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미스 캐스팅
미스 캐스팅 오디션 배역이 뜨자 윤이슬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흥부네 딸들의 홍소리.
윤이슬에겐 익숙할 거다.
스타메이커 예능에 합류하기 일주일 전, 나는 윤이슬과 함께 극단 마루로 갔다.
윤이슬이 이 미션에서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미리 오디션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대표님. 홍소리면 그때 제가 정하연 배우랑 연습했던 그 역이잖아요.”
“예. 그렇죠.”
윤이슬은 두 손을 모으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쩜 이런 일이 다 있죠? 드라마 오디션 때문에 마루의 정하연 배우한테 사랑스러운 막내딸 연기를 배우고 왔잖아요. 오디션 기회가 날아가서 슬펐는데 이게 스타메이커 오디션에 나올 줄은 몰랐어요.”
“느낌이 좋네요.”
윤이슬은 두 손을 꼭 모으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긴장하는 윤이슬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슬은 자신이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슬 씨. 그때 마루에서도 정하연 씨가 잘한다고 칭찬했으니까 떨지 말고 제 실력을 발휘해 봐요. 할 수 있겠죠?”
“그럼요. 이 역을 하고 떨어지면 하연이가 아마 십 년 동안 저를 놀릴 거라고요.”
나는 걱정할 것 없는 윤이슬을 뒤로하고 이락을 돌아봤다.
이락은 회색 도시의 망치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 서유림 매니저에게 역에 관해 묻고 있었다.
“깡패라고요? 그럼, 보스인가요?”
“아뇨. 보스의 오늘 팔의 하수인 정도?”
“그럼, 과장인가?”
“예? 과장이요?”
서유림은 이락의 말을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보스 아래면 과장이고 과장이 데리고 있는 수하들이 대리나 사원인데 저는 사원이었. 흡.”
이락이 놀라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 매니저님. 저기 윤세라 배우님이 이쪽을 보고 있네요. 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서유림은 그제야 자신을 째려보는 윤세라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먼저 가 볼게요.”
서유림이 사라지고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 이락에게 물었다.
“락 군. 망치 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줘요?”
“아뇨. 괜찮아요. 이따 오디션 올라가면 연기 장면 보여 줄 텐데요. 그리고 조폭들 말투나 행동은 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허탈하게 웃는 이락을 보며 가슴이 아프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미스 캐스팅이 진짜 미션이니까 아까 잘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저 꼭 붙어서 돌아올게요.”
* * *
윤이슬이 무대 위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MC 최혁에게 불만을 쏟아 냈다.
“우리한테도 진짜 미션을 안 알려 주면 어떻게 할 거야. 이거 이대로 진행해요? 말아요?”
“어휴. 윤희자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윤이슬 배우님이 올라오셨는데 심사해 주셔야죠.”
“진짜 웃겨. 이래서 예능인 거야.”
윤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배우들이 그들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역을 한다니 그건 또 보고 싶었다.
MC 최혁은 심사위원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자 바로 윤이슬을 소개하고 VCR를 틀었다.
흥부네 딸들은 홍부라는 이름을 둔 아버지와 그의 네 딸에 대한 주말 드라마다.
홍부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홍부네 식당’이라는 간판에서 홍의 ‘ㅗ’가 떨어져 나가 ‘흥부네 식당’이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그 집안을 흥부네라고 부르고 있다.
흥부의 네 딸 중,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딸이 바로 막내딸인 홍소리다.
VCR에서는 갓 대학에 입학한 홍소리가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빨리 먹다가 혀를 씹는 장면이 나온다.
“악!”
“왜 그래? 소리야. 어디 아파?”
“혀 깨무러써.”
“뭐라는 거야? 좀 천천히 말해 봐.”
“아빠. 아파. 소리 너무 아파.”
혀를 깨문 홍소리의 혀짧은 소리에 아버지가 박장대소를 한다.
윤서혁이 오디션 VCR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윤이슬 배우님. 큰일이네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의자를 산산조각 내놓고 바로 혀짧은 소리로 연기해야 한다니요.”
“그러게. 다른 참가자들이 제대로 미스 캐스팅에 맞는 역을 골라 줬네. 선생님 그렇지 않나요?”
“시끄러워요. 윤 배우 연기 시작하려고 하네. 다들 조용히 해요.”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대기실의 참가자들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윤이슬이 어떻게 연기할지 매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윤이슬은 두 주먹을 꽉 쥐고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 * *
합격 판정을 받은 윤이슬이 개인 인터뷰를 끝내고 대기실 문을 열자 참가자들이 모두 그녀를 쳐다봤다.
윤이슬은 방금 혀짧은 소리를 하며 온갖 귀여운 척을 다 한 자신을 떠올리며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한걸음에 윤이슬에게 다가가 그녀를 맞이했다.
“잘했어요. 마루에서보다 훨씬 잘하던데요?”
“하. 대표님. 저 얼굴을 못 들겠어요.”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연기는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진짜 잘했으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예. 대표님.”
나는 윤이슬을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스타탄생은 미리 정보 받은 거 아냐? 왜 저렇게 미리 준비한 것처럼 다 잘해?”
LOK의 김경진과 TOP의 김철 매니저가 또 우리를 씹었다.
“스타탄생으로 이직한 강진석이 여기 PD랑 친하잖아. 그래서 대본을 미리 본 거겠지.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그들은 대기실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었는지 막말을 내뱉었고 참다못한 이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사람들이…….”
다행히 마침 MC 최혁이 이락의 이름을 불렀다.
“락 군. 어서 가 봐요.”
“저분들이 말을 너무 심하게 해요.”
“갑자기 미션이 바뀌어서 답답해서 저럴 겁니다.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 빨리 올라가요.”
“알았어요. 대표님.”
이락이 대기실을 빠져나가자 내가 매니저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LOK의 김경진, TOP의 김철, 숲 엔터의 박동현 매니저가 그들 앞에 다가선 나를 째려봤다.
“뭡니까? 우리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나는 그들을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김경진, 김철, 박동현 매니저님.”
“뭐요?”
“저는 최욱환 PD님과 사전 인터뷰 빼고는 단 한 번도 사석에서 만남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쳇. 그걸 우리가 봤어야 믿지.”
“그런데 세 분은 최욱환 PD님은 물론이고 NGB의 이정호 국장님과도 만나셨잖습니까?”
“뭐라고요?”
“지금. 지금 뭐라는 거야?”
LOK, TOP, 숲 엔터에서 그들이 미는 신인 배우를 스타메이커에 여러 명 출연시키기 위해 이정호 국장을 만난 일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 달 뒤에 기사로 터진다.
하지만 그들이 밀었던 배우들이 모두 중간에 떨어졌기에 큰 이슈를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출연은 사주할 수 있지만, 오디션만은 오로지 실력대로 뽑았다며 오히려 최욱환 PD가 칭찬을 받는다.
내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자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대기실에 있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보니 마침 이락이 무대 위에서 회색 도시의 VCR을 보고 있었다.
* * *
회색 도시에 나오는 망치.
가상의 도시인 태주과 함께 자라온 대광파.
그 안에서 하급 조직원에서 점점 힘을 키워 행동대장급까지 올라간 망치는 위로는 아부를 일삼으며 아래로는 수하들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배였다.
이락은 망치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완전 리얼이네. 이거 실존 인물 아냐?’
이락은 망치가 자신을 괴롭혀 온 보스 최용팔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용팔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치가 떨렸지만, 그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는 눈에 선했다.
윤희자는 자신에게 윙크하며 꽃을 줬던 귀여운 소년이 조직폭력배 역을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했다.
VCR이 끝나자 이락은 주위를 확인했다.
무대 아래 한쪽 구석에 윤이슬이 산산조각 내놓은 의자가 쌓여 있었다.
“잠시만 장비 좀 챙겨 오겠습니다.”
“장비라고요?”
MC 최혁이 놀라는 와중 무대 아래로 내려간 이락은 부서진 의자 다리를 집어 들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락은 마시라고 마련해 놓은 생수를 머리에 뿌려 올백으로 넘겼다.
입고 있던 하얀색 셔츠는 잡아당겨서 길게 늘여놓고 짝다리를 한 채 고개를 들었다.
아이돌그룹 리더였던 다온에서 순식간에 양아치로 변모한 이락의 모습에 윤희자는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이게 짧다고 안 아플 거 같냐?”
이락은 망치에 빙의해 부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락이 들고 있던 의자 다리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거지같이도 부숴 놨네. 봐 봐. 여기 못이 그대로 매달려 있잖아. 각목으로 맞으면 그냥 멍들고 마는데 이렇게 못 박힌 각목으로 맞으면 몇 달은 고생해. 잘못하면 파상풍 걸려서 절단해야 한다고. 알아?”
이락은 눈앞에 수하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고 가정한 것인지 그들의 주위를 맴돌며 못이 막힌 의자 다리를 들고 위협을 했다.
“못 믿겠어? 그럼, 어디 내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볼까?”
이락이 얄미운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무대를 빙빙 돌았다.
“자 그럼, 누가 오늘의 실험 대상이 될까요? 크큭.”
회색 도시의 망치가 관록이 쌓인 조직폭력배의 행동대장이라면 이락은 쌩 양아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돌에게 양아치 조폭으로 순식간에 돌변한 이락의 연기에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더 볼 것도 없네요. 난 통과.”
“윤 선배님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통과.”
“두 배우님이 같은 생각이신데 제가 반대할 리가 없죠.”
세 사람은 만장일치로 이락의 합격을 외쳤다.
* * *
미스 캐스팅 미션이 끝나고 공개 녹화에 올라 오디션을 볼 다섯 명이 결정됐다.
스타픽의 박선호 배우.
LOK의 이하진 배우.
숲 엔터의 하재윤 배우.
스타탄생의 이락, 윤이슬 배우.
나는 떠나는 서유림 매니저를 배웅하러 로비로 내려왔다.
“윤세라 씨는 먼저 갔어요?”
“개인 인터뷰 끝나자마자 갔어요. 짐은 저보고 챙겨 오라네요.”
“제가 차로 옮기는 거 도와 드릴게요.”
“고마워요. 원 대표님.”
서유림은 캐리어 하나만 들고 나머지는 내가 챙겨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스타메이커도 끝났으니 이윤석 배우한테 돌아가시겠네요.”
내 질문에 서유림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왜요? 아닌가요?”
“이윤석 배우님이 여우비 찍고 인기가 급상승했잖아요.”
“그렇죠. 여우비 나왔던 배우들이 다 잘됐으니까.”
“실장님이 이윤석 배우님을 앞으로 직접 케어하신대요.”
“예? 하지만 이윤석 배우는 서 매니저님이 신인 때부터 줄곧 함께했잖습니까?”
“시작은 중요하지 않죠. 이 바닥은 끝을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서유림의 말이 맞다.
나도 한때 내 전부였던 이자현과 결국엔 갈라서지 않았는가?
나는 짐을 차에 싣고 서유림의 앞에 다가섰다.
서유림은 돌아갈 집이 사라진 사람처럼 눈빛이 공허해 보였다.
나는 서유림에게 다시 만나자며 악수할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우선은 돌아가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푹 쉬어요.”
나는 그녀를 꼭 안아 주고 등을 토닥였다.
서유림은 처음엔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내 진심을 알고 그러겠다고 했다.
서유림의 차가 사라지자 나는 한숨 내 쉬었다.
이제 매니저는 나와 LOK의 김경진, 숲 엔터 박동현, 스타픽의 윤호상뿐이다.
다 적군이네.
아군이 하나도 없어.
하나뿐인 아군이 사라졌지만, 이제부터는 녹화 무대다.
방청객들이 모두 우리 아군이 될 테니 문제없다.
* * *
서이렌이 이자현과 리허설 끝내고 잠시 쉬려는데 갑자기 이자현의 스태프인 현미가 뛰어왔다.
“언니. 스타메이커 2차 예고편 떴어요.”
현미의 말에 서이렌과 이자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현미가 가져온 태블릿 화면에는 스타메이커 2차 예고편 섬네일이 보였다.
[선공개 2: 스타메이커, 불같이 타오르는 오디션장의 열기]
이자현이 재생 버튼을 누르는데 서이렌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저도 같이 봐요.”
이자현은 자연스럽게 서이렌에게 옆자리를 내줬다.
2차 예고편에서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선보이는 열연과 매니저들의 시기와 질투, 뒷담화가 쉴 새 없이 지나가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간간이 보이는 원세강을 보며 서이렌과 이자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클립 안에서도 원세강이 매니저들 사이에서 경계의 대상인 게 훤히 보였다.
그때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되더니 이상한 자막이 떴다.
[스타메이커에서 피어나는 사랑? 우정?]
원세강이 서유림 매니저와 웃고 떠드는 장면이 편집되어 나오더니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 아닌가?
주차장에 설치된 카메라로 멀리서 찍은 것 같은 예고편이 마지막 컷이 나오자 서이렌과 이자현이 표정이 굳었다.
원세강이 서유림 매니저와 포옹하는 장면이 뜬 것이다.