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99화 (100/261)
  • #99화. 작가님의 열애설

    - 우연미라고? 혹시 시남이랑 마네킹 작가 말하는 거임?

    - 대박.

    - ???????

    - 지금 찾아보니 우연미 작가 스본 소속이네;;;;

    - 미친.

    - 그럼 서유림???

    - 미친 ㅅㅂ 이거 진짜 맞음?

    - 글쓴이야. 방송국에 떠도는 소문이 뭔데?

    - 어차피 펑할 거니까 좀 더 말해 줘.

    - 궁금하다. 좀 털어놓고 가라.

    게시글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야심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삽시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방송국에서 야근하며 글을 올렸던 보조 작가는 예상보다 반향이 크자 놀랐다.

    보조 작가는 함께 야근하고 있던 선배 작가에게 물었다.

    “선배 좀 쉴까요? 머리도 좀 쉬어 줘야 뭐가 나올 거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던 선배 작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럴까? 커피 한잔 더 마셔야겠다.”

    “제가 가져올게요.”

    보조 작가는 탕비실에 가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뽑아서 돌아왔다.

    선배에게 커피를 건넨 보조 작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스타탄생 원세강 대표랑 우연미 작가가 사귄다는 거 확실한 거죠?”

    “갑자기 그건 왜?”

    “신기해서요. 대표랑 작가 커플은 못 봐서요.”

    “사실이야.”

    “둘이 어떻게 만난 거래요?”

    선배 작가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지 파티션 너머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마네킹 끝나고 우연미 작가가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잖아. 방송국이랑 회사에서 그런 우연미 잡으려고 혈안이었고.”

    “부럽네요. 우리는 이 야심한 시각에 퇴근도 못 하고 개고생 중인데.”

    “야. 드라마 작가도 힘들어. 그쪽도 만만치 않게 고생한다고.”

    “같이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두둔하시네요. 암튼 그래서요?”

    “우연미가 되게 큰 회사랑 계약하려고 미팅까지 했었는데 그 자리에 원세강이 찾아와서 날름 데리고 갔대.”

    “그게 진짜예요? 근데 그건 안 사귀어도 스타 작가 모셔 가려고 경쟁한 거 아닌가요?”

    “내가 듣기로는 우연미는 그쪽이랑 거의 계약 직전이었는데 원세강이 ‘짠’ 하고 나타나서 이 계약 무효라고. 우연미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데리고 갔다나 봐.”

    보조 작가는 선배의 말에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완전 드라마에서 보던 상황이네요. 그럼, 우연미 좋아하는 원세강이 계약하는 자리에 찾아가서 ‘안 돼! 하지 마! 너는 내 꺼야.’ 이런 건가요?”

    “야. 너 뭐 하냐? 드라마 쓰냐? 너 예능 작가 하지 말고 드라마나 써야겠다.”

    “하하. 제가 또 드라마를 파 온 덕력이 좀 되죠.”

    “그만 수다 떨고 일이나 하자. 12시 전에는 집에 가야지.”

    “예. 선배님.”

    * * *

    빈선예는 이슈 판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두 눈을 비볐다.

    [방송국 관계자한테 들은 지금 핫한 ㅇㅅㄱ 열애 상대 누군지 푼다 ㅋㅋㅋ]

    “뭐지? 이 익숙한 초성은?”

    빈선예는 고민하다가 게시글을 클릭했다.

    [ㅇㅅㄱ 열애설 상대 ㅅㅇㄹ아님. ㅇㅇㅁ 임 ㅋㅋㅋ]

    온통 초성으로 도배된 게시글을 보며 빈선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ㅅㅇㄹ? 뭐지? 서이렌은 아니겠지?”

    놀란 빈선예는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렸다.

    - 그래서 누구라는 거임? 아이돌이야?

    - ㅇㅅㄱ??? 혹시 원세강인가?

    - 하나도 모르겠다.

    - ㅇㅅㄱ 원세강 ㅅㅇㄹ 서유림 ㅇㅇㅁ 우연미.

    - 우연미가 누군데?

    - 시남. 마네킹 작가잖아.

    - 미친. 이거 사실임?

    - 나도 소문 들은 거 있는데 둘이 사귀는 거 맞음.

    -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네. 어케 만나서 사귄 거야? 서이렌 마네킹 찍을 때???

    - 우연미가 다른 회사랑 계약하려는데 원세강이 쳐들어와서 고백했대. 이거 방송국에서 유명한 이야기임.

    - ㅅㅂ 이거 진짜임?

    - 우연미 진짜 스타탄생 소속 맞네. 배우 소속사인데 유일한 작가. 미쳤다. 이거 사실인가 봐.

    - 대박대박.

    - 강림 커플 밀었는데. 갑자기 날벼락 ㅠㅠㅠㅠ

    - 강림 커플은 사실 스메 봤으면 다 알지 않나? 원세강은 서유림한테 감정 없었음. 그냥 몸에 밴 매너가 자연스럽게 나왔을 뿐.

    - 안 돼. 대표님 ㅠㅠㅠㅠㅠㅠㅠㅠ

    - 조회 수 봐라. 아이돌도 아니고 소속사 대표 열애설인데 화력 쩌네.

    - 이제 인기 터지려는데 열애설이 웬 말이야.

    - ㅋㅋ 원세강 지금 라이징임?

    - 화력은 어느 라이징 스타 못지않음 ㅠㅠㅠㅠ

    - 최근 들은 열애설 중에 제일 충격이네. 원 대표님 가지 마요.

    - 대표 열애설인데 다들 미쳐 돌아가네.

    - 근데 둘 다 일반인인데 이런 글이 막 돌아다녀도 되나?

    댓글을 모두 정독한 빈선예는 놀라서 핸드폰을 들었다.

    원세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꺼져 있었다.

    빈선예는 곧바로 강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이사님.”

    [빈 팀장.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지금 원 대표님 어디 있어요? 왜 전화가 꺼져 있죠?”

    [원 대표는 지금 스튜디오 엔진에 가 있을걸? 그런데 왜?]

    “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열애설이 났어요.”

    [뭐? 열애설? 누가? 서이렌 아니면 혹시 이락이나 윤이슬이야?]

    “아뇨. 다 아니에요.”

    [다 아니라고? 그럼, 대체 누구 열애설인데 이렇게 난리가 난 거야?]

    “원 대표님이요. 원 대표님이랑 우연미 작가님이 사귄다고 열애설이 났어요.”

    * * *

    나는 엔진에서 박주오 대표와 독대 중이었다.

    “대단하네요. 판권이 이렇게나 많이 팔렸다고요? 아직 상영도 안 했는데요?”

    나는 전 세계에 팔려 나간 나비의 판권 계약서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윤명현 감독이 해외에서도 이름값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는 아니다.

    박주오는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흘렸다.

    “다 서이렌 씨 덕이지. 예고편이 연작으로 나가면서 반응이 어마무시했잖아. 이번 주에 있을 VIP 시사회에 NGM 한국 지사장이 오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을 정도야. 눈치를 봐선 NGM에서 나비를 리메이크하고 싶은가 봐.”

    “잘됐네요.”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이걸 OTT에 팔자고 윤 감독을 설득했으니 참.”

    “그때는 배우를 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다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이렇게 하늘에서 서이렌 님이 나타날 줄 알았나? 하하하하.”

    스타탄생도 나비에 투자한 회사 중의 하나다.

    비록 금액은 많지 않지만, 나비가 흥행하거나 해외에 판권이 팔리면 그 덕을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이렌은 무려 러닝개런티 계약을 했다.

    신인이 러닝개런티 계약을 하는 건 무리수였지만 흥행에 청신호가 들어오자 내가 한 계약이 로또가 됐다.

    나와 박주오는 할리우드에서 나비를 리메이크하게 될 시에 대한 계약 조건을 미리 논의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다른 약속 없지?”

    “없습니다. 이렌 씨도 두 여자 촬영이 끝나서 지금은 쉬고 있어요.”

    “그럼, 내가 식사 대접할 테니 같이 나갈까?”

    “식사요?”

    “내가 긴한 이야기 할 게 있어서 그래.”

    나는 박주오의 눈치를 살폈다.

    일 이야기가 끝나자 박주오는 묘하게 긴장한 얼굴이었다.

    “예. 그러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박주오는 서울호텔로 나를 이끌었다.

    서울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 도착한 우리는 조용한 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부터 물었다.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은데 그냥 말씀하시죠. 궁금해서 밥이 목으로 안 넘어가겠는데요.”

    “하. 눈치챘어?”

    “모를 수가 없더라고요. 오면서 계속 긴장하셨잖아요. 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저를 따로 부르신 겁니까?”

    “사실은 말이야.”

    박주오는 물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나를 쳐다봤다.

    저 기센 양반이 왜 저렇게 위축되어 있을까?

    나는 조용히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내가 일을 저질렀어.”

    “대체 무슨 일인데요? 혹시 서이렌 배우님과 관련된 일입니까?”

    “아냐. 그건 아니고 원 대표에 관한 거야.”

    나한테 큰일이라고 해 봤자 별다른 게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걱정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물었다.

    “말씀하세요. 대체 뭔가요?”

    “원 대표랑 우연미 작가가 사귄다고 지인한테 말을 한 적이 있거든. 그 소문이 방송국에 파다하게 퍼진 거 같아.”

    열애설? 그것도 우연미 작가와?

    이건 조금 다른 일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박주오를 쳐다봤다.

    박주오는 달라진 내 눈빛에 긴장한 듯했다.

    “난 그냥 그때 우 작가랑 계약 틀어진 게 화나서 술자리에서 후배 놈한테 하소연한 게 다야. 사실 나도 술 취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 미안해. 그놈이 그렇게 입이 가벼운 놈인 줄 몰랐어.”

    박주오는 어쩔 줄 몰라 하여 내 눈치를 살폈다.

    내 머릿속에는 열애설을 어떻게 무마할지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찼다.

    박주오는 내내 침착한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원 대표. 크게 안 놀라네.”

    “소문이 퍼진 게 확실합니까?”

    “응. 우리 회사 직원도 알고 있더군. 인터넷에도 심심치 않게 글이 올라오나 봐.”

    “저는 먼저 일어나 볼게요.”

    “왜? 식사는 하고 가지.”

    “아뇨. 우 작가님을 먼저 뵈러 가야겠어요.”

    “미안해. 그러지 말고 그냥 둘이 사귄다고 발표를 하면 어떨까? 어차피 둘 다 결혼할 나이잖아.”

    코트를 챙기던 내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우 작가님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그때 원 대표가 우 작가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오해를 하신 겁니까?”

    “정말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아닙니다.”

    박주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이 헛소문을 퍼트린 게 되고 만다.

    코트를 챙긴 나는 나가려다 말고 박주오에게 걸어왔다.

    박주오는 내가 걸어오자 긴장했는지 얼굴을 굳혔다.

    “이건 제가 해결할게요. 다만.”

    “다만. 뭐?”

    “박 대표님이 저한테 빚을 하나 지신 겁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잘못했어. 어떻게 해 줄까? 해외 판권 수익금을 조정해 줄까? 원 대표가 원하면 계약서 다시 써 줄게.”

    박주오의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아뇨. 지금 말고 나중에 그 빚을 갚아 주세요. 제가 조만간 박 대표님을 찾아가겠습니다.”

    박주오의 눈동자가 떨렸다.

    “뭐 이상한 거 부탁하려는 건 아니지? 캐스팅 청탁이라든지? 아니면 계약에 관련된 거 말이야.”

    박주오는 지인이라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긴장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그렇게 얍삽한 놈으로 보이십니까?”

    “전혀 아니지. 우리 원 대표가 얼마나 바른 사람인데.”

    “그럼, 됐네요. 하지만 빚은 꼭 갚아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내가 실수한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우연미 작가님부터 만나 봐야 할 거 같네요.”

    방에서 나온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까 회의 들어가면서 꺼 놓은 핸드폰을 깜박하고 켜 놓지 않았다.

    핸드폰 전원을 켜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떠 있었다.

    정말 열애설이 나긴 했나 보군.

    나는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우연미 작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 * *

    우연미와 전화 통화를 마친 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침 우연미가 대학교 동창 모임 때문에 이곳, 서울호텔에 와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나는 인터넷을 확인했다.

    박주오의 말대로 최근 며칠 사이에 찌라시처럼 나와 우연미 작가의 열애설이 퍼지고 있었다.

    나와 우연미가 배우나 가수였으면 아마 벌써 엑스패치 같은 곳에서 열애설 기사가 떴을 거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나는 동창회가 열린다는 이십일 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그때, 무리를 지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나는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이동했고 문이 닫혔다.

    버튼은 여전히 이십일 층 한 개만 눌려 있다.

    저 사람들이 우 작가님의 동문인가?

    “야. 우연미 소식 들었나? 걔 대박 났다며?”

    “장난 아니야. 드라마가 잘됐잖아. 우리 엄마도 그 드라마 아시더라.”

    “그 찌질한 우연미가 스타 작가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학교 때는 다 걔 피해 다니지 않았냐?”

    “그거야 박상규 너 때문에 학교에 이상한 소문 나서 그런 거잖아.”

    “내가 뭐?”

    나는 화를 내는 남자를 쳐다봤다.

    제법 훤칠하게 생긴 그는 거죽과 달리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우연미 걔가 미친 거지? 지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사귀자고 고백했다고. 내가 그때 얼마나 열받았는지 알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