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스타탄생
우승이다.
이락이 우승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오디션 무대에 참가하지 않고 우승한 것이다.
환호하는 관객들이 보였고, 박선호가 뒤에서 나를 안았다.
“축하합니다. 대표님. 정말 잘됐어요.”
박선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자신이 이 등이란 것 때문에 슬퍼하는 눈이 아니라 이락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흘리는 눈물이었다.
“고마워요. 박선호 배우님.”
창원에 있을 이락과 강진석도 이 소식을 들었겠지?
“축하드립니다. 이락 배우님이 우승하셨습니다. 대단하네요. 방송 내내 투표가 엎치락뒤치락했다는군요. 겨우 4,965표 차이로 이락 배우님이 우승하셨습니다.”
최혁도 흥분하며 멘트를 늘어놨다.
멘토 군단 모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건명이 윤희자를 보며 귓속말을 건넸다.
“윤 선생님 원픽이 우승했네요.”
“무슨 말이야. 나 공정성을 위해서 투표 안 했어.”
“투표는 안 하셨지만, 이락이 우승하길 내심 바라셨지요?”
윤희자는 김건명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윤서혁은 최혁의 멘트를 들으며 놀라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우승자가 엎치락뒤치락했고, 이락의 우승에 쐐기를 박은 것이 다름 아닌 원세강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원 대표님 진짜 대단하네. 오늘은 정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최고다.’
객석의 한 가운데 나란히 앉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던 최용팔 일행도 일어서서 만세를 외쳤다.
“이락 만세!”
“락이가 우승했다. 만세다!”
깡치는 창피해서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일행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깡치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고개 숙인 그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최혁이 내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원세강 대표님. 이락 배우님 대신 참석하셨으니 소감도 대신 말씀해 주시죠.”
“제가 뭐라고 우승 소감을 말하겠습니까? 다만…….”
나는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쳐다봤다.
카메라 너머로 이락과 강진석. 그리고 이락의 가족들이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웃고 있을 이락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락 배우님. 고생하셨습니다.”
갑자기 울컥했다.
나는 눈물을 참아가며 말을 이었다.
“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꽃길만 걷자고요. 제가 지금, 이 순간 이락 배우님께 하고 싶은 말입니다. 배우님, 이제 꽃길만 걸으세요. 제가 그렇게 되도록 옆에서 돕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내 멘트가 끝나자 장내에 환호성이 들렸다.
- 대박!!!!
- 이락이락이락 ㅠㅠㅠㅠㅠㅠㅠ
- 내 생애 제일 값지게 쓴 100원임 ㅠ
- 락아 꽃길만 걷자.
- 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승할 줄 알았어ㅠㅠㅠㅠㅠㅠㅠㅠ축하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락, 원세강, 윤이슬 ㅠㅠㅠ- 스본 식구들 너무 좋아.
- 박선호도 좋은가 봐. 찐으로 울고 있어.
- 박선호도 진짜 잘했음.
- 원 대표님 사랑해. 나랑 결혼해.
- 내가 투표했다고!!!! ㅠㅠ
- 박선호 팬이지만 이락은 인정. ㅊㅋㅊㅋ
- 미친. 무대에 윤이슬 올라왔다.
- 서이렌도 올라왔어. 우리 스본 이쁜이들 ㅠㅠㅠㅠ
두 여자 촬영을 마친 서이렌이 윤이슬, 빈선예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왔다.
서이렌이 내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울어도 되잖아요. 울고 싶으면 울어요.”
“아뇨. 이렇게 기쁜데 울 수는 없죠.”
윤이슬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윤이슬 배우님도 정말 잘했습니다. 내 맘속에선 이 배우, 윤 배우님 둘 다 우승자예요.”
“……대표님.”
윤이슬은 눈물범벅인 눈으로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대 위로 꽃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이렌이 내 왼손을 꼭 잡아 줬고, 빈선예는 내 오른손을 잡았다.
무대 위로 날리는 꽃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의 뜻이 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다 죽겠다.
내겐 아직 남은 삶이 있으니까.
* * *
다음 날 스타메이커 최종화의 시청률이 떴다.
‘21.8%’.
NGB 역사상 최고 시청률이자 케이블 역대 예능 시청률로도 1위다.
대대적으로 스타메이커에 관한 기사가 실렸고 모두 이락의 우승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스타메이커’ 이락 최종 우승…… 21.8% 자체 최고 기록]
[새로운 스타의 탄생인가? 이락과 박선호]
[감동의 물결, 스타메이커 최종 우승자 이락]
[전 국민을 울렸다. 스타메이커 마지막 방송의 이모저모]
[마지막 무대에 참가하지 않고 우승한 이락의 인기 요인]
이락의 우승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가슴 아픈 개인사가 있다고 해서 모두 이락처럼 우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락이 그만한 실력을 보여 줬기 때문에 우승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핸드폰 너머로 강진석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세강아. 나다.”
“형님. 이락 배우님 어머님은 좀 어떠세요?”
“이제 한시름 놨다. 방금 일반 병실로 옮기셨어.”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가시가 빠진 것 같았다.
“이락 배우님은 어때요?”
“계속 밤새느라 얼굴은 퀭한데 표정은 정말 좋아.”
강진석의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으로 팬들이 몰려왔어.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도 팬이라고 다들 지나갈 때마다 축하해 주셨다.”
“이제 괜찮아지셨으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모시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좋지. 우선 여기서 경과를 더 보고 논의해 보자. 그동안은 내가 여기에 있을게.”
“형님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은 무슨. 네가 더 고생했다. 숫기도 없는 놈이 전 국민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말이야.”
강진석의 짓궂은 농담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놀리지 마세요.”
“이미 영상으로 박제돼서 검색만 하면 네가 노래 부르는 영상이 우르르 뜬다고. 그런데 신기하다. 네 성격에 그 자리에서 노래를 다 하고 말이야. 진짜 놀랬다.”
“죽기 전에 흑역사 한번 쌓고 가려고요.”
“노래도 그렇게 잘하는 놈이 그게 무슨 흑역사냐. 매니저 참견 시점에서 내가 차에서 내리다가 엎어진 거 기억나지? 그런 게 흑역사라고.”
“그걸로 빵 뜨셨잖아요.”
“그렇지. 빵 떴다가 빵 하고 인기가 사라졌지.”
“암튼 형님이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요.”
“알았어. 당분간은 인터뷰에 뭐에 바쁠 거야. 고생해라.”
“예. 형님. 끊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강진석의 말대로 당분간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쁠 거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 * *
MBS 특집 다큐멘터리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이 방송하는 날이다.
- 두 여자 잘나간다고 MBS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다큐까지 편성하고 ㅋㅋㅋ- 작년에 MBS 드라마 시청률 개망했잖아.
- 두 여자 이제 몇 화 남았지?
- 4화. 다음다음 주에 끝남.
- 근데 오늘 스타메이커 비하인드 방송하지 않냐?
- 비하인드 이미 방송했잖아. 또 해?
- 지난번 꺼는 배우 위주, 이번에는 매니저 위주야. 다른 거임.
- MBS나 NGB나 신난 게 눈에 보인다.
-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ㅋㅋㅋㅋ
- 하필이면 두 개가 동시에 방송하냐.
- MBS는 노트북으로 보고 스메 비하인드는 텔레비전으로 볼 거다. 이미 세팅해 놓음 ㅋㅋㅋ MBS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 방송을 시작했다.
한류의 주역인 스타와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다큐의 기본 주제였지만 까 보니 두 여자의 홍보 프로그램이나 다름이 없었다.
- 두 여자가 작년부터 준비한 거였구나.
- MBS 창사 특집극이라 일찍 준비했을걸.
- 작가님들 처음 본다. 두 사람 부부지?
- 스메 비하인드는 아직 안 하지?
- 스메는 30분 후에 시작함. 그때까지 이거 보면 됨.
- 서이렌이랑 이자현은 되게 친한가 보다. 촬영하는 내내 붙어 있네.
두 여자의 촬영장 장면이 나오고 곧이어 이자현의 인터뷰가 먼저 시작됐다.
- 이자현은 말도 잘해.
- 원래 인터뷰 잘하기로 유명하잖아.
- 근데 이자현 옆자리에 현란하게 꾸미고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야?
- 두 여자에 저런 배우가 나오던가?
- 배우 아님. TOP 대표래.
- 무슨 대표가 저렇게 꾸미고 나왔냐?
- 그러게.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나왔는데?
- 저 양복도 명품이고 시계는 롤렉스네 미친.
이윽고 한지욱에 대한 인터뷰도 시작됐다.
“대표님.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미국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시는 LOK의 수장이시니까요. 어릴 때부터 내가 대한민국 연예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러시군요.”
“제가 사실은 학교에서 알아주는 엘리트에 수재였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이해를 못 했습니다. 저 같은 인재가 고작 엔터 사업을 한다니 낭비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 TOP 대표 자뻑이 너무 심한데?
- 명문대 나왔다잖아.
- 엘리트 맞아? 왜 이렇게 동문서답을 하는 거 같지? 말하는 게 다 핀트가 조금씩 어긋났는데???
시청자들은 한지욱의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인터뷰에 할 말을 잃었다.
한지욱은 생전 처음 보는 스타일의 화법을 구사했다.
드디어 김윤희 아나운서를 당혹스럽게 한 마지막 인터뷰가 나왔다.
“한지욱 대표님. 앞으로 어떻게 이자현 배우님을 서포트하실 계획이신가요? 또한 TOP 수장으로서의 포부도 말씀해 주시죠.”
“TOP는 이자현 배우만큼 좋은 배우를 영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자현 배우는 제가 앞으로도 잘 케어하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대표이니까요.”
- 미친. 저게 무슨 말이야 ㅋㅋㅋㅋ
- 대표라잖아. ㅋㅋㅋ
- TOP의 미래가 밝구나. ㅋㅋㅋㅋㅋㅋ
- 으. 절대 상대하기 싫은 타입.
- ㅋㅋㅋㅋ주옥같네.
- 유체이탈 화법.
- 우울할 때마다 봐야지.
- 대체 대표는 어떻게 된 거임? 땅따먹기로 된 건가?
- 아빠가 LOK 대표래. 아까 나옴.
- 미친 금수저였네.
- 어록 나오겠다.
- ㅋㅋㅋㅋㅋㅋㅋㅋ왜 저래.
- 이자현이 진짜 대단한 배우였구나. 저 상황에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는 것 좀 봐라. 나 같으면 저 자리에서 자지러졌음.
- 이자현 어케 하냐? 대표가 저런데 저 회사 괜찮겠어?
시청자들은 한지욱이라는 인물에 큰 충격을 받았다.
- NGB 틀어. 스메 비하인드 시작했어.
- 시작하자마자 원세강 나옴. 빨리 틀어.
- 한지욱 보다가 스님 보니까 마음이 편해지네.
- NGB 일부러 이렇게 편성한 건가? MBS 다큐 미리 본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스타메이커가 종영 이후에도 화제성이 꺾일 줄 모르자 제작진은 매니저 비하인드를 준비했다.
이정호 국장은 로비 의혹이 불거지며 직위 해제를 당하고 지금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관련된 LOK, 숲 엔터 매니저들도 함께 경찰 조사를 받고 있어서 그들의 분량을 다 들어내느라 어쩌다 보니 원세강의 분량이 미친 듯이 늘고 말았다.
- 비교체험 극과극.
- 그렇지. 저게 대표지.
- 원세강이 하드캐리하네.
- 원세강이 조언한 거 다 맞아떨어졌음. 대박.
- 스본 식구 세 명 쪼르르 앉아서 밥 먹는 거 봐라. 햄스터 가족인 줄.
- 방금 봤어? 원세강 식당에서 꽃 챙기는 거??? 미침 ㅋㅋㅋ- 어? 서유림이다. 둘이 포옹하는 거 나오려나 보다.
유스케이의 윤세라가 떨어지고 원세강이 서유림 매니저를 배웅하는 장면이 나왔다.
원세강은 떠나는 서유림에게 잘 가라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 줬다.
- 그냥 서유림 매니저 다독여 주는 거였네.
- 내가 서유림이었으면 당장 청혼함.
- 원 대표님 알고 보니 나쁜 남자 스타일이네. 저렇게 잘해 주면 오해하겠는데???
- 근데 만인에게 평등하심. 모두에게 잘해 줘.
NGB가 준비한 매니저 비하인드 방송이 끝이 났다.
매니저 특집이라는 부제가 무색할 정도로 원세강의 분량이 압도적이었다.
MBS에서 준비한 다큐와 연달아 방송한 영향인지 인터넷에는 재미있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교체험 대표 vs 대표]
[TOP 대표, 한지욱의 어록]
[SNS 알티터진 이자현 회사 대표 한지욱의 말말말]
[당장 드라마 찍어야 하는 스타탄생 대표 원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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