 안 드시네요.”

“저는 이거 끝나고 스케줄이 있어서요.”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없는 스케줄 핑계를 댔다.

“밤늦게까지 바쁘시네요.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강철구 매니저가 내 잔에 음료수를 가득 따랐다.

“그럼 짠할까요?”

잔을 들어 건배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다음은 임태인 배우가 내 잔을 채웠다.

“첫 미션 끝나고 대표님이 떨어진 배우들한테 조언해 주셨잖아요.”

임태인 배우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게 보여 줬다.

A4 용지에 깨알같이 적었던 배우들을 향한 조언의 스샷이 그의 배경 화면이었다.

“그때 해 주신 말씀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걸 딱 집어서 말해 주셨거든요.”

“그러셨어요?”

“그 덕에 이번에 영화에서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도 됐습니다.”

“임 배우님이 잘하셔서 그런 거겠죠.”

옆에서 가만히 듣던 강철구 매니저도 임태인의 말을 거들었다.

“아닙니다. 원 대표님 덕이 컸어요.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사실 이런 건 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는 제가 챙겼어야 하는데 원 대표님께 한 수 배웠습니다.”

강철구는 지난날 나와 각을 세우고 싸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편한 사이다.

“그런데 오늘 LOK랑 숲 엔터 매니저들은 안 보이네요?”

“배우들은 왔어요. 이 층에 있더군요.”

“배우들만요?”

“LOK 김경진이랑 숲 엔터 박동현 매니저는 못 올 겁니다. 회사에서 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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