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방송의 파급력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탄생 매니저로 참석한 원세강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전에 촬영 때문에 이 숙소에서 장기 투숙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대해 잘 알거든요. 지금 보아하니 제작진들이 우리가 알아서 방을 선택했으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여러분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정보를 공유해도 될까요?”
원세강이 앞으로 나서서 참가자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서이렌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떻게. 너무 멋있어요.”
“이렌 씨.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빈 팀장님. 저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우리 대표님이지만 정말 너무 멋지잖아요.”
빈선예는 오랜만에 보는 원세강을 보며 어찌할 줄 모르는 서이렌이 귀여웠다.
원세강의 주도로 참가자들의 숙소가 배정되고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데 서유림 매니저의 방에 문제가 생겼다.
공사 중인 방을 선택해서 남는 방이 없던 것이다.
“서 매니저님이 제 방에서 묵어요.”
“원 대표님은 어쩌시려고요?”
“전 어차피 이락 배우님과 함께 묵을까 고민 중이었어요.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쉬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요.”
“고마워요. 원 대표님.”
원세강이 서유림에게 자신의 방을 주고 복도를 홀로 걷는 장면이 나왔다.
원세강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1일 차 종료’라는 자막이 떴다.
“대표님이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고 다니셨구나. 저 서유림 이라는 매니저가 대표님이랑 포옹 씬 뜬 그 사람이죠?”
빈선예의 물음에 서이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빈선예가 고개를 돌리자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서이렌이 보였다.
“이렌 씨. 화내지 말고 이거나 마셔요.”
빈선예는 서이렌의 손에 차가운 맥주를 들려 줬다.
서이렌은 얼음을 넣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같은 시각, 이자현도 집에서 현미와 함께 스타메이커를 감상 중이었다.
현미는 원세강의 모습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하나 봐요. 대표님 여전하시네요.”
“그러게. 저러고 다니니 사람들이 오해하지. 너도 원 대표님 오해했었지?”
이자현이 묻자 현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표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오해한 건 아니고 언니를 좋아한다고 오해했죠.”
“그랬어?”
“대표님이 언니한테 진짜 잘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색안경 끼고 봤었는데 나중에야 알았죠. 아. 저분은 만인한테 평등하게 잘하는 분이구나.”
“그러게. 난 왜 그걸 뒤늦게 알았을까? 그럼, 괜히 대표님을 오해하고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이자현이 허탈하게 웃자 현미는 말을 꺼낸 게 쑥스러워졌다.
아침 여섯 시가 되자마자 리조트 숙소에 기상 사이렌이 울렸다.
곤하게 자고 있던 배우와 매니저들이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며 스타메이커의 1화가 끝났다.
곧바로 뜬 2화 예고편에서는 스타메이커의 심사위원인 윤희자, 김건명, 윤서혁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뜬 첫 번째 미션.
미션 제목은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고 참가자들이 놀라는 표정이 편집돼서 지나갔다.
이윽고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이거나 서로 화를 내며 의견 충돌이 일어난 모습이 간간이 보이고 예고편이 끝났다.
갈등 요소를 보여 주며 끝난 스타메이커는 첫 방송을 관람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만했다.
- 다음 주에 마라 맛 가나요?
- 오늘 숙소 배정하는 것도 사실 제작진에게서는 싸우라고 판 깔아 준 거 아니었나?
- 판은 깔렸는데 원세강이라는 매니저가 날려 버림. ㅋㅋ- 다들 원픽 정함?
- 아직 연기하는 장면이 안 나와서 누구 밀지 모르겠음.
- 박선호 내 타입인 듯. ㅈㄴ잘생겼어.
- 박선호 인터뷰할 때 한국예술대학교 연기과 수석 입학 자막 뜨는데 존멋이더라.
- 이락인가 하는 배우는 방송국 잘못 찾아온 거 아님? 아이돌 오디션은 옆 동네 가야 하잖아. ㅋㅋㅋ- 이락 너무 귀여워.
- 왜 아무도 윤이슬 얘기는 안 하냐?
- 윤이슬 등판 봤음? 근육이 진짜 예술이더라.
- 윤이슬 존멋. 여팬들 엄청 생길 거 같더라.
- 윤이슬 예고편에 나온 서이렌은 뭐야? 둘이 영화 찍었어?
- 서이렌 영화 나비에서 윤이슬이 서이렌 스턴트맨이래.
- 배우랑 매니저랑 같이 나온다고 해서 무슨 컨셉인가 했는데 은근 재미있다.
- 매니저 참견 시점 PD라서 연예인이랑 매니저 사이의 케미를 잘 알고 있는 듯.
- 매니저랑 매니저 케미도 최고임 ㅋㅋㅋㅋㅋ
- 누가 되든 난 상관없고. 원세강이랑 서유림이나 팔란다.
- 매니저가 계속 나오려면 배우들이 안 떨어져야 한다고.
- 아. 그러네. 방송국 놈들이 이걸 노린 건가?
스타메이커 첫 방송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달궈져 있을 때 스튜디오 엔진이 나비의 첫 번째 티저 예고편을 내놓았다.
티저 예고편은 아무런 자막도 소개도 없이 서이렌의 뒷모습만으로 시작한다.
무대 뒤에서 발레리나로서 서 있는 서이렌의 뒷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고 깊은숨을 내쉰 서이렌이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비가 날아가듯 중력을 무시한 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누가 봐도 발레리나였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점점 커져 서이렌을 완전히 뒤덮으며 화면이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전환됐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에 자막이 뜨며 티저 예고편이 끝났다.
[Lady Butterfly 12월 21일 대개봉]
- 예고편 퀄 미쳤네.
- 까아아아아아하앙 너무 좋아ㅠ
- 끄앙 너무 기대된다ㅜㅜ
- 저거 서이렌 맞아?
- 아닌 거 같은데. 대역이겠지.
- 서이렌 살 진짜 많이 뺐네.
- 저거 서이렌이 진짜 찍은 거 맞아.
- 너무 기대된다ㅠㅠㅠㅠ
- 국립발레단 김윤서 인터뷰 떴었어. 서이렌이 대역 없이 본인이 발레씬 다 찍었대.
- 서이렌은 대체 못 하는 게 뭐냐? 노래 잘해. 춤 잘 춰. 연기 잘해. 얼굴 잘해.
- 아 빨리 보고 싶다.
- 자고 일어나면 12월 21일이면 좋겠다.
* * *
다음 날 스타메이커 1화의 시청률이 떴다.
‘3.5%’.
밤 11시에 한 예능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예능에서 줄곧 열세였던 NGB로서는 첫 방송으로는 최고 시청률이었다.
강원도에서 이 소식을 들은 최욱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거 봐. 어그로 안 끌고 싸움판 안 보여 줘도 시청률 나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PD님 말씀이 맞았네요. 시청자들 반응도 다 좋아요.”
“이 프로의 핵심은 배우의 연기 그리고 배우와 매니저 간의 케미라고.”
최욱환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편집된 거 보시고 싸움 좀 더 붙이라고 국장님이 성화시던데. 이제 그 말도 쏙 들어가겠네요.”
국장 이야기가 나오자 최욱환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 그 양반은 종편 오더니, 시청률의 노예가 되셨어. 왜 그렇게 자극적인 거를 못 놓는지.”
최욱환은 예고편은 국장이 좋아할 마라 맛으로 뽑았지만, 본편에서는 악마의 편집 따위로 시청률을 올릴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내일이 첫 공개 녹화니까 문제없이 준비해. 방청객들 선정도 끝냈지?”
“걱정하지 마세요. 비밀 보장 각서도 다 받았습니다.”
최욱환이 생각하는 스타메이커의 하이라이트가 공개 녹화부터다.
“그럼, 상황실로 가 보자.”
“예. PD님.”
* * *
스튜디오 엔진에서는 아침부터 기사를 쏟아 내기에 바빴다.
엔진의 홍보부로 찾아온 심종혁 팀장이 언론사로 넘어갈 홍보 자료를 마지막으로 체크했다.
“윤아 씨. 어제 뜬 나비 예고편 반응은 어때요?”
“장난 아닙니다. 벌써 예고편 조회 수가 오십만이 넘었어요. 댓글도 다 호평 일색이고요.”
“다행이네요. 감독님이 요즘 편집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으세요. 하하.”
“간혹가다가 서이렌 씨 대역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댓글이 있긴 한데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건 다음 주에 풀릴 영상으로 다 해결될 겁니다. 원세강 대표가 예능 촬영하러 가기 전에 서이렌 씨 발레 연습 영상 넘기고 갔어요.”
“저도 그 영상 봤어요. 그 영상 풀리면 이상한 말들 쏟아 내던 악플러들이 바로 입 닥칠 겁니다. 그나저나 원세강 대표가 많은 걸 해 놓고 가셨네요. 지금 이 기사 자료들도 원 대표님이 만들어 놓고 가신 거 아닌가요?”
홍보팀 직원은 스타메이커에 출연하는 이락과 윤이슬을 영화 나비와 묶어서 낸 기사 자료를 보고 있었다.
“원 대표님이 스타메이커 방송 시작하면 나비랑 묶어서 함께 기사 내보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스타메이커에서도 기사 내도 된다고 허락받았습니다.”
“나비랑 스타메이커랑 스타탄생 배우들이랑 한 번에 셋을 홍보하게 생겼네요. 원 대표님이 참 일을 잘해요.”
“그러게요. 아침에 스타메이커 기사 뜬 거 보니까 원 대표님도 이슈인 거 같던데요. 예능감도 있으셨나 봐요?”
“예능감은 하나도 없는데 사람이 매력 있게 나오더라고요.”
“아. 그래요? 원 대표님이 사람이 좋긴 하죠.”
“저는 원 대표님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 원 대표님 엔진에 오면 저도 꼭 불러 주세요.”
“윤아 씨. 뭡니까? 혹시 그 예능 보고 윤아 씨도 원 대표님 팬이 된 겁니까?”
“심 팀장님도 한번 보세요. 원 대표님 진짜 멋있게 나와요.”
“아. 이렇게 되면 원 대표도 같이 홍보해야 하는 건가?”
* * *
스튜디오 엔진의 대표실에서 앉은 박주오가 오전에 뜬 기사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원세강 대표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네.”
박주오는 지난날 원세강이 우연미 작가 때문에 자신을 들이받은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사이가 틀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원세강 대표랑 척 안 진 게 다행이야.”
박주오가 인터넷 기사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박주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박호중]
“뭐야? 왜 갑자기 전화야? 이적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일이야?”
박주오는 전화를 받지 말까 고민하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박 감독.”
[나 KBC 나온 지가 얼만데 그동안 연락 한번 없고. 이러기야? 나 섭섭해.]
“그러게, 누가 그런 대형 사고를 치래?”
[대형 사고는 무슨. 이 바닥에서 작가 교체되는 건 흔한 일인데 괜히 천재용이 그걸 물어서 이슈되는 바람에 일이 커진 거지.]
“천재용 고소했다며?”
[고소하면 뭐 하나? 내가 승소해도 그쪽은 달랑 벌금 몇백 내는 게 다일 거래. 그걸 아니까 천재용도 저렇게 어그로를 끄는 거겠지. 구독자만 벌써 삼십만 명인데 나보다 돈 많이 벌걸? 천재용만 생각하면 짜증 나서 돌아 버리겠어.]
박주오는 박호중의 한탄을 계속 들어 줄 마음이 없었다.
“이봐. 나 지금 나가 봐야 해. 바쁜 일 아니면 그만 전화 끊자고.”
[잠깐만. 아직 할 말 남았어.]
“뭔데 그래? 용건 있으면 빨리 말해 봐.”
박주오는 박호중이 또 엔진에 들어오고 싶다고 운을 띄울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박호중 감독의 입에서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나 말이야. TOP에 들어가기로 했어.]
“TOP? LOK 산하에 있는 그 TOP 말이야?”
[맞아.]
“거기가 배우 소속사일 텐데 박 감독이 왜 거길 들어가?”
[TOP에서 이번에 자체 제작 영화를 만들 거래. 내가 그 첫 작품을 찍게 될 거야.]
박주오는 TOP이 제작에 뛰어든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TOP이 다짜고짜 감독을 영입해서 영화를 제작한다니.
제작에 손대는 배우 소속사는 많지만 다들 투자부터 소소하게 시작해서 그 판에 들어가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감독부터 영입해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심지어 박호중은 드라마판 감독이 아닌가?
[TOP 대표가 꿈이 원대하더라고. 나랑 보는 시야가 같아.]
‘시야가 같기는. 보나 마나 록 이사가 이어 준 끈이겠지.’ 박주오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잠자코 박호중의 말을 듣고 있었다.
[박 대표가 나 안 잡은 거 후회하게 될 거야. 나 이자현 데리고 역대급 작품 하나 기획 중이라고. 이자현 지금 하는 작품 끝나면 바로 제작 들어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