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대표님의 열애설
오늘은 두 여자의 마지막 촬영이 있는 날이다.
나는 강진석과 함께 두 여자의 촬영장으로 가고 있다.
“세강아. 다음 달 초에 해피 스릴러 대본 리딩 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일정이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가네요.”
“그쪽에서 대본 리딩 때 락이도 출연시켜 달라고 요청이 왔어.”
“이락 배우는 아직 무슨 역으로 나올지 모르잖아요. 최종화쯤에 나오기로 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요?”
“우리 락이 인기가 대단하긴 한가 봐. 대본 수정할 거래. 원래대로 최종화쯤에 카메오로 나오는 건 맞는데 그 역을 조금 일찍 출현시킬 거라나 봐.”
“드라마 홍보에 쓰려는가 보군요.”
“그렇겠지.”
이락은 지금 창원에 있다.
이모님 댁은 스타탄생이 계약한 건물로 이사를 했고 백반 가게도 다시 열었다.
이락의 어머니도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고 이락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 왔다.
이락은 당분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거라고 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스타메이커에 출연한 몇몇 참가자들은 이슈가 있을 때 이름을 알려야 한다며 방송 출연에 몰두하는 배우도 있다.
하지만 배우는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락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그가 할 작품을 찾으면 된다.
“어제 엔진의 심종혁 팀장한테 연락 온 거 들었지?”
“나비 시사회 말씀이시죠?”
“박주오 대표가 역대급 VIP시사회 겸 제작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떠 있대. 지금 엔진이 제일 신났을걸? 영화도 잘 뽑혀서 평론가 반응도 좋고 한창 이슈몰이 중인 스타메이커 두 스타가 나비에 출연하고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심 팀장님 목소리가 들떠 있더라고요. 이렌 씨는 물론 이락, 윤이슬 배우님 모두 출연시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뭐냐? 왜 너는 빼먹는데?”
“그건 못 들은 걸로 하려고요. 영화 시사회에 소속사 대표가 참여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야. 너 지금 인기가 장난 아니야.”
“형님도 그만 놀리세요. 인기는 다 지나가는 거라면서요. 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소란이 사그라들기 기다릴 겁니다.”
스타메이커가 끝나고 이락과 윤이슬의 섭외와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웃긴 건 나를 섭외하려는 전화도 함께 쏟아졌다.
강진석이 웃음을 못 참고 피식거렸다.
“한지욱이 불을 댕겼지. 지금 인터넷에 너희 두 사람 비교하는 짤이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알지?”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 다큐가 끝나자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타입의 인간인 한지욱의 등장에 열광했다.
한지욱의 어록이라며 게시글이 올라왔고 이미 인터넷 밈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그 덕에 나까지 불려 나와 비교 대상으로 이슈가 되고 있었다.
“한성제 대표님은 진짜 올해 삼재인가? 아들놈은 저 지경이고 김경진이는 이정호 국장에 로비한 거 들켜서 경찰 조사받고 있고 말이야.”
“김경진 매니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둘이 만난 사실은 확인이 됐는데 돈을 주고받은 정황이 안 나왔나 봐. 아무래도 무혐의로 끝날 거 같아.”
내가 가지고 있는 LOK 핸드폰 안에 두 사람이 돈을 주고받은 정황이 모두 녹음되어 있다.
내가 그걸 경찰에 넘기면 김경진은 물론이고 LOK까지 조사를 받게 된다.
“근데 무혐의면 뭐 하냐? 이제 이 바닥에서 발도 못 붙일 건데. 김경진이가 록 이사 동생이라서 실력도 없는데 너무 잘나갔어. 다른 매니저들이 김경진이 때문에 자괴감 느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차라리 잘된 거야. 능력도 없는데 이제라도 그만두고 다른 일 찾아야지.”
“그렇겠죠.”
어차피 김경진의 매니저로서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났다고 보면 된다.
나는 모든 내용이 담긴 핸드폰을 이대로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정호가 큰일이지. NGB 관계자 이야기 들어보니까 스타메이커 말고 다른 게 터질 거라던데? 대체 무슨 뒷돈을 그렇게 많이 받아 처먹은 거야? NGB 예능에 출연하려면 이정호를 찾아가라는 소문까지 돌았대.”
이정호.
뒤가 구린 인간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저급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천재용만 살판났네. 그 새끼는 명줄도 참 길어.”
천재용은 스타메이커 로비를 최초로 보도한 게 터져서 미튜브 스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천재용이 새로 올린 동영상이 벌써 인동 10위에 올랐더라.”
“형님은 욕하면서 찾아보시나 보네요.”
“그 기레기 놈을 뭐가 예쁘다고 찾아보겠어? 인기 동영상에 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본 거지.”
천재용은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이번 보도에서는 스타탄생 해가 될 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괜찮지만, 깡기자가 기사를 빼앗기지 않았던가?
나는 미튜브 앱을 켜고 인동에 올랐다는 동영상을 확인했다.
[무명에서 주연으로 캐스팅된 화제의 신인 배우. 소속사의 힘인가? 로비인가?]
아예 이걸로 타겟을 잡은 건가?
섬네일에는 어떤 배우의 얼굴을 블러 처리해 놨지만 한눈에 봐도 얼마 전에 SBC 대작 드라마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임준학이란 걸 알겠다.
그때 내 뇌리에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 임준학. 그렇구나.
“세강아. 뭐 해? 촬영장 다 왔어.”
“아. 형님.”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껐다.
“빨리 내리자. 촬영 시작 전에 이렌 씨 얼굴 봐야지.”
“예. 알았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임준학을 건드렸구나.
이렇게 되면 내가 손쓰지 않아도 된다.
천재용이 미끼를 물어 버렸다.
그를 나락으로 끌고 갈 미끼를.
* * *
촬영 중 쉬는 시간에 서이렌이 내게 다가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게 뭔가요?”
“한번 보세요.”
나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서이렌을 응시하고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핸드폰 속에는 나와 서이렌이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서이렌을 바라봤다.
서이렌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긴장한 얼굴로 SNS에 올라온 사진을 자세히 확인한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렌 씨. 지금 저 놀리는 겁니까? 이거 비하인드로 나간 사진이네요. 맞죠?”
지난번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 마침 두 여자 비하인드를 찍고 있었고 그때 서이렌과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평소 같으면 촬영장 비하인드는 오로지 배우 위주로만 찍을 텐데 그 카메라는 유독 나를 졸졸 따라다녔던 거 같다.
“이거 우리 커플 계정에 올라온 거예요. 보세요.”
“커플 계정이요?”
서이렌이 보여 준 SNS 계정의 프로필에는 원세강, 서이렌 커플 계정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기함해서 물었다.
“이게 뭡니까?”
“말했잖아요. 우리 커플 계정이라고요.”
“진짜 이런 게 있다고요?”
나는 급한 마음에 SNS를 켜고 내 이름을 쳐 봤다.
이락과 윤이슬의 인터넷 반응은 많이 찾아봤지만 내 것은 찾아보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못 느꼈을뿐더러 팬들이 열광하는 내 모습을 찾아보는 게 창피했다.
‘원세강’이라는 이름을 치자 수많은 게시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유독 알티 수가 많은 게시글이 있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글을 클릭했다.
말도 안 돼.
그 계정은 나와 서유림 매니저와의 커플 계정이었다.
팔로워 수도 천을 넘었다.
좀 더 검색해 보니 나와 서유림 매니저의 커플 계정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오히려 방금 서이렌이 보여 준 것처럼 나와 서이렌을 커플로 묶는 계정은 전혀 없었다.
나는 다시 서이렌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그거 다시 보여 줘요.”
“싫은데요.”
서이렌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핸드폰을 몸 뒤로 숨겼다.
“내가 찾아보면 되죠. 어차피 이렌 씨랑 내 커플 계정은 별로 없어서 금방 찾을걸요.”
나는 핸드폰으로 원세강, 서이렌을 검색했고 이내 서이렌이 방금 보여 준 계정을 찾았다.
계정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던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요? 그게 웃겨요?”
“그럼, 이게 안 웃기고 배겨요?”
나는 엊그제 올라온 게시글을 손으로 가리키며 서이렌에게 보였다.
“이거 봐요. 이건 우리 쪽에서 푼 비하인드 사진이잖아요.”
“그런데요?”
“근데 이건 B컷이라서 안 나간 거예요. 봐요. 포커스가 나갔잖아요.”
서이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그런 서이렌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계정 이렌 씨가 만든 거죠?”
서이렌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게 왜 이렇게 흘리고 다니는 건데요?”
“제가 뭘 흘리고 다녔는데요?”
“잘생김. 매너. 젠틀함.”
서이렌의 입에서 차마 제정신으로는 듣기 힘든 낯부끄러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잠깐. 그만. 그만해요.”
“그리고 왜 서유림 매니저한테 그렇게 잘해 준 거예요? 마지막에 포옹까지 하고.”
“그건 아무 의미 없었어요. 거기 모인 모든 사람과 다 친해졌는걸요.”
“못 믿겠는데요.”
“고립된 곳에서 갇혀 지내다 보니 상황에 더 몰입해서 그런겁니다. 우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정말이죠?”
“그럼요. 나는 이제 곧…….”
“곧……? 뭐요?”
나는 하마터면 아파서 곧 죽을 건데 이 상황에 누굴 만나냐는 말을 할 뻔했다.
내가 곧 죽는다는 걸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아마 서이렌일 거다.
그렇다고 서이렌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자신은 없었다.
“암튼 이 계정은 지워요.”
“안 돼요. 요즘 이 계정 운영하는 게 내 유일한 낙이라고요.”
서이렌이 강경하게 나왔다.
그녀를 설득하던 나는 결국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기사 사진같이 공개된 사진만 올리세요. 이렇게 비공개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의심한다고요. 알았죠?”
서이렌이 고민하는지 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고민할 게 어디 있어요? 빨리 지워요. 내가 보는 앞에서 지우는 겁니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알았어요. 지울게요.”
서이렌은 내 눈앞에서 게시글을 지우고 뾰로통한 표정이 됐다.
“저기 스태프가 오네요. 촬영 시작하려나 봅니다.”
“알았어요. 갈 거예요.”
“마지막까지 힘내세요.”
내가 주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자 서이렌이 입술을 삐쭉 내밀고 촬영장으로 사라졌다.
* * *
- 스본에서 두 여자 촬영장 사진 올려줬어.
- 서이렌 귀엽.
- 원세강도 나왔어. 촬영장 갔나 봐. ㅠㅠㅠㅠ
- 서이렌 원세강 둘 다 귀엽 ㅋㅋㅋ 근데 너무 추워 보인다.
- 스본 너무 일 잘해. 매주 촬영장 사진 꼬박꼬박 올려 주고.
- 서이렌 병아리 입술 봐라. 입술 쭉 나왔어.
- 삐진 서이렌. 개기여워.
- 원세강은 왜 이렇게 자꾸 멋져짐? 스메에서는 맨날 추리닝만 입고 다니더니 양복 입으니까 존잘임.
- 그러고 보니 서이렌이랑 원세강도 잘 어울리지 않음?
- ㅋㅋㅋ 강림이들 몰려오는 소리 들린다.
- 강림이가 가 뭐야?
- 강림이 원세강 서유림 커플명이고 그거 파는 얘들이 강림이들임. ㅋㅋㅋ- 원세강이 죄가 많은 남자다. 다 잘 어울려 ㅅㅂ 분명 나랑도 잘 어울릴 각인데 ㅋㅋ? 여기 미친 사람 있어요.
그때 게시글에 의미심장한 댓글이 달렸다.
- 강림 커플은 무슨 꿈 깨라. 원세강 지금 연애하고 있음.
- 루머 유포하지 마라.
- 루머 아님. 진짜임. 내가 직접 들은 거임.
- 나도 지인이 NGB에서 일하는데 원세강 애인 없다고 했음.
- 인증 없으면 구씹이지.
- 이걸 누가 믿냐?
- 인증하라니까 튀었네. 크큭
몇 분 후, 새로운 게시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MBS 사원증과 함께 뜬 글에는 어마어마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 MBS 다니는 거 맞고 확실한 이야기 맞아. 원세강 같은 소속사 식구랑 연애 중임. 이 글은 조만간 펑할 것임.]
인증과 게시글을 본 사람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 미친. 진짜야?
- 거짓말이지? 루머라고 말해 ㅠㅠㅠㅠㅠ
- 스본 식구면 서이렌, 윤이슬 둘 중 하나인가?
- 시발 이게 말이 되냐?
- 계자야. 더 풀어 줘 봐. 서이렌이야? 윤이슬이야?
- 서유림 어케하냐 ㅠㅠㅠㅠㅠ
- 펑하기 전에 누군지만 알려 주고 가ㅠㅠㅠㅠㅠㅠㅠ
게시글에는 순식간에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MBS 방송국에서 야근하며 게시글을 올린 방송 작가는 미소를 지으며 댓글을 남겼다.
- 다 틀렸어. 원세강 서이렌 윤이슬이랑 안 사귐.
- 뭐야? 소속사 식구랑 사귄다며? 대체 누가랑 사귀는데???
- 시남 작가 우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