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89화 (90/261)

#89화. 악마의 편집

“그것은 제가 대표이니까요. 크하하하.”

강진석은 운전대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운전 중이십니다. 그만 좀 웃으십시오.”

“미안. 세강아. 그런데 자꾸 한지욱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온다.”

“생각하지 마세요.”

강진석은 숨을 들이쉬며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한성제 대표님도 고민이 많으시겠어. 하나뿐인 아들놈이 저 지경이니 말이야.”

“저는 사실 한지욱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없는데, 하나가 걸리네요.”

“왜? 이자현 배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자현 배우는 TOP와 재계약하면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나마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는 게 다행일 정도네.”

강진석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물었다.

“설마 네가 데려올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안 될 말이죠. 그랬다간 한성제 사장님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너랑 이자현 배우는 다시 얽히면 안 된다고 본다. 그나저나 이렌 씨랑 얘기도 별로 못해 보고 왔네.”

“두 여자 촬영장이 제 예상보다 바쁘게 돌아가네요.”

“평소에는 안 그래.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있어서 NG도 없고, 대본도 빨리 나오고. 오늘은 그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그런 거지.”

“다큐멘터리 촬영 끝나면 다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러지 뭐.”

* * *

스타메이커 명장면 미션의 방송 날.

오디션을 볼 세 개의 천만 영화 시나리오가 뜨자 시청자들은 기함했다.

- 작품선정 무슨 일이냐 ㅋㅋㅋ 제작진 너무하네.

- 이건 대놓고 가족 고르는 사람이 떨어지라고 하는 거 아니냐?

- 미친 ㅇㄱㄹ 대박이네.

- 가족 고른 사람이 오늘 탈락자네.

뒤이어 작품을 고르는 장면이 방송을 탔고 이락이 가족을 뽑자 시청자들은 탄식했다.

- 아. 이게 뭔가요.

- 락이가 떨어지나 보다.

- 이건 아니지. 제작진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 사실 오디션 프로는 무슨 작품을 선택하는지도 중요해서. 운도 실력이야.

- 저 LOK 매니저는 뭐 저런 걸 씨부렁거리고 있어? 지금 누구 약 올려?

- 김경진 때문에 원세강 대표님 화났다.

- 스님 눈빛 달라진 거 보소.

- 저건 나라도 빡치겠다.

- 우리 스본 식구들 건드리지 마라. 죽인다.

한편, 오늘도 해장국집에 모인 최용팔 일행은 텔레비전을 보며 수군거렸다.

“야. 민수야. 저거 락이가 잘 뽑은 거냐?”

“잘 뽑은 거 아닐까요? 천만 영화라잖아요.”

“그래?”

“가족은 개그 스튜디오에서도 패러디하고 인기가 엄청났습니다. 형님도 아마 보셨을 겁니다.”

“그럼, 락이 저 새끼는 오늘도 안 떨어지겠네? 오늘 살아남으면 결승 아냐?”

“예. 그렇죠. 어쩔까요? 지금이라도 방송국에 찌를까요?”

민수의 말에 최용팔의 얼굴에 일그러졌다.

“야. 민수야. 넌 왜 그렇게 찌르는 걸 좋아해? 너 그러다가 나도 찌르겠다.”

민수는 얼굴이 사색이 돼서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보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막돼먹은 놈이 아닙니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이제 연기 시작하니까.”

“예. 보스.”

최용팔은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박선호의 연기가 먼저 펼쳐졌다.

오발탄이라는 영화의 이준용 법무장교 역을 맡은 박선호는 초반부터 사람들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 줬다.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단숨에 내뱉는 그의 모습에 최용팔은 긴장했다.

“저 자식도 조금 하네.”

옆에서 해장국을 들이켜던 민수가 입을 열었다.

“우승 후보랍니다.”

“조용히 국이나 퍼먹어라.”

“예. 보스.”

박선호의 연기가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자 최용팔은 심기가 불편했다.

뒤이어 나타난 이하진.

이하진은 바람의 기억의 윤철을 연기하며 무대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감정이 고조되고 눈물은 점차 오열로 바뀌었다.

“저 자식 잘 우네. 야. 민수야. 쟤도 우승 후보냐?”

해장국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민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쟤는 우승 후보는 아닌데 인기가 많습니다.”

“쟤가 인기가 많아? 그럼, 락이는?”

“락이도 인기가 많긴 한데 이하진 쟤가 인기가 더 많을걸요?”

“참나. 우승 후보도 아니야. 인기도 쟤보다 못해. 락이는 이번에 떨어지겠네.”

“아하. 그렇죠. 보스.”

아하진의 오열 연기가 끝나고 드디어 이락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동안 상큼하고 재기발랄한 연기를 선보인 이락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이락의 눈빛을 보며 객석이 고요해졌다.

해장국을 먹던 최용팔 일행도 조용히 이락의 연기에 집중했다.

“엄마는 청소부셨어요. 제가 연습하는 회사의 청소부요. 저는 그런 엄마가 미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아이돌이 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너무 미워서 내가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이락의 담담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에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최용팔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숟가락을 바닥에 내려놓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락의 연기하는 동안 카메라가 객석을 훑었는데 관객들이 하나같이 두 손을 모으고 이락의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담담하지만 가슴을 저미는 듯한 이락의 연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만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락의 마지막 말이 들렸다.

“엄마. 사랑합니다.”

대사를 마친 이락의 눈에서 참아 왔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최용팔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시발. 민수야 다시 한번 말해 봐라. 락이가 저 정도까지 연기를 하는데 우승 후보가 아니라고?”

해장국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민수도 눈물범벅이었다.

민수는 울며 말했다.

“보스. 저 연기로 떨어지면 이건 분명 뭔가 있는 겁니다. 방송국에 쳐들어가야죠.”

“그래. 락이가 떨어지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최용팔은 다리에 힘이 풀려 무대 위에 주저앉은 이락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최용팔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괜스레 욕을 내뱉었다.

“씨발. 이락 저 자식은 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거야.”

- 미쳤다.

- 락아 ㅠㅠㅠㅠㅠㅠㅠㅠ

- 나 방금 소름 돋음.

- 나 지금 울고 있다. 이락 감정선 뭐냐?

- 저 연기로 떨어지면 말도 안 된다.

- 감정 이입 쩔어. 이락 미친 거 아님????

- 최악의 대본으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이락이 무대 위에 쓰러지자 시청자들은 놀랐다.

- 다 쏟아내고 힘 떨어졌나 보네.

- 원 대표님밖에 없다 ㅠㅠㅠㅠㅠㅠ

- 이락 울지 마 ㅠㅠㅠㅠㅠㅠ

- 스님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네.

- 생각해 보면 이락이 가족 하게 된 게 운이 없는 게 아니었어.

- 그러네. 생각해 보면 가족만큼 이락한테 찰떡인 작품이 없다.

- 락아 이제 울지 마. ㅠㅠㅠㅠ

- 이제 꽃길만 걷자.

인터넷 게시판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그리고 드디어 윤서혁 감독이 결승에 오를 최종 2인을 발표했다.

“스타픽의 박선호 그리고 스타탄생의 이락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최종 결선에서 봅시다.”

- 와! 이락 됐다.

- 우리 선호 ㅠㅠㅠㅠㅠㅠ

- 내 픽 둘 다 결승 간다 ㅠㅠㅠㅠㅠ

- 이제 바라는 거 없다.

- ㅠㅠㅠㅠㅠ

- 나 왜 눈물이 나냐 ㅠㅠㅠㅠ

- 하진이도 잘했다.

한편 해장국 집에서는 이락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조폭들이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최용팔은 결승에 진출해 눈물 흘리는 이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외쳤다.

“만세!”

민수와 그의 수하들은 얼떨떨해하다가 이내 그들도 손을 들고 따라 외쳤다.

“만세! 이락 만세!”

* * *

명장면 미션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시청률도 케이블 예능 중에서 최고 시청률인 12%를 기록했다.

스타메이커 생방송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 NGB에서는 스타메이커 뒷이야기라는 방송을 편성했다.

모든 것이 잘 풀리던 그때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예? 최욱환 PD님이 맹장 수술을 하셨다고요?”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제 수술하셨고 지금은 괜찮으세요.]

“아. 그렇군요.”

조연출은 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다음 주에 비하인드 방송 내보낸다면서요? 그럼, 그건 누가 편집하나요? 직접 하시는 건가요?”

[최 PD님 지시받아서 제가 하려고 했는데 이정호 국장님이 직접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정호 국장님이라고요?”

[예. NGB 예능의 대박 작품이라고 본인이 직접 하시겠다고요.]

“그분이 일선에서 손 뗀 지 오 년은 됐을 텐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JC에서 이적한 손요원 PD가 메인으로 편집할 거랍니다.]

손요원?

주작 방송으로 물의를 빚고 일 년 동안 자숙했던 그 손요원?

이정호도 걱정되는데 손요원이라.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렇지 않아도 이 국장님과 손 PD님이 편집한 비하인드 쇼 예고편이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을 겁니다.]

나는 황급히 인터넷 창을 열고 스타메이커를 검색했다.

[어라. 근데 편집이 왜 이러지?]

전화기 너머로 당황한 듯한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 대표님. 제가 지금 확인할 게 있어서요. 전화 끊겠습니다.]

조연출이 전화를 끊었고 나는 비하인드 쇼 예고편을 클릭했다.

예고편이 끝나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악마의 편집.

이번 예고편은 제대로 된 악마의 편집이었다.

예고편에서 이락은 이하진을 괴롭히며 궁지에 모는 악마로 나오고 있었다.

* * *

NGB 예능국의 편집실에서는 이정호와 손요원 PD가 한창 비하인드를 편집하고 있었다.

“이렇게 편집하면 이락이 이하진을 질투하고 있었다고 보이는 거죠. 어떻습니까?”

손요원의 말에 이정호가 박장대소했다.

“하하하하. 이거 손 PD가 마술사였네. 나보다 더 감각 있네.”

“최 PD는 이런 대어를 두고 왜 그렇게 연출을 한 거죠? 이해를 못 하겠네요.”

“최 PD가 원래 좀 심심한 사람이야. 그래도 그런 심심한 연출로 케이블 예능 최고 시청률 찍었다고.”

“제가 처음부터 스타메이커를 맡았으면 지금쯤 20%는 찍었을걸요?”

“아하하하. 손 PD가 아주 야망이 있네.”

이정호는 손요원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 이락이랑 이하진이 서로 흙수저, 금수저로 한창 이슈를 끌고 있으니 우리는 그냥 거기에 MSG만 쳐 주는 거죠. 이게 방송에 나가면 시청자들이 알아서들 불을 지필 겁니다.”

그때였다. 이정호와 손요원이 작당 모의를 하는 편집실 문이 열렸다.

갑자기 편집실에 찾아온 나를 보며 이정호와 손요원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원 대표? 원세강 대표가 여기에 무슨 일이야?”

편집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던 나는 이정호와 손요원의 작당 모의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아하. 최 PD 보러 온 거였어? 얘기 못 들었어? 최 PD 맹장이야. 어디에 입원했는지 알려 줄 테니 거기로 가.”

나는 빈 의자를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아뇨. 두 분께 볼일이 있습니다.”

“우리한테?”

이정호와 손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이정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원 대표. 이게 뭐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의 잠금을 풀었다.

LOK 엔터에서 공용 핸드폰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패턴이었다.

핸드폰의 잠금이 풀리자 나는 곧바로 파일 폴더로 가서 가장 최근의 녹음 내용을 재생했다.

[저 김경진입니다. 이정호 국장님께서 알려 주신 정보 잘 쓰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정호는 김경진이라는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이정호 국장의 목소리도 들렸다.

[록 이사 동생이라고 했나? 그깟 오디션 정보 좀 준 거 가지고 무슨 전화까지 했어. 그래. 무슨 영화 뽑았어?]

[바람의 기억을 뽑았습니다.]

[잘했네. 눈물 좀 뽑아낼 수 있으면 관객들한테 잘 먹힐 거야.]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다 이 국장님의 은혜입니다.]

[이하진이 잘해서 그런 거지. 내 덕이 있나? 하하하.]

[조만간 형님이 이정호 국장님을 따로 모신다고 했습니다.]

[알았어. 내가 록 이사랑 전화 통화할게. 합숙소에서 전화 쓰는 건 들키지 말고.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 그럼, 끊자고.]

녹음된 음성이 끝나자 나는 이정호를 쳐다봤다.

이정호는 얼굴이 사색이 돼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는 한 달 전 밤을 떠올렸다.

서이렌이 보낸 쪽지를 읽기 위해 카메라가 없는 발코니로 향했다.

쪽지를 읽고 돌아서려는 순간 아래층 발코니에서 김경진이 나왔고 그가 핸드폰을 꺼내는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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