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무편집본
스타메이커 비하인드 쇼 방송 당일이 됐다.
예고편이 뜬 지난 일주일 동안 인터넷은 각종 궁예와 비난이 판을 쳤다.
최욱환이 문제가 된 예고편을 내리고 직접 편집한 예고편을 두 개나 내보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연동 뒷골목의 낡은 건물에선 최용팔이 민수와 함께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스. 락이 놈이 떨어질 거랍니다.”
민수의 말에 최용팔이 두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알아? 생방송은 다음 주라며?”
“오늘 방송하는 비하인드 쇼 예고편이 떴는데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 반응이 최악이에요.”
민수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최용팔이 입을 열었다.
“예고편이 어쨌길래? 너도 봤어?”
“그럼요. 방송국에서도 문제 될 거 알았는지 바로 영상 내려서 더 난리가 났습니다.”
“그럼, 나는 못 보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군가 미튜브에 올려놨더군요. 신고 먹어서 언제 내려갈지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보시겠습니까?”
“재생해 봐.”
최용팔은 누군가 올린 스타메이커 비하인드 쇼의 예고편을 확인했다.
이락이 이하진이란 배우를 질투하고 뒤에서 몰래 음해를 꾸미는 장면이 나오자 최용팔이 헛웃음을 삼켰다.
예고편이 다 끝나자 최용팔이 민수를 봤다.
“야. 민수야.”
“예. 보스.”
“방송국에도 우리 같은 놈들이 있나 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락 그 새끼가 저런 행동을 할 놈이냐? 락이가 저렇게 지 실속 챙기는 놈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최용팔은 민수의 웃는 낯이 꼴 보기 싫었는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발길질에 나자빠진 민수가 앓는 소리를 냈다.
“락이가 저기 방송에 나온 그런 새끼였으면 민수 네가 아니라 락이가 내 오른팔이었겠지. 알아?”
“그럴 리가요? 이락 걔가 얼마나 멍청한데요?”
“멍청한 놈이 깡치 형님이 물고 빠는 수제자냐? 락이가 이 바닥에 어울리지 않는 착한 놈이라서 당한 게 많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것 때문에 제일 많이 이득을 본 놈이 너라는 것도 말이야.”
최용팔은 일어선 민수의 정강이를 다시 걷어찼다.
“보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쓰러진 민수는 최용팔이 폭력을 가할까 두려워 몸을 떨었다.
미튜브 댓글에는 이락을 욕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영상의 싫어요도 좋아요의 두 배 이상이었다.
‘아. 그 새끼가 욕먹는 게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
최용팔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자신도 당황하고 있었다.
* * *
방송 모니터링을 위해 스타탄생 사무실에 나와 강진석이 모였다.
이락과 윤이슬은 빈선예가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빈선예와 윤이슬은 그동안 합심해서 인터넷 반응을 못 보도록 이락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하지만 이락의 반응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락은 알고 있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오늘도 빈선예가 집에서 같이 방송을 보자는 말에 웃으며 따라나섰다.
예고편이 나오고 있는 그때 누군가 이 층으로 올라왔다.
“어? 이렌 씨가 여기 웬일이야? 집으로 간 거 아니었나?”
두 여자 촬영을 마치고 빈선예와 집에 돌아갔던 서이렌은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이곳에 왔다.
서이렌의 양팔에는 야식이 들려 있었다.
“내일 오전 촬영 없어요. 저도 같이 봐요.”
“잘 왔어. 여기 앉아.”
강진석이 자신이 앉아 있던 제일 편한 사장님 의자를 서이렌에게 내줬지만, 서이렌은 쌩하니 강진석을 지나쳤다.
“저 그 소파 싫어해요.”
“그래? 아니 왜? 이 자리가 얼마나 편한데?”
“저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 같아서 싫어요.”
이상한 변명을 내뱉은 서이렌이 내 옆에 앉았다.
“대표님. 오랜만에 보네요.”
서이렌은 웃으며 말했지만, 눈빛이 살벌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촬영장에 왜 오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서이렌이 사 온 야식을 탁자 위에 펼치자 드디어 비하인드 쇼가 시작됐다.
최욱환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비하인드 쇼가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됐던 예고편의 그 장면이 바로 나왔다.
- 이거 예고편에 나온 그 장면인가?
- 시작부터 악편 ㅋㅋ 시청률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 악편은 무슨. 예고 못 봤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락이 이하진 괴롭히던데?
- 미친.... 제작진 무섭다;;; 바로 그 장면이네.
대기실에 들어온 이락은 이하진과 김경진이 그곳에 있는 걸 확인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이하진은 반갑게 이락의 인사를 받았지만, 김경진은 굳은 얼굴로 이락의 인사를 무시했다.
뻘쭘해진 이락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하진의 옆에 앉았다.
“어제 잘 잤어? 눈 밑에 다크서클 장난 아닌데?”
“말도 마. 공개 녹화가 처음이라 잠이 안 오더라고.”
이락과 이하진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자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 어라? 둘이 친한가?
- 친한 척하는 거겠지.
- 이하진 고개 돌리면 이락이 돌변해서 그 눈빛 쏘겠지.
그때 대기실에 내가 들어왔다.
이른 아침이지만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나를 보며 서이렌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예쁘게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죠?’
서이렌의 압박에 할 말이 없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자리에 앉자 김경진이 물었다.
“여전사는 어디에 두고 혼자 왔어?”
윤이슬은 지금 개인 인터뷰 중이었다.
나는 김경진을 향해 싸늘한 말투로 답했다.
“윤이슬 배웁니다. 여전사가 아니고요.”
“이미지에 맞게 여전사라고 불러 주는데 그게 뭐가 문제라고. 암튼, 원 대표도 참 성격이 고리타분해.”
나는 김경진과 말을 섞기 싫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무시하자 김경진은 화나 났는지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원 대표가 여배우들을 잘 캐스팅하는 이유가 있는 거 같아. 지금까지 맡은 여배우만 다섯 명인데 다 이미지가 다르잖아?”
나를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 배우들한테 뭐라고 하는 건 나도 못 참는다.
“김경진 매니저님. 여기 대기실입니다.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 말실수하실 겁니까?”
“이게 무슨 말실수야? 원 대표가 부러워서 그러지. 어디서 그렇게 다양한 이미지의 여배우들을 찾는 거야? 비결 좀 알려 주라. 혹시 혼자만 좋은 곳에 몰래 다니는 거 아니야?”
김경진은 나를 긁으려고 한 말이었지만 너무 나갔다.
“그만하십시오. 저 안 참습니다.”
“어휴, 왜 이렇게 무섭게 굴어.”
김경진은 내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입을 닫고 실실 웃으며 나를 긁었다.
그때 스태프가 들어와서 나를 불렀다.
“원세강 씨. 개인 인터뷰 따야 하니 나오세요.”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락과 눈인사를 한 나는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김경진은 내가 사라지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 뭔 말을 못 하게 해. 저렇게 착한 척하다가는 속병 걸려서 일찍 뒈지지. 안 그래?”
김경진의 발언에 잠자코 있던 이락의 눈빛이 돌변했다.
예고편에서 쓰였던 그 눈빛이다.
콜라를 마시던 서이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녀는 마시던 콜라 캔을 단숨에 찌그러뜨리고 불타는 눈빛으로 화면을 노려봤다.
이래서 이락이 흥분한 거였나?
고작 내 욕 좀 들었다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 김경진 미친 거 아니냐? 왜 원세강 욕을 하는데?
- 저건 원세강 욕도 아님. 스본 여배우들 다 욕하는 거잖아.
- 김경진 ㄱㅅㄲ
- 악편 맞았네. 저 눈빛이 이하진이 아니라 김경진을 향한 거였네.
- 착한 눈빛 인정합니다.
- 김경진이라는 사람 흔히 보는 양아치 조폭이 매니저 된 케이스인가 봄.
- ㅅㅂ 이 장면 하나로 일주일 내내 이락 욕먹은 거네.
- ㅁㅊ 제작진 진짜 개쓰레기 놈들이네 와..
- 이슈판에 예고편 올라온 거 봤었는데 충격이다ㅠㅠ
- 이 방송 많은 사람들이 보길.
- 다짜고짜 이락한테 욕부터 박는 사람들 엄청 많았는데 ㅠㅠㅠㅠ- 어휴. 죄 없는 사람 매장하는 거 너무 잔인하네ㅠㅠ- 그런데 이렇게 풀로 영상 공개할 거면서 왜 예고편을 그따위로 만든 거야?
- 혹시 스메 최 PD 맹장염 걸린 거 때문 아닐까?
└최 PD 아팠어?
└맹장염 수술하고 얼마 전에 복귀함.
초반부터 이락의 누명이 벗겨지자 강진석이 그제야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다행이다. 오해 다 풀리겠네. 그나저나 김경진이는 대박 깨지게 생겼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제라도 이락 배우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요.”
내가 웃자 강진석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야. 세강아. 지금이 웃을 때냐? 당장 김경진이 이 새끼 어떻게 족칠지 그것부터 고민해야지. 네가 그러니까 착한 척한다는 말을 듣는 거야?”
강진석이 한마디 하자 서이렌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섰다.
“착한 척이라뇨. 우리 대표님이야말로 선함의 결정체. 천사표시잖아요.”
비하인드 쇼는 계속 이어졌고 스타메이커의 숨겨진 내용이 방송됐다.
시청자들은 무대가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는 일반인으로 돌아오는 배우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원세강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 역시 스본 매니저가 최고다.
- 스님 진짜. 어떻게 배우들을 저렇게 세심하게 챙기지?
- 나도 스님한테 챙김받고 싶다.
- 스메가 배우 예능이 아니라 매니저 예능이었음 원세강이 일 등임.
인터뷰 비하인드 신이 방송되는데 갑자기 내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첫 번째 미션이 끝난 직후의 장면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떨어진 배우들에게 매니저로서 한 말씀을 해 주세요.”
“스무 명이나 돼서 할 말이 많은데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다른 분들 먼저 인터뷰하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